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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겨울.제 28 ISSN 2234-5124 철 따라 풍속 따라 겨울의 절기 ZONE 민족의 단합을 외친 실천형 지도자, 도산 안창호 특별취재 주말에 뭐하지? 길벗 가자!

2018. 겨울. 제28호 - DAESOON2018.겨울.제2호 2018. 겨울. 제28호 ISSN 2234-5124 B(=21(4p0 3 2t 2017-28호_표지.indd 1 2017-12-15 오후 3:05:51 동그라미 만화 북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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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겨울.제28호

    2018

    . 겨울

    . 제28호

    ISSN 2234-5124

    철 따라 풍속 따라

    겨울의 절기

    人ZONE민족의 단합을 외친 실천형 지도자, 도산 안창호

    특별취재

    주말에 뭐하지? 길벗 가자!

    2017-28호_표지.indd 1 2017-12-15 오후 3:05:51

  • 동그라미 만화

    북창 정렴

    한중밀당사

    청나라 침략에 조선의 왕이 엎드려 항복하다

    이야기 상자

    먹물 피자

    인터북

    학교에 간 사자

    우리들 마당

    특별취재

    주말에 뭐하지? 길벗 가자!

    캠프 알리미

    제25회 대순청소년 겨울캠프

    롤링 페이퍼

    동그라미 알리미

    너는 무슨 띠니?

    나는 개띠야!

    철 따라 풍속 따라

    겨울의 절기

    특별기획

    일촌? 삼촌?

    人 ZONE

    민족의 단합을 외친 실천형 지도자, 도산 안창호

    전경 속 우리 문화

    지필묵•서당

    동글동글

    지영이의 입도치성

    질문 있어요!

    입도치성이 뭐예요?

    쉬어가는 코너

    간서치

    목 차

    04

    06

    12

    18

    26

    30

    36

    38

    42

    56

    64

    70

    72

    74

    78

    80

    82

    발행: 대순진리회 본부도장

    편집·제작: 대순진리회 교무부, 대순진리회 출판부

    주소: 경기도 여주시 강천면 강천로 882

    전화: 031) 887-9301

    팩스: 031) 887-9345

    발행일자: 2018년 1월 1일

    홈페이지: www.idaesoon.or.kr

    비매품

    2018.겨울.제28호

    2018

    . 겨울

    . 제28호

    ISSN 2234-5124

    철 따라 풍속 따라

    겨울의 절기

    人ZONE민족의 단합을 외친 실천형 지도자, 도산 안창호

    특별취재

    주말에 뭐하지? 길벗 가자!

    2017-28호_표지.indd 1 2017-12-10 오후 1:17:59

    1. 마음을 속이지 말라.

    2. 언덕 을 잘 가지라.

    3. 척 을 짓지 말라.

    4. 은혜를 저버리지 말라.

    5. 남을 잘 되게 하라.

    훈회

    2018. 겨울. 제28호

    동그라미 작가들(노, 한, 이, 서)

    28호 003 표2표3.indd 2 2017-12-21 목요일 오후 5:46:06

  • 2018년은 무술년 개의 해입니다. 개는 십이지 동물 중에 열 한 번

    째로 ‘술(戌)’이라고 부릅니다. 개띠 해는 12년마다 갑술·병술·무술·경

    술·임술 순서로 반복합니다. 1년 중 음력 9월이 개의 달이며, 시간은 오

    후 7시부터 9시에 해당합니다.

    개의 해에 태어난 사람 개는 사람 곁에서 감정을 주고받고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가장 친근한 동물입

    니다. 일반적으로 온순하여 사람을 잘 따릅니다. 주인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는 충

    성스러운 점도 있어 충견(忠犬)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이 해에 태어난 사람들은 재주가 뛰어나며, 마음이 착하고 부드럽다고 합니다.

    글 이주열

    나는 개띠야!

    너는 무슨 띠니?

    또 정직하고 부지런하며, 항상 새로운 일을 찾아내려 노력합니다. 하지만 자존심

    이 강하여 고집이 세며, 참을성이 부족한 면이 있습니다.

    역사적인 인물로는 태종의 맏아들이자 세종대왕의 형인 양녕대군, 탕평책으로

    유명한 영조, 영국의 정치가인 윈스턴 처칠 등이 있습니다. 연예인으로는 랩몬스

    터, 제이홉, 손나은, 수지 등이 개의 해에 태어났습니다.

    우리 문화 속의 개개는 인간이 가장 오랫동안 사육한 가축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석기 시대

    유물에서 개뼈가 나왔습니다. 기록은 『삼국지』 동이전 중 부여를 소개하는 글에서

    처음 나옵니다. 부여의 관직 이름에는 마가(馬加)·우가(牛加)·구가(狗加)·저가

    (猪加)가 있는데, 여기서 ‘구’는 개를 뜻합니다.

    여름철에 먹는 대표적인 음식으로 보신탕과 삼계탕이 있습니다. 더위로 지친

    몸에 영양을 보충해주기 때문입니다. 고구려의 무덤(안악 3호분) 벽화에는 도축된

    개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경우 일반 푸줏간에서 개고기를 팔았습

    니다. 이렇듯 오래 전부터 우리 조상들이 먹어온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음식디

    미방』, 『부인필지』 같은 책에 다양한 조리법이 나와 있습니다.

    전통 민속놀이 중 하나인 윷놀이에도 등장합니다. 말이 이동할 수 있는 단

    위인 도·개·걸·윷·모에서 ‘개’가 바로 그것입니다.

    정월의 첫 번째 술일(戌日)을 ‘개날’ 또는 ‘상술일(上戌日)’이라고 합니

    다. 이날에 일을 하면 개가 텃밭에 해를 끼친다고 해서 밭일을 하지 않습

    니다. 또 풀을 쑤면 개가 먹은 것을 토한다고 해서 풀을 쑤지 않습니다. 칼

    질을 하면 집에서 키우는 개에게 해롭다고 해서 칼질을 금하는 날입니다.

    정월 보름에는 개에게 먹이를 주지 않는 ‘개보름쇠기’가 있습니다.

    이날 먹이를 주면 살이 오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집안에 파리가 들끓

    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강원도의 영동지방에서는 낮에는 밥을 안주고 아

    침과 저녁에만 밥을 줍니다. 경남지방에서는 저녁에 달이 뜨면 밥을 주며,

    “개파리 쓸자”하면서 등을 비로 쓸어주는 풍속도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맹인 안내, 가축지기, 동물매개치료 등에 동원되어 인간 생활에 도

    움을 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개는 오랜 세월 동안 우리와 가까이 살고 있습니다.

    4 5

  • 24절기(節氣)란?

    달력 밑에 작게 써진 입춘, 하지, 춘분 같은 글자를 본 적 있니? 24절기

    야. 우리 조상들은 달의 변화를 기준으로 달력을 만들어서 사용했어. 바로

    음력이지.

    하지만 음력 날짜는 계절 변화와 딱 맞지 않았어. 그 단점을 보충하려고

    태양의 위치를 중심으로 다시 날을 나눴어. 1년을 24마디(節)로 나눴는데

    이걸 24절기라고 해.

    절기는 계절을 구분하는 것으로 때를 가리키는 ‘철’과도 같아. 우리 선조

    들은 철에 맞추어 농사를 짓고 생활을 했어. 절기와 절기의 사이는 약 15일

    쯤 되니까 한 달에 2번의 절기가 들어있어. 또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날씨와

    동식물의 변화를 나타내서 절기 이름을 지었지.

    그러나 우리나라의 24절기는 이름과 그 날씨 변화에서 차이가 나기도

    해. 그 이유는 중국을 기준으로 만들었기 때문이야. 예를 들면 더 춥다는 의

    미인 대한보다 소한이 더 추워. 그럼 자세히 겨울에 해당하는 절기를 알아

    보자.

    11월(음력 10월): 입동, 소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11월을 ‘상달(上月)’이라고 불렀어. 그해 농

    사지은 곡식을 수확하여 하늘과 조상께 감사 제사를 지내는 ‘으뜸 달’

    이라는 의미야.

    입동(立冬): 11월 7~8일경

    입동은 ‘겨울[冬]로 들어선다[立]’는 뜻이야. 이때가 되면 물이 얼기

    시작할 정도로 찬바람이 불어. 동물들은 추위를 피해 땅속이나 동굴에

    서 겨울잠을 준비하고, 사람도 겨울을 지낼 채비를 하지.

    요즘은 온난화 현상으로 김장을 하는 철이 늦춰지고 있어. 하지만

    예전에는 입동 무렵 무와 배추로 김치를 담갔단다.

    입동과 상강(봄 절기)때는 마을 노인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치계

    미’란 풍습이 있었어. 이때 곡식이나 옷을 모아서 드리기도 했지. 아무

    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꼭 성의를 표시하려고 했어.

    겨울의 절기

    철 따라 풍속 따라

    글 서정임 / 그림 최지영

    소설(小雪): 11월 22~23일경

    소설(小雪)은 첫눈이 내리는 절기야. 이 시기는 “초순의 홑바지가 하순의 솜바지로 바뀐다.”

    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추워져. 하지만 낮에는 따뜻해서 ‘소춘(小春)’이라고 부르기도 해.

    이때 갑자기 강한 바람이 불며 추위가 찾아오기도 하는데, 이것을 ‘손돌 추위’, ‘손돌 바람’이

    라고 불러. 고려 때 공민왕을 배에 태우고 가다가 억울하게 죽은 뱃사공 ‘손돌’의 이름을 딴 거

    지. 그래서 뱃사람들은 소설 무렵에는 배를 띄우려 하지 않는단다.

    6 7

  • 12월(음력 11월): 대설, 동지

    12월은 제대로 갖춰지는 것을 뜻하는 정(正)과 겨울을 뜻하는 동(冬)자를 합쳐서 ‘동정’이라

    고 불렀어. 또 12월에 동지가 있다고 해서 ‘동짓달’이라고 불렀지.

    대설(大雪): 12월 7~8일경

    ‘큰[大]’ ‘눈[雪]’이라는 뜻이야. 일 년 중 눈이 가장 많이 내린다고 해서 붙여졌어. 이때 반드시

    눈이 많이 오는 건 아니야. 오히려 소설 때보다 조금 내릴 때도 많아.

    사람들은 대설에 눈이 많이 내리기를 바랐어. 눈이 많이 내리면 그해 겨울은 그리 춥지 않고,

    다음해는 풍년이 든다고 믿었거든. “눈은 보리의 이불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눈이 보리를 덮어

    보온효과가 있고, 잘 자라도록 해주었지.

