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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아 제 1장 =====1:1 하가라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 여기에 '여호와의 말씀'이란 말이 없다고 해서본서의 영감성을 의심해서는 결코 안 된다. 물론 예언서들의 초두에서 예언자들이 자신의 전언()이 신적 인 기원을 갖는 것임을 강조하기 위해서 '여호와의 말씀'이란말을 사용하는 것은 사실이다(롑 1:2; 호 1:2; 암1:1). 그러나 그 예언서들은, 철저하게 예언적 특성을 갖고 있는 메시지의 전달이라는 특수한 경우에 해당된다(Schultz).그러면 본절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그것은 말할 나위도 없이, 본서가 ' 느헤미야'에의해서 기록되었음을 시사한다고 볼 수있다. 아울러 본절은, 본서가 에스라서의 속편적인 성격을 띠고 있지만 느헤미야에 의해 독립적으로 구성된 책임을 암시한다. 한편,'하가랴'는 고대 이스 라엘 사회에서는 쉽게 발견되지 않는 희귀한 이름으로서, 그의미는 분명치 않지만 '여호와의 흑 암'으로 추측된다. 반면에 '느헤미야'는 포로 전후기를 막론하고 대단히 흔했던 이름으로서, 그 이름의 의미는 '여호와께서 위로하신다'이다. 바로 이 이름의 축약형이 '나훔'이다(나 1:1). 아닥사스다왕 제 이십 년. B.C. - 445년을 가리킨다.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 궁에 있더니 - '기슬르월'은 태양력으 로 11월 중순부터 12월중순까지에 해당되는 달()이 다. 이때 아닥사스다 왕은 당시 느헤미야가 머 물러 있었던 '수산 궁'에 있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페르시아 왕들은 대개 겨울에는 '바벨론'을, 여름에는 메대의 '악메다'를 휴양지 삼아 거기서 통치하였으며, 봄이나 가을이 되어야 '수산 궁'로 돌아 왔기 때문이다(스 6:2; 에 1:2). 느헤미야가 고국으로부터의 급박한 소식을 접하고서도(2, 3절) 즉시 왕에게 부탁하며 귀국할 수 없었던 원인도바로 여기에 있었으리라 추측된다. 실제로 느헤미야가 자신 의 괴로운 심정의 자초지종을 아뢰고서 귀환 허가를 받은 것은 '니산월'(2:1), 곧 B.C. 444년 3, 4월 에 해당되는때였다. =====1:2 나의 한 형제 중 하나니 - 이 사람은 '느헤미야'의 친동생인 것으로 추정된다(Fensham, Schultz, 7:1, 2). 나중에 그는 느헤미야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귀환해서 느헤미야를 돕는 관리로 임 명되었다(7:2). 그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는 은혜로우셨다'이며, '하나니아'라는 이름의 추약형이다.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이르렀기로 - 이들이 '하나니'를 우두머리로 해서 '수산궁'에 온 것은, 예 루살렘의 급박한 상황을 페르시아 왕궁의 고위직에 있었던 느헤미야에게 알리려는 의도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하나니'는 페르시아나 바벨론에 살고있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결국 이것은 '하나니'가 자신 의 친형 느헤미야와 헤어져 에스라를 따라 B.C. 458년에 팔레스틴으로의 귀환 대열에 합류 했었 음을 암시한다. 내가 형편을 물은즉 - 이처럼 느헤미야가, 급박한 상황을 현장에서 체험하고 그것 을 알리려고 급히 찾아온 동생의 일행이 보고를 하기도 전에 먼저 질문한 것은, 그가고국의 소식에 매우 목말라 있었음을 강력히 시사해준다(Fensham). 특히 여기의 '형편을 물은즉'(* , 솨알)은 '구걸하다', '간청하다', '질문하다' 등의 뜻으로서 자신에게 필요한 어떤것을 간절하게 요구하는 행위를 가리킬 때 주로 사용된다(출 3:22; 삿 5:25; 왕상 3:1; 렘 30:6 ) 사로잡힘을 면 하고 남아 있는 - 이것은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해방되어 팔레스틴으로 귀환한 사람들과 그 후손 들을 말한다(스 2:1). 유대인들에게 있어 포로 생활이란커다란 수치였으므로, 성지()에로의 귀환은 곧 수치를 면한 것으로 이해되었다(스9:13 참조). =====1:3 그 도에서 큰 환난을 만나고 능욕을 받으며 - 이는 당시 유대 사람들이 숫자가 적고 무 장을 갖추지 못함으로써 이방인들의 노략 대상이 되며, 지극히 가난하여서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음을 가리킨다(Batten). 한편, '그 도'에 대해서는 몇 가지 견해로갈린다. (1) 유프라테스강 서편지대를 가 리킨다는 견해(Aharoni), (2)사마리아를 가리킨다고 보고 당시 유대는 페르시아의 행정 구역상 사마리 아에 속했다고 이해하는 견해, (3) 유대를 가리킨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이 견해를 지지하는 자들은 유대가고레스나 다리오 때에 이미 페르시아의 독립된 한속령으로 인정받았다고 보며, 학개가 스룹바벨을 '유다 총독'으로 지칭한 사실을 그 증거 자료로 제시한다(학 1:1). 따라서세 번째 견해가 가장 무난할 듯하다. 예루살렘 성은 훼파하고 성문들은 소화되었다 - 이 같은 사건이 무엇을 가리키 는지에 대해서는 (1) B.C. 586년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 의해서 예루살렘이 함락된 사실을 가리

느헤미아제1장 - Christian Monitorchristianmonitor.net/jusuk/nehemia.pdf성을갖고있는무리로묘사되고있다(사27:13;겔34:4,16:미4:6;습3:19).한편,'하늘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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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느헤미아제1장 - Christian Monitorchristianmonitor.net/jusuk/nehemia.pdf성을갖고있는무리로묘사되고있다(사27:13;겔34:4,16:미4:6;습3:19).한편,'하늘끝'은

느헤미아�제� 1장

=====1:1� 하가라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 여기에� '여호와의� 말씀'이란� 말이� 없다고� 해서본서의�

영감성을� 의심해서는� 결코� 안� 된다.� 물론� 예언서들의� 초두에서� 예언자들이� � 자신의� 전언(傳言)이� 신적인� 기원을�갖는� 것임을�강조하기�위해서� '여호와의� � 말씀'이란말을�사용하는�것은�사실이다(롑� 1:2;� 호�

1:2;� 암1:1).� 그러나� 그� 예언서들은,� 철저하게� 예언적� 특성을� 갖고� 있는� 메시지의� 전달이라는� 특수한�

경우에� � 해당된다(Schultz).그러면� 본절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그것은� 말할� 나위도� 없이,� 본서가� � '

느헤미야'에의해서� 기록되었음을� 시사한다고� 볼� 수있다.� 아울러� 본절은,� 본서가� 에스라서의� � 속편적인�

성격을� 띠고� 있지만� 느헤미야에� 의해� 독립적으로� 구성된� 책임을� 암시한다.� 한편,'하가랴'는� 고대� 이스

라엘� 사회에서는� 쉽게� 발견되지� 않는� � 희귀한� � 이름으로서,� � � 그의미는� 분명치� � 않지만� '여호와의� 흑

암'으로� 추측된다.� 반면에� '느헤미야'는� 포로� � 전후기를�막론하고�대단히�흔했던�이름으로서,� 그� 이름의�

의미는� '여호와께서� � 위로하신다'이다.� 바로� 이� 이름의� 축약형이� '나훔'이다(나� 1:1).� � � 아닥사스다왕�

제� 이십� 년.� B.C.� -� 445년을� 가리킨다.� � �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 궁에� 있더니� -� '기슬르월'은� 태양력으

로� 11월� 중순부터� 12월중순까지에� 해당되는� 달(月)이� 다.� 이때� 아닥사스다� 왕은� 당시� 느헤미야가� 머물러� � 있었던� '수산� 궁'에� 있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페르시아� 왕들은� 대개� 겨울에는� � '바벨론'을,�

여름에는�메대의� '악메다'를�휴양지�삼아�거기서�통치하였으며,� 봄이나�가을이�되어야� '수산� 궁'로�돌아

왔기� 때문이다(스� 6:2;� 에� 1:2).� 느헤미야가� 고국으로부터의� 급박한� 소식을� 접하고서도(2,� 3절)� 즉시�

왕에게� 부탁하며� 귀국할� 수� 없었던� 원인도바로� 여기에� 있었으리라� 추측된다.� 실제로� 느헤미야가� 자신

의� 괴로운� 심정의� 자초지종을� 아뢰고서� 귀환� 허가를� 받은� 것은� '니산월'(2:1),� 곧� B.C.� 444년� 3,� 4월

에� 해당되는때였다.

=====1:2� 나의� 한� 형제� 중� 하나니� -� 이� 사람은� '느헤미야'의� 친동생인� 것으로� 추정된다(Fensham,�

Schultz,� 7:1,� 2).� 나중에� 그는� 느헤미야와� 함께� � 예루살렘으로� 귀환해서� 느헤미야를� 돕는� 관리로� 임

명되었다(7:2).� 그� 이름의�뜻은� � '여호와께서는� � 은혜로우셨다'이며,� '하나니아'라는�이름의�추약형이다.� �

� 두어� 사람과�함께�유다에서�이르렀기로� -� � 이들이� '하나니'를� 우두머리로�해서� '수산궁'에� 온� 것은,� 예

루살렘의� 급박한� 상황을� 페르시아� 왕궁의� 고위직에� 있었던� 느헤미야에게� 알리려는� 의도� 때문이었다.� �

그렇다면� '하나니'는� 페르시아나� � 바벨론에� � 살고있지�않았음이�분명하다.� 결국� 이것은� '하나니'가�자신

의� 친형� 느헤미야와� 헤어져� � 에스라를� 따라� B.C.� 458년에� � 팔레스틴으로의� � 귀환� 대열에� � 합류� 했었

음을� 암시한다.� � � 내가� � 형편을� 물은즉� -� 이처럼� 느헤미야가,� 급박한� 상황을� 현장에서� 체험하고� 그것

을� 알리려고� 급히� 찾아온� 동생의� 일행이� 보고를� 하기도� 전에� 먼저� 질문한� 것은,� � 그가고국의� 소식에�

매우� 목말라� 있었음을� 강력히� 시사해준다(Fensham).� 특히� 여기의� '형편을� 물은즉'(*� � � � � � � � � � � � � � ,�

솨알)은� '구걸하다',� � '간청하다',� '질문하다'� 등의� � 뜻으로서 자신에게� � 필요한� 어떤것을� 간절하게�

요구하는�행위를�가리킬�때�주로� 사용된다(출� 3:22;� 삿� 5:25;� 왕상� 3:1; 렘� � 30:6� )� � � 사로잡힘을� 면

하고�남아� 있는� -� 이것은�바벨론�포로� 생활에서� � 해방되어 팔레스틴으로� 귀환한� 사람들과� 그� 후손

들을� 말한다(스� 2:1).� 유대인들에게� 있어� 포로� 생활이란커다란� 수치였으므로,� 성지(聖地)에로의� 귀환은�곧� 수치를�면한� 것으로�이해되었다(스9:13� 참조).

=====1:3� � 그� 도에서� 큰� 환난을� 만나고� 능욕을� 받으며� -� 이는� 당시� 유대� 사람들이� 숫자가� � 적고� 무

장을� 갖추지� 못함으로써� 이방인들의� 노략� 대상이� 되며,� 지극히� 가난하여서� �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음을�

가리킨다(Batten).� 한편,� � '그� 도'에� 대해서는�몇� 가지� � 견해로갈린다.� (1)� 유프라테스강�서편지대를�가

리킨다는� 견해(Aharoni),� (2)사마리아를� 가리킨다고� 보고� 당시� 유대는� 페르시아의� 행정� 구역상� 사마리

아에�속했다고� � 이해하는� � 견해,� (3)� 유대를�가리킨다고�보는�견해가�있다.� 이� 견해를�지지하는 학

자들은� � 유대가고레스나� 다리오� 때에� 이미� 페르시아의� 독립된� 한속령으로� 인정받았다고� 보며,� 학개가

스룹바벨을� '유다� 총독'으로� 지칭한� 사실을� 그� 증거� 자료로� 제시한다(학� 1:1).� 따라서세� 번째� 견해가�

가장� 무난할� 듯하다.� � � 예루살렘� 성은� 훼파하고� 성문들은� 소화되었다� -� 이� 같은� 사건이� 무엇을� 가리키

는지에� 대해서는� (1)� B.C.� 586년에� �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 의해서� 예루살렘이� 함락된� � 사실을� 가리

Page 2: 느헤미아제1장 - Christian Monitorchristianmonitor.net/jusuk/nehemia.pdf성을갖고있는무리로묘사되고있다(사27:13;겔34:4,16:미4:6;습3:19).한편,'하늘끝'은

킨다고�보는� � 견해와(Feysgan,� Rawlinson,� Schultz),(2)� 스� 4:7� -� 24에� 기록된� 르훔과�심새등의�훼방

사건을� 가리킨다는� 견해가� 있다(Williamson,� Kidner).� 예루살렘� � 함락은� 본문� 시점로� 부터� 무려� 140

여� 년� 이전에� 발생한� 오래된� 역사적� 사건이었지만,� 본문의� 정황은� 최근에� 발생한� 충격적인� 요소가� 전

달된� 것을� 암시한다는� 점에서� 이견해는� 상당한� 타당성을� 지닌다.� (3)� 에스라서와� 본서� 사이의� 공백� 기

간인� 12년� � 사이에� 몇차례의� 성벽� 재건이� 시도되었으나� 그때마다� 훼방당했던� 것을� 의미한다고� 보는�

견해이다.� 이� 견해도�시대�설정의�측면에서�비교적�무난하다고�이해된다.

=====1:4� 울고� � 슬퍼하며� -� 예루살렘�거민들이�성벽없이�살고�있음으로�해서�주변 민족들로부

터� 여러� 가지� 면에서� 괴로움을� 당할� 것을� 염려한� 느헤미야의� 반응으로서,� 유다� 백성의� 죄로� 인하여� 삼�

주� 동안� 슬퍼했던� 다니엘의� 모습을� 연상시킨다(단� 10:2).� 느헤미야는� 바사� 제국의� 고관으로서� 누리는�

현세적� 영화보다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 영광을더� 중시했기� 때문에� 민족의� 환난에� 관한� 소식을� 듣

고� 자기� 자신의�일처럼�고뇌하였다.� � � 하늘의�하나님�앞에� 금식하며�기도하여� -� 여기의� '금식'은� '기도'

와의� � 연결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다(에� 4:1� -� 3� 주제� 강해,� '금식에� 대하여'� 참조).� 즉,� '금식'은� 기도

의� 효과를� 높이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간절함을� 표시하는� 한� 방법이기도� � 하기� 때문이다

(Brongers).� 이� 같은� '금식'과� '기도'의� 밀접한� 관련성은� � 에스라(스� � 10:6),� 에스더(에� 4:16),� 다니엘

(단� 9:3),� 사무엘(삼상� 7:5,� 6)� 등에� 의해서도� 예증된다.한편,� '하늘의� 하나님'은� 페르시아인들이� 자신

들의�신� '오르무즈드'(Ormuzd)를� 지칭할때�사용되었다(스� 1:2).� 그럼에도�불구하고�우리는�느헤미야가�

전통적인� 여호와� � 신관(神觀)을� 소유하고� 있었음을� 의심치�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느헤미야는� 그� 당시� �페르시아인들의� 용어만� 빌려� 사용하였을� 뿐,� 실상에� 있어서는� 철두철미한� � 여호와� � 신앙을지니고� 있었

기�때문이다.

=====1:5�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 -� 여기서� '크고'(*� � � � � � � � � � ,� 가돌)는� '큰',� '위대한',� '힘센'� 등의�

뜻을� 지닌� 히브리어로서� 인격에� 적용될� 때,� 그� 인격의� 존귀성� 혹은� 다른� � 사물에� 대한� 강력한� 영향력

을� 가리킨다(시� 57:10;� 71:19;� 76:1).� � � 주를� 사랑하고� � 계명을� 지키는� 자� -� '주를� 사랑하고'와� � '계

명을� 지키는'은� 본질상동일하다.� 주님을� 사랑하는� 구체적� 방식이� 곧�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일이기� �

때문이다.� � � 언약을�지키시며�긍휼을�베푸시는� -� 문자적으로� '언약과�긍휼을� 지키시는'이다.� 여기서� '언

약'(*� � � � � � � � � ,� 베리트)은� 언약� 상대자에게� � 시여(施與)되는� � '긍휼'(*� ,� 헤세드)과� 결코� 분리될� 수�없는� 연관성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이� 문구는� � '언약적사랑을� 포기치� 않으시는'의�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Fensham).� 이� 같은� 사상은� � 신명기등에서�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신� 5:10;� 7:9).� � � 주여� 간구하

나이다� -� 여기의� '주'(*� � � � ,� 엘)는� 강력한� 능력의�소유자로서의� � 하나님을�가리킬� 때� 사용되는�호칭이

다.� 따라서�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모든� 존재들� 위에뛰어나심을� 강조하는� 것이다(Jack� Scott).� 한편,�

본절의� 기도는� 단� 9:4의� � 기도내용과내용상� 유사하다.� 아마� 느헤미야는� B.C.� 535년� 경에� 기록된� 것으

로�추정되는�다니엘서에�매우�익숙했던�것� 같다.

=====1:6주의� 종� 이스라엘� 자손� -�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 하나님의� 계명을� � 반드시� 지켜

야만� 하는� 신분에�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말이다.� � � 주야로� 기도하오며� -� 여기에는� 원문에� 있는� '하

욤'(*� � � � � � � � ),� 즉� '지금'� 혹은'오늘'이라는� 단어가� 탈락되어� 있다.� 그런데� 이� '하욤'은� 느헤미야가� 그

날� � 하루� � 동안만기도�했었음을�암시하지�않는다.� 이� 단어는� '느헤미야'가�그날부터�당장�기도에� � 돌입

했음을� 말해준다.� 어떻든� 그의� � '주야'를� 막론한� 기도는,� � 그� 당시� � 왕이� � '수산궁'에없었던� 관계로� 왕

이� 그곳으로� 돌아올때까지� 계속�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관한� 비보(悲報)를� 접한�것이� 양력으로� 11월� 중순� 경(1절)이고,� � 아닥사스다왕이� 바벨론의� 휴양지에서� 3월� 중순� 경에� 돌아왔

다고�한다면(1절)� 느헤미야의� 특별� 기도는� 약� 4개월동안�계속됐다고�추론할� 수� 있다.� � � 이스라엘� 자손

의� 주� 앞에� 범죄함을� 자복하오니� -� 이것은� 주로� 포로로� 끌려가기� � 이전의� 범죄� 행위와� 관련이� 있다(8,�

9절).� 한편,� 여기의� '자복하오니'는� 에스라가� � 그랬듯이(스� 9:6,� 7),� 느헤미야도� 자신과� 아무� 상관없는�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신의죄인양� 생각하는� 등,� 시공간(視空間)을� 막론하고�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철저한� 연대� 의식을�소유했었음을� 잘� 보여준다.� � � 주는� 귀를� � 눈을� 여시사� -� 이� 같은� 신인동형동성

Page 3: 느헤미아제1장 - Christian Monitorchristianmonitor.net/jusuk/nehemia.pdf성을갖고있는무리로묘사되고있다(사27:13;겔34:4,16:미4:6;습3:19).한편,'하늘끝'은

론적(神人同形同性論的)표현은,� 솔로몬의� 기도와�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다.� 즉,� 솔로몬은� 일찍이� � 만일� 백성들이� 범죄하여� 타국� 땅으로� 끌려간다고� 해도� 그들이� 회개하는� 기도를� 하면� 그것을� 응답하여� �

다시본국으로� 돌아오게끔� 해달라고� 기도한� 일이� 있었다(왕상� 8:46� -� 53;� 대하� 6:36� -� 40).특히� 솔로

몬은� 회개하는� 백성들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과� 관련해서� '나의� � 하나님이여� 이제� 이곳에서� 하

는� 기도에� 눈을� 드시고� 귀를� 기울이소서'라고� 했었다(왕상� 8:52;� 대하� 6:40).� 그런데� 더욱� 중요한� 것

은,�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기도에� 응답� � 하시기를� "이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

리니"(대하� 7:15)라고� 하셨다는사실이다.� 바로�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있는� 느헤미야는� 그와� 같은� 유사

한� 표현을� � 사용하여� 하나님의� 기도� 응답을�애원하고�있는�것이다.� 결국� 이것은� � 느헤미야가�그� �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황을� 마치� 포로� 시대의� 상황으로� 보고있었음을� 의미한다.� 이� � 같은� 느헤미야의�

영적판단은� (1)� 당시� 많은� 백성들이�바벨론�등지에서�여전히 귀환하지못하고� 있었으며,� (2)� 예루살

렘도�포로로�끌려갔을�당시의�상황에서�대부분 회복되지못했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 볼� 때� 당연

했다.� � � 나의� 아비집� -이것은�슐츠(Schultz)의� 주장과는�달리�느혜미야가�다윗의�직계� 후손이었음을�암

시치� 않는다(Joseph� Blenkinsopp� :� Williamson).� 이것은� 다만� 온� 이스라엘과� 함께� 범죄의� 자리에� 동

참했던�자들로서의�느헤미야의�조상을�가리킨다.

=====1:7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 여기서� '계명'(미츠오트)과� '율례'(후킴)� 그

리고� '규례� '(미쉬파팀)는� 동일하게� 모세� 율법을� 가리키는� 다양한� � 표현으로이해� 가능하다(시� 119:15,�

16).� � 이와� 같은� 동의어의� 삼중적�반복(9:13,� � 14)은� � 본절전반부의� � '주를� 향하여� 심히� 악을� 행하여'

와� 뚜렷이� 대비시키려는� 저자의� 의도와� � 밀접한� 관계가� 있다.� 즉,� 저자는� 여기서� 동의어를� 반복� 사용

함으로써,�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삼중의� 죄를� 범했던� 것처럼� � 연중� 암시하려는� 시도를� 하고� � 있는� �

것이다.물론위의� 세� 단어가� 모세� 율법의� 각기� 다른� 세가지� 측면을� 가리킨다고� 볼� 수도� 있기는� � 하다.�

그래서� '계명'은� '언약� 벡성들에게�지키도록�요구된�특별� 조건'인� � 십계명으로(스7:11), '율례'는� '

반복될� 수� 없을� 만큼� 단단히� 규정된� 것'(스� 7:10)으로,� 그리고� '규례'는� '자신의� 신분에� 합당한� 행동�

규범� 혹은� 선악의� 분별을� 가능케� 해주는� � 기준'(스7:10)� 등으로� 정의할�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1)� 이� 단어들이� 철저하게� 율법의각기� 다른� 측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수는� 없으며,� (2)� 율법의� 모

든� 국면들이� 이� 세가지에� 모두� 내포되어� 있다고도� 할� 수� 없다(Rawlinson)는� 사실이다.� � 어쨌든� 에스

라서와� 본서에서는� 다른� 역사서와는� 달리� 모세� 율법이� 강조되는� 특징을� 보여준다(1:8;� � 8:1;� 9:14;�

10:29;� 13:1;� 스� 3:2;� 6:18;� 7:6).

=====1:8� 주의� 종� -� 이것은� 모세가�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대리자였음(신� 18:15)을� � 강조하는� 호

칭이다.� � 따라서� 모세� 율법은� 절대적인� 신적� 권위를� 지니고� 있었으므로� 백성들에의해서� 반드시� 지켜져

야만�했다.� � � 너희가�범죄하면�내가�너희를 흩을� 것이요� -� 이� 같은� 말씀은� 레위기� 26:27� -� 45과신

명기 30:1� -� 5을� 해석적으로� � 인용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범죄하면'(*� � � � � � � ,마알� )� '배은� 망

덕'(背恩忘德)하게� 행동하다'� � 혹은� '불충성하게�행동하다'의� � 뜻으로서,� 구체적으로는�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께서� 베푸신� 큰� 은혜� 를� 잊고� � 다른� � 신을찾는� 것을� 가리킨다.� 한편,� '열국� 중에� 흩으실� 것

이요'는� (1)� 이스라엘� 백성들이� 타국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간� 일,� (2)�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라가� 멸망

당하는� 와중에서� � 또다른� 제� 삼국으로� 피신한� 일(왕하� 25:26;� 렘� 42:10� -� 22;� 43:1� -� 13)등을� 가리

킨다.따라서� 본절의� '열국'은� 앗수르,� 바벨론,� 애굽� 등을� 가리킨다.� 어쨌든� '흩을것이요'라는말의� � 주된�

초점이�이스라엘�백성들을�포로가�되게� 하신� 역사적�사실에�맞추어져� � � 있음은�분명하다.

=====1:9� 본절의� � 내용은� � 레위기� � 26:27� -� 45과� 신명기� 29:14� -� 30:10까지의� � 기록을� � 축약시킨�

것이라고�볼� 수� 있다.� � � 돌아와서� � 지켜� 행하면� -� '돌아와서'(*� � � � � � � � � ,� � 슈브)는� 죄악된�마음에서의� �

돌이킴,� 곧� 회개를� 의미한다(시� 7:12;� 렘� 8:6).� �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 원래의� � 축복된� 상태로�

회복되기� 위한� 필수� 요건이었다(신� 4:30;� 30:2;� 왕상� 8:33;� � 대하� � 6:24;욘� � 3:10).� � � 쫓긴� 자가� 하

늘� 끝에� 있을지라도� -� 여기서� '쫓긴� 자'(*� � � � � � � � � � � � � ,� 니다하켐)는양을� 몰거나(신� 22:1)� 메뚜기떼

를� 쫓아내는�행동(욜� 2:20)을� � 묘사할�때에도�사용되는동사� � '나다흐'(*� � � � � � � � � )의� � 수동형� � 분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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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 불법한� 행동으로� 인하여� 벌을� � 받아� 원래� 있었던� 곳으로� 부터� 멀리� 추방된� 사람을� 가리킨다(삼하�

14:13;� 사� � 16:3;� � 렘30:17).� 특히� 이� 단어는� 구약� 성경� 중� 에스라서에� 특별히� 많이� 나오는� '사로잡

힌� � 자'(스� 2:1;� 3:8;� 4:1)와� 동의어로서�사용된다.� 따라서�회개할�때� 다시� 본토로� 돌아갈�수있는�가능

성을� 갖고� 있는� 무리로� 묘사되고� 있다(사� 27:13;� 겔� 34:4,� 16:� 미� 4:6;� 습� 3:19).� 한편,� '하늘� 끝'은�

'가장� 먼� 곳'을� 의미한다(NIV).� � �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 -� 이는� 신� 12:5을� 연상시키는� 표현으로서�

보다�구체적으로는� '예루살렘'을� 가리킨다.� 한편,�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이름'은� 곧� � 한� � 인물의전인

격� 그� � 자체를� 의미했다고� 하는� 점에서,� 이는� '하나님� 자신'을� 가리킨다고� 볼� � 수있다.� 한편,� '두려고

'(*� � � � � � � � ,레솨켄)는� '임시로� 거주하다'의� 뜻을� 갖는� 동사� � '솨칸'(*� � � � � � � )의� 강조형� 부정사이며,� '

거처로서'의� � 뜻(NIV,� Williamson)� 갖는다.� '성막'(*� � � � � � � � � � ,� � 미쉐칸)이라는� 단어가� 이와� 동일한�

어근을� 갖는� 동족어이다.� � 또한'택한'(바하르)은� 대개� 종교적인� 목적에� 따라� 특별히� 하나를� 구별시키는�

행위를� � 가리키며(민� 17:5;� 왕상� 11:13;� 시� 105:26;� 학� 2:23),� '곳'(마콤)은� 성경에서는� 대개� 종교적

인�이유�및�목적� 때문에�구별된�경배�처소를�가리킬�때� 사용되는 단어이다(신� � 12:14;� 수�

9:27;� 삼상� 5:11;� 왕상� 8:7;� 대상� 15:1).

=====1:10� 주께서...구속(救贖)하신� 주의� 종...주의� 백성이니� -� '구속하신'(*� � � � � ,� � 파다)은대신�값을�지불하거나�그에�상당하는�대체물을�줌으로써�다른�사람에게� 속해�있던� � 한개인에�관한� 소유권을�넘겨

받는� 것을� 그� 기본� 의미로� � 갖는다(Harris).� � 한편,� � '주의종'은� 문자적으로� '당신의� 종'이고,� '주의� 백

성'도� '당신의�백성'으로서,� 이스라엘�백성이�철저하게�하나님의�소유임을�보여주는�단어들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와� 같은� 신분이� 된�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속하신'때문이었다.� � � 큰� 권능과�

강한� 손� -� 이러한� 표현은� 출애굽� 사건과� 관련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을� 당신의� 소유로� 삼으

셨음을� 강조하는� 문맥에서� 나온다(출� 6:1;9:11;� 신� 3:24;4:34;5:15;� 7:8;9:26,29).� 느헤미야는� 바로�

이와� 같은� 문구의� 사용을� 통하여,� �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 사건과� 바벨론� 포로에서의� 귀환을� 동일

선상에� 올려놓는다.� 즉,� 이것은� 출애굽� 때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 이전의� 형편으로� 완전히� 회복

될� 것에� � 대한� 느헤미야의� 간절한� 염원을� 반영한다.� 사실� 에스라는� 바벨론으로부터의� 귀환을� � 제2의�

출애굽으로� 암시했으며(스� 1:11� 주석� 참조).� 특히� 훨씬� 후기의� 쿰란� � 공동체에서는그것을� 새로운� 출애

굽으로�단언하였다(F.M.Cross).

=====1:11주의� 이름을�경외하기를�기뻐하는�종� -� 이들은 팔레스틴에서� � 느헤미야를� � 찾아온'하

나니'� 일행을�가리킨다(Fensham� ,� 2절).� 느헤미야가�그들을�이같이�표현한�까닭은,그들이�하나님의�도

성� 예루살렘의� 형편을� 느헤미야에게� 전달하기� 위해� 온갖� 희생을� 무릅썼던� 때문이었을� 것이다.� 즉,� 그

들은�온갖� 위해(危害)요소가�도사리고�있었던(스� 8:21,� 22,� 31)� 약� 1,400Km의� 길을� 자청해서�행(行)하여� 느헤미야에게� 왔던것이다.� � 그러나� 우리는� 이� 문구가� 팔레스틴� 본토의� 경건한� 유대인들을� 가리킬�

가능성이� 있음도� � 배제치� 말아야� 할� 것이다.� � � 오늘날� 종으로� 형통하여� -� 이것의� 구체적� 내용은� 이어

지는�문구와� 관련된다.� � 여기서� '형통하여'(*� � � � � � ,� 찰레아흐)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이�시작한� 일

을� 그과정과결과까지� 성공적으로� 이끄시는� 것을� 가리키는� 동사이다(창� 24:21,� 40,56;� 왕상22:12).이�

단어는� 성경에서� 항상� 그� 주어가� '하나님'이라는데� 그� 특징이� 있다고� 할� � 수� � 있을것이다.� � �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 이는� (1)� 느헤미야에게� 왕의� 면전으로� � 나아갈� 수있는,� 그리고� 소청을�

할� 수� 있는�기회가�주어지는�것(스� 4:11),� (2) 느헤미야의� 소청이� 왕에� 의해서� 기꺼이� 받아� 들

여지는� 것(2:3� -� 6� )등을� 가리킨다.� 그러나� � 느헤미야는� '술� 관원'이라는� 특별한� 지위의� 소유자였다는�

점에서� 위의� 두� 가지� 중� � 첫째의� 것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편,� 느헤미야가� 중요�

직위에� 있었으면서도� 이� 같은� 염려를� 한� 까닭은,� 그가� 페르시아왕들의� 변덕스러움,� � 즉� � 어떤� � 때는신

하들에게� 호의를� 베풀다가도� 곧� 그태도를� 급변시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즉,� 느헤미야

는� (1)� 자신이� 왕에게� 소청하러� 나갔을� 경우� 부르지도� 않았는데� 나왔음을� 이유로� 왕이� 진노하는� 것(에�

4:11),� (2)� 자신이� 왕에게� 소청을� 했을� 경우� 그것을불쾌히� 여겨서� 심지어는� 선대(先代)의� 왕들이� 내린�조서까지도� 무효로� 하는� 것을� 두려워� 하였던� 것이다.� �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말은� '이� 사람'이다.�

이것은� 세상� � 나라의� 왕에� 대한� 느헤미야의� 시각을� 잘� 반영해� 준다는� 점에서� 그렇다.� 즉,� � 느헤미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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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람의� 시각으로� 볼� 때는� 피정복민들의� 생과� 사를� 좌우할� 수� 있는등� 대단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특별한� 인물이었던� 아닥사스다� 왕을,� � 신앙적인� 시각에� 따라� 다른사람과� 다를� 바� 없는� 한� 사람으로서

만� 보고� 있는것이다(Fensham).� 다시� 말해서�이것은� � 느헤미야가�팔레스틴으로� 가고� 못� 가고의�문제는�

전적으로� 하나님께만� 달렸다고� � 보았음을� 강력히� 암시하는� 문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 � 그때

에� � 술� 관원이� 되었었느니라� -� 개역� 성경의� 번역은� 마치� 느헤미야가� 기도의� 응답으로� '술� 관원'의� 지

위에� 오른� 듯한� 오해를� 낳게� 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적절치� 못하다.� 느헤미야는� 이미� '술� 관원'의� 지위

에� 있었다.� 따라서� 이것은� '그때에� 술� 관원이었느니라'고� 번역함이� 타당하다.� 그런데� 느헤미야가� 여기

서� 이처럼� 자신의� 신분을� � 밝힌것은� (1)� 앞의� '이� 사람'이� 누구인지를� 시사해주며,� (2)� 자신이� 왕에게� �

소청할수있는기회를� 갖고� 있는� 사람임을� 보여주려는� 의도� 때문이었다(Rawlinson).� 아무튼� 느헤미야가�

'하나니'� 일행이� 팔레스틴으로부터� 오기� 전에� 이미� '술� 관원'이었다는� 사실은� 그가'수산� 궁'에� 있었다는

(1절)� 점에� 의해서� 증명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 '술� � 관원'에대한� 자세한� 내용은� 본장� 둘째� 단락의�

주제�강해,� '왕의� 술� 관원으로서의�느헤미야'를참조하라.� � � � 느혜미야�제� 2장

=====2:1� 아닥사스다� � 이십� 년� 니산� 월� -� '니산월'은� 유대� 종교력으로�정월에� 해당된다.� � 그리고� '하

나니'등이� 페르시아에� 도착했던� '기슬르� 월'� � 9월이다(1:1).� 그렇다면� � 1:1의'기슬르� 월'이� '아닥사스다�

제� 이십�년'이었다고�할� 경우,� 본절의� '니산� 월'은� � '아닥사스다 이십� 일� 년'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본절에� '이십� 년'이라고� � 표기된� � 까닭은,� 그� 당시� 느헤미야가� 왕의�재위년수를,� � '디스리� 월'(양력으로�

9-10월)부터를� 새해로� 간주하는� 유대�민간력을� 좇아� 계산하였기� 때문이다(Fensham� ).� 따라서� '기슬르

'(1:1)이나� 본절의� '니산� 월'은� 동일한� 년도에� 속하는� 셈이� 된다.� � � 왕의� 앞에� 술이� 있기로� -� 이것은�

그당시�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음을� 암시해주는� � 문구이다(Williamson,� Fensham� ).� 사실� 페르시아의�

왕들은� 이와� 같은� 잔치를� 매우� � 자주베풀었었다(Fensham,� 에� 1:3;� 5:6).� 또한� 이것은�고대� 중근동�국

가들의� 일반적� 관습이기도� 하였다.� 아마도� 그때� 아닥사스다� 왕은� 바벨론에서의� 월동을� 마치고,� � '니산� �

월'(양력으로� 3-4� 월),� 즉� 봄이� 되었기� 때문에� 느헤미야가� 있던� '수산� 궁'으로� 다시� 돌아왔을� 것이다

(1:1).� 아무튼� 왕이� 베푼잔치는� '술� 관원'이었던� 느헤미야가� 왕에게� � 나아갈� 수� 있는� 절호의� � � 기회였

다(1:11).� 한편,� 느헤미야는� 민족적� 재난에� � 관한� � 소식을듣고서� 그토록� 가슴아파� 하면서도� 결코� 성급

하게� 서두지� 않았다.� 다시� 말해서� � 느헤미야는� 자신의� 요청을� 올릴� 가장� 적절한� 기회를� 찾으면서� � 계

속� 하나님께� 기도해� 왔음이분명하다(Edwin� Yamauchi).� � � 내가� 들어� 왕에게� 드렸는데� -� 어떤� 이들은�

바사�왕실에�술� 관원이� � 여럿 있었다는사실을� 전제하고서,� 본절에서� 느헤미야가� 술을� 올릴� 차례

가� 온� 것으로� 이해하기도� � 한다.� � � 이전에는� 내가� 왕의� 앞에서� 수색(愁色)이� 없었더니� -� 이것에� 대해서는� (1)� � 여기의'없었더니'(*� � � � � ,� 로)를� '진실로'(*� � � � � � ,� 루)로� 보고� '진실로� 내가� 그의� 면전에서

근심했었다'라고� � 하는� � 해석(Myers,� LXX),� (2)� '왕의� 앞에서'(*� � � � � � � � � � � ,� � 레파나이우)를� '전에'(*� �

� � � � � � � � � ,� 레파님)로� 보고� '내가� 전에는� 근심하지� 않았다'라고� 하는� 해석(Rudolph),� (3)� 맛소라� 본문

을� 그대로� 유지하되� '왕의� � 앞에서'(레파나이우)의'왕'을� 비인칭으로� 번역한� '그것'으로� � 보고� '내가� 예

루살렘으로부터� 온� 그� � 소식앞에서� � 근심하지� � 않았다'라고� 하는� 해석(Fensham),� (4)� 맛소라� 본문을�

그대로� � 인정하여개역성경의� 번역처럼� 받아들여야� 한다는� 해석(Williamson,� Rawlinson,� Schultz,�

Keil)등이� 있다,� 이처럼� (1)� (2)� (3)� 의� � 견해는� 모두� 맛소라� 본문의� 수정을� 주장하지만� 그것을� 입증치�

못한다는� 점에서� (4)의� 견해가� 가장� 타당성이� 있다.� 그렇다면� 여기의� � 이문구는� 느헤미야가� 그� 전에는�

항상�밝은� 얼굴로�자기의�소임을�다했음을�말해� � 준다고볼�수� 있다.