    이 무렵 메주를 쒀서 매달아 놓았어. 메주는 된장, 고추장, 간장을 만드는 재료야. 집마다 다

    른 장맛이 그 집안 밥상의 특징을 말해줬기 때문에 메주를 쑤는 일은 집안의 중요한 행사였어.

    동지(冬至): 12월 22~23일경

    동지는 ‘겨울에 이르다’는 뜻이야. 1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을 때야. 반면 동지 이

    후로는 낮이 다시 길어지므로 이날 태양이 죽었다가 살아난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설날과 같

    은 날로 여겨 ‘작은 설’이라고 했지. “동지를 지나야 한 살 더 먹는다.”라는 말도 여기서 나왔어.

    동짓날에는 팥죽을 쑤어먹는 풍습이 있었어. 여기에 찹쌀가루로 새알만하게 만든 새알심을

    넣었는데, 새알심을 나이만큼 먹는 풍속도 있었어. 팥죽을 제사상에 올린 후에는 대문이나 벽

    에 뿌렸어. 팥죽의 붉은 색이 밝은 기운을 상징해서 나쁜 귀신을 쫓는 색이라 믿었거든. 동지는

    낮의 밝은 기운이 부족해서 붉은 팥죽으로 밝은 기운을 채워준다는 의미도 있어.

    하지만 동지라고 하여도 매번 팥죽을 먹는 것은 아니었어. 음력 날짜에 따라 초순에 들면 ‘애

    (아기)동지’라고 하는데 이날은 팥죽을 해 먹지 않고 팥떡을 해 먹었어. 동지가 중순에 들면 중

    동지, 하순에 들면 노동지라고 불렀단다.

    동지 때도 역시 춥고 눈이 많이 오면 풍년이 든다고 믿었어. 반대로 동짓날이 따뜻하면 다음

    해 병충해가 많이 생기고, 흉년이 든다고 믿었지.

    8 9

  • 1월(음력 12월): 소한, 대한

    음력 12월을 ‘막달’, ‘섣달’이라고 불러. 설이 있는 달이기도 하고, 음력으로 한 해를 마감하는

    마지막 달이라는 의미이기도 해. 또 12월을 ‘썩은 달’이라고 하는데 새로움을 얻기 위해 묵은 것

    과 썩은 것을 버리는 달이라는 뜻이야. 추위가 혹독하다고 ‘혹한’이라고도 한단다.

    소한(小寒): 1월 5~6일경

    ‘작은[小]’ ‘추위[寒]’라는 뜻이야. 해가 양력으로 바뀌고 처음 나타나는 절기지. 이름으로만

    보면 큰 대(大)가 들어간 대한이 가장 춥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소한이 더 추워서 그와 관련

    된 여러 속담이 있어.

    “대한이 소한 집에 놀러 갔다가 얼어 죽었다.”, “소한 추위는 꾸어다가도 한다.”는 말이 여기서

    나왔어. 춥지 않다가도 소한 때가 되면 반드시 추워진다는 의미지. 사람들은 날이 풀리는 입춘

    전까지 지낼 혹한의 겨울나기 준비를 해두었어.

    대한(大寒): 1월 20~21일경

    대한은 ‘큰 추위’라는 의미야. 우리 조상들은 대한이 지나면 겨울이 끝난다고 생각했어. 그래

    서 대한의 마지막 날 밤을 ‘해넘이’, ‘절분’이라고 했어. 하룻밤이 지나면 24절기의 새로운 시작

    입춘이 되는 거지. 해넘이 밤에는 콩이나 팥을 집안에 뿌려 악귀를 쫓았어. 또 집수리를 하며 새

    해 맞이 준비를 했지. 이 무렵 소한 때보다 따뜻한 날이 많아.

    동지 후 세 번째 드는 미일(未日)에는 ‘납(섣달)일’이라고 하여 신과 조상에게 한 해 동안 있

    었던 일을 고하며 제사를 지냈어. 또 국가에서는 소화제나 청심환 같은 약을 만들어 백성들에

    게 나누어주었단다.

    특히 청심환은 만병통치약으로 유명했어. 중국에서는 “조선의 청심환을 먹으면 죽은 사람도

    벌떡 일어난다.”라고 하여 우리나라 청심환을 구하기 위해 애썼어.

    10 11

  • 현우는 명절을 할아버지 댁에서 보낸다. 현우는 삼촌이 없다. 하나뿐인 고모는

    멀리 시집가서 명절에는 만나기 어렵다. 명절이라고 해도 오는 친척이 별로 없어

    지금까지는 조용히 보냈다. 그런데 오늘은 손님이 오는 덕분에 차례 지내고 세배

    하고 푸짐한 밥상에 윷놀이까지…. 예전과 달리 시끌벅적한 설날이었다.

    명절이 지나면 친구들은 친척들한테 세뱃돈을 얼마 받았네 하며 자

    랑하는데 현우는 할아버지 말고는 세뱃돈을 주

    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 설날은 친척

    어른 덕분에 주머니가 두둑해서 기분이 좋았

    다. 다음에도 또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글 노창심

    일촌? 삼촌?

    특별기획

    “작은아버님, 작은어머님 운전 조심해서 가세요. 도련님도 또 뵐게요.”

    저녁을 먹고 손님들이 갔다. 집이 좀 조용해졌다. 현우는 그제야 오늘 온 손님

    이 누군지 물어볼 여유가 생겼다.

    “엄마, 그 애가 양반집 도령이야? 도련님이라고 부르게?”

    “결혼하지 않은 남편의 형제를 부르는 호칭이야. 엄마는 현우 엄마이기도 하지

    만 아빠의 아내이기도 하잖아. 시댁 식구들을 부르는 호칭이 따로 있거든.”

    “그렇구나. 그런데 오늘 오신 분들 누구야?”

    “응, 아빠 작은아버지랑 작은어머니, 사촌 동생.”

    “아~ 작은아빠라고 불렀으면 되는 거였네….”

    현우 목소리에 아쉬움이 묻어났다.

    “아냐, 아빠한테 작은아버지니까 넌 작은할아버지라고 불러야지.”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아빠가 끼어들었다.

    “말도 안 돼. 그렇게 젊은 할아버지가 어디 있어요.”

    분명 오늘 온 손님은 아빠 나이 정도로 보였다. 게다가 아빠랑 엄청 친하게 얘기

    12 13

  • 하는 걸 봤는데 할아버지라니…. 현우는 아빠가 자신을 놀리는 거라고 생각했다.

    “나이랑 상관없이 촌수가 그러니까 할아버지야. 하긴 나도 어렸을 때 막내 삼촌

    이랑 엄청 싸웠지.”

    “현우야, 앉아봐. 당신이 와서 설명 좀 해줘요. 친척이라곤 고모뿐이니 이해가

    안 되는 게 당연하죠.”

    엄마가 종이와 펜을 가져왔다.

    “그럼 내가 실력 발휘를 해야겠군.”

    아빠도 무슨 큰 힘이라도 쓸 듯이 목을 풀면서 식탁에 앉았다.

    “너 삼촌이 누군지는 알지?”

    “네, 아빠 형제를 삼촌이라고 부르잖아요. 난 삼촌은 없지만, 외삼촌은 있으니

    까. 그 정도는 알아요.”

    현우는 자신있게 대답했다.

    “맞아. 삼촌은 촌수를 가리키는 말이야. 원래는 백부, 숙부나 큰아버지, 작은아

    버지로 불러야 하는 건데 사람들이 그냥 삼촌이라고 부르는 거야.”

    “촌수가 뭔데요?

    “친척 간에 멀고 가까움을 숫자로 표현하는 건데 부모 자식 사이는 1촌이야. 제

    일 가까운 사이거든.”

    현우는 그제야 학교에서 촌수 어쩌고 배운 것이 기억이 났다. 아빠는 종이에 나

    뭇가지 같은 도표를 그렸다.

    “이렇게 현우를 중심으로 마디를 연결할 때마다 촌수가 늘어나는 거야. 아빠랑

    현우랑 1촌, 아빠랑 현진이도 1촌. 그럼 현우랑 현진이는 몇 촌이지?”

    현우랑 동생 현진이가 나란히 있고 위로 아빠랑 막대가 연결되어 있었다.

    “나랑 아빠랑 한번 또 아빠랑 현진이랑 한번 연결돼서 마디가 2개니까 2촌인 것

    같아요.”

    살짝 자신은 없지만 재미있는 걸 발견한 것 같았다.

    “오~ 맞았어. 기본 원리를 알면 촌수는 금방 이해할 수 있지. 그럼 고모랑 현우

    를 볼까? 아빠랑 할아버지, 그리고 고모까지 이렇게 3개 마디를 연결해야 하니까

    고모랑 현우는 3촌 사이야.”

    아빠는 자세를 고쳐 잡고 더 진지한 태도로 설명했다. 현우는 도표에 쓰인 글을

    보더니 뭔가 깨달았다는 듯 당당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고모를 삼촌이라 불러도 되는 거죠?”

    “그게 있잖아 촌수와 호칭은 다른 거야. 촌수가 3촌이라도 고모는 아빠 여자 친

    척이니까 시어미 고(姑)자를 써서 고모라고 부르고 엄마 여자 친척은 이모 이(姨)자

    를 써서 이모라고 부르지.”

    현우는 고모, 이모라고 부르는데 이유가 있다는 게 신기했다.

    “그럼 할아버지랑 나는 마디가 2개니까 2촌이에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하지만 직계 가족은 촌수를 세지 않아. 할아버지

    를 촌수로 세다보면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또 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되면 9촌

    이 넘어가잖아. 그럼 너무 먼 친척 사이가 되어버리는 거지. 그래서 세대를 가리키

    는 말로 ‘대’가 있는데 할아버지는 2대, 증조할아버지는 3대, 고조할아버지는 4대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

    아버지

    큰·작은 아버지

    큰·작은 할아버지

    종백숙부(당숙)내 종숙

    고모 할머니

    동생

    1촌

    3촌

    4촌 4촌

    3대

    2대

    3촌5촌5촌

    고모

    14 15

  • 조라고 하면 돼. 예전에는 제사를 4대까지 지냈거든. 그만큼 가까운 사이니까 제

    사를 지내면서 돌아가신 분에 대해 이야기하고 기억했을 거야.”

    아빠 말을 들으니 뭔가 조상님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오늘 오신 손님은 할아버지 막내 동생이셔. 아빠보다 나이가 3살밖에 많지 않

    은데 할아버지 항렬이니까 현우한테는 작은할아버지가 되는 거고. 지금까지 외국

    에서 살다가 이번에 정리하고 우리나라에 들어오셨어. 그러니 현우는 처음 뵌 거

    지. 같이 오신 여자 분은 작은할머니시고 1학년짜리 남자애 민수는 아빠 사촌이

    야. 나이는 현우 너보다 어리지만 아빠랑 같은 항렬로 5촌 아저씨니까 당숙이라고

    불러야 되는 거야.”