=====2:2� � 왕이� � 이르시되� � 어찌하여� 얼굴에� 수색이� 있느냐� -� 이것은� 느헤미야의� � 기도(1:11)가� 응

답� 되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이다.� 사실� 술� 관원이� 흥(興)을� 최고조로� 돋우어야� 할� 직책에� 있으면서� 도리어� 연회장에서� 슬픈� 얼굴을� 하고� 다니는� 것은,� 한편으로생각하면� 그것을� 주최한� 왕에� 대한�

도전으로� 볼� 수도� 있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 이처럼� 왕이� 느헤미야에게� 연민어린� 관심을� 보인� 것

은,�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라는�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된� 결과로밖에� 볼수�

없다.� � � 근심(*� � � � � ,� 로아으)� -� 이는� 앞의� '수색'과� 어근에� 있어서는� 동일하며,� 전� � 7:3에서는� '슬픔'

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 � 그때에� 내가� 크게� 두려워하여� -� 본절은� 느헤미야가� 왜� 이� 같은� 감정을� 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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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되었는지를� 밝히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 이유는� (1)� 왕이� 연회장내에서� 느헤미야가� 슬픈� 얼굴을�

한� 것으로� 인해� 진노하지� 않았을까� 하는� 염려,� (2)� 왕이� 느헤미야의� 간청을� 듣고오히려� 진노하지� 아니

할까� 하는� 염려� 등으로� 압축될� 수� 있을� 것이다(Fensham).� 그러나느헤미야의� '수색'에� 대한� 왕의� 반응

이� 사뭇� 동정적이었다는� 점에서� 본다면� (2)의� � 것이� 보다� 타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느헤미야는� 왜� 자

신의� 간청에� 대해서� � 아닥사스다가진노할� 것으로� 염려했을까?� 그것은� 예루살렘의� 성벽� 재건사업이� 아

닥사스다의� � 명령에따라� 그의� 즉위� 초기에� 중단됐음을� 느헤미야가� 익히� 알고� � 있었기� � 때문이었다(스� �

4:11,� 21).� 따라서�느헤미야가�성벽�재건의�일로� 예루살렘에�가겠노라고�아닥사스다� � 왕에게�요구하는�

일은,� 곧� 아닥사스다에게� 그가� 내렸던� 이전의� 명령을� 번복하라는� � 것과다를� 바� 없으며� 또한� 이는� 왕의�

자존심을�건드리는�문제라는�점에서�대단히�위험� 부담이�뒤따랐다.

=====2:3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고대� 중근동의� 왕들에� 대해�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던� � 찬사형의� 인

사이다(Rawlinson,� Schultz,� 왕상� 1:31;� 단� 24:4;� 3:9;� 5:10;� 6:6,� 21).�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인사

에� 왕의� 호감을� 사려는� 느헤미야의� 의도가� 담겨� 있음을� � 배제할수는� 없다,� � �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 -� '열조의� 묘실',� 즉� '조상의� 무덤'은� 고대� 중근동� 사회에서는� 매우� 중요시� 되었다.� 특히� 왕족� 및�

귀족들에게는 더욱� � 그러하였다.� 따라서이� 같은� 언급은� 아닥사스다� 왕으로� 하여금� '성읍'� 곧� '예루

살렘'을� 외부의� 침입로부터보호받아야� 할� 곳으로� 간주토록� 유도하는�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또한� 아닥

사스다� � 왕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의도에� 따라� '예루살렘'(스� 4:20� )이라는� 고유� 지명� 대신� '성읍'이� 사

용되고� 있다.� 만일� 느헤미야가� 여기서� '예루살렘'이라는� 지명을� 사용했다면,� 아닥사스다� 왕으로� 하여금�

자신이� 이전에� 사마리아� 관리들의� 요청에� 따라� � 그곳에� � 성벽쌓는� 일을� 중지시켰던� 사실을� 쓸데없이�

상기시키는� 결과를� 가져� 왔을지도� 모른다.� � 또한� 본� 문구는� 느헤미야가� 유다� 지파� 출신으로서,� 그의�

조상들이�예루살렘에 살았었음암시해준다(1:6).� � � 황무하고� 성문이� 소화되었사오니� -� '황무하고

'(*� � � � � � � � � � ,하레바)는� � '말라불다'혹은� '죽이다'의� 뜻을� 갖는� 동사� '하레브'(*� � � � � � � )에서� 온� 형용

사로서,� � 인간� � 혹은자연의� 피조물� 등이� 특별한� 원인에� 의해서� 그�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게� 된� 상태를�

가리킬� 때� 사용된다(시� 106:9;� 사� 19:5;� 34:10;� 렘� 26:9;� 겔� 6:6).� 따라서� 이것은� '하나니'가� 예루살

렘의� 형편을� 느헤미야에게� 보고할� 때(1:3)� 사용한� � 단어,� � '훼파되고'(파라츠)� 보다� 더� 강력한� 의미를�

갖는다고�할� 수있다.� 또� '소화되었사오니'(*� � � 에클루�바에쉬)는� 문자적으로� '불에� 의해서�먹혔다'의� 뜻

으로서� 1:3의� '소화되었다'(니체투�바에쉬)� 보다� 강조적인�의미를�갖는다.

=====2:4�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이것은� 느헤미야에게� 간청할� 기회를� 주기� � 위한� � 질문이다.이때� 아

닥사스다� 왕은� 이미� 느헤미야를� 위해� 어떤� 배려라도� 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 갈다.� � � 내가�

곧� 하늘의�하나님께�묵도(?禱)하고� -여기서� '묵도하고'(*� � � � � � � � � � � ,� � 에트팔렐)는� '간청하다'� 혹은'기도하다'의� 뜻을� 갖는� 동사� '팔랄'(*� � � � � � )의� 재귀적� 강의형으로서,� 간절한� 소원을� 품고서� 적극적으로�

하나님께� 기도로써� 매어� 달리는� 것을� � 가리킨다(삼상� 1:17;� 왕상� 8:33;� 왕하� 19:20;� 20:2).� 느헤미야

의� 이� 같은� 기도는� (1)� 자신의� 소원이� 아닥사스다� 왕에게� 정확하게� 전달되며,� (2)� 전달된� 자신의� � 소

원이� � 왕에의해서�호의적으로�가납될�수�있기를�바래서�드려졌음이�분명하다.

=====2:5그� 성을� 중건하게� � 하옵소서� -� 이것은� 느헤미야가� 아닥사스다� 왕에게� 간청했던� � 것의� 핵심

적� 내용이다.� 다른� 것들은� '성� 중건'의� 부차적� 요소들일� 뿐이다.� 이는� � 구체적으로� '성벽의� 복구'를� 뜻

한다(3절).

=====2:6왕후도� � 곁에� 앉았더라� -� 고대� 중근동� 국가에서는,� 왕이� 국사(國事)와� 관련된� 귀빈을� 맞이하고� 있을� 때는� '왕후'가� 내전(內殿)에� 있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 잔치가벌어지고� 있는� 자리였던�관계로� 인하여� '왕후'도� 왕과� 함께� 있었다(Rawlinson).� � 이런때에� '왕후'는� 관례적으로� 긴� 의자에� 비스

듬히�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는� 왕의� � 발(足)곁에서� 왕의� 얼굴을� 쳐다보며� 앉아� 있었으며� 왕과� 왕비가�이런� 자세로� 있는� 동안� 신하들은� 그� 주변에� 모여� 서� 있었던� 것� 같다(Schultz).� 그런데� 느헤미야가� 본

절에서� '왕후'가� 함께� 있었음을� 특별히� 밝힌�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 세가지� 견해가� 제시되고� � 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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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느헤미야에게� 호의적� 반응을� 보인데는� '왕후'의� 영향력� 행사가� 있었음을� � 암시하기� 위한� 것이라

는� 해석(Myers,� Rudolph,� Widengren),� (2)� 느헤미야가� � 왕으로부터팔레스틴으로� 돌아가기� 위한� 허

락을� 받는� 과정에서� '왕후'라는� 장애물이� 있었음을� � 암시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Batten),� (3)� 느헤미

야가� � 아닥사스다� 왕에게� 자신의� 소원을알린� 곳은� 연회장이� 아닌� 은밀한� 장소에서� 였음을� � 암시하기� �

위한� � 것이라는� � 해석(Kidner)등이� 있다.� 그렇지만� 첫째,� � '왕후'는� 왕의� 명령이� 있을� 경우� 왕과� 함께�

연회장에� 참석할� 수� 있고� 또한� 이것은� 매우� 보편적이었으며(Rawlinson,� 에� 1:11)� 둘째,� 아닥사스다�

당시에는� 여인들의� 정치적�영향력이� 컸으며(Fensham)� 셋째,� � 느헤미야� � 항상왕궁에� 거하므로� 왕의� 처

첩들과�좋은�인간관계를�유지하고�있었을�것이며�넷째,� 5절과6절은�왕이� 왕후가�있었을�내전으로�자리

를� 옮겼다는� 추측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 사실등으로� 볼때,� 위의� 세� 견해� 중� (1)의� 것이� 가장� 타당성이�

있는�듯하다.� 한편,� � '왕후'(* � � ,� 쉐갈)에� 대해서는� (1)� 이와� 동일한�아람어�단어가�왕의�첩들을

의미한다는� 사실(단� 5:23)에� 근거하여� 왕의� 많은� 첩들� 중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소유한� 여인

이라는�견해(Williamson,� Batten).� (2)� 이� '히브리�단어가�시� 45:9에서는�첩이� 아닌� � 왕비를�가리키고�

있음을� 근거로� 해서� 아닥사스다� 왕의� 유일한� 정비(正妃)였던� '다마스피아'(Damaspia)라는� 견해(Myers,� Fensham,� Rawlinson,� Schultz)등으로� 그� 해석이� � 갈라진다.� � 그러나� 첫째,� '쉐갈'이라는� 히

브리� � 단어의� � 시편에서의� � 용례� 둘째,� � '다마스피아'라는� 왕후가� 실제� 역사속에� 존재했었음을� 증명해

주는� 문헌� 등으로� 미루어� � 볼때,위의� 두� 견해� 중� (2)의� 것이� 더� 타당하다.� � � 몇� 날에� 행할� 길이며� 어

느� 때에� 돌아오겠느냐� -� � 이것은� 느헤미야가� 아닥사스다� 왕으로부터� 상당한� 신임을� 얻고� 있었음을� 극

명히�보여준다.� 즉,� 아닥사스다�왕은�느헤미야를�자신의� � 곁에서�떠나� 보내기를� 아쉬워했던� 것이다.� 한

편,� 이� 문구는� 동의적� 대구법의� 표현� 방식이다.� 따라서� '몇� 날에� 행할� 길이며'와� � '어느� � 때에� � 돌아오

겠느냐'는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데� 소요되는� 전(全)기간을� 묻는� �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 아닥사스다� 왕은� 이러한� 반복적� � 표현을� 써서� 느헤미야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강렬하게�

드러내고� 있다.� � � 내가� 기한을� 정하고� -� 이처럼� 아닥사스다� 왕이� 느헤미야가� 다시� 올� 날을� 직접� 정하

지� � 않고,� � 느헤미야에게� � 직접� � 정하도록�한�것은� 느헤미야에�대한�세심한 배려임이분명하다(본�

단락�주제� 강해,� '에스라� � � 느헤미야의�약사'참조).

=====2:7� � 강� 서편� 총독들� -� 여기의� '총독들'(*� � � � � � � � ,� 파하� 우오트)은� 작은� 지역을� 다스리던� 지

방관리를� 가리킨다(스� 8:36).� 유프라테스� 강� 서편에는� 이러한� 관리들이� 많았었던것� 같다.� � � 조서를� 내

게� 주사� � 유다까지� 통과하게� 하시고� -� 에스라의� 경우� 와는� 달리� 느헤미야는� � 다분히� 정치적인� 명목으

로� 귀환을� 요청하고� 있다(스� 7:10과� 비교).� � 따라서� � 그는팔레스틴으로� 가는� 여행� 길에� 페르시아의� 지

방� 관리,� 특히� 사마리아� 관리로부터� � 적대적인� 대우를� 받을� 가능성이� 상당히� 많았다(Fensham).� 그러

므로�느헤미야가�자신에� � 대한� 적대� 행위를�피하기�위해서�필요� 적절한�증표를�왕에게�요구한�것은�당

연한�것으로이해된다.

=====2:8� 왕의� 삼림� 감독� 아삽� -� 여기의� � '삼림'(*� � � � � � � � � � ,파르데스)에� � 대해서는� (1)� 레바논의�

삼림(Fensham,� Myers,� Patrick),� (2)� 예루살렘� 근방에� � 있었을� 것으로� � 추정되는� 페르시아� 왕의� 정원

(Schultz,� Rawlinson),� (3)� 유다� 왕가의� 왕실� 재산(대상� 27:28)이었던,� 평지의� 감람� 나무� 밭

(Williamson,� Keil)� 등의� 세� 가지� 해석이� � 제시되고있다.그러나� 첫째,�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미� 성전공

사를� 위하여� 레바논으로부터� 목재를� 들여온일이� 있었으며(왕상� 5:6;� 스� 3:7)� 둘째,� 예루살렘� 성벽을�

완전히 새로이 복구하기위해서(3절)� 필요한� 막대한� 양의� 목재는� 레바논� 산지를� 제외하고는,� � 적당

한� 조달처가없었으리라는� 점� 그리고� 셋째,� � 건축용으로� 적절한� 나무는� 오직� 레바논� 산지에서� 벌목되는�

백향목� 뿐이라는� 사실등으로� 미루어� 볼� 때� 위의� 세� 견해� 중� (1)의� � 견해가� � 가장타당성이� 있다.� 물론�

여기에� 대한� 반론으로� (1)� 삼림� 감독이었던� � '아삽'이� � 히브리식이름의� 소유자라는� 점,� (2)� '삼림'이라

는�단어가�고대�아리안어에서�온� 것으로서�자연림이�아닌�울타리나�담장�등으로�둘러�싸여� � 있는� 숲이� �

울창한� 공원을� 가리킬� 때� � 사용된다는� 점� 등이� 제시된다.� 그렇지만� 이러한� 반론은� 첫째,� � 페르시아� 왕

이� 멀리�유다땅에�개인적인�공원을�두었을�가능성은�문헌적�입증이�없다는�점에서� � 매우 희박하며둘

째,� � '아삽'이라는� 이름은� 히브리식으로� 볼� 수도� 있지만� '말'(馬)을� 뜻하는� � 폐르시아어� '아스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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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생된� 페르시아식� 이름� '아스바다'(에� 9:7)와� 유사한� 형태로도� 볼수� 있다(Schultz)는� 사실등으로� 미루

어� 볼� 때� 타당성이� 약하다.� � � 전에� 속한� 영문의� 문� -� 여기의� � '영문'은� 성전� 북쪽에� 위치� 했었던� 요새�

혹은� 망대이다(Fensham,� Williamson,� Rawlinson).� � '하나넬� 망대'(3:1)는� 바로� 이것의� � 한� 부분으로�

추측된다. 이것은�성전의�보호를�위해서�반드시�필요하였다. 후대에 들어서서는,� � 바로�

이� 자리에�헤롯왕(Herod� the� � Great)에 의해서 '안토니아� � 영문'(AntoniaFortress)이� 세워졌었

다(Williamson).� � � 성곽� -� 성곽� 건축에� 목재가� 직접적인� 재료로� 사용되지는� 않았으리라� 짐작된다.� � 다

만� 성을� 쌓아� 올리는� 과정에서� 필요하였을� 것이며� '성곽'에� 속한� 여러� '문'(門)을� � 세우는� 데� 필수불가결� 하였을� 것이다(3:3,� 6).� 아무튼� 고대� 중근동� 사회에서� 목재가� '성곽'� 건축과� 관련해서� 사용되었다고�

하는� 증거는� 대단히� 많다(R.� Naumann,� G.� E.� Wright).� � � 나의� 거할� 집을� 위하여� -� 이것은� 문자적으

로� '내가� 들어� 갈수� 있는� 한집을� 위하여'의� 의미이다(Fensham).� 그런데� � '거할'(*� � � � � � � ,� � 보)이� � 특

정한� 임무의� 수행과� 관련해서도� 사용된다는� 점(대상� 12:17,� 23,� 38;� 16:33;� 19:3)에서� 볼� 때,� � 여기

의� � '집'은총독의� 관저로� 사용할� 처소를� 의미하는� 듯하다(Schultz).� 그러나� 이것이� 반드시� � 새로이� 지

어질� '집'을� 의미한다고는� 볼� 수� 없다.� 추측컨대�느헤미야는�자신의�형제� � '하나니'(1:2)와� 더블어�자신

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됐을때� 머무를� 처소에� 대해서도� � 상의를� 하였을� 것이며,� 이에� 따라� 이미� 존

재하고� 있던� 집을� 수리해서� 사용할� 계획을� �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Williamson).� � � 들보� 재목을� 주게�

하옵소서� -� 느헤미야가�왕의�질문(4절)에� 대해�이처럼 즉각적으로� 필요한� 것을� 제시할� 수� 있었다는� 사

실은,� 그가� 아닥사스다왕이� 수산궁에� 없는� 동안(1:1)� 하나님께�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위해� 기도를� 했

음(1:4� -� 11)은� 물론이고� 그� � 성벽� 재건을� 위한� 구체적� 계획까지� 세워� 놓았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라고�할� 수� 있다(Fensham).

=====2:9� 본절의� 내용과�왕의� 허락� 사이에�어느� 정도의� 시간적�공백이�있었는지는�분명치� 않다.� � 요

세푸스는�그� 기간을�무려� 5년으로�잡는다(Ant.� X� i� 5).� 그러나�몇� 달� 간의� � 기도(2:1)와� 안타까운� � 마

음의�간청을�했던�느헤미야가� � 5년씩이나�참고�기다렸으리라고보기는�힘들다. 따라서� 우리는� 느헤

미야가� 극히� 짧은� 기간� 내에� 페르시아를�떠났다고결론� 내려야�할� 것이다.� � � 군대� 장관과� 마병을� � 나와�

함께� 하게� -� 이� 같은� 모습은,� 페르시아� � 군대의� � 호위를거절했던� 에스라의� 그것과는� 분명하게� 대조된

다(스� 8:22)� 그러나�본절에서�느헤미야가팔레스틴으로의� 귀환� 길에� 폐르시아� 군대를�대동한� 것은� 그가�

에스라보다� � 불신앙적이어서가� 결코� 아니었다.� 다만� 느헤미야의� 역할이� 에스라와는� 달랐기� 때문이다.�

즉,� � 느헤미야는� 페르시아� 제국의� '총독'이라는� 자격(5:14)으로� 예루살렘에� � 간다는� � 점에서,이스라엘�

백성들에�대한�율법� 교육을�목표로�했던�에스라의�신앙적 차원의 여행과는표면적으로는� 달랐다

(스� 7:10).� 틀림없이� 아닥사스다� 왕은� (1)� 느헤미야가� 자신의� '술관원'이라는� 특별한� 신분의� 소유자이

며,� (2)� 유다� 지역의� 총독이라는� � 중대한� � 직분을부여받은� 자라는� 점을� 십분� 감안하여� 호위병들을� 딸

려�보냈을�것이다(Fensham).

=====2:10� � 본절과� 같은� 이방인들의� 반응은,� 성전� 재건� 사업에의� 참여� 요청이� 거부된� � 사건(스

4:1-6)이� 있은� 후,�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사이의� 냉전� 상태가� 매우� 심화되었음을� 잘� 보여� 준다.� � � 호론�

사람� 산발랏� -� 애굽� 남부� 지역인� '엘레판틴'(Elephantine)에서� 발굴된� 문서에는� 산발랏이� 사마리아의�

총독으로서� 언급되며� 또한� 그의� 두� 아들과� 함께� 언급되고� � 있다.� 이� 문서에� 나타나는� 두� 아들의� 이름

에� 공통적으로� '여호와'를� 뜻하는� � 어미(語尾)가� 달려� 있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유대의� 대제사장� 가문과� 깊은� 친교를� 맺고� 있었다는점(13:28)에서,� 이들은� 나름대로� 여호와를� 섬겼던� 자들로� 추측된다

(Fensham).� � 그러나이들의� 종교는� 지극히� 혼합주의적이었기� 때문에(스� 4:1,� 2)� 순수한� 여호와� 신앙을� �

지녔던� 이스라엘� 백성에� 의해서� 용납될� 수� 없었다.� 한편,� 여기서� '호론'은� 윗� � 벨호론과아랫� 벨호론(수�

16:3,� 5)중� 어느� 하나를� 의미한다(Rawlinson,� Myers).� 이곳은� � 당시에사마리아� 사람들이�차지하고�살

던� 지역이었다.� 그리고� '산발랏'은� 바벨론식� � 이름으로서,� '신(月神)이� 생명을� 주신다'의� 뜻이다.� � � 종되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 -� 여기의� '종'(에베드)은� '신하'� 혹은� '부하'의� 의미로이해될� 수� 있다.� 그렇다

면� '도비야'는� '산발랏'의� 휘하에� 있던� 인물이었던� 셈이� � 된다(6:17,� 18).� 한편� '암몬� 사람'은� 반드시� '

도비야'가� 암몬� 지역� 출신이었거나�혹은� � 암몬� 땅에� 살고� 있었음을�의미치는�않는다.� 왜냐하면� '도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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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1)� 대제사장과� 친밀하게� 연락하는� 사이였던� 것으로� 보아� 자신을� 여호와를� 섬기는� 자로� 자처하고�

있었으리라짐작되며(13:4),� (2)� 암몬사람들에게� '여호와의� 선하심'이라는� 의미를갖는� 유대식� '도비야'라

는� 이름이� 붙여졌을� 가능성은� 다소� 희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다만� 도비야의� 조상이� '암몬사

람'이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보는� 편이� 무난하겠다(Williamson,� Fensham).� � � 심히� 근심하더라� -�

사마리아� 총독의� 이같은� 반응은� (1)� 성벽재건의� 방해� 공작이�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에� 따른� 두려움,�

(2)� 예루살렘의� 부흥으로� 말미암아� 사마리아가� 유다에� 대한� 상대적� 우월성을� 상실할� 가능성에� 따른� 염

려(Schultz)� 때문이었다.

=====2:11� � 거한� 지� 삼� 일에� -� 이같이� 예루살렘� 도착� 후� '삼� 일'을� 쉰� 까닭은� (1)� 오랜� 여행에따른�

심신(心身)의� 피로를� 풀며,� (2)� 예루살렘의� 정확한� 상황을� 청취하며,� (3)� 도모하려는� 사업의� 성공을� 위해� 기도하기�위한�목적� 때문일�것이다.� 이� 같은� 모습은� � 에스라에게서도�발견된다(스� 8:15,� 32).

=====2:12� 내가� � 말하지� 아니하고� -� 이것은� � 느헤미야� � 자신의� � 성벽� 재건� 계획이� '산발랏'과'도비

야'에게� 알려질� 경우� 그� 사업이� 미처� 시작되기도� 전에� 심각한� 난관에� 봉착하거나그� 대적들이� 보다� 효

과적으로� 대응해� 올� 것을� 염려하여� 취해진� 조처였다.� � 느헤미야가심지어� 자신의� 동족에게� 까지� 말하지� �

아니한� 까닭은,� � 그들의� 상당수가� '산발랏'� � 및'도비야'와� 결혼� 등� 이모� 저모로� 인연을� � 맺고� � 있었기� �

때문이다(Schultz,� 6:18;� 13:28).� � � 밤에� � 두어� 사람과�함께� 나갈새� -� 간접적인� 보고로만�들은� 예루살

렘의� 형편을� 직접확인파악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느헤미야가� 밤에� 이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자신의�

이런� 확인� 활동이� '산발랏'과� '도비야'와� 내통하고� 있던� 유대인에� 의해서� 감지되지� 않도록�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의� '두어� 사람'은� 문자적으로� � '소수'를� � � 의미하며,� � 구체적으로는� � 느헤미야의� �

형제� '하나니'등을� 가리킬� 것이다(1:2).� � � 내가� 탄� 짐승� 외에는� 다른� 짐승이� 없더라� -� 오직� '느헤미야'

만이� � '짐승'을� 탄� � 것은,� � 최대한으로� 대적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한편,� '짐승'(*� ,

베헤마)은� 일반적으로는� '말'과� '나귀'� 모두를� 의미할� 수� 있다.� 그러나� '말'은� 콧소리를� 심하게� 낸다는�

점을�감안한다면,� 여기서�느헤미야가�탄� '짐승'은�나귀였을� � 것이다(Fensham).

=====2:13골짜기� 문으로� 나가서� -� 여기의� '골짜기� 문'은� 예루살롑의� 남서쪽에� 위치한� � '힌놈의� 골짜

기'가�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한� 문(門)이었다.� � 느헤미야가� 하필� 이� 문을� 택한이유는� 그� 지경이� 가장�인적이� 드물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 � 용정(龍井)으로� 분문(糞門)에� 이르는� 동안� -� 여기서� � '용정으로'는� 문자적으로� '용정의� 앞쪽으로'이다.� 이� '용정'은� 힌놈의� 꼴짜기와� 기드론계곡의� � 합류점에서� � 남쪽

으로�약� 210m� 지점에�위치한�오늘날의� � '욥의� � 우물'(Jod's� � well)로� � 추측된다(Williamson).� 한편,� '

분문'은� '골짜기� 문'에서� 약� 450m,� 즉� 1천� 규빗의� 거리에� 있었다(3:13).그런데� 이곳은� 예루살렘의� 최

남단에� 위치했으며,� � 예루살렘에서� 나온� 온갖� 쓰레기,� 심지어는� 성전의� 희생� 제사� 때� 나온� 짐승의� 똥

까지� 이문을� 통해서� 힌놈의� 골짜기에� 버려졌었다(롑� 7:31,� 32).� � � 성벽이� � 무너졌고,� 성문은� 소화되었

더라� -� 이같이�느헤미야가�직접�확인한� � 상황은'하나니'의� 보고� 내용과�동일하다(1:3).

=====2:14� � 앞으로� 행하여� -� 우측,� 즉� 동쪽으로� 기드론� 골짜기를� 내려다� 보면서� 북쪽으로� 나아가는�

것을� 가리킨다.� � � 샘문과� 왕의� 못에� 이르러는� -� '샘문'은� '분문'에서� 북쪽으로� 대략� 120m� 정도에� � 위

치했으며� 그� 바로� 앞에는� '실로암못'이� 있었다(서론� 도표,� '성벽� 재건의� � 모형도'� � 참조).� 한편� '왕의�

못'은� 3:15에서는� '셀라� 못'으로� 지칭되고� 있는� '실로암� 못'이다.� � � 탄� 짐승이� 지나갈� 곳이� 없는지라� -�

이는� 그곳이� 무너져내린� 성벽의� 잔해및� 온갖� 쓰레기� 등으로� 메워져� 있었음을� 시사한다.� 오늘날의� 고고

학자들은�발굴� � 작업을� � 통하여본절의�이� 기록이�실제� 사실이었음을�증명하였다.

=====2:15� 시내를� 쫓아� 올라가서� -� 느헤미야가� 나귀에서� 내려서� 걸어� 올라간� 것을� � 가리킨다.즉,� 그

가� 걸음을� 걸을� 수� 있는� 기드론� 시내� 쪽으로� 내려간� 후� 그� 시내를� 따라서� � 북쪽으로� 향했음을� 가리킨

다.� � � 골짜기� 문으로� 들어와서� 돌아왔으나� -� 이것은�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의� � 북쪽으로� 가지않았음을�

시사해준다. 어떤� 학자들은� 본절에는� 생략되었으나� 느헤미야가� 성벽� 탐사를� 계속� 진행하여� 끝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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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다� 돌았던� 것으로� 보기도� 한다.� 즉,� 성벽의� 북쪽과� 북서쪽은그다지� 심각하게� 훼손되지� 않았기� 때문

에� 본절에� 언급되지� 않았다는� � 것이다.� � 그러나그보다는� 느헤미야가� 성벽의� 북동쪽� 모퉁이까지� 살펴봄

으로써�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여겼기� 때문에� 중도에서� 돌아온것으로� 이해하는� 편이� 더� 무난하다.� �

이렇게�생각해볼�수� 있는�것은� 북쪽� 성벽� 지역에는�사람이�많이� 살고�있어서�느헤미야�일행이� � 눈에띌�

가능성이�컸으리라는�추측�때문이다.

=====2:16� 느헤미야의� 조사� 활동이� 이처럼� 비밀리에� 진행� 됐던� 까닭은,� � 사마리아� 사람들에게성벽�

재건�계획이�누설될�가능성이�매우�큰� 때문이었다(12절�주석� 참조).� � � 방백들(* � � � � � � � ,� 세가님)� -�

광범위하게� 사용된� 단어였기� 때문에� 한마디로� 그의미를� 정의하기� � 곤란하다.� 하지만� 많은� 학자들은� 이

것을 회중들에� � 의해서� � 선출된백성의 대표들로� � 본다(Widengren,� Fensham,� Rawlinson).� 그

런데� � 이� � 단어는� � 스9:2에서는� '두목'이라� 번역되었다.� 이것은� 또� 다른� 의미의� '방백'(*� � � � � � � � � � ,� �

사림)보다는� 한� 계급� 낮은� 신분으로� 묘사된다(스� 9:2).� 한편,� 이들의� 역할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

져� � 있지� � 않다.� � � 유다사람� � 제사장� � 귀인� � 방백� -� 이들은�당시� 유다공동체를�구성했던�대표적인� � 네

계층으로� 이해될수� 있을� 듯하다.� 여기의� '유다� 사람'은� 반드시� 유다� 지파� 사람만을� 의미치� 않는다.� 당

시�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유다� 지파� 출신이� 차지하는� 비중이� 인구수에있어서� 가장� 컸던� 까닭에� 이스라

엘� 백성� 전체를� 이처럼� 표현했을� 뿐이다.� 그리고� � '제사장'은� 포로� 후� 시대라는� 그� 당시� 상황에서는,�

행정� 및� 경제의� 측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신분이었다(Williamson).� 그러나� 여기서는�

이스라엘� 공동체� 중� 종교적� 세력을� 대표하는� 신분으로� 암시되는� 듯하다.� 한편� '귀인'(*� � � � � � � � � � ,� �

호림)은그� 문자적� � 의미로는� '자유로운� 자'이지만,� �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신분이었으며� 또한� 어떤�

역할을� 담당했는지를� 알수� 없다.� 다만�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어느정도의� � 권세를� 갖고� 있던� 신분� 정도

로� 추측될� 뿐이다(Fensham).� 또한� '방백'은� 본절� � 초두의� � '방백'과� 동일하다.� 이들은� '제사장'과는� 달

리�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 행정� 분야를� 관장하던� 신분이었던것� 같다.� � � 그� 외에� 일하는� 자들� -� 성벽

재건에�적극적으로�참여하려�한자들을�가리킨다(PulpitCommentary).

=====2:17본절과� 같은� 느헤미야의� 발언(發言)이� 암행� 탐사가� 있었던� 때로부터� 얼마의� 기간이경과한�후에� 행해졌는지는�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 팔레스틴으로돌아온� 후삼일� 간� 숙고

할� 기회를� 가졌었고(11절),� 직접적인� 자신의� 조사� 활동을� � 통해서� 모든� 정황을� 파악했을� 것이라는� 점�

등으로� 미루어� 볼� 때,암행탐사� 그� 다음� 날에� 본절과� 같은� 발언이� 있었을것이� 분명하다.� � � 우리의� 당한

곤경� -� 여기서� '우리'는,� 귀환한지� 3일밖에� 되지� 않은� 느헤미야가� 본토의� 유대인들과� 깊은� 연대의식을�

갖고� 있었음을� 보여준다(Fensham).� 한편,� � '곤경'(*� � � � � � � ,� 하라아)은� 1:3에서는� '환난'으로� 번역된�

단어로서,� 성벽을� 갖고� 있지� 못했던예루살렘� 거민들이� 이방인들의� 상습적인� 노략으로� 인해� 처하게� 된�

어려운� 상황을� 가리킨다(1:3).� � �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여� � 수치를� 받지� 말자� -� 유다의� 다른� 주요� 성읍

들은�나름대로의�방어용�성벽이�있었을�것으로�추측된다(Fensham).� � 그러나�오직유다의 심장부이자,�

신앙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에만� 방어용� 성벽이� 없어� 노략을� 계속� 당한다는� � 사실은그� 도시의� 주민� 뿐�

아니라�다른� 곳에�사는� 백성들에까지�수치일�수밖에� � 없었다.

=====2:18�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 -�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성벽� 재건� 사업에참여

토륵� 한� 신앙적� 원동력이� 되었다(스� 7:6).� � � 왕이� 내게� 이른� 말씀� -�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성벽�

재건�사업에�참여케�한� � 정치적�원동력이었다.� 사실�이스라엘�백성들이�성벽�재건을�주저하고 있

었던 현실상의이유는� (1)� '산발랏'과� 같은� 사마리아� 관리의� 방해(스� 4:7� -� 16),� (2)� 사마리아� � 관

리의� � 참소에� � 따른� 아닥사스다�왕의�성벽재건�중지령(中止令 )등의� 정치적인 것들이었다.� 바로� 이�

같은� 이유� 때문에� 성벽� 재건에� 적극적이지� 못했던� 이스라엘� � 사람들에게,느헤미야에� 대해서� 아닥사스

다�왕이�호의를�베풀었던�사실은�상당한�용기를 불어넣을수� 있었을� 것이다(2-9절).� � �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 -� 이는� 문자적으로� � '선한� 일을� 위하여� � 자신들의� 손을� 스스로� 강하게� � 했다'

의� � 의미이다(삼하� 2:7).� 본절은� 성벽� 재건� 사업이� 미미하기는� 하지만� 이미� 시작되었음을� 암시해준다

(JB).� � 사실� � 이스라엘� 백성들은� 비록� 실패로� 끝나기는� 했지만� 여러� 차례에� 걸쳐� 성벽� 재건을� 시도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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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다(스� 4:12).