    아빠는 도표에서 연결 막대 개수를 세면서 설명했다. 그림으로 보니 이해가 조

    금 쉬웠다. 덕분에 낮에 꼬맹이한테 반말 했다가 할아버지께서 당숙 어쩌고 뭐라

    하신 게 촌수 때문이었다는 것도 이해됐다.

    “그런데 항렬이 뭐에요?”

    “친척들끼리 누가 위냐 아래냐를 나타내는 건데 쉽게 알 수 있게 이름에 항렬자

    를 넣지. 아빠 사촌은 이름에 다 ‘수’자가 들어가거든. 처음 보는 친척이라도 같은

    항렬자를 쓰면 형제뻘이고, 윗대나 아랫대 항렬자를 쓰면 할아버지뻘인지 조카뻘

    인지 알 수 있는 거야.”

    “그럼 현진이랑 저는 ‘현’자가 항렬자에요?”

    “너희는 항렬자 안 썼어. 항렬자는 몇 대에 걸쳐서 다시 돌아오기 때문에 돌림

    자라고도 부르거든. 하지만 어른이랑 같은 이름을 쓰지 않는 풍습 때문에 이름으로

    쓸 글자가 몇 개 없는 거야. 이상한 글자를 넣어서 이름을 지을 수밖에 없더라고.

    그래서 아빠는 그냥 어질 ‘현’자를 써서 이름을 지었어.”

    현우는 친척 관계가 아주 체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자신을 기준으

    로 몇 마디만에 연결되는 사이라는 것도.

    “당숙이 어려도 존댓말 써야 해요? 어린 당숙이 저한테 반말 하고요?”

    “아냐, 아저씨뻘이라도 나이 많은 조카한테는 부를 때도 ‘조카님’이라고 부르고 존

    댓말을 쓰는 거야. 아까 작은할머니도 엄마한테 ‘질부’라고 부르면서 존대했잖아.”

    아침에 어른들이 처음 듣는 말로 서로를 불렀던 것이 생각났다. 이름도 아닌 것

    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다 친척 관계를 나타내는 말이었다.

    “예전에 동네에 다들 친척이라 가까이 지냈으니까 누구를 어떻게 부르는 게 익

    숙했는데 요즘은 직장을 따라 멀리 살다보니 배워야 하는 사이가 되어 버렸네. 하

    지만 호칭에도 원리는 있어. 홀수 촌수는 아저씨와 조카 관계라서 아저씨 숙(叔)

    자를 붙여서 부르고 조카는 조카 질(姪)자를 붙여서 부르면 돼. 5촌 이상 관계에는

    쫓을 종(從)자를 붙이거든. 종숙, 종질 이렇게 호칭을 쓰지.”

    “호칭이 한자라서 더 어려운 것 같아요.”

    “그래 좀 어렵지? 아무튼 형제가 적은 너희 세대엔 종숙이나 종질이 없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한번만 생각해 보면 정말 가까운 사이란다. 너랑 동생처럼.”

    생각해보니 동생이랑 자주 다투지만 아프다면 걱정되고 좋아하는 것을 챙겨주

    기도 했다. 아마 아빠도 고모랑 그런 사이였을 것이다. 할아버지도 작은할아버지

    랑 그렇게 지냈을 거라 생각하니 친척이 더 가깝게 느껴졌다. 어떻게 부를지 아직

    익숙하지 않지만 혈연관계라서 그런지 금방 다시 보고 싶어지는 것 같았다.

    아빠뻘 되는 젊은 할아버지도 신기하고 엄마보다 젊은 할머니도 신기했다. 나

    이 어린 당숙어른도. 아무튼 현우는 친척이 생긴 덕분에 세뱃돈이 많아졌다. 친척

    을 어떻게 부를지 공부도 했으니 내년에 더 많은 친척이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친척은 혈연관계일 때 촌수를 따져요. 아버지 계열의 혈족과 어머니 계열의 혈

    족으로 촌수를 셀 수 있지요. 결혼으로 연결된 관계는 법적으로 맺어진 관계라 촌

    수를 따지지 않아요. 그러니 부모님 사이는 촌수가 없어서 무촌이에요.

    결혼한 배우자의 부모를 사돈이라고 해요. 우

    리나라는 법적으로 친족을 8촌까지 정하고 있어

    요. 8촌이 넘으면 한집안이기 보다는 같은 성을

    가진 사이정도라고 보는 거죠. 그런데 법적으

    로 맺어진 인척 관계의 8촌이면 말만 친척이

    지 거의 남이라고 봐도 되는 사이를 말합

    니다.

    16 17

  • 人 ZONE

    글 이주열 / 그림 최지영

    동그라미 친구들 안녕? 2018년 새해가 밝았어. ‘새로운 해의 시작’이라는 의미

    때문일까. 긍정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가슴 속 외침이 어느 때보다 크게 들리는 시

    기인 거 같아. 그래서 새해에는 공부ㆍ다이어트ㆍ친구 사귀는 방법 등 ‘목표’와 관

    련된 내용이 TV나 인터넷에 자주 언급되곤 해.

    목표를 이루는 만큼 꾸준한 실천도 중요해. 우리 친구들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가 포기한 적은 없었어? 그렇다면 이번 호를 주목해서 읽어봤으면 해.

    평생 동안 솔선수범과 화합을 실천하며 살아간 인물이 있어. 바로 도산 안창호

    선생이야. 선생은 제국주의 국가들이 조선을 호시탐탐 노릴 무렵 태어났어. 그리

    고 일본에게 강제로 통치 당하던 시절에 활동하신 분이지. 암울한 민족의 현실을

    바꾸고자 세계를 돌아다니며 독립을 위해 헌신했어. 독립 운동가이면서 정치가가

    되기도 하고, 웅변가도 되는 등 여러 방면에 걸쳐 활동하며, 우리나라를 세계가 인

    정하는 국가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어.

    1894년 선생의 나이 17세에 청일전쟁 일어났어. 다른 나라가 우리나라에 들어

    와 일으킨 전쟁 때문에 조선의 땅과 집이 파괴되는 것을 보았지. 이런 일이 벌어지

    는 원인은 우리가 힘이 없기 때문이라 여겼어.

    선생이 말하는 힘이란 권력이나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도덕과 지식을

    갖추고 서로 단합하는 걸 의미해. 나라에 이런 능력을 갖춘 국민이 많아지면 정

    치ㆍ경제ㆍ군사적으로 무시 받지 않는 국가가 된다는 거야.

    그런 국민을 만들기 위해 우선 나 자신이 자질을 갖춰야 한다고 했어. 내가 덕

    과 지혜, 애국심을 가진 사람이 되어서 남을 그런 사람으로 만들면 우리나라는 그

    만큼 더 강해진다고 보았지.

    이런 생각을 만민공동회에서 발표하자 선생은 곧 유명인사가 되었어. 그리고

    자신의 주장을 실천하기 위해 서울로 가서 공부했어. 22세에는 민족 교육에 뜻을

    품고,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유학을 떠났지.

    18 19

  •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은 날이었어. 선생은 한인 두 사람이 상

    투를 마주 잡고 싸우는 광경을 보았어. 또 청소를 하지 않아 냄새가 나고 더러운 동

    포들의 집, 남을 배려하지 않는 행동들을 곳곳에서 봤어. 이런 모습들 때문에 미국

    인들이 우리 민족을 독립 국민의 자격이 없다고 보는 것이라 여겼어.

    이때부터 선생은 공부보다는 동포의 생활 향상을 위한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

    지. 그리고 직접 동포집을 찾아다니며 청소 운동을 시작했어. 처음에는 선생을 의

    심해 청소를 거절했지만, 꾸준한 모습을 보고 마음을 열기 시작했어. 점차 선생을

    따라 청소도 하고, 위생에 신경 썼으며, 대화도 이웃에 방해되지 않도록 조심했어.

    선생의 솔선수범은 그들의 정신까지도 변화시켰어. 협동과 배려하는 마음을 깨

    닫게 된 거야. 동포들은 나 하나가 외국인을 불쾌하게 만들면, 그에게 우리 민족 전

    체를 불쾌하게 여기는 마음을 심어주는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어.

    선생의 청소 운동은 동포들을 단합하게 만들었어. 여기서 끝내지 않고 1905년

    에는 그들의 인격수양과 협동심을 기를 목적으로 ‘공립협회’를 만들었어. 이후 캘

    리포니아 주, 하와이, 멕시코에 있는 동포들을 모아 ‘대한인 국민회’를 조직했지.

    공립협회를 이끌던 와중에 나라가 일본에 외교권을 빼앗겼다는 소식이 미국에

    까지 전달됐어. 선생은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구하고자 결심했지. 또 임금

    이 통치하는 대한‘제’국을 국민이 주인이 되는 대한‘민’국으로 바꾸려했어.

    선생은 귀국해서 비밀 결사단체인 ‘신민회’를 조직했어. 무턱대고 회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믿을 사람, 애국ㆍ헌신할 결의가 있는 사람을 골라서 입회시켰어. 일

    본의 감시를 피해야 했기 때문에 보안이 생명이었던 거지. 아무리 신민회의 회원

    이라도 자신과 직접 연락을 주고받는 사람 외에 누가 회원인지 알지 못했어. 어떤

    사람이 신민회에 가입했는데, 가입한 지 몇 년이 지나도 그 가족, 친척까지 신민회

    원인 줄 알지 못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어.

    신민회는 민족의 실력을 키우기 위한 목적으로 사회의 여러 곳에서 사업을 진

    행했어. 교육을 위한 ‘대성학교’, 독립운동의 재정적 기초를 다지기 위한 ‘도자기

    회사’, 인격수양을 위한 ‘청년학우회’, 출판업을 위한 ‘태극서관’ 등이 대표적이야.

    20 21

  • 선생은 빼앗긴 나라를 되찾으려면 장기간에 걸쳐 조직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여겼어. 또 민족의 힘을 최대한 모아야 한다고 판단했어. 그런데 지도자들조차도

    서로 믿지 못하는 일들이 자주 발생했어. 그래서 개인의 인격을 다지고, 협력하는

    기초 훈련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지.

    1913년 5월 13일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강영소의 집에서 홍언·송종익 등과 함

    께 ‘흥사단’을 결성했어. 흥사단은 ‘사(士)’를 양성하는 단체라는 뜻이야. 선생의 표

    현에 의하면 ‘사’는 선비란 의미를 넘어 나라의 이익과 백성의 복을 우선으로 여기

    는 사람을 말해.