=====2:19� 산발랏� � 도비야� -� 이들에�대해서는� 10절� 주석을�참조하라.� � � 아라비아�사람� 게셈� -� '아라

비아� 사람'은� 앗수르� 시대부터� 페르시아� 시대에� 이르기까지� 요단� 동부� 지역의� 지배� 계급이었다(본� 단

락� 주제� 강해,� � '아라비아�사람'� 참조).한편� '게셈'이라는�이름은�애굽� 땅에서�발견된� B.� C.� 5세기말�경

의� � 것으로� � 추정되는은� 그릇에� 그� 아들� '카이누'(Qaynu)와� 함께� 여신� '한-일라트'(Han-'ilat)에게� � 헌

신한자로서� 새겨져� 있다.� 뿐만� 아니라� 아람어� 비문에서는� '게달의� 왕'으로� 묘사되고� 있다.이와� 같은� 여

러� 가지� 사실을�통해서�볼� 때,� '아라비아�사람� 게셈'은� 요단� 동쪽및�남쪽지역을�다스리던�자였던�것�같

다(Rawlinson).� 이처럼� '게셈'이� '도바야'와는� 달리� '산발랏'의� 휘하에�있었던�한� 관리가�아니라는�사실

은,� � 6:2에서� 이� '게셈'이� 사마리아의총독� '산발랏'과� 함께� 느헤미야에게� 대면(對面)� 요청을� 했다는� 점을� 통해서도� � 자명해진다.� � � 업신여기고� � 왕을� 배반코자� 하느냐� 하기로� -� 대적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벽� � 재건� 시도를�중단시키기�위해�사용한�두� 가지� 무기이다.� 즉,� 하나는� '조롱'이며� 또� 하나는� '협박'

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업신여기고'(*� � � � � � � � � � � ,� � 얄라구)는� � '조롱하다'등의� 뜻이� 있는� '라아그'(*� �

� � � � � )의� 사역형으로서,� 마땅히� 귀중히� 여겨져야� 할� 어떤대상을� 오히려� 우습게� 여기는� 태도를� 가리킨

다(대하� 30:10;� 22:7;� 잠� 17:5).� 한편,� � '왕을� 배반코자� 하느냐'라는� 질문은,� 일찍이� 아닥사스다� 왕이�

사마리아� 관원들의� � 참소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벽� 복구사업을� 중지시켰던� 역사적� 사실을� � 그

배경으로한다.� 그러나� 그러한� 협박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

벽재건사업은� 중지령을� 내렸던� 아닥사스다왕의� 새로운� 허락과� 명령에� 따라� 시행되는� � 것이기� 때문이

다.

=====2:20� 본절에서� 느헤미야는� 산발랏� 등의� 적대적� 태도에도� 블구하고� 자신이� 아닥사스다� 왕으로

부터� 부여받았던� 사항(7-9절)들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느헤미야의� 이� 같은� � 태도는� 인간의� 어떠한�

훼방도�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중단시킬� 수� 없다는� 강한� 확신을� 반영한다.� 아울러� 산발랏� 일당

이� 아닥사스다� 왕으로부터� 느헤미야에게� 허락된�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점을,� 느헤미야가� 이미� 간과하

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산발랏� 일당은� 도리어� 왕의� 명령을� 무시하면서까지� 성벽� 재건

을� � 방해하고자� � 기를� 썼던� 셈이� 된다.� � �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로� 형통케� 하시리니� -� 이� 같은� 느헤미

야의� 확신에� 찬� � 응답은(1)�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궁극적으로� 보호하고� 형통케� 하실� 것이라는� 굳

건한� � 믿음과� (2)� 자신의� 기도가� 응답되었던� 실제적� 체험(1:11)에� 근거하였다.� � � 기업도� 없고� 권리도�

없고�명록(名錄)도� 없다� -� 이것은�사마리아 사람들이� � 유다의문제에� 대해서� 간섭할� 하등의� 명분이나�

이유가� 없음을� 강조하는� 말이다(스� 4:2,3).� 여기서� '기업'(*� � � � � � � ,� 헬레크)은� 이스라엘의� 땅� 분배와�

관련해서� 사용된� 법정적� 용어이다.� 그런데� 이용어는� 자신의� 반역� 의사를� 표명할� � 때도� � 사용되었다는� �

점에서(삼하20:1;� 왕상� 12:16)� 볼� 때,� 여기의� '기업도� 없고'는� 산발랏� 등이� 이스라엘� 백성의� 일에절대

적으로� 참여할수� 없음을� 강력히� 시사하는� 문구라고� 할� 수� 있다(Brockington).� � 한편,� '권리'(*� � � � � � � �

� ,� 체다카)는� 행정� 구역으로서의� 유다에� 대해� 어떤� 영향력을� � 행사할� 수있는� 법적� 권리를� 가리킨다

(Williamson,� Fensham).� 앞의� '기업'이� 시민권의� 문제와� 관련� 있다면,� 이것은� 행정권과� 관련이� 있다

고� 할수� 있을것이다(Williamson).� � 마지막으로� � '명록'(*� � � � � � � � � � � � ,� 지카론)은� 종교적� 의식에의� 참

여권을�가리키는�듯하다(Fensham,� Williamson).� � � � 느헤미야�제� 3장

=====3:1� 대제사장� 엘리아십� -� 이� 사람은� 스룹바벨과� 함께� 최초로� 팔레스틴에� 귀환했던� 대제사장� '

예수아'의� � 손자이다(12:10).� � 그런데� � 나중에� 그의� 손자가� 산발랏의� 딸과� 결혼했고(13:28),� 또한� 그

는� 이방인� 도비야(2:10)에게� 성전의� 방을� 내어줄(13:4,� 7)� � 만큼산발랏� 일당과� 깊은� 관계를� 맺게� 된

다.� 그렇다면� 엘리아십이� 처음에는� 느헤미야를� � 도와� 헌신적으로� 재건� 사업에� 참여하다가� 나중에� 산발

랏� 일당에게�매수당했거나� � 아니면처음부터�불온한�마음을�가진� 채� 단지� 백성들의�눈을�의식하여�형식

적으로� 재건� � 사역에� 참여하였을� 뿐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어쨌든� 보다� 분명한� 것은,� 백성들의� 모범

이되어야할�대제사장이�재건�사역에�협력하였음을�느헤미야가�부각시키려�했다는�사실이다.� � � 그� 형제�

제사장들� -� 이들을� '엘리아십'의� 친형제들로� 볼� 수는� 없다.� 다만� � '엘리아십'처럼� 아론의� 후손들로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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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장들'을� 가리킨다(스� 3:2).� � � 양문을� 건축하여� 성별(聖別)하고� -� '양문'은� 예루살렘의� 북동쪽� 모퉁이에�위치했었다.� 희생�제사에�소용되는�양과�염소들은�바로�이곳을�통해서�들어갔다.� 이 '양문'을통

해� 들어간� 희생� 제사용� 짐승은� 이� 문옆의� 못에서� 씻겨진� 후� 성전으로� 옮겨갔던� 것같다.� 요� 5:2의� '양

문'은� 바로� 이곳을� 가리킨다.� 한편,� 혹자는� � '성별하고'에� � 해당하는히브리어� '키드슈후'(*� � � � � � � � � � � � �

� � )를� '들보를얹다'는� 뜻인� '케루후'(*� � )가� 잘못� 표기된� 것으로� 본다(Rudolph).� 그러나� 굳이� 그러한�

견해를� 취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이� 말이�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의� 재건� 사역에서만� 사용되고� 있는� �

것으로보아�그들이�대표�자격으로�하나님께�바쳤음을�나타낸다고�이해할�수� � 있기 때 문 이 다

(Fensham,� Kidner).� 이것은� 마치� 이방� 여인을� 취한� 사실로� 인하여� 회개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명단을�

제시하면서� 그� 중� 유독� 제사장들만이� 속건제를� 드린� 사실을� 언급한� � 것과� 같다(스� 10:18,� 19).� � � 성

벽� � 함메아� 망대에서� 부터� 하나넬� � 망대까지� -� '함메아망대'는� '양문'의� 서쪽에,'하나넬� 망대'는� '어문

'(3절)의� 서쪽에� 각각� 인근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이� 두� � 망대� 사이에는� 짧은� 성벽과� 그중간에� '어

문'이� 있었다.� 이처럼�제사장들이�북쪽� � 성벽의재건을�담당한�것은,� 그곳이�그들의�활동� 무대였던�성전

과�가까운�곳이기�때문이었다.

=====3:2� 본절에서� 부터� 5절까지는� '하나넬� 망대'의� 서쪽� 성벽� 약� 210m의� 건축에� 대해서� � 말하고�

있다.� � � 그� 다음은�여리고�사람이�건축� -� '그� 다음'은� '엘리아십'(1절)을� 위시한� � 제사장들이�건축한�성

벽에� '연이어서'의� 의미이다.� � 한편,� 본절의� '여리고� � 사람'은� � 자신들의조상이� 포로로� 끌려가기� 전에� �

'여리고'에� 살고� 있었음은� 알았으나,� � 자신들의� 족보에대해서는� 알지� 못했던� 자들로� 추측된다

(Rudolph,� 스� 2:34).� � � 이므리의� 아들� 삭굴� -� 이� 사람에� 대해� 별� 달리� 밝혀진� 바는� 없다.� � '삭굴'은� '

염두에�두는'의� 의미이다.

=====3:3� 어문(魚門)은� 하스나아의� 자손들이� 건축� -� 예루살렘� 북쪽� 성벽의� 좌측에� 위치한� 문으로서,�갈릴리�바다� 및� 요단� 강에서� 잡힌� 물고기들이�바로�이곳을�통해서�들어왔다고해서�이런�이름이�붙여진�

듯하다(Rawlinson).� 이� 문에� 대해서�말하고� � 있는 구절들은본서� 12:39과� 대하� 33:14� 그리고� 습�

1:10� 등이다. 한편,� '하스나아'(*� � � � � � � � � � � )는'스나아'라는� 지명(地名)� 앞에� 정관사� '하'(*� � )가�붙은� 것으로� 봐야한다(Kidner� ,� 스2:35� ).� � 따라서� '하스나아의� 자손들'도� � 2절의� � '여리고� 사람들'처

럼,� 자신의� 조상이'스나아'라는� 곳에� 살고� 있었음은� 알았으나� 그� 족보를� 밝히지� 못함으로� 인하여� 조상

의이름� 대신� 지명을� 통하여� 구별되고� 있다(스� 2:35).� � � 그� 들보를� 얹고� -� 지붕을� 올림으로써� 건축을�

마무리하는� 것을� 의미한다(Fensham).� � � 자물쇠와� 빗장� -� 여기서� '자물쇠'(*� � � � � � � � � � ,� 만울)는� 오히

려� � '빗장'을� � 가리키며,� � '빗장'은� 앞의� � '빗장'을�물고� 있는� '소켓'(sockets)을� 뜻한다(Rawlinson).

=====3:4� 학고스의� 손자� 우리아의� 아들� 므레못이� 중수하였고� -� '므레못'은� '말기야'(11절)와함께� 에

스라와�느헤미야의�사역에�모두� 관계되는�자로서� � 에스라가�바벨론에서� � � 귀환하면서 가져온� 물

품들을� 인수했던� 제사장이었다(스� 8:33).� 한편,� '학고스'의� � 자손은그� 종족과� 보계가� 이스라엘에� 속하

였는지�증거할� 수� 없는� 자들이었다(스� 2:59,� 61).� � � 므세사벨의�손자�베레갸의� 아들� 므슬람� -� 이� 사람

은� 자신의� � 딸을� � '도비야'(2:10,19)에게� 며느리로� 주는� 등� 사마리아� 사람들과� 밀착된� � 관계를� 맺었던

(6:18) 제사장이다(30절).� 그가� 성벽� 재건에� 참여한� 이유는�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 경우와� 유사할�

것이다(1절� 주석� 참조).� 한편,� � '므술람'이라는� 이름은� '동맹한'이란� 뜻이다.� � � 바아나의� 아들� 사독� -� '

사독'은� 에스라가�제안한�언약문에�인친�자로만�알려졌을뿐이다(10:21).

=====3:5� 그� 다음은� 드고아� 사람들이� 중수하였으나� -� 6절의� 언급으로� 미루어� 볼� 때,� '드고아사람들'

의� 작업� 몫은� '옛� 문'과� 인접한� 동쪽� 성벽의� 한� 부분이었을� 것이다.� 한편,� '드고아'는� 예루살렘� 동남쪽�

약� 14.5Km� 지점의� 불모지에� 자리잡았던� 성읍으로서,� '아라비아� 사람� 게셈'(2:19)에� 의해서� 공격받기�

쉬웠던� 입지� 조건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 이'드고아� 사람들'은� 출신지역에� 따라� 분류된� 포로� 귀환자�

명단(스� 2:20� -� 35)에� 나오지않음을�볼�때,� � 자신들의�족보를�잊어버린�사람들은�아닌� � 듯하다. 느

헤미야는� � 다만(1)� '드고아'가� 아라비아�사람� 게셈의� 공격을�쉽사이� 받을� 수� 있는� 지역이며,� (2)� � 그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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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귀족들은� 오히려� 성벽� 재건에� 참여치� 아니했다는� 등의� 특별한� 상황� 때문에,� 조상의� 이름을� 통한� 가

족� 분류� 방식을� 포기하고�이같이� 동리의�이름을� 통해� 이들을� 분류하고�있다고� 본다.� � � 그� 귀족들은�그�

주의�역사에�담부(擔負)치� 아니하였으며� -� 이것은�문자적으로� � '그들의�귀족들은�자신들의�목들을�자신들의� 주(主)들의� 역사에� 가져오지� 않았다'의� 뜻으로서,� 멍에� 메기를� 거절하는� 황소의� 모습에� 빗대어서(렘� 27:12)� 성벽�재건� 사역에� � 동참치�않은� 귀족들을�암시적으로�비난하고�있다.� 한편,� 여기서� '그� 주'

는� 누구를� � 가리킬까?� 본절의� '주'(*� � � � � � � � � � � � � � ,� 아도네이헴)가� 복수라는� 점에서� � 하나님으로� � 볼

수� 없으므로� 느헤미야를� 도와서� 일을� 하던� 감독자들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Kidner).그� 문자적� 의미

는� '높임을� 받는자'이다.� 한편,� '귀족들'이� 성벽� 재건에� 참여치� 아니했던� 이유는� (1)� 이들이� '아라비아�

사람� 게셈'의� 보복을� 두려워했으며,� (2)� '게셈'과� 상당히� 깊숙한� 밀착�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때문으

로�이해될�수� 있다(Fensham).

=====3:6� 본절에서부터� 11절까지에서는� 약� 600m� 가량의� 성벽� 재건� 작업에� 대해서� 엄급한다.� � � 옛

문� -� 왕하� 14:13과� 램� 31:38의� '모퉁이� 문'과� 동일시� 되며(Edwin� Yamauchi)� 예루살렘� 북쪽� 약�

30Km� 지점에� 있던� '여사나'(대하� 13:19)라는� 곳으로� 향하는� 도로로� 통하는� 문이었다(Albright).� � � 요

야다� -� '여호와께서� 알고�계시다'의� 뜻이다.� 다른� 곳에서는�일체�언급되지� � 않고있다.� � � 므술람� -� '동맹

한'의� 뜻이다.

=====3:7� 기브온� 사람� 믈라댜� -� 여기의� '기브온사람'은� 출신� 지역에� 따라� 분류된� 포로� � 귀환자명단

(스� 2:20� -� 35)에들어� � 있다(7:25).� � 이� '기브온'은� 예루살렘� 북쪽� 약� 9Km� 지점에� 위치했다.� 한편,� �

'믈라댜'는� 여기서만�나오는� 이름으로,� � '여호와께서� � � 자유케하셨다'의� � 뜻이다.� � � 메로놋�사람� 야돈� -�

'메로놋'은� '기브온� 북동쪽약� � 5Km� � 지점이었을� � 것이다(M.Newman,� 대상� 27:30).� 그리고� '야돈'은�

'여호와께서� 지배하신다'의� 뜻이� 있는� '여도니야'의� 단축형이다.� � � 강서편� 총독의� 관할에� 속한� 기브온� �

미스바� 사람들� -� 이것에� � 대해서는� 다음과� � 같은� 견해들이� 제시되었다.� (1)� 기브온과� 미스바가� 당시�

강� 서편� 총독의� 직접적� � 영향력아래� 있었다고� 보는� 견해(Rawlinson,� Keil,� Schultz,� Kidner).� (2)� 강�

서편총독이� � 유다를�방문할�때마다�임시로�머물던�곳이� 미스바에 있었다는� 견해(Willamson),�

(3)� 유다총독(5:14)이�필요할�때마다�임시로�머물던�곳이�미스바에�있었다는�견해등이� � 있다.� 그러나�

첫째,� 여기의� '관할에� 속한'(*� � � � � � ,� 키세)이라는� 단어가� 일차적으로� '좌석'� 혹은� '보좌'를� 의미하며�

둘째,� 유프라테스� 강� 서쪽� 전부가� '강� 서편총독'의� � 영향아래� �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미스바'와� '

기브온'만을� 직접� 관할했다고� � 말하기는힘들며� 셋째,� � '강� 서편� 총독'이라는� 말을� 유다� 총독과� 동일한�

개념으로�보기도� � 어렵다는�사실(2:7;� 스� 8:36)� 등으로�미루어�위의� � 세견해�중� (2)의� 것이� 가장� 타당

한� � 듯하다.