    결성 목적은 ‘무실역행(진실에 힘쓰고, 실천하자)’을 생명처럼 귀하게 여기는

    성실한 인물을 모으는 거야. 그러한 인물들을 모아 민족의 독립과 국가번영의 기

    초를 준비하자는 것이었어. 이를 위해 학교와 도서관 등을 설치하고, 전문 지식과

    기술을 가르쳤어.

    흥사단은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유지되어왔고, 오늘날에도 통일·투명사회·

    교육 등의 시민운동을 꾸준히 실천하고 있어.

    3·1운동을 계기로 고조된 독립운동은 내부적인 갈등에 휩싸이게 돼. 독립전

    쟁, 외교, 실력양성 등 독립운동을 두고 의견들이 충돌했기 때문이야. 거기다 독

    립한 뒤에 세울 사회체제를 놓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세력이 강력하게 부딪히

    고 있었어.

    내부의 갈등은 독립운동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원인이었어. 독립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민족끼리 분열할 가능성도 있었지.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 선생은 독립

    운동을 하는 모든 단체와 이념을 합치려 했어. 그래서 유일한 독립단체인 ‘대혁명

    당’ 결성 운동을 추진했어. 목표와 방침이 통일되어야 독립운동을 일관성 있게 추

    진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야.

    선생은 동포들이 있는 중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세력들을 모으려 했지.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 ‘대공주의(大公主義)’라는 용어를 만들었어. 대공주의는 개인보다

    는 공동을 위하는 자세를 말해. 사리사욕에 사로잡히지 않고, 공명정대한 태도로

    공공을 위하여 힘쓰는 것이지.

    22 23

  • 평생을 민족을 위해 살아온 선생은 나라의 독

    립을 보지 못하고, 1938년 3월 10일 61세의 나이로

    돌아가셨어. 1962년 3월 1일에는 독립의 공로를 인정받아 김구

    선생, 안중근 의사 등과 함께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받았어.

    선생은 자신이 살던 시대에서 개인·민족·국가 그리고 세계까지도

    변화되어야 한다고 여긴 개혁사상가였어. 그리고 스스로 모든 것을 바

    꾸려고 노력한 개혁운동가이기도 했지.

    특히나 거짓말을 매우 싫어했어. 거짓말이 우리 민족을 쇠퇴하게 하고, 나라를

    잃게 만든 근본 원인이라 본거야. 서로 속이게 되면 의심하게 되고, 믿지 않기 때

    문에 단결할 수 없고, 결국 힘을 잃는다는 논리지.

    말로만 떠들고 실천하지 않는 것 또한 경계했어. 이런 사람들이 자신은 아무것

    도 하지 않으면서 남을 비난하거나 책임을 떠넘기기도 해. 제 잘못은 덮거나 핑계

    를 대고, 남에게 잘하라고 강요만 하는 거지.

    선생은 이런 거짓과 빈말을 무실역행의 정신으로 고치려 했어. 거짓말하지 않

    고 솔선수범하며 실천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믿음을 얻게 되고, 사람을 움직이

    는 힘을 키울 수 있게 되지.

    작은 변화를 통해 큰 것을 이룰 수 있다고 여긴 선생은 솔선수범으로 이를 증명

    하려 했어. 자신을 비웃는 사람을 원망하지 않고, 묵묵히 할 일을 해나갔어. 잘못

    된 일이 벌어졌을 때도 절대 남을 탓하지 않고,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반성했지.

    그 결과 사람들이 믿고 따르는 지도자가 되었어.

    동그라미 친구들도 올 새해에는 안창호 선생처럼 자신이 세운 계획을 꾸준히

    실천해보는 게 어떨까?

    24 25

  • 지필묵·서당글 서정임 / 그림 이지수

    전경 속 우리 문화

    지필묵

    『전경』 교법 1장 27절에 상제님께서 종도들에게 선비는 항상 지필묵을 지녀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지필묵은 종이[紙], 붓[筆], 먹[墨]을 이르는 말입니다. 학문하는 선비에게 떼

    어놓을 수 없는 물건이었습니다. 오늘날로 보면 종이는 노트이고, 먹과 붓은 잉크

    와 펜입니다. 더 편리하게는 스마트폰에 메모할 수 있는 펜이 있는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겠지요?

    지필묵은 ‘문방사우(文房四友)’와도 비슷합니다. 문방사우는 선비가 머무르는

    곳에 꼭 있어야 할 네 가지 벗을 뜻합니다. 지필묵에 벼루[硯]만 추가하면 되죠.

    우리는 우리가 쓰는 노트나 펜의 기능뿐만 아니라 모양에 관심이 많습니다. 우

    리 선조들도 붓, 먹, 벼루에 문양을 새겨 넣었답니다. 또 시대에 따라 유행하는 모

    양이 달라지기도 했습니다.

    우리 선조들이 지필묵으로 글을 쓴 것은 지식과 지혜, 자신의 사상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이었습니다. 우리도 어떤 기억이나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 항상 잊지 않

    고 기록하다 보면 자신만의 생각을 정리한 사전을 만들 수 있겠죠?

    종이는 닥나무 껍질로 만듭니다. 닥껍질 이외에도 짚이나 뽕나무 잎을 섞어서 만들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종이가 귀해서 대나무 조각이나 나뭇조각, 천 같은 것에

    글을 썼습니다.

    붓은 글을 쓸 때 필요한 도구입니다. 붓이 없던 시절에는 나뭇가지에 먹을 묻혀 썼습니다. 나중에는 짐승의

    털을 모아 만들었습니다. 주로 토끼, 양, 사슴, 말, 노루

    털 등을 이용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족제비로 만든 황

    모필이 가장 유명했습니다. 또 사람 머리카락을 붓으로

    만들어 보관하기도 했습니다.

    먹은 글씨를 쓰는데 필요한 먹물을 얻기 위한 도구입니다. 먹은 그을음이 주재료입니다. 기름을 태운 그을음을 반

    죽하여 만든 유연묵과 소나무 송진을 태워 만드는 송연묵

    이 널리 쓰입니다.

    먹을 사용하고 나서는 깨끗하게 말려둡니다. 초기 먹의

    모양은 둥글거나 네모났는데 나중에 먹에 그림이나 문자를

    새기기도 했습니다.

    벼루는 주로 돌로 만드는데 옥이나 조개, 진흙으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귀한 재료로 만든 벼루는 값진 선물이었습니다.

    벼루는 시간이 지나도 먹물이 마르지 않는 것을 최고로 여겼

    습니다. 또 벼루는 잘 닳지 않아서 대를 이어 사용했습니다.

    26 27

  • 서간: 훈장님이 글자를 가리킬 때 사

    용하던 막대입니다. 앞, 뒷면에는 글귀와

    서간 주인의 호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서당(글방)

    서당은 기초적인 한자나 학문을 가르치던 곳으로 오늘날의 초등학교, 중학교와 같습

    니다. 초등학교, 중학교는 국가에서 세웠지만 서당은 마을이나 개인이 세운 교육시설이

    었습니다. 글방 선생님으로는 훈장님이 계셨는데, 그 마을에서 학식이 가장 뛰어난 사

    람을 훈장님으로 모셨습니다.

    서당은 양반과 평민을 구분하지 않았으나 남자만 다닐 수 있었습니다. 보통 7~8세

    아이가 입학하여 15~16세에 공부를 마쳤습니다. 때로는 교육 과정을 끝내지 못해 어른

    이 되어서도 다녔습니다.

    상제님께서는 어렸을 때 글방에 다니시며 남다른 총명함을 보이셨습니다. 일곱 살

    때 훈장에게 놀랄 경(警)자를 받으시곤 그 자리에서 바로 시를 지어 훈장과 함께 다니는

    서동들을 깜짝 놀라게 하셨습니다. 또 언제나 장원을 하셨습니다. (행록 1장 12절, 13절)

    어른이 되신 후 처남 정남기의 집에 글방을 차리셔서 상제님 동생 영학과 이웃집 서

    동들에게 글을 가르치시기도 하셨습니다. (행록 1장 20절)

    그렇다면 서당에서는 어떤 책으로 공부를 했을까요? 처음 서당에 가면 한자의 기본

    을 배우기 위해 천자로 되어있는 책인 『천자문』으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이후 『동몽

    선습』, 『명심보감』을 통해 한문을 해석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점차 난이도를 올

    려 『사자소학』, 『논어』, 『맹자』 등의 교훈적인 내용을 배웠습니다.

    서당에서 교육방법은 글을 소리 내서 읽고, 그 뜻을 질문하고 답하는 ‘강(講)’의 형

    태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글 읽기 공부가 끝나면 한시를 짓기도 했습니다. 훈장님이 운

    자(韻字)를 불러주면 그에 맞추어 시를 짓는 거였습니다. 삼행시의 첫 글자를 불러주는

    것처럼, 시를 지을 때 정해진 자리에 쓰도록 글자를 불러주는 것입니다.

    책 한 권을 끝내면 감사한 마음으로 훈장님과 같이 공부한 서동들에게 떡과 음식을

    준비해서 ‘책거리’를 하고, 다음 과정으로 넘어갔습니다. 학부모들은 수업료로 봄과 가

    을에 곡식을 거둬 냈습니다. 서당을 졸업하면 향교나 서원 혹은 과거시험을 통해 성균

    관으로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28 29

  • 동글동글

    나도 입도

    치성

    해줘~!!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리야?

    글 박송이 / 그림 이지수지영이의 입도치성

    내 친구들은

    다 했단 말이야~

    내가 지영이 누나를

    짝사랑한 지, 벌써 6개월!

    이건 제대로

    점수 딸 기회야!

    저렇게 누나가 하고 싶어

    하는 걸 우리가 해주는 거야!

    우린 방법도

    모르잖아.

    배~ 하면 절하고,

    흥~ 하면 일어나면 돼.

    우와~ 굉장한 걸?

    어쩌면 진짜

    할 수 있을지도...?

    할 수 있고 말고!그리고

    말야~

    나를 도와준다면 주머니 괴물 카드

    5성짜리를 넘겨 줄게.

    신명은 단 걸 좋아하신대.

    내가 준비할 수 있어.

    네가 부모님 한복

    챙겨다 주면 되지~

    그... 그래? 음식은? 엣? 그럼 옷은?

    좋은

    생각이긴

    한데...

    애들은 급하게

    할 거 없어.

    나도

    하고 싶다고~!!

    보았나,

    친구?

    보았네,

    친구.

    그럼 내년에 지우

    여덟 살되면 같이 해줄게.

    그럼 됐지?

    아잉~!!

    지금 해줘~지

    금~~!!!!

    엄마 갔다올게~

    불끈!

    흐흠! 으쓱-

    YOU-!

    히잉~

    우우~!