=====3:8� � 금장색(金匠色)..향품� � � 장사..중수하되� -� 7절에서는� 가까운� 지방� 사람들끼리� 힘을합하는�모습이�언급된�데에� 이어서,� 여기서는�특별한�직업의� � 소유자들끼리 협력하는모습이� 그려지고� 있

다.� 고대� 중근동� 사회에서는� '금장색'은� 순금이나� 금박으로� 장신구와� 우상등을� 만드는� 일에� 주로� 종사

했었다(사� 40:19;� 41:7;� 46:6;� 렘� 10:9, 14;� � 51:17).� � 그러나� 포로� 귀환후의� 이스라엘� 사회에서

는� 우상� 숭배가� 엄격히� 금지되고� � 있었다는� 점에서,� 본문의� � '금장색'은� 장신구� 등의� 제조에만� 관계하

고� 있었음이� 분명하다.본절과� 31,� 32절은� 이� '금장색'들이� 자신들� 끼리의� 동업자� 조합을� 형성하고� 있

었을� 가능성을� 짙게� 풍기고� 있다.� 더구나� 여기의� '금장색'(*� � � � � � � � � � � � � � ,� � � 초르핌)이라는단어가�

복수라는� 사실은� 그� 가능성을� 더욱� 높게� 한다.� 한편,� � '향품장사'는� � 애굽이나인도� 등지에서� 완제품을�

수입해서�팔거나�혹은� 식물에서� '향품'을�직접� 추출해내는�자들을�가리킨다.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이런�직종에�종사했던�인물로�성경에�최초로�언급되는�자는�브사렐이다(출� 37:1,� 29).� 이러한� '향품'은�

'분말'� 혹은� '액체'의� 형태였고,� 조그만�용기에�보관되어�여인들에� 의해서�지참되었다(사� 3:20).� 이� � 같

은� � 향품의주된� 용도는� 몸의� 냄새를� 상쇄시키는� 것이었고� 장례용으로� 사용되기도� � 했다.� � 아무튼'금장

색'이나� '향품� 장사'는� (1)� 시간� 할애가� 용이하였으며,� (2)� 다른� 직업의� � 소유자보다� 수입이� � 많은� 관

계로�경제적으로�넉넉했기�때문에,� 성벽� 재건 사업에 적극적일수�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이들은� 그�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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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이스라엘� 사회에서� 보통� 중류계급으로� � 분리되었다고� 한다(Fensham).� � � 저희가� 예루살렘� 넓은� 성

벽까지� 하였고� -� '넓은� 성벽'은� B.C.� 7세기� 초에� 히스기야왕에� 의해� 건축된� 벽으로서� B.C.� 722년에�

사마리아가� 함락된� � 이후� 북이스라엘의� � � 피난민들을� 수용하기� 위해� 넓힌� 것이다(M.� Broshi).�

1970,71년에� � 아비갓(N.� � Avigad)은성전�서쪽� 방향� 270m� 정도� 지점에서� 6.7m� 정도되는�두께의� 성

벽을�발굴한� � 바� � 있으며이것은�본문의� '넓은�성벽'과�동일한�것으로�짐작된다.

=====3:9� 예루살렘�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 -� 여기서� '지방'(*� � � � � � � ,펠레크)은� 원래� � '주위'나� 혹

은� '물레가락'의� 뜻을� 지니며� 한계가� 명확하지� 않은� 주변지역을� 가리킨다.� 따라서� 여기의� '예루살렘� 지

방'은� 예루살렘� 시내� 지역이�아닌� 예루살렘과�붙어있는� 변두리�지역을� 뜻한다고�볼� 수� 있다(Fensham,�

Rawlinson).� 그리고� '다스리는� 자'(*� � � � � � ,사르)는� 본서에서� 보통� '방백'으로� 번역된� 단어로서(스�

10:14)� 그� 당시의� 유다� 지역이조그만� 단위�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었음을� 시사해준다.� 한편,� 본절은� 해

당� 지역의� 책임관리자� 혼자서만� 재건� 사역을� 감당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아마� 그의� 주도하에� � 해

당� 지역내의�주민들이�이� 일에�협력하였을�것이다.

=====3:10� 자기� 집과� 마주�대한� 곳� -� 이곳은�예루살렘�서쪽의�급경사지로�추측된다.

=====3:11� 하림의� 아들� 말기야� -� '하림'은� 스룹바벨과� 함께� 최초로� 귀환했던� 한� 가족의� � 조상이었다

(스2:32).� 따라서� 여기의� '아들'(*� � � � ,� 벤)은� '자손'으로� 번역됨이� � 타당하다.한편,� '말기야'는� '여호와

는� 왕이시다'의� 의미를� 가지는데� 23절의� '베냐민'과� � 형제인듯하다(스� 10:31,� 32).� � � 바핫모압의� 아들�

핫숩� -� 본절의� '바핫모압'도� 최초로�귀환했던�한� 가족의� � 조상(스2:6)이다.� � � 한� 부분(* � � �

� � � ,� 미다� 쉐니트)� � -� 이것은� 문자적으로� '두번째� � 부분'으로서,� 이미� 배정됐던� 몫� 이외의� 또� 다른� 부

분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말기야'와� '핫숩'은� 여기� 이외에� 다른� 부분의� 축성(築城)작업도� 부여받았던�셈이다(23절).� � � 풀무� � 망대� -� 이는� 12:38;� 대하� 26:� 9등으로� 볼때� '골짜기� 문'과� '넓은� 성벽'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였던� 곳으로� 짐작된다.� 그리고� 이� 같은� 명칭이� 붙여진� 것은,� � 그곳에서� 빵이� 구워졌기�

때문인�듯하다(Williamson).

=====3:12그� 다음� -� 이는� '풀무� 망대'와� '골짜기문'(13절)� 사이의� 성벽� 부분을� 말한다.� � '일자형'(一字型)에� 길이� 약� 450m� 정도이다.� � � 예루살렘�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 -�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었던� 지역의� 한부분을� 다스리던� 사람을� 가리킨다(9절� 주석� 참조).� � � 할로헤스의� 아들� 살룸과� 그� 딸들이�

-� '할로헤스'라는� 이름은� '속삭이는자'(M.� Newman).� 혹은� '마술사'(Batten)라는� 의미를� 갖는다.� 바로�

이점� 때문에� 학자들은,� 이� 이름이� '사람의� 이름'� 곧� 고유명사가� 아니라� '직업명'� 곧� 보통명사라고� � 주

장한다(M.� � Newman,� Batten).� 그러나�이와� 동일한�이름이�에스라의�언약문에�인친 자들의 명

단중에나온다는� 사실은,� 이� 이름이� 구체적인� 개인명임을� 입증해준다(10:24).� 한편,� 여기의� '아들'(*� � � �

,� 벤)은� 오히려� '자손'의� 의미로� 봐야할� 필요가� 있을것이다(Schultz).� � 그리고� '그� 딸들'(*� � � � � � � � � � � � �

,베노타이우)은� (1)� '딸'이� 큰� 도시에� 인접해서� 성장하고� 있는� 성읍에� 대한� 일상적� 용어로� 사용된� 사실

(겔� 16:53)에� 근거해서� '마을� 사람들'을� 뜻할� 것이라는� 견해(Batten,� Rawlinson,� Fensham,� Kidner),�

(2)� 여자는� 성벽� � 쌓는일에� 종사할� 힘이� 없다는� 사실에� 근거해서� '그� 딸들'(베노타이우)은� '그� 아들들'

(베나이우)의� 오기(誤記)라는� 견해(JB,� Vimcent),� (3)� 히브리� 원문의� 문자적� 의미를� 그대로받아들여야�한다는� 견해(Williamson,� Schultz,� Keil)등으로� 그� 해석이� 구분된다.� 그러나� 첫째,� 고대� 아테네에서는�

무너진�성벽의�재건을�위해서�여자들도�동원� � 됐으며� � 둘째,� '딸'들은� 남자� 형제가�없을� 경우�아버지의�

이름과� 재산을� 상속받으며(민� 36:8)� 셋째,� 본서의� 3장은� 성벽� 재건에� 대한� 백성들의� 열심을� 강조하는

(8절)� 문맥적�특색을�갖고� 있다는�점� 등으로�볼때,� 위의�세�견해� 중� (3)의� 것이�가장� 타당성이있다.

=====3:13� 하눈과� 사노아� 거민� -� '하눈'은� 30절에서는� '살랍의� 여섯째� 아들'로� 묘사되고� 있으며� 그�

이름은� '하나님은� 자비로우시다'의� 의미를� 갖는� '하나니엘',� 혹은�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다'의� 뜻을� 갖는�

'하나니야'의� 단축형으로�짐작된다.� 또한� '사노아'는� 예루살렘�남서쪽�약� 22Km� 지점에�위치한�작은�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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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이다(수� 15:34).� � � 본문까지� 성벽� 일천� 규빗을� 중수� -� '일천� 규빗'은� 약� 450m의� 길이이다.� 북쪽� �

성벽약� 200m� 정도를�네� 집단에서�담당했던�것(2-5절)과� 비교해보면�매우� � 작은성읍� � '사노아'의� 거민

들이� 이렇게� 많은� 분량을� 담당하였다는� 사실은� 특이하게� 보인다.이� 점에� 대해서는� (1)� 사노아� 거민들

이�큰� 열심을�냈었다는�측면,� (2)� 그들이 담당했던� � 성벽의파괴가� 극심하지� 않았었다는� 측면� 모두

가�인정될수�있을�것이다.

=====3:14� 벧학게렘� 지방을� 다스리는..말기야� -� '벧학게렘� 지방'은� '벧학게렘'이라는� � 성읍과전혀� 다

르다.� 여기서� '지방'은� 어떤� 성읍과� 인접해� 있는,� 혹은� 둘러싸고� 있는� � 지역을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이

다(9절).� 한편,� '벧학게렘'은� 예루살렘�남쪽�약� 5Km�지점에�위치했다.

=====3:15� � 샘문� -� 이에� 대해서는� 2:14� 주석을� 참조하라.� � � 미스바� 지방� -� 이것도� '미스바'와는� 전

혀� 다르다(14절� 주석� 참조).� 한편,� '미스바'는� 예루살렘� 북쪽� 약� 12.8Km에� 위치했다.� � � 왕의� 동산근

처� 셀라� 못가의�성벽� -� 여기서� '왕의� 동산'은� 기드론�골짜기� 남단,� � 즉그� 골짜기가�힌놈의�골짜기와�만

나는� 곳에� 위치했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성벽� � 바깥에있었다는� 결론이� 나온다(IDB,� 왕하� 25:4;� 렘�

39:4;� 52:7).� 한편,� '셀라못'은� � '실로암못'과� 동일시되는� 것으로서(사� 8:6;� 요� 9:7).� 그� 물이� 넘쳐� 흘

러서� � 기드론� � 골짜기와힌놈의� 골짜기가� 마주치는� 곳에� 위치했던� '왕의� 동산'� 쪽으로� 흘러갔다.� 결국�

이� � '셀라� 못'은� '왕의� 동산'의� 수원(水源)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이� 못이� 예루살렘� � 본성(本城)의� 바깥�쪽에� 위치했었다.� � 이런� 점� 때문에� 그� 못과� 그� 물을� 이용하는� 자들의� 보호를� 목적으로� 별도의� 성벽이�

쌓아졌었으므로� '셀라� 못'은� 성벽에� 둘러싸여� 있게� 된� � 셈이다.� 그렇다면� 본� 문구의� '성벽'은� 무엇인

가?� 그것은� 예루살렘의� 동쪽� � 성벽의� � 가장남쪽부분� 약� 100m를� � 가리키며� � '셀라� 못'의� � 동쪽성벽이

다.� 바로� 이런� 점에서� 이것은'셀라� 못가의� 성벽'이라고� 할� 만하다.� � � 다웠� 성에서� 내려오는� 층계� -� '다

윗성'은� 예루살렘의�동남쪽의� � 한� � 구릉지대로서,기혼�샘의� 북서쪽에서부터�남쪽까지�뻗어�있었다(삼하�

5:7,� 8).� � 그리고� '층계'는� � 기드론�골짜기로�내려갈�수�있었던�계단이었다.

=====3:16� � 벧술� 지방� 절반을�다스리는�자..느헤미야� -� '벧술� 지방'은� 예루살렘� 남쪽�약� � 21Km지점

에� 위치한� '벧술'이라는�성읍(수15:58)� 그자체를� 뜻하지� 않고� 다만� 그� 성읍의� � 인접� 지역을� 가리킬� 뿐

이다(9절).� 한편,� 본절의� '느헤미야'는� 본서의� 저자인� '느헤미야'와� 동명� 이인이다.� � � 다윗의� 묘실과� 마

주� 대한� 곳에� 이르고� -� '다윗의� 묘실'은� '묘실'(*� � � � � � � � � ,� 키브레이)이� 복수라는� 점에서� 다윗� 왕� 한�

사람만의� 무덤이� 아니라� 다윗부터� � 시작해서� � 그후예들의� 공동� 묘지였음이� 분명하다(대하� 28:27).� 그�

위치는� '다윗� 성'(15절)의� � 남쪽곧�시온산� 어디였을� 것이다(Myers,� 왕상� � 2:10).� � � 파서� 만든� 못을� 지

나� 용사의� 집까지� -� 히스기야� 왕이� 산헤립에� 의해서� 포위됐을때,히스기야는� 기혼의� 샘� 물을� 막은� 후�

고랑을� 파서� 그� 물이� 다윗� 성� 안쪽으로� 흘러� 들어오도록� 해서� 식수(食水)� 문제를� 해결했었다(왕하�20:20;� 대하� 32:3,� 4).� 그때� 그� 흘러들어온� 물이� 한� 곳에� 모이도록� 해놓은� 시설이� 곧� 여기의� '파서�

만든�못'이었다(사� 22:9� -� 11).� � 한편 '용사의집'은� 다윗의� 충실한� 부하들이었던� '용사들'(삼하�

23:8;� 대상11:10)이�사용했던�병사(兵舍)였다(Rawlinson).

=====3:17� 레위� 사람� 바니의� 아들� 르훔� -� 이처럼� 성전� 봉사에� 바빴을� '레위� 사람'이� 성벽� � 재건에�

참여했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이다.� 이는� 느헤미야의� 성벽� 재건� 운동에� 대한� 백성들의� 호응이� 적극적

이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라� 하겠다.� 혹자는� 본절의� � '레위� 사람'이� (1)� 포로로� 끌려가지� 않았

던� 레위� 사람의� 후예이기� 때문에� 성전� 봉사에� 참여치� 못했고� 그래서� 성벽� 재건에� 동참할� 여유가� 있었

거나,� (2)� 포로� 귀환후에는� � 레위인의� 일부가� 성읍의� 행정에만� 관여하고� 있었기� 때문에� 성벽� 재건에�

동참하였을� 것이라고� 주장한다(Williamson).� 그러나� (1)의� 견해는,� 저자가� 단순히� � '레위� 사람'이라고

만언급했다는점에서� 타당치� 않다.� 반면� (2)의� 견해는� 그� 당시의� 상황에서� 볼� 때� 어느� 정도� 타당하다.� �

� 그일라�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 -� '그일라� 지방'은� 예루살렘� 서남쪽� 약� � 24Km지점에� 위치한(삼상

23:1� -� 13)� '그일라'와는� 전혀� 다르다(9,� 12,� 14절).� � � 하사뱌� -� '여호와께서� 참작하셨다'의� 뜻이다.� � �

그� 지방을� 대표하여� -� 그곳� 주민들을� 통솔하는� 등� 그성벽� 재건� 공사의� � 주체(主體)가� 된� 것을� 가리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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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 같은� 역할은� 한� 지역을� 다스리는� 자로서� 성벽� 재건에� 참여한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이었을� 것이

다(9절).

=====3:18그� 형제..헤나닷의� 아들� 바왜� -� 여기의'바왜'(*� � � � � � � � )는� � '빈누이'(*� � � � � � � � � )의� � 오기

(誤記)로� 간주될� 수� 있다.� 그� 이유는� (1)� '바왜'라는� 이름은� � 구약� � 성경이나그밖의� 문헌� 어디에서도�발견되지� 않으며,� (2)� 9절의� '한� 부분'은'� 이미� 배당된� 몫� 이외의� 또� 다른� 부분'(11절)을� 가리키므로,�

본장� 어디에든� � '빈누이'가� � 느헤미야로부터할당받은� 작업� 몫에� 대한� 언급이� 있어야하나� 그렇지� 못하

며,� (3)� 더구나� 10:9에는� '빈누이'라는� 레위� 사람이� '헤나닷의�자손'으로�묘사되기�때문이다.� 따라서�우

리는� � 본절의� '바왜'� 를� '빈누이'로� 고치고,� 이� '빈누이'가� 느헤미야로부터� 두� 몫의� 성벽� 공사를할당받

았다고�결론지어야�할� 것이다.� 한편,� 이� '빈누이'는�에스라의�언약문에�인을�치기도�하였다(10:9).

=====3:19� 미스바를� 다스리는� 자..에셀� -� � '미스바'는� 예루살렘� 북쪽에� 위치했던� 한� 성읍� '미스바'를�

가리킨다.� 한편,� � '에셀'은� '도움'� 혹은� '구원'의� 뜻이다.� � � 한부분� -� 배당된� 몫� 이외에� 또달리� 배당된�

별도의�작업� 몫을� 가리킨다(11절).� 따라서�본절의� '에셀'은� 본절에서�언급되고�있는�작업� 몫� 이외에�이

미� 또� 다른� 부분을� � 배당받았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에셀'이라는� 이름은� 본장� 어디에도� 안� 나온다.� �

그러므로� 우리는�기브온�사람들과�미스바� 사람들이�함께�한� 재건� 사역이�본문의� 에셀이�감당한�또다른�

한� 부분이었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7절).� � � 성� 굽이에� 있는� 군기고� 맞은편� -� 이것은� 문자적으로� '모퉁

이에� 있는� 군기고로� 오르는� 곳� 앞'의� 뜻이다(Schultz,� Fensham).� � 여기서� � '모퉁이'는� � '성벽이� � 날카

롭게� � 꺾어지는� 곳'을� 의미한다(대하� 26:9).� 본절에서� 느헤미야가� '성� 굽이에� 있는� � 군기고'라고� '군기

고'를� 한정적으로�표현한�까닭은�예루살렘에는�여러�군데에�군기고가� � 있었던때문이었다(사� 22:8).

=====3:20� 삽배의� 아들� 바룩이� 한� 부분을� 힘써� -� '삽배'는� 스� 10:28에서� 이방� 여인을� � 취했다가� 회

개한�자로� 언급된다.� 그리고� '바룩'은� 본서� 10:6,� 8을� 볼� 때,� 제사장임이�분명하다.� 따라서� 이� 같은� 사

실은� 여기의� '한� 부분'에� 대한� 중요한� 해결의� 실마리가� � 될� � 수있다.� 즉,� '바룩'은� 다른� 제사장들과� 함

께� 성벽� 재건에� 동참했었고(1절)� 이제� � 그와는별도로�또� 다른� '한� 부분'을� 맡아서� 공사를� 했던� 것이다.�

한편,� � '힘써'(*� � � � � � � � � � ,헤헤라)는� '맹렬하다',� � '타오르다'� � 혹은� '진노하다'의�뜻을� 갖는� 동사� '하라

'(*� )의� 사역형으로서� � '뜨겁게� 되다'(Fensham)� 혹은� � '열심을� � 품다'의� � 의미이다(Davidson).� � 이� �

같은� 단어는� 앞의� � '한� 부분'이라는� 말과� 매우� 잘� 조화된다.� 즉,� 그는� � 열심을� 품어서� 이미� 자신에게�

맡겨졌던� 공사를� 재빨리� 완료하고,� 또다시� 새로운� � 부분에대한� 공사에� 뛰어� 들었던� 것이다.� � � 성� 굽이

에서부터..엘리아십의� 집� 문에� 이르렀고� -� '성� 굽이'는� '군기고'가� 있는� 성의� 모퉁이를� 가리키며� '집문

에'는� '집� 문� 맞은편'의� � 뜻으로� � 이해해야� � 한다(Batten,16,� 19절).� 만일� 본절의 '집� 문에'를� 여자적

(如字的)으로� 받아들인다면,� '엘리아십의집'이� 성벽과�붙어있었다는�오해를�낳게� 될� 것이다.

=====3:21� � 학고스의� 손자� 우리야의� 아들,� 므레못� -� '학고스'는� 스� 2:61에서� 자신들의� � 계보를증명

치� 못하여서�성전�봉사에� 참여치�못했던�제사장� 가문의�조상으로� 언급되고� � 있다.따라서�여기의� '손자'

는� '자손'으로� 번역함이�타당하다.� 그리고� '므레못'은� � 스� � 8:33에서�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가져온� 물품

을� 인수했던� 제사장으로� 언급된다.� � � 한� 부분을� 중수하여� -� '므레못'도� 20절의� '바룩'처럼� 자신에게� 맡

겨졌던� 최초의� 작업� 몫을� 재빨리� 마치고,� 본절의� 또� 다른� 성벽� 공사에� 뛰어들었음이� 분명하다(20절).� �

� 엘리아십의� 집� 문에서부터..모퉁이에� 이르렀고� -� 이것은� (1)므레못의� � 공사량(工事量)이� 비교적� 적었다는� 사실(Rawlinson,� Batten),� (2)� 엘리아십의� 집이� � 매우� � 컸다는사실(Keil)� 중� 하나를� 시사할� 것이

다.� 그러나� 첫째,� 느헤이야� 귀환� 당시의� 예루살렘은그� 경제형편이� 좋지� 못했으며(1:3)� 둘째,� 대제사장�

그� 당시� 행정적� 측면을� 관장했었던총독보다� 권한이� 비교적� 적었음(5:9)을� 미루어� 볼� 때,� 위의� 두� 가지�

추측� � 중� � 전자가보다� 타당할� 듯하다.� 그런데� '므레못'이� 이처럼� 적은� 몫� 만을� 담당했던�까닭은,� 그� 부

근의� 공사� 조건이� 심히� 나빴기� 때문일� 것이다(Batten,� 2:14).� 아무튼� '므레못'이� 대제사장� 집� 앞의� 성

벽� 공사를� 담당했었다는� 사실은,� 그가� 그� 당시� 신실한� 제사장으로� � 인정되고� 있었다는� 좋은� 증거라� 하

겠다(Scul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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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2� � 평지에� 사는� 제사장들� -� '평지에� 사는'(*� � � � � � � � � � � � � � � � � � � ,� � 안쉐이� � 키카르)은문자

적으로� '평지의� 사람들'을� 의미한다.� 한편,� '평지'(키카르)는� (1)� 예루살렘의� � 주변지역(Fensham,�

Williamson),� (2)� 요단강� 유역의� 여리고� 지역(Keil,� Rawlinson,� Scultz,� Batten)� 등으로� 이해된다.� 그

러나� 여기의� '평지'라는� 단어가� 여러� 차례에� 걸쳐� 요단강� 유역을�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된� 것은� 사실이

지만� 첫째,� 이것이� 에브라임� � 산지에대해서도� 적용됐으며(삼하� 18:23� )� 둘째,� 특히� 본서에서� 예루살렘�

주변을�나타내는�데사용됐다(12:28)는� 점� 등으로�볼� 때,� 위의� 두� 견해� 중� (1)의것이� 보다� 타당한�듯하

다.따라서� 본절의� '평지에� 사는� 제사장들'은� 예루살렘� 시내에� 살며� 성벽재건에� 최초로� 나섰던� 제사장들

(1절)과는� 분명히�구별된다(Williamson).

=====3:23� 베냐민과� 핫숩� -� '베냐민'은� '하림� 자손'으로서� 11절의� '말기야'와는� 형제� 혹은� 근친인� 듯

하다(11절;� 스� 10:31,� 32).� 그리고� '핫숩'은� '바핫모압� 자손'으로서� � '베냐민'의� 형제� '말기야'와� 함께�

'풀무� 망대'를� 재건했던� 사람이다.� 그렇다면� 본절의� � '핫숩'은,� � 한� 곳에서는� '하림자손'의� '말기야'와�

함께,� 또� 다른� 곳에서는� � 그형제� '베냐민'과� 함께� 공사를� 하는� 등� 두� 몫을� 담당했던� 셈이다(11절).� � �

아사랴가� 자기� 집에서� 가까운� 부분을� 중수� -� '가까운� 부분'(*� � � � � � � ,� 에첼)은� � 구약� 성경에서� 대부분�

'옆에'� 혹은� '곁에'로� 번역되는�단어(창� 39:16;� 삼상� � 5:2;� � 왕상10:19)이지만�문맥상� 19절의� '맞은편'

과� 동일한� 의미로� 이해된다.� 아무튼� � 이� � 문구나앞에� '자기집� 맞은편� 부분'이라는� 문구는,� 느헤미야가�

성벽재건� 사업의� � 추진과� � 관련해서� 공사� 담당자의� 편의를� 최대한으로� 고려해주었음을� 보여주는� 분명

한�증거라고� � 할만하다.� 한편,� '아사랴'라는� 이름은� '여호와께서�도우셨다'의� 뜻이다.

=====3:24� 헤나닷의� 아들� 빈누이가� 한� 부분을� 중수� -� '빈누이'는� 18절에� 나오는� '헤나닷의� 아들� 바

왜'와� 동일� 인물이다(18절).� 이� 사람은� 동쪽성벽의� 남쪽� 부분을� 건축한� 다음� � 여기서� 또� 다른한� 부분

의� 성벽� 건축을�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 � 아사랴의� 집에서부터� -� 이것은� '아사랴의� 집� 끝� 모퉁이에서�

부터'로� � 이해해야� � 한다.� 왜냐하면� 아사람의� � 집� 근처,� 곧� 아사랴의� 집� 맞은편� 쪽은� 아사랴� 자신이�

직접� 성벽� 공사를� 하였기� 때문이다(23절).� � � 성� 굽이를� 지나� 성� 모퉁이에� 이르렀고� -� '성굽이'는� '성벽

의� 처음� 꺽여진� � 부분'을뜻한다(19절).� 한편,� '모퉁이'(*� � � � � � ,피나)도� '굽이'� 와� 거의� 같은� 뜻으로서,� �

여기서는�성의�꺾여진�부분이�원래의�방향대로�다시�꺾여진�부분을�가리킨다.

=====3:25우새의� 아들� 발랄� -� '발랄'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셨다'의� 의미로서� 구약� � 성경� � 중본절에만�

나오는� 이름이다.� '우새'도� 오직� 여기에만� 나오는� 이름으로� '여호와께서� � 들으셨다'의� 뜻이다.� � � 왕의�

윗� 궁에서�내어민�망대� -� 여기의� '윗'은� '높은'의� 의미로서� '왕궁'을� � 수식한다기보다는� '망대'를� 수식한

다고�봄이�더� 무난하다(Rawlinson).� 한편,'왕의� 궁'에� � 대해서는� (1)� 솔로몬의�왕궁(Schultz),� (2)� 다윗

의� 왕궁(Rawlinson),� (3)� 포로로� 끌려가기� 직전의� 왕의� 임시� 대피소(Fensham)� � 등의� �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고있다.� 그러나� 이'왕궁'이� 이미� 언급된� 남쪽의� '다윗� 성'(15절)과� 다른� 이름으로� 구별되어� 나타

나고� 있다는� 점� 등으로� 볼� 때� 위의� (1)과� (3)의� 견해� 중� (1)의� 것이� 보다� 타당성이� 있다.� � 그리고� '내

어민� 망대'는� 솔로몬의� 왕궁� 외곽을� 경비하기� 위하여� 세워진� 망대의� 하나임이분명하다.� � � 시위청에서�

가까운�부분� -� 이것은� 시(市)외곽을�감싸는� 성벽의� � 일부가�아니라� � 솔로몬�왕궁� 외곽의� '내어민� 망대'와� 연결된� 내성벽(內城壁)의� 일부이다.� 한편,'시위성'은� 영역본� 흠정역의� 번역대로� '감옥'으로� 봄이� 타당할� 것이다(12:39;� 롑� 32:2).� � � 바로스의� 아들� 브다야� -� '바로스'는� 스룹바벨과� 함께� 귀환했던� 한� 가

족의�조상이었다(스� 2:3).� 따라서�여기의� '아들'은� '자손'으로� 고쳐야�한다.� 한편,� '브다야'는� � '여호와께

서�속량하셨다'의� 뜻이다.

=====3:26� 때에(*� � ,� 웨)� -� '그리고'� 혹은� '그런데'의� 뜻이다.� � � 느디님� 사람은� 오벨에� 거하여� -� '느

디님� 사람'에� 대해서는� 스� 2:43� � 주석을� 참조하라.� � � 동편� 수문과� 마주� 대한� 곳� -� '수문'은� 기혼� 샘�

반대편에� 위치한� 듯하다.� � 그렇다면이문은� 동쪽� 성벽의� 남쪽에서� 북쪽에� 이르는� 중간지점에� 채� 못미치

는� 곳에� 해당될� � 것이다.� 이� 문앞에는� 넓은� 광장이� 있어� 공중� 집회시� 이용되었다(8:1).� 한편,� '마주�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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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곳'은� '동편� 수문'과� '내어민�망대'� 사이의�성벽�부분이다.

=====3:27� 드고아� 사람들이� 한� � 부분을� 중수� -� '드고아� 사람들'은� 자신들의� 방백의� 협조나� 지도가�

없었음에도�불구하고�서쪽�성벽의�한부분에�대한�공사를�담당했었다(5절).

=====3:28� � 마문� 위로부터� -� '마문'은� 동쪽� 성벽에� 있었던� 한� 문으로서(롑� 31:40),� � 말(馬)� 혹은� 말을� 탄� 사람들이� 시내로� 들어갈� 때� 이용됐었다.� 아무튼� 이� '마문'은� 솔로몬의� � 옛왕궁으로� 연결되는� 문

이었던� 것� 같다.� 한편,� '위'는� 마문� 북쪽성벽을� 가리킨다.� � � 제사장들이� 각각� 자기� 집과� 마주� 대한� 부

분을�중수� -� 이것은�이미� 북쪽� 성벽공사에참여했던� '므레못'이� 대제사장�엘리아십의� � 집� 근처를�별도로�

공사했었던� 것과� 유사한경우이다(21절).� 즉,� 본절의� '제사장들'도� 이미� '므레못'처럼� � 북쪽� 성벽� � 공사

에� � 참여했었고(1절),� 다시�또�다른� 몫의� 공사를�진행하고�있었던�것이다.

=====3:29� 임멜의� 아들� 사독� -� '임멜'은� 스룹바벨과� 함께� 귀환했던� 제사장� 가족의� 한� � 조상이었다

(스� 2:37).� 따라서�본절의� '아들'은� '자손'으로�번역되어야�한다.� � 또한� '임멜'은다윗이 세운� 제사

장� 조직� 중� '열� 여섯째'반차에� 속한� 사람이었다(대상� 24:14).� � � 동문� 지기� 스가냐의� 아들� 스마야� -� 여

기의� '동문'은� 외성벽과는� 상관� � 없이,� � 성전건물에� 속했던� 문이었던� 것� 갈다(겔� 40:6,� 10).� 그� 문은�

스룹바벨� 성전� 재건� 때에� � 복구되지� 못했다가� 금번에� 성벽의� 한� 부분으로서� 복구된듯하다(Fensham).�

이처럼� '동문'이� 성전�건물에�속했다는�사실은,� '동문� 지기'가� 레위인이었다는�사실에�대한� � 분명한증거

가� 된다.� 혹자는� 본절의'스마야'를� 대상� 3:22의� '스마야'로� 보고,� 그가� 다윗의� 후손이라고� 주장하지만�

근거가�희박하다.

=====3:30� 하나냐..한� 부분을� 중수� -� '하나냐'는� 8절에서� '향품� 장사'로� 묘사되는� '하나냐'와동일한�

인물임이� 분명하다.� 즉,� 본절의� '한부분'은� '하나냐'가� 다른� 부분의� 성벽� 공사도� 담당했었음을� 시사하며

(11절),� 이것은� 곧� 여기의� '하나냐'가� 8절의� '하나냐'와� � 동일� 인물임을� 입증한다.� � � 살랍의� 여섯째� 아

들� 하눈� -� '여섯째� 아들'이라는� 수식� 문구는� '살랍'의� � 많은� 아들중에서� 오직� 말째에� 가까왔을� 한� 아들

인� '하눈'� 만이� 성벽� 재건에� 참여했었음을� � 강조하려는� 것인� 듯하다.� � � 베레갸의� 아들� 므술람� -� 4절의�

'므술람'과� 동일� 인물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본절의'므술람'도� 두� 곳의� 성벽을� 재건한� 셈이다.� � � 자기�

침방과� 마주� 대한� 부분� -� '침방'(*� � � � � � � � � � � � ,� 니쉬카토)은� 일반적인� � 의미의� '방'을� 가리키기도� 하

지만,� 특별하게는� 성전에� 속한� 여러� 방들에� 대해� 적용되는� 단어이다(Fensham,� 12:44;� 13:7).� 따라서�

본절의� � '자기� 침방'은� � '므술람'이� � 제사장이었음을�보여주는�증거임이�분명하다.� 그렇다면� '자기� 침방

과�마주�대한� 부분'은� � 성전과�가까운�성벽을�가리킨다.

=====3:31� 금장색� � 말기야� -� 본절의� '금장색'(*� � � � � � � � � � � � ,� 초르피)은� 8절의� � '금장색'과는달리�

단수이다.� � � 함밉갓� 문과� 마주� 대한� 부분� -� '함밉갓� 문'(*� � � � � � � � � � � � � � � � � � � � � ,� 솨아르� � 하미프카

드)의� '하미프카드'는� 삼하� 24:9에서는� '인구� 조사'의� 의미로� � 사용된다.� � 따라서본절의� '함밉갓� 문'은�

히브리� 단어의� 음역을� 그대로� 따르기� 보다는� 차라리� 의미적으로번역해서� '소집문'(RSV,� the� Muster�

gate� ;� the� Inspection� gate)으로� 옮겨질� 수� 있다(Fensham,� Williamson).� 이는� 백성들이� 특별한� 일

이� 발생했을� 경우에� 그� 문� 앞으로� 소집되었음을� �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문의� 위치는� '동

편� 수문'과� 연결된� 성벽에서� 북쪽으로� � 약� 90m� 지점이다.� 따라서� 이� '함밉갓문'의� '마주� 대한� 부분'은�

동쪽외성벽의�거의� � 북쪽� 끝부분이�되는�셈이다.� � � 느디님�사람과�상고들의�집� -� '느디님�사람의�집'은�

그들이� 성전� 봉사를�하는� 동안에만� 사용했던� 거처로�받아들여야�한다(Fensham,� Williamson).� '느디님

사람'의� � � 집은'오벨'� 근처에� 있었다(26절).� 한편,� '상고들'(*� � � � � � � � � � � � ,� 라칼림)은� '돌아다니다'의�

뜻을� 갖는� 동사� '라칼'(*� � � � � � )에서� 파생된�명사로서,� 활동� � 반경이� � 상당히� 넓은상인을� 가리킨다.� 아

들은�먼� 곳에서� 물건을�구입해서�팔거나�혹은� 자기의�고향� 물건을먼�곳까지�가져가서�팔던�사람들이었

다.� 이들은� '금장색'이나� '향품장사'처럼� 동업� 조합(guild)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 보통이었다.� 여기의� '

라칼림'이라는� 복수명사는� 이들이� 동업� 조합을� 구성하고� 있었으리라는� 주장을� 뒷받침해� 준다.� � � 성�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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퉁이� 누(樓)� -� 성벽의� 북동쪽� 부분에� 있었던� '다락방'� 종류였던� 것� 같다.� � 마치� 망대와� 같은� 기능을� 했을� 것이다.

=====3:32� 성벽� � 공사의� � 마지막�부분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여기서도� 특수한� 직업에� � 종사했던�

사람들의�열심을�강조하고�있다(8절).� � � 양문� -� 제사장들에�의해�복구된�바� 있다(1절).� � � � 느헤미야�제�

4장

=====4:1� � 산발랏이� 우리가� 성을� 건축한다� 함을� 듣고� -� � '산발랏'이� 성벽� 재건에� 관한� 소식을들은�

것은� 그� 작업이� 시작되기도� 전일� 것이다.� � 유대인들� 중에� 그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사전에� 이미�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3:1,� 4� 주석� 참조).� 그런데� 본절에서'산발랏'만이� 유

대� 백성을� 훼방하는� 자로� 묘사되고� 있는� 까닭은,그가� 유대� 백성을� 훼방하는� 일에� 선동자였기� 때문이

다.� 이� 같은� 견해는� � 여러명의� � 훼방자가� 동시에� 언급될� 때도,� 그� 이름이� 항상� 그들� 중� 첫번째에� 위치

한다는� 사실로써도분명해진다(7절� ;� 2:10,19� ;� 6:1,2,5).� 한편,'산발랏'이라는� 이름은� '달신(月神)이� 그에게�생명을�주었다'라는�말인� 바벨론어에서�유래되었다.� 2:10에� '호론� 사람'이란� � 말이� 나오는�것으로�

볼� 때,� 아마도�그는�에브라임지파�남쪽지역인� '벧호론'(Beth-horon)에서�출생한�듯하다.� 그리고�요세푸

스에� 의하면,� 그리심산의� 사마리아� 성전은� 이� 산발랏에� 의해� 건립되었고� 산발랏은� 자기사위를� 이� 성전

의� 대제사장으로� 세웠다고� 하나� 그사실성� 여부는� 분명치� 않다.� 한편,� '크게� 분노하며',� '비웃는'� 산발랏

의� 반응은,� 2:19에서� 보다� 한층� 강렬한� 것이며� 6:2에� 가서는� � 느헤미야를� 살해하려고까지� 하는� 것으

로발전된다.