    호오~

    펄쩍~!

    펄쩍~!

    빼꼼- 헛-!

    그냥 카드대결하고 놀자~

    30 31

  • 좋아! 미래의

    매형을 모른척

    할 수 없지.

    나는 누나의 입맛을 다 알고 있지!

    나는 누나가 좋아하는 색깔을 알고 있지!

    좋아~

    완벽해.

    우린 역시

    대단해.

    자, 이제

    누나를 불러볼까?

    고마워!

    카드는 행사

    끝나고 줄게.

    그럼 어디

    준비해볼까?

    뭘 해준다고?

    그걸

    너희가 어떻게

    해준다는 거야?

    누나는 얼른

    옷이나 갈아입고 와~

    야, 이거

    내가 뜯을까?

    이건 다

    붓는 게 낫겠지?

    누나~

    다 입었으면

    들어와~

    됐어! 이제

    우리도 옷 입자!

    이건 저기에 놓자.

    어~ 어~

    알았어~

    걱정마~

    다 준비해 놨어.

    우리만

    믿으래도!

    입도치성! 아까 아줌마한테

    조르는 걸 봤어.

    척-

    척-

    으쓱-

    히히~

    스-윽~

    쑥덕쑥덕

    수근수근

    헤헷-

    달콤~

    촤라락~!

    끄덕

    히힛~

    엄지 척!

    끄덕

    버선까지 딱!

    짭짤~

    음식 담당이성민

    한복 담당김지우

    32 33

  • 우와...

    이거 뭔가

    그럴싸 하잖아?

    고마워.

    근데 옷이너무

    큰 거 같지 않아?

    근데... 절은

    몇 번 하는 거지?

    글쎄... 좀 많이

    하긴 하던데...나 알아!

    자기 나이만큼

    하는 거야!

    저번에 우리 사촌 형 할 때

    세어보니까 15번이었어!

    지영아, 어제 엄마한테

    입도치성 얘기 했다면서?

    아~

    그랬는데요~

    이제 괜찮아요.

    나중에 해도 돼요!

    그치~?

    그러면 누나는

    8번 하면 되겠다! 얼른

    시작하자~

    도장벽화에

    선녀들 못 봤어?

    원래 한복은 이렇게

    크게 입는 거야.

    형이 열 다섯 살이라고 했거든.

    배~

    흥~

    어, 그래...

    이건 우리끼리 비밀~!

    반짝

    히히히~

    . . .

    흐흠~

    반짝

    파아앗~!

    으음...

    응응!

    휙-

    쉬~잇!

    ㅋㅋㅋ

    흠~ 흐흠~

    ?

    포스슥-

    촤아앗~!

    다음 날

    34 35

  • ※ TIP : 도장 치성 절차와 관련한 내용은 『동그라미』 19호 18~19쪽을 참고하시

    기 바랍니다.

    입도치성이 뭐예요?

    글 편집팀

    질문 있어요!

    학교에 들어갈 때 입학식을 하는 것처럼 대순진리회에도 입도치성(入道致誠)

    이 있습니다. 입도치성은 시운치성(侍運致誠)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상제님의 진

    리를 세상에 알리고, 실천하겠다는 맹세를 드리는 의식입니다.

    보통 8세부터 모십니다. 남의 힘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정성을 드릴 수 있는 나

    이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옷은 한복을 입습니다. 남자의 경우 반드시 두루마기를

    걸쳐야 합니다.

    음식은 술·과일·포(얇게 썰어 말린 고기)를 중심으로 형편에 맞춰 준비합니

    다. 술잔과 수저는 두 벌씩 올려 상을 차립니다. 양위상제님께 올리는 의식이기 때

    문입니다.

    참석자는 역할에 따라 집례자, 집사자, 입도자로 나뉩니다. 집례자는 구령을 붙

    이고, 집사자는 의례를 진행합니다.

    장소는 회관, 연락소, 일반 가정집 등 어디에서 올려도 됩니다. 절차는 도장이

    나 회관에서 올리는 치성과 비슷합니다. 여기에 법수봉전, 녹명지·성령지 소상

    과 같은 몇 가지 절차가 추가됩니다.

    1. 법수(法水) 봉전 : 법수기에 맑은 물을 따라 상위에 올립니다.

    2. 녹명지(錄名紙) 소상 : 입도자가 무릎 꿇고, 녹명지를 태워 올립니다. 집사자는

    기도주를 봉송합니다. 녹명지는 입도자의 생년과 성명, 성별 그리고 입도일이 적

    힌 종이입니다.

    3. 성령지(聖靈紙) 소상 : 집사자가 무릎 꿇고, 기도주를 봉송하면서 성령지를 태

    웁니니다. 성령지는 상제님의 신위가 적힌 종이입니다.

    치성을 올린 입도자 중 남자는 외수, 여자는 내수라 부릅니다. 상제님의 진리를

    실천하는 대순진리회의 수도인이자 도문소자(道門小子)가 된 것입니다.

    ※ 이런 것도 알려주마!

    『전경』에 “상악천권(上握天權)하고 하습지기(下襲地

    氣)식으로 사배하면서 마음으로 소원을 심고하라.(교운 1

    장 37절)”고 상제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위로는 하늘의

    권세를 쥐고, 아래로는 땅의 기운을 다 거두어 받는’ 방식으

    로 절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절을 법배(法拜)라고 합니다. 법배는 상제

    님께 올리는 예(禮)이자 상제님께서 내놓으신 인존사상을

    몸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의 기운을 받아 태어

    난 인간이 하늘과 땅의 기운을 모두 거두어 우주의 중심이

    된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법배를 할 때는 팔을 위아래

    로 뻗는 동작을 한 뒤 절을 합니다.

    ▲ 입도치성(연출)

    36 37

  • “청장(靑莊)있는가? 귀한 책이 들어왔기에 가져왔네.”

    평소 청장 이덕무의 독서광 성향을 아는 사람이 책 한 권을 들고 그의 집을 찾아 왔다.

    “이런 누추한 데까지…. 사람을 시켜 저를 부르면 될 것인데.”

    “자네 눈을 거치지 않은 책이 무슨 책이라 하겠는가! 나도 읽지 않고 가져왔으니

    먼저 보고 내용을 꼭 평해주게나.”

    책을 받아든 이덕무의 눈꼬리에 옅은 웃음이 띠었다. 순간이 아까울세라 방으로

    들어가 책상 앞에 앉았다. 눈꼬리의 웃음은 점점 입꼬리로 옮아갔다.

    “끽끽 크크크.”

    방문 밖으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식구들은 또 어디서 귀한 책이라도 얻었으려

    니, 저러다 막히는 구절이 나오면 끙끙 앓는 소리가 나오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글 노창심

    간서치(看書痴)

    쉬어가는 코너

    이덕무의 독서광증은 유명했다. 집이 가난해서 끼닛거리가 없어도 책을 읽으면

    오히려 배가 부르다며 더 큰 소리로 책을 읽었다. 속이 비어 울림이 좋아 글 읽는

    소리가 더 낭랑하다며 굶은 날은 더 독서에 열중했다.

    추운 날에도 집중해서 글을 읽었다. 정신이 맑아 글이 더 잘 이해됐고 몸에 열

    이 나 추위를 잊을 수 있다고 했다. 이러니 자신을 “책만 보는 바보”라는 뜻으로 간

    서치(看書痴)라 부를밖에.

    이웃도 그의 독서광증에 한몫을 했다. 해마다 눈이 많이 온 다음 날이면 이웃집

    노인이 자기 집 앞 눈을 쓸고는 이덕무 집으로 왔다.

    “밤새 내린 눈에 얼어 죽지나 않았는지….”

    혼잣말을 하고는 그의 집 마당 눈까지 쓸었다. 눈 속에 파묻힌 신발을 찾아 털

    어 둘 때쯤이면 방안에서 글 읽는 소리가 들렸다.

    “다행히 얼어 죽지는 않았네 그려.”

    제집 마당의 눈을 쓸어야 할 시간에 정작 집 주인은 방안에서 글을 서너 편 더

    외웠다.

    이덕무는 서자 출신이라 관직에 나갈 수가 없었다. 글을 읽고 공부한다 해도 출

    세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먹고 살려고 농사를 짓거나 장사를 하려면 주변의 손가

    락질이 심했다. 양반들은 서출을 자신들 세계에 끼워주지도 않았고 다른 일을 하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것이 당시의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덕무는 책을 놓지 않았다. 책을 아꼈고 책 속에 자신의 갈 길이 있다

    고 확신했다. 책이라면 종류를 가리지 않고 읽었다. 하지만 그는 돈이 없어 빌려

    보았고 그 빌린 책을 열심히 읽고 기록했다. 읽은 책이 2만 권이 넘었고 베낀 책이

    수백 권이었다. 종이를 아끼느라 파리머리만 한 크기의 글씨로 썼다.

    날이 몹시 추운 밤이면 입김에 이불이 얼어서 서걱거렸다. 가벼운 홑이불은 추

    위를 막기엔 부실했고 오히려 이불깃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드나들었다. 겨울이면

    으레 밤새 추위에 떨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덕무는 이불 위에 책을 쭉 펼쳐 놓고는 그 속으로 다리부터 목까지 들이밀었

    다. 이불 사이로 들어오던 바람을 책들이 막아주었고 책의 묵직함이 온몸을 따뜻하

    게 했다.

    “내 분명 책 속에 살길이 있다 하지 않았던가. 게다가 멋없는 이불에 책이 무늬

    를 더했으니 내 삶이 이렇게나 멋스러울 데가,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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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난한 살림은 집을 고칠 여유를 주지 않았다. 흙벽은 겨울 찬 바람을 막지 못

    해 방안에 외풍이 심했다. 하루는 바람에 등불이 많이 흔들려 책 읽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외풍 따위에 밀려 글 읽는 재미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는 등불 뒤에 책을

    세워 펼쳤다. 책은 병풍이 되어 흔들리는 등불을 잡아주었다.

    “하하하, 책은 역시 나를 돕는 벗이로다.”

    이덕무의 독서는 종이에 쓰인 글자를 읽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백성의 삶을 책

    읽듯이 살피고 기록으로 남겼다. 한번은 집안 일로 급히 황해도에 다녀 올 일이 있

    었다. 바삐 다녀와야 하는 길이었음에도 지나는 고을 백성의 생활과 풍습을 일일

    이 써 놓았다. 무당이 쌀을 던져 길흉을 점치는 일이며, 민가에서 구렁이와 족제비

    를 ‘업’이라 부르며 귀하게 모시는 풍습 같이 백성의 생활 소소한 부분까지 기록했

    다. 그는 나라를 잘 다스리는 것이 백성을 살피는 것이라는 옛 성인의 말씀을 지나

    간 옛말로만 여기지 않았다.

    이덕무에 대한 소문은 사람들의 입을 타고 흘러 궁궐에까지 이르렀다. 당시 임

    금이었던 정조는 학문의 부흥을 위해 규장각을 세웠다. 그곳에는 역대 왕의 글과

    많은 서적이 있었고 이를 관리하는 검서관들이 필요했다. 정조는 검서관을 기존의

    신하가 아닌 새로운 사람을 쓰려고 했다.

    검서관은 지식이 풍부해야 하며 그러기에 특정 영역에만 치우치지 않고 폭

    넓은 독서를 한 사람이어야 했다. 이덕무는 서출이었으나 적합한 인물로 인정

    받아 유득공·박제가 등과 함께 초대 검서관으로 궁궐에서 일하게 되었다.

    검서관이 해야 할 일은 많았다. 수많은 서적을 검토하고 베껴 쓰는

    일이며 자료 조사와 책 교정에 이르기까지 하면 할수록 일은 늘어났다.

    며칠에 한 번씩 당직도 서야 했다. 하지만 이덕무는 당직을 오히려 반겼

    다. 밤새 불을 밝히고 당직을 서면서 낮에 일하느라 못했던 책 읽는 즐

    거움을 누렸다.

    규장각은 점점 학문과 정책 연구의 장으로 자리 잡아갔다. 정조는

    문(文)의 영역을 안정시켰으니 무(武)의 영역도 안정시키고 싶었

    다. 따로 무과를 실시하여 군사를 뽑고 왕을 호위할 장용영도 만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무관 백동수와 검서관 이덕무, 박제가를 불렀다.

    “너희에게 명하노니 이론과 실제를 겸비한 무예서를 만들라. 두 검

    서관은 세상에 나와 있는 모든 문헌을 세세히 살펴 참고하라. 백동수는 무예 동작

    하나하나를 정확히 하여 누구라도 쉽게 읽고 배울 수 있는 책을 만들어야 할 것이

    다. 그 책 이름은 『무예도보통지』로 하라.”

    이덕무의 독서가 사서삼경과 같은 경서에만 치우치지 않았기에 그 일에 참여할

    수 있었다. 무관 백동수는 무예로 이름난 사람을 찾아다니며 그 동작을 꼼꼼히 그

    림으로 그렸다. 이덕무와 박제가 또한 역사서에 기록된 검술과 무술에 관한 내용

    을 정리하였다. 그렇게 공을 들인 책은 한문을 모르는 병사도 읽을 수 있게 한글판

    으로도 만들었다.

    1793년 봄이 채 오기도 전에 이덕무는 세상과 이별했다. 관직에 나

    갔으나 살림은 여전히 넉넉하지 않았다. 이덕무의 학식과 재능을 아

    꼈던 정조는 따로 돈을 내려주면서 그의 유고집(죽은 사람이 생

    전에 쓴 글을 모은 책) 간행을 명하였다.

    주린 듯 책 읽는 아버지를 보며 자라 온 아들 이광규 또

    한 정조의 명으로 검서관이 되었다. 그런 집안에서 태

    어난 손자 이규경은 백과사전 격인 『오주연문장전

    산고』를 썼다. 평생 서출이라는 신분의 굴레와

    가난 속에서도 책만 보아 온

    바보의 삶이 결코 헛되다고

    할 수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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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그라미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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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중밀당사

    1616년 만주지역에 새로운 나라가 등장했어. 누르하치라는 여진족 추장이 여진족을 포함해 주변

    부족을 합쳐 ‘후금’이라는 나라를 세운 것이야. 고려 시대 때 윤관이 별무반을 이끌고 동북 9성을 정

    벌할 때만 해도 ‘여진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여기저기 흩어져 살던 부족이었지. 누르하치는 ‘만

    주족’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민족을 만들었어. 힘을 키워 명나라를 무너뜨리고 중국 땅을 차지할 계

    획이었지. 그러니 명나라와 가까이 지내는 조선이 눈에 거슬렸어. 결국 후금은 두 번이나 조선을 쳐

    들어오고 말았지. 두 번째 쳐들어올 때는 나라 이름을 ‘청’으로 바꾼 상태였어. 복잡하니까 여기서는

    ‘청’으로 통일해 설명할게.

    1636년 12월 13일 추운 겨울바람 보다 더 매서운 소식이 궁궐로 전해졌어.

    “전하, 청의 군사가 여러 날 전 국경을 넘어 안주까지 들이닥쳤다는 소식이옵니다.”

    “무엇이라? 언제고 다시 쳐들어 오겠다 생각은 했지만…이 겨울에 전쟁이라니. 그래 우리 군사들

    은 어찌하고 있다더냐?”

    청나라 침략에

    조선의 왕이 엎드려 항복하다글 이정화 / 그림 전혜인

    전해진 소식에 의하면 청나라의 황제 태종이 직접 군사 2만을 이끌고 국경을 넘었다고 했어. 임경

    업이 굳게 지키는 의주의 백마산성을 빼앗는 것이 쉽지 않으리라 짐작한 청나라는 선봉장인 마부태

    를 의주를 돌아 한양으로 직접 가게 했다는 거야. 그 때문에 당시 청나라의 수도였던 선양을 떠난 지

    10여일 만에 한양 가까이 들이닥친 것이지.

    다음 날 조정에서는 세자빈, 원손, 봉림대군 등을 강화로 피신하게 했어. 밤이 어두워질 무렵 인

    조도 세자와 함께 강화로 가려고 나섰지만, 이미 청군이 사대문 가까이 왔다는 보고에 남한산성으

    로 발길을 돌렸어. 왕이 남한산성으로 피난하는 것을 보고 군사들과 백성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었어.

    “전하, 성 안의 군사가 1만 3천여 명 있사오니 이곳을 지켜낼 것이옵니다.”

    “어서 8도에 교서를 내려 각 도에서 군사를 모집하라. 명나라로 원병을 청하는 일도 서둘

    러라.”

    인조는 신하들을 재촉했어.

    기다리는 원군은 오지 않고 하루 이틀 지나는 사이 청나라 군사

    들이 성 아래쪽 들판을 까맣게 채우기 시작했어. 10만이

    나 되는 청나라 군사들이 남한산성을 에워

    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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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식이 가장 큰 걱정입니다. 앞으로 한 달을 버티기가 어려울 듯합니다.”

    “하루라도 빨리 원병이 성을 포위한 청나라 군사들을 뒤에서 공격해 주기를 바

    랄 뿐입니다.”

    내놓고 말은 못하고 쉬쉬했지만 사정을 아는 관리들은 하나같이 수심이 깊어

    갔어.

    지방에서 올라오는 소식들도 걱정되는 것뿐이었어. 군사들이 청군과 싸우다 졌

    다거나 역습을 당해 후퇴하고 있다는 소식만 들려왔지.

    “정묘년 전쟁 때도 우리가 졌는데 이번이라고 이길 수 있겠어? 그때 한 약속

    을 지키지 않았다고 청의 황제가 화가 나서 쳐들어 온 거니 더 지독하게 굴겠지!”

    “그러게. 우리 같은 백성들이야 친명인지 친청인지 그런 거 모르겠고 청나라가

    더 힘이 세졌다면 청나라와 친하게 지내면 되는 일 아닌가?”

    모여 앉아 주먹밥으로 끼니를 때우던 군사들이 한 마디씩 했어. 한 군졸이 소리

    가 새나갈까 손바닥으로 입을 가리고 소곤소곤 말했어.

    “지방에서 오는 군사들도 몽땅 청나라 군사들에게 지고 있대요. 명나라에서 보낸 원군은 가까이 오

    지도 못한다더라고요.”

    병사들의 말처럼 청나라가 조선을 쳐들어 온 건 이번이 두 번째였어. 10년 전인 1627년 1월부터 3월

    까지 벌어졌던 정묘호란이 첫 번째 전쟁이었지.

    당시 만주 땅을 두고 명나라와 청이 충돌하게 되자 명나라는 조선에 도움을 요청했어.

    “30여 년 전에 있었던 임진왜란 당시 조선을 도운 일을 기억할 것이오. 이번에는 조선이 우리 명을

    도울 차례요.”

    하면서 말이지.

    하지만 선조의 뒤를 이은 광해군은 멸망이 코앞에 닥친 명나라와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청나라 사

    이에서 중립을 지켜야 조선이 무사할 거라 생각했어. 그래서 원군을 이끌고 명나라로 떠나는 강홍립

    장군에게 형세를 잘 판단해 행동하라고 했지. 광해군의 중립외교 덕분인지 당시 전쟁은 청의 승리로

    끝났지만 명을 도운 조선에 대해 문제 삼지 않고 지나갔어.

    그 후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인조는 광해군의 중립외교를 던져버리고 청나

    라와의 관계를 끊었어. 명나라와 가까이 지내기 위해서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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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러자 청은 경제 교류의 길이 막혀 물자 부족을 비롯해 생활에 큰 불편함을 겪

    게 되었어.

    “지난 번 전쟁 때 일도 모른 척 넘어가 주었더니 조선이 겁이 없구나. 전쟁을 겪

    어 봐야 우리가 무서운 줄 알겠지!”

    전부터 조선에 대해 전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던 청나라의 태종은 결국 1627

    년 1월 3만의 병력을 보내 조선을 침략했어.

    청나라의 침략에 인조는 신하들을 각 지방으로 보내 군사를 모집하고 나라를 지

    키게 했지만 전세는 조선에 불리하게 돌아갔어. 인조는 강화도로 피난하고 각지에

    서 일어난 의병이 후금 군사의 배후를 공격하거나 군량을 조달하며 애썼지만 전쟁

    은 청나라 쪽으로 기울고 말았지.

    결국 두 나라는 청나라가 형이 되고 조선이 동생이 되는 형제 관계를 맺기로 하

    고 전쟁을 끝냈어. 조선이 명나라와 적대 관계가 되지 않겠다는 조건만은 지킬 수

    있었지.

    첫 번째 전쟁은 그렇게 끝났지만 두 나라의 관계는 좋아질 수가 없었어. 조선은

    청이 원하는 형제 관계를 따를 마음이 없었고, 청으로 보내야 하는 물자와 금전에

    대한 부담이 너무 커서 청나라에 대한 원한이 점점 커졌거든.

    이런 조선의 바람과 달리 청나라는 세력이 더 강해지면서 강압적인 태도로 약

    속한 조공을 보내라고 요구했어. 하지만 조선이 계속해서 거부하자 청나라 태종은

    또다시 조선으로 쳐들어왔지. 두 번째 전쟁인 병자호란이야.

    전쟁이 시작되고 20여 일이 지났을 무렵 인조는 청나라 황제의 문서를 받았어.

    문서에는 지난 날 명나라를 도와 조선이 청나라에 맞서려 했던 일이며, 정묘년 전

    쟁 때 약속했던 일을 조선이 지키지 않아 다시 군사를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는 내

    용이 쓰여 있었어. 다음과 같은 경고도 잊지 않았지.

    몰래 도망하려 하면 우리 군사에게 해를 당할 것이다. 반항하는 자는 반드시 죽

    이고 순종하는 자는 받아들일 것이다. 귀순하는 자는 정중하게 대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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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묘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어. 인조가 어찌하면 좋을지 신하들에게 물었어.

    “무례하기 그지없는 청의 문서를 불태우시옵소서!”

    “회답하지 말아야 할 것이옵니다.”

    다들 분한 마음에 한마디씩 했지만 청나라를 물리칠 방법은 찾지 못했어.

    시간이 흐를수록 청나라 진영에서 공격해 오는 일도 잦아졌어. 청에서 쏜 대포에 성벽이 무너지

    기도 했지.

    추운 날씨에 제대로 먹지 못한 군사가 얼어 죽기도 하고 여기저기서 병에 걸려 쓰러지는 신하들도

    나오기 시작했어. 양식도 곧 바닥날 지경이었지.

    더 이상 견디기 힘들다고 생각한 인조는 신하가 되겠다는 뜻을 담은 문서를 청나라 황제에게 보냈

    어. 그러자 왕이 성에서 나와 항복하되 그 전에 전쟁이 일어나게 만든 조선인 주모자 두세 명을 잡아

    보내라는 답장이 왔어. 강화에서도 다급한 소식이 전해졌지.

    “전하, 강화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이옵니다.”

    “뭐라? 세자빈이나 대군들은 어찌되었다더냐?”

    “모두 포로가 되어 이쪽으로 호송되고 있다 하옵니다.”

    인조는 도저히 전세를 뒤집을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

    ‘항복 밖에 다른 방법이 없겠구나. 이 치욕을 어찌 견딘단 말인가?’

    1월 30일, 인조는 성에서 나와 삼전도로 가서 항복의 의식인 ‘삼배구고두례’를 거행했지. 패배한 나

    라의 왕이 승리한 나라의 왕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이마를 바닥에 찧는 의식이지. 왕이라면 나라에

    서 가장 높은 사람이라 다른 사람에게 절을 하는 일도 거의 없는데 다른 나라 왕에게 이런 예식을 행하

    는 마음이 어땠을까?

    이제 청나라와 조선은 임금과 신하의 관계를 맺게 되었어. 조선이 명나라와 국교를 끊는 것은 물론

    조선의 세자를 비롯해 왕자, 대신의 자제들은 인질로 청에 가게 되었어. 앞으로 조선에서는 성을 쌓거

    나 보수하는 일이 금지되었으며 청나라에 바칠 공물의 양도 정해졌지. 이번 조약은 정묘호란 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굴욕적인 내용이었어.

    두 번의 전쟁과 조선에 불리한 조공관계 등으로 고통을 겪으면서 조선에서는 청나라를 반드시 물리

    쳐야 할 적국으로 생각하게 되었어. 이런 생각을 ‘북벌론’이라고 하는데 인조의 둘째 왕자인 봉림대군

    이 왕위에 올라 정책으로 시행하면서 더욱 강해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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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야기 상자

    문득 배가 고팠다. 시곗바늘이 오후 1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차려 먹는 건

    귀찮으니까 피자나 시켜야겠다.

    전단목록을 찾으러 갔는데, 냉장고 밑에 붉은색 종이 끄트머리가 삐죽이 나와 있

    는 게 보였다. 끄집어 내보니 손바닥만 한 전단이었다. 처음 보는 가게 이름이었다.

    맛이 어떨지 궁금해서 전화를 걸었다. 먹물 피자 전문점이라서 메뉴가 하나밖에 없

    다고 했다. 스몰 사이즈로 주문하고, 주소를 불러줬다.

    전화를 끊자마자 빗방울이 창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유리창 너머로 먹구

    름이 잔뜩 낀 하늘이 보였다. 비가 한참 내릴 것 같다고 생각한 순간, 벨 소리가 울

    렸다. 인터폰 화면에 파란 모자를 쓴 배달원이 보였다.

    말도 안 되는 속도에 놀라며 문을 열었다. 피자 상자를 든 배달원이 흠뻑 젖은 채

    로 서 있었다. 지갑을 가져오려고 방으로 가는데, 쿵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배달

    원이 쓰러져 있었다.

    괜찮으냐고 물어봤더니 소금물을 갖다 달라고 했다. 얼른 소금물 한 컵을 가져갔

    다. 배달원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욕조 한가득 만들어달라고 했다. 이유를 물어보고

    싶었지만, 말하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

    일단 소금을 봉지째 욕조에 탈탈 털어 부었다. 샤워기를 틀어놓고 배달원을 부축

    해서 욕실로 데려갔다. 배달원이 미끄러지듯 욕조에 들어가서 물을 휘저었다. 마음

    에 들었는지 빙긋이 웃다가 잠수까지 했다.

    배달원의 옷이 점점 물 위로 떠오른다 싶었는데, 문어가 쑥 올라왔다. 잘못 봤나

    싶어서 눈을 비벼봤다. 여전히 문어 한 마리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진짜 문어냐고요? 네, 진짜예요. 당황스러우시죠? 저도 인간에게 본 모습

    을 보여서 매우 당황스럽네요.

    먹물 피자

    글 한아름 / 그림 조서연

    어떻게 된 거냐고요? 능숙한 배달원은 현관문 앞까지 한 번에 이동할 수 있는데, 저는 아직

    서툴러서요. 공간을 몇 번씩 건너뛰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져서 이렇게 돼버렸어요. 소금 코팅

    이 끝나는 대로 돌아갈 테니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어디서 왔냐고요? 태평양 어디쯤인데, 인간이 알만한 곳은 아니에요. 아버지는 용궁 예식장

    에서 주례를 보세요. 저희 집안은 대대로 그 일을 했지요. 아버지는 제가 주례전문학교에 가길

    바라셨어요. ‘아저씨’ 보다 ‘박사’로 불렸으면 좋겠다고요. 하지만 저는 그게 싫었어요.

    제가 용궁 예식장에서 일한 이유는 피아노 때문이었거든요. 저는 결혼 선물을 들고 피아노

    옆에 서 있다가 연주가 끝나면 전해주는 일을 했어요. 덕분에 피아노 소리를 가장 가까이에서

    들을 수 있었지요.

    64 65

  • 피아노의 첫 음을 듣자마자 완전 반해버렸죠. 세상에 그렇게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악

    기가 있다는 게 신기했어요. 연주는 오징어 씨가 했는데, 열 개나 되는 다리가 한 번도 꼬

    인 적이 없었어요. 저도 언젠가 오징어 씨처럼 멋지게 연주를 해보리라 마음먹곤 했답니다.

    어느 화창한 봄날이었어요. 곧 결혼식이 시작될 예정이었고, 다들 순서대로 준비하느라

    바빴어요. 저도 결혼 선물인 조개껍데기를 챙겨 들고 피아노 옆에 섰지요. 평소 같으면 오

    징어 씨도 미리 연습하고 있었을 텐데, 그날은 좀 늦는 건지 아직 오지 않았더라고요.

    저는 주위를 살펴봤어요. 아버지는 단상에서 주례 연습

    을 하고 계셨고, 다른 이들도 저마다 할 일을 하

    느라 바빴어요. 살며시 피아노 건반 쪽으

    로 다가갔어요. 새하얀 건반과 새까

    만 건반이 열 맞춰 놓여 있었지

    요. 그 모습이 어찌나 예쁜지,

    저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

    답니다.

    한 번 더 주위를 살펴봤어요. 모두 여전히 바빠 보였어요. 저는 살짝 새하얀 건

    반을 눌러봤어요. 맑은 음이 울렸지요. 이번에는 새까만 건반을 눌러봤어요. 그 음

    은 지금도 잊히지 않네요. 다시 새하얀 건반을 누르는 순간, 오징어 씨의 고함이 들

    렸어요.

    저는 얼른 피아노에서 떨어지려고 했어요. 그런데 너무 놀란 나머지 빨판이 강하

    게 붙어버렸죠. 오징어 씨는 자기 피아노를 함부로 건드렸다고 난리였어요. 아버지

    도 달려오고, 다른 이들도 달려왔어요. 저는 온 힘을 다해 다리를 당기고 나서야 겨

    우 피아노에서 떨어질 수 있었어요.

    그때부터 더 큰 난리가 났어요. 제 빨판에 피아노 건반 두 개가 붙어있었거든요.

    오징어 씨는 먹물을 내뿜으며 기절했고, 아버지는 소리를 질렀어요. 당장 저를 집어

    넣을 기숙학교를 알아보겠다며 예식장을 뛰쳐나가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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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참 후 오징어 씨가 정신을 차렸어요. 저는 피아노가 너무 쳐보고 싶어서 그랬

    다고 사과했지요. 오징어 씨는 제 다리가 여덟 개 밖에 없기 때문에 절대로 연주를

    할 수 없다면서, 다시는 피아노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말라고 했어요.

    그 말에 충격 받아 한동안 머릿속이 멍했어요. 다리가 두 개나 부족해서 피아노

    를 칠 수 없다니…. 애초에 자격이 안 됐다니…. 너무 슬펐어요. 이대로 집에 가면 주

    례전문학교로 보내질 게 뻔해서 더 슬펐어요. 결국, 돌아가지 않고 일자리를 찾아

    나섰지만 아무도 저를 써주지 않았어요.

    이곳저곳 떠돌다 먹물 피자 가게로 갔어요. 이 가게는 저처럼 오갈 데 없어진 이

    들이 유일하게 일할 수 있는 곳이에요. 일 자체도 힘들고 소금 코팅이 벗겨지는 경

    우도 있어서 위험하거든요. 바다에서 살았기 때문에 몸의 소금기가 전부 없어지면

    목숨을 잃게 돼요. 근데 전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피아노 연주가 아니면, 무엇을 하

    든 아무 의미가 없어요.

    문어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왠지 도와주고 싶어졌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반짝 떠오른 게 있었다.

    피아노는 다리가 두 개만 있어도 칠 수 있다고 했더니 문어가 많이 놀랐나 보다. 먹물을

    내뿜었는지 욕조의 물이 갑자기 새까맣게 변했다. 내 방으로 가서 벽장문을 열었다. 상자

    를 세 개 째 뒤지고 나서야 겨우 까만 가방을 찾아냈다.

    벽장문을 닫고 돌아서니 언제 왔는지 문어가 서 있었다.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지퍼

    를 열었다. 재작년에 샀던 멜로디언이 그대로 들어있었다. 멜로디언에 연결된 호스를 물

    고, 양쪽 손가락 하나씩을 건반 위에 얹었다. 어느새 문어는 내 옆에 바짝 다가와 있었다.

    호스를 불며 유일하게 연주할 줄 아는 젓가락 행진곡을 쳤다. 막상 연주해보니 기억나

    는 부분이 꽤 있었다. 덕분에 많이 틀리지 않고 연주를 끝마칠 수 있었다. 멜로디언을 가방

    에 넣어서 문어에게 내밀었다.

    선물로 주겠다고 하자, 문어가 파르르 떨더니 방을 뛰쳐나갔다. 욕실 쪽에서 요란한 소

    리가 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배달원 모습으로 돌아간 문어가 뛰어 들어왔다. 내 눈앞에

    얼굴을 들이밀며 진짜 주는 거냐고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가방을 내밀었다. 문어는 눈물을 글썽이며 두 손으로 받아들었

    다. 그러더니 아까 그 곡을 가르쳐 줄 수 있냐고 했다. 그러겠다고 하자 문어가 활짝 웃었

    다.

    문어는 삼 일 후에 쉬는 날이니 그때 찾아오겠다며, 고개를 꾸벅 숙이고 나갔다. 잠시 닫

    힌 문을 바라보다가 바닥을 둘러봤다. 문어가 서 있던 곳이 온통 물투성이였다. 욕조를 들

    여다보니 시꺼먼 물이 출렁거리고 있었다.

    바닥에 있던 피자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한 조각을 집어 들고 한입 가득 베어 물었다.

    피자는 식어도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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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그라미 친구들, 안녕? 오늘 소개할 책은 필리파 피어스의 『학교에 간 사자』야.

    아홉 가지 이야기가 실려 있는 단편동화 모음집이지.

    인터북

    학교에 간 사자

    방학이 한 달 정도 밖에 안 남았네? 아아~ 학교가기 싫다~

    왜 학교 가는 게 싫어?오랜만에 친구들도 만나고, 새로

    운 것도 배울 수 있잖아.

    에이~ 말도 안 돼!사자는 사나워서 바로 물릴 걸?

    응~ 맞아.저번에 베티 스몰이 같이 학교에 갔었거든.

    글쎄? 끝인지 아닌지는 아직 모르는 거지.점심 먹고 나서 운동장에 갔다가

    셋이서 따~악 마주쳤거든!

    궁금하면 도서관에 가봐~ 베티는 거기 자주 있어. 뭐든 본인한테

    직접 듣는 게 제일이잖아?

    베티를 괴롭히는 애 이름은 잭 톨이래.그 애가 누구인지 사자가 물어봤다더라.

    그러고는?

    아니~ 그냥 둘이서 그림 그리고 놀았다던데?베티가 생선튀김 그리는 방법을 알려줬대.

    글 진다호

    신나는 일이 없잖아.학교는 따분하고 재미없단 말이야.

    뭐~어? 사자?동물원에 있는, 으르릉 거리는 걔?

    그럼 새로운 친구를 데려가서 같이 수업을 듣는 건 어때?음... 예를 들어... 사자라던가.

    베티도 처음에는 그럴 줄 알고 겁먹었다더라. 근데 자기를 학교에 데려가면

    안 잡아먹겠다고 했대.

    오전에는 베티 옆에 얌전히 앉아서 같이 수업을 들었대.

    쉬는 시간에 사자가 운동장에 가서 놀자고 했는데, 베티는 싫다고 했어. 키가 작다고

    일부러 밀치고 그러는 애가 있었나봐.

    우왓! 그래서 어떻게 됐어?

    그래서 같이 학교에 갔다고?거기서 사자가 할 게 없잖아.

    아~ 맞아. 우리 반에도 그런 애 있어.

    뭐지? 사자가 복수해주는 건가?

    에이, 시시해. 그게 끝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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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들

    마당여수부영초 4

    임지원

    영일중 2최은수

    강천초 6홍정문

    부일여중 3강태임

    인흥초 6 이진향

    여수좌수영초 4문민선

    호암중 1 이유진

    강천초 4 윤종훈

    수서중 3박경민

    삼성초 6박경령

    연산초 5 조민성

    야음중 3 김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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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별취재

    길벗 가자!

    글 / 촬영 서정임

    동그라미 친구들 잘 지내고 있지? 주말에 집에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그럼 길벗으로 가봐. ‘길벗’은 도우(道友)의 순 한글

    이름이야. 인생길에 함께하는 친구라는 뜻이지.

    2016년에 시작한 길벗은 여주지역에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학

    교 3학년까지 친구들을 대상으로 해.

    길벗을 만든 이유는 대순진리에 대해 궁금한 점을 알려주기 위

    해서야. 또 친구들과 함께 어울릴 장소를 마련해 주려고 만들었어.

    내년부터는 길벗을 운영할 선생님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할 계

    획이야. 그럼 앞으로는 길벗이 전국적으로 생기겠지? 자 이제 여주

    길벗에 대해서 알아보자.

    친구들이 모이면

    먼저 읍배를 드려.

    간식을 먹으

    한 주간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지.

    오목도 두고

    오세기 훈장님의 ‘상제님 이야기’를 들은 후

    내 손으로예쁜 한지공예도 만들고

    친구들과 제기차기

    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

    단다.

    안녕?

    난 상희호 선생님이야.

    청소년수련원 옆 별관 건물

    4층에 길벗센터가 있어.

    402호 문을

    열고 들어가면 언제나

    선생님들이 반겨주시지.

    길벗은 어디서

    할까?

    길벗에서는 뭘 하

    지?

    주말에 뭐하지?

    74 75

  • 부모님 소개로

    오게 되었어요.

    다음에도 또 올래요!

    간식도 많이 주고, 다양한 체험이

    많아서 좋았어요~

    재밌고, 선생님들이

    친절해서 좋았어요.

    어느새 매주

    길벗가는 토요일이

    기다려져요.

    언제나

    감사해요♥

    재밌었어요!

    상제님에 대해서

    알 수 있어서

    좋았어요!

    다음번에는

    밖에서 체험을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길벗 선생님

    길벗

    지현욱

    (초5)

    이정은

    (중2)

    박주현

    (초4)

    손정민

    (중2)

    신현도

    (초4)

    김성주

    (중2)

    이혜민

    (초6)김도건

    (초4)

    신유림

    (초6)

    차민준

    (초4)

    홍유경

    (초4)

    곽나연

    (중1)

    박소연

    (초6)

    토요일마다

    보람 있었어요.

    길벗 친구들 한마

    디!

    76 77

  • 캠프 주제! 은혜를 저버리지 말라! 두둥!

    큰 은혜를 입었어요.

    캠프에 와주는 그대에게.

    캠샘을 아껴주는 그대에게.

    캠프를 사랑해주는 그대에게.

    캠프가 존재 할 수 있게 해주는 그대에게.

    바로 대순청소년에게.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하트 뿅~

    수많은 은혜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

    은혜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서로에 대한 은혜로 훈훈한 겨울캠프!

    은혜에 감사하며 하트 뿅~ 달달한 대순캠프!

    곧 만나요. Coming soon!

    캠프알리미

    제25회 대순청소년

    겨울캠프

    ● 대상

    ● 주제

    ● 장소

    : 초·중·고등부

    : 은혜를 저버리지 말라

    : 대진청소년수련원

    제25회 대순청소년 겨울캠프 일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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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시 30분까지

    대진청소년수련원으로

    와주십시오

    여는 마당/조별 시간

    관계형성(너와 나, 우리)봉사활동 단막극

    훈회실천활동Ⅰ

    (봉사활동 사전준비)

    저녁 식사

    조별 위문공연 준비

    조별 시간

    취침점호

    취침

    아침 식사

    봉사활동 준비

    훈회실천활동Ⅱ

    (대진노인요양시설 봉사활동)

    점심식사

    상생연극

    대순캠프예체능

    장기자랑 리허설

    저녁 식사

    별 헤는 밤(캠프파이어)

    축제의 밤(장기자랑)

    조별 시간

    취침점호

    취침

    청소

    아침 식사

    나눔의 시간

    맺는 마당

    시간 첫째날 둘째날 셋째날

    ※ 상황에 따라 프로그램이 변경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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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롤링페이퍼

    80 81

  • '스룩'에 접속

    (www.srook.net)

    검색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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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릭'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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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리미

    1.

    이번 호를 읽고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을 망설이지 말고

    알려주세요. 친구들의 소중한

    의견이 동그라미를 더욱

    알차게 만들 수 있어요.

    2.

    동그라미에 글이나 그림을

    싣고 싶은 친구나 부모님께서는

    부끄러워 말고 언제든지

    보내주세요. 동그라미에서

    준비한 소정의 상품을

    보내드려요.

    3.

    독자엽서를 통해 소중한

    의견을 보내준 친구들에게

    추첨을 통해 선물을 드려요.

    많은 참여 기대할게요.

    (소정의 상품이 있으니

    연락처를 정확하게 써주세요.)

    4.

    동그라미는 인터넷으로도 볼 수 있어요.

    발행: 대순진리회 본부도장

    편집·제작: 대순진리회 교무부, 대순진리회 출판부

    주소: 경기도 여주시 강천면 강천로 882

    전화: 031) 887-9301

    팩스: 031) 887-9345

    발행일자: 2018년 1월 1일

    홈페이지: www.idaesoon.or.kr

    비매품

    2018.겨울.제28호

    2018

    . 겨울

    . 제28호

    ISSN 2234-5124

    철 따라 풍속 따라

    겨울의 절기

    人ZONE민족의 단합을 외친 실천형 지도자, 도산 안창호

    특별취재

    주말에 뭐하지? 길벗 가자!

    2017-28호_표지.indd 1 2017-12-10 오후 1:17:59

    1. 마음을 속이지 말라.

    2. 언덕 을 잘 가지라.

    3. 척 을 짓지 말라.

    4. 은혜를 저버리지 말라.

    5. 남을 잘 되게 하라.

    훈회

    2018. 겨울. 제28호

    동그라미 작가들(노, 한, 이, 서)

    28호 003 표2표3.indd 2 2017-12-21 목요일 오후 5:4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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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겨울.제28호

    2018

    . 겨울

    . 제28호

    ISSN 2234-5124

    철 따라 풍속 따라

    겨울의 절기

    人ZONE민족의 단합을 외친 실천형 지도자, 도산 안창호

    특별취재

    주말에 뭐하지? 길벗 가자!

    2017-28호_표지.indd 1 2017-12-15 오후 3:05: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