=====4:2� 자기� 형제들� -� 이들은� 의논� 대상이� 될만한� 자신의� 직속� 부하들을� � 가리킨다.� � 물론여기에

는� '도비야'도� 포함될� 것이다(3절).� � � 사마리아� 군대� -� 페르시아� 정부가� 파견한� 수비대라기� 보다는� 해

당� 지역별로� 조직된부대인� 듯하다(스4� :� 23).� � 산발랏은� 이� � '군대'를� 이용해서� 유대백성을� 물리적인� �

힘을� 동원해서라도� 괴롭힐�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8절).� 사실� 페르시아� 정부의� 지배력이제국� 내의� 곳

곳에� 직접적으로� 미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그� 당시의� 상황에서,� 산발랏의이� 같은� 사악한� 생각은� 실천

될� 가능성이�얼마든지� 있었다(Rawlinson).� � � 미약한�유다� 사람들� -� '미약한'(*� � � � � � � � � � � � � � ,� 아말렐

림)은� '쇠퇴하다'의� � 뜻이있는�동사� '아말'(*� � � � � � )에서� 파생된�단어로서� '나무가�시들어말라�비틀어지

는� � 것'을� 가리킬� 때도� 사용되었다(사� 16:8� ;� 24:17).� � 특히� 사람에게� 적용될� 때는,� � 주로� 소망이� 없

는� 암울한� 상태를�가리킨다(사� 19:8� ;� 호� 4:3).� � � 제사를�드리려는가� -� 이� 문구에� 대해서는,� (1)� 이'제

사'를� 성벽� 재건사업이� 마쳐질때에� 드려지는� 감사의� 제사로� 보고� 유대� 백성이� 성벽� 재건을� 완료할� 능

력이� 없을� 것이라는� 조롱의� � 의미로� 이해할� 수� 있으며,� � 또한� (2)�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 초자연적인

힘으로� 성벽을� 재건하고자� 하는가'라는� 식의� 빈정댐으로� 볼� 수도� 있다(Williamson).� � � 하루에� 필역� 하

려는가� -� 이것도,유다� 백성들을� 무능한자들� 이라고� 하는� 조롱� 이다.� � � 소화된� 돌을..다시� 일으키려는가�

-� 이것은� 유다� 백성들이� 성벽� 재건에� 사용할� 석재(石材)를� 확보할수� 없을것이라는� 조롱이다(Rawlinson,� Fensham).

=====4:3� � 도비야는� 곁에� 섰다가� -� '도비야'가� 산발랏의� 측근� 혹은� 직속� � 참모였음을� � 보여준다.� � �

성벽은�여우가�올라가도�곧�무너지리라� -� '여우'로� 번역된�히브리어� '슈알'(* � � )구약에서� � 7회� 나

오며(삿� 15:4� ;� 시� 63:10� ;� 아� 2:15� ;� 애5:18� ;� 겔� 13:4)'쟈칼'로도� 번역될� 수� 있다.� 쟈칼이� 주로� 무

리를� 지어� 다니는� 반면� 여우는� � 대개� 혼자다닌다는� 점을� 감안할� 때,� 본문에서는� 개역� 성경의� 번역대로�

'여우'로� 보는� � 것이� � 좋다.� 그렇다면�도비야는�한� 마리의�여우가�밟아도�성벽이�무너질�것이라고�조롱

한� 셈이다.� 일반적으로� 성벽은� 훌륭한� 공성(攻城)� 무기로� 오랫동안� � 공격한� 후에야� 무너질� 수있다는�점을�감안한다면,� 이것은�과장된�조롱임이�분명하다.

=====4:4,5� 본절과� 같은� 탄원적� 기도는,�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 그분의� 뜻대로,� 그리고� � 그분의이름

으로� 수행하는� 사업이� 원수들에� 의해서� 멸시되고� 있었던� 상황에서� 드려지고� � 있다는� 점에서� � 실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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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時宜)� 적절� 하다고� 할� 수� 있다(5:19� ;� 9,14� ;� 13:14,22,29,31� ;시� 69:22-28� ;� 79:12� ;�109:6-20).� � � 우리가�업신여김을...돌리사�노략거리가�되어� -� '업신여김을'(*� � � � � � � � � � ,부자)은'조롱하

다'� 혹은� '모욕하다'의� 의미이며'노략거리'(*� � � � � � � � ,� 비자)는� '전리품'을� 뜻한다.� 여기서� 본저자� 느헤

미야는� 이처럼� 발음이� 매우� 유사한� 두� 개의� 단어를� 사용하여말의� 유희(Word� play)를� 살리고� 있다.�

즉,� 느헤미야는� 사마리아� 사람들의,� '부자'라는행동,� 즉� 그� 원인으로� 말미암아� '비자'라는� 불행,� 즉� 그�

결과에� 도달되기를�간절히� 염원하고�있는� 것이다(Fensham).� � � 이방에� 사로잡히게� 하시고� -� 이것은� 고

대� 중근동� 민족들에게는� 가장� 고통스러운� 환난이었을� 것이다.� 사마리아� 사람들� 역시� 그와� 같은� 불행한�

과거가� 있었던� 민족이다(스4:9,10).� � � 그� 악을덮어� 두지� 마옵시며� -� 여기의� '덮어두지'(*� � � � � � � � ,카

사)는� � 죄의� � 용서를가리킨다.� 이와� 유사한� 표현이� 렘� 18:23� 에도� 나온다.� 그러나� 우리는� 느헤미야가�

예레미야서를� 인용한� 것이라고� 단정할� � 필요는� 없을� 듯하다.� 왜냐하면� 이러한� 표현은� 예레미야� 시대나�

느헤미야�시대에�공히� 익숙한�것이었기�때문이다(Fensham).

=====4:6� 성을� 건축하여� 전부가� 연락(聯絡)되고� -� 이것은� 예루살렘의� 성벽에� 의해서� � 완전히둘러싸여� 졌음을� 뜻한다.� � � 고가� 절반에� -� 원문상으로는� 단지� '절반까지'� 혹은� '중간까지'라는� 뜻만� 있으므로,

이� 말은� 성벽의� 길이나� 넓이에도� 적용될수� 있으나� 높이의�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 가장무난하겠다.� 즉,�

성벽이�원래� 계획했던�것의�반정도의�높이로�쌓여졌었음을 가리킨다(Rawlinson,Fensham).� � � 이

는� 백성이� 마음� 들여� 역사하였음이니라� -� 문자적으로는� '역사할� 마음이� � 있었다'의� 뜻으로서,� 참여자들

의� 자발적이고� 헌신적인� 마음� 자세가� 성벽� 재건� 사업이� 크게� 진척될수� 있게� 된� 중요한� 원인이었음을�

시사한다.

=====4:7� 하나님의� � 백성들에� � 대한� 이방인들의� 적대감이� 점증되고� 있었듯이(1절),� 적대감을품고� 있

던�이방인들의�숫자도�급격히�많아지고�있음을� � 보여준다. 여기� 나오는� 이방세력에� 대해서는� 본장�

강해의� 지도,� '성벽� 재건을� 방해한� 네� 민족들'을� 참조하라.� � � 산발랏과� 도비야� -� 이에� 대해서는� 2:10�

주석을� 참조하라.� � � 아라비아� 사람들� -� 이들은� 페르시아가� 중동을� 제패했을� 무렵에� 팔레스틴의� � 동부

인요단� 동편과� 남부인� 네게브� 지방을� 거주지로� 삼기� 시작했었다.� � 바로� 이� 족속의� 한� 분파를� 다스리던�

자가� '게셈'이었다(2:19).� � � 암몬� 사람� -� 이들은�그� 당시� 요단의�동쪽지역�및� 심지어는�요단의� 서쪽� 강

변에서도살던� 민족이었다.� � � 아스돗� 사람-이들은� 블레셋� 족속들이� 거주했던� 지역� 전반에� 걸쳐서� 살고�

있었다.� � � 예루살렘� � 성이� 중수되어� -� 본절의� � '중수되어'� (*� � � � � � � � � � � ,아루카)는,� 그� 어근'아라크'(*� �

� � � � )의� 뜻이� '연기하다'� 혹은� '참다'인� 것과는� 달리� '상처의� 치유'� 혹은'상처� 위로� 새� 살이� 돋아나는것

'을�가리킨다(사� 58:8� ;� 렘� 8:22� ;� 30:17� ;� 33:6).건축과�관련한�이러한�표현은�대하� 24:13에서도�나

타나는� 바,� � � 이는� 일반적으로� 두루쓰인� 관용적� 문구인�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표현에는� 예루

살렘의� � 번영을�기원하는�느헤미야의�각별한�염원이�담겨� 있음이�분명하다.

=====4:8� 다� 함께� 꾀하기를� -� 여기서� '꾀하기를(*� � � � � � � � ,� 카솨르)은� '묶다'� 혹은� � '음모하다'� 등의�

의미를� 갖는� 동사로서,� 어떤� 질서� 체계를� 깨뜨리거나� 혹은� 어떤� 대상을� 망하게� 할� 목적으로� 집단적인�

이기심에�따라�배반하는�행위를�가리킬때 많이� � 사용되었다(삼상� 22:8� ;� 왕상� 16:16� ;� 대하�

25:27).� � � 요란하게�하자(* ,� 라아소트� 로� 토아)는� 문자적으로� '그것(혹은� � 그)에게�

상처를� 입히다'의� 의미이다.� 여기서� '그에게'(*� � � � ,� 로)의� '그'는� 남성� � 단수라는점에서� 그� 당시� 이스

라엘� 백성들의� 성벽� 재건� 사업을� 주도하고� 있던� 느헤미야를� � 가리키는� 것으로� 봐야� 한다.� � 만일� 예루

살렘을�가리킨다면� '그'는� � 여성� � 단수가�되어야한다. 한편,� 산발랏은�당시� 사마리아의�총독이었으므로�

느헤미야의� 귀한을� 허락하는왕의� 조서� 내용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오직�

성벽� 재건� 금지령만(스� 4:21-23)� 내세우며� 심지어� 무력행사까지� 감행하려� 했다(2절).� � 이러한� 독자적

인� 무력�행사는� 명백한�불법� 행위였으며� � 더구나�느헤미야가� 합법적�절차에�따라� 움직였다는� 사실에서�

더욱� 그러했다.� � 이는� 산발랏� 일당의� 조급함이� 어느� 정도� 였는지를시사하며� � 또한� 당시� 페르시아� 제국

의�중앙�정부의�통제력의�한계를�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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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 본절에서�느헤미야는�하나님께�사태의�해결을�부탁함과�동시에�자신들이�할� 수있는가능한�

방책을� 강구한다.� 하나님께� 간구하면서� 동시에� 자신에게� 주어진� 여건을� 최선을다해� 활용하고자� 하는�

느헤미야의� 신앙적� 자세는� 본서� 곳곳에서� 발견된다.� 예컨데,'하늘의� 하나님께� 목도하고� 왕에게� 고하여

'(2:4,5),� � '하나님이여� � 들으시옵소서...� 이에우리가 �성을 건축하며'(4-6절),'주를� � � 기억하고...싸

우라'(14절)등이� � � 그러하다(Kidner).

=====4:10� � 본절에서와�같은�백성들의�낙심은�산발랏�일파의�협박(8절)� � 때문임이� � � 분명하다.� � � 흙�

무더기가� 아직도� 많거늘� -� '흙� 무더기'는� 바벨론� 군대의� 공격� 때에� 파괴된� 성벽과� 그� 밖의� 것들의� 잔

해를� 뜻한다.� 이것들은� 성벽이� 재건되고� 있거나� 혹은� 재건되어져야� 할� 곳에� 높이� 쌓여� 있었던것� 같다.� �

� 담부(擔負)하는� 자의� 힘이� 쇠하였으니� -� 이것은� � 성벽� 재건에� � 참여한� 백성들의� 심신이�매우� 지쳐�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된� 것은� � (1)이스라엘� 백성의� 상당수가� 성벽� 재건에� 참여치� 않았음에� 따라�

참여한� 소수의� 작업량이� 많아질� 수� 밖에� 없었고,� (2)일꾼� 중에서� 파수꾼으로� 차출된� 사람이� 있었으며,

(3)게다가� 산발랏을� 위시한� 대적자들의� 위협이� 날로� 심해져갔기� 때문이다.� � � 우리가� 성을� 건

축하지�못하리라� -� 본절과� 6절� 내용과의 조화를� 위해,� 어떤� 학자들은� 원문상으로� 본장� 6절까지가�

3장에� 포함되어� 있다는� � 점을� 들어� � 7절� 이하의� 내용이6절� 내용보다� 시간상� 앞선� 것이라고� 주장한다.� �

그러나� 굳이� 그렇게� 볼� 필요는� � 없다.그보다는�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적들의� � 조롱에도� 불구하

고� 느헤미야의� 주도하에� 거의� 절반에� 달하는� 정도의� 공사를� 이룩했지만(6절)� 대적들의� 위협이� � 더욱�

살벌해지자(8절)� 큰� 불안과�낙담에�빠져버린�것으로�이해하는것이�더� 무난하다.

=====4:11,12� 이� 부분은� 느헤미야가� 파수대를� 더� 보강할� 수밖에� 없었던(13절)� 절박한� � 이유를�설명

하고� 있다.� � � 대적의� 근처에� 거하는� 유다� 사람들� -�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북쪽으로는� 산발랏을위시

한� 사마리아� 사람들,동쪽으로는� 암몬� 사람들,그리고� 남쪽으로는� 아라비아� 사람들,또한� 서쪽으로는� 아스

돗� 사람들이라는� 대적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었다(7절).따라서� 본절의� '유다� 사람들'은� 유다� 땅의� 외곽�

지역에� 거주하던� 백성들이다.� � � 너희가� 우리에게로� 와야� 하리라� -� 유다� 땅의� 변경에� 살던� 벡성들� 중�

성벽� 재건에참여치�아니한�사람들은� � 산발랏�등의� 군사적�움직임에� 불안을�느낀� 나머지�그들의�공세를�

방어할� 요량으로,� 성벽� 재건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자신의� 고향으로� � 데려가려고� 한것이다.� � 그러나� 이

것은� 사실� 산발랏� 일당의� 계략이었다.� 즉,� 대적들은� � 유다� � 변경에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불안감을� 느

끼도록�만들고,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성벽� 재건에참여하는� 사람들을� 데리고� � 가게� 해서� 성벽� 재건

을�중단케�하려는�의도를�갖고�있었던것이다.

=====4:13� 성� 뒤� 낮고� 넓은� 곳에...서게� 하고� -� 이같이�한� 이유는� '성� 뒤� 낮고� 넓은� 곳'은� 비록� 성벽

이� 일부� 쌓여있기는� 했지만� 그� � 지형적� 특성으로� 인하여� 적의� � 침투가� � 예상되는� 취약� 지점이었던� 때

문이다.� � 또한� 유다� 백성들을� � 노출된� 곳에� 세움으로써,� 산발랏일당에게� 일전� 불사(一戰不辭)의� 군사적� 대응� 능력을� 보여주려는� 것도� 또� 다른� 이유가될� � 것이다.� 여기서� '낮고'(*� � � � � � � � � � � � � � � � � � � � � � �

� � � ,� 미타흐티요트� 라마콤)는� 문자적으로� '가장� 낮은� 장소� 쪽에'� 의� 뜻이다.� � 그리고� '넓은� 곳'(*� � � � � �

� � � � � � � � ,� � 체히힘)은� � 헐벗은� � 언덕이나,� 평탄하고� � 장애물이� � 없이� � 노출된� � 장소를� 뜻한다

(EdwinYamauchi,� Keil).� 또한� '성� 뒤� '는� 성벽의� 예루살렘� � 성읍� � 쪽을� � 가리킨다.� � 그리고'서게� � 하

고'(*� � � � � � � � � � � � ,� 아아미드)는� � '모시다'� 혹은� '서다'� 등의� 뜻을� 갖는� 동사'아마드'(*� � � � � � � � )의� 사

역형으로서,� 특정한� 직책을� 수행케� 하기� 위하여� 일정한� 장소혹은� � 지위에� 있게� 하는� 것을� 주로� 가리킨

다(9절� ;� 삿� 20:28� ;� 왕상� 12:6� ;� 왕하� 9:17� ;슥4:14).� � � 종족을� 따라� -� 이것은� 군사� 조직� 내의� 효율

성을� 증대케하는�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왜냐하면� 같은� '종족'� 혹은� '씨족'� 끼리는� 협조가� 더욱� 원활히�

이루어질� � 수� 있었겠기때문이다.� � � 칼과� 창과� 활� -� '칼'은� 이스라엘� 역사상,� 근접전(近接戰)이� 벌어졌을� 때� � 가장� � 많이� 사용됐던� 중요한� 무기였다(Fensham).� 또한� '창'� 은� 가까이� 있는� 적을� 찌르는� 데�

사용됐으며� '활'� 은� 약� 600m의� 사정� 거리를� 갖는� 강궁(强弓)과� 약� 270m에서� 360m� 정도의사정� 거리를�갖는� 경궁(經弓)� 모두를�가리킨다(Y.� Yadin,� � R.� � Go-n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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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4� 내가� 돌아본� 후에� -� � '돌아본'에� � 대해서는� � (1)� 느헤미야가� 백성들의� 염려를� 살폈다는�

견해(Fensham,Schultz),� (2)� 느헤미야가� 산발랏등의� 동정을� 알기� 위해� 그� 주변을살폈다는� � 견해

(Rawlinson),� � 혹은� (3)� 느헤미야가� � 백성들의� � 무장� 상태를 살폈다는견해(Keil)등이� 제시되고� 있다.� �

그러나� 첫째,� 본절의� '돌아본'� (� � � � � � � � ,라아)은� 단순히� '쳐다보다'의� 뜻이며(Fensham)� 둘째,� 본문맥

에� � 이어서� � '두려워� 말고'� 라는� � 느헤미야의� � 당부가� � 나온다는� 점� 등을� 고려해� 본다면� 위의� 세견해�

중� (1)의� � 것이� 가장타당성이� 있다.� � � 귀인들과� 민장과� 남은� 백성� -� '귀인'(*� � � � � � � � � ,호림� )은� 분명

하지는�않지만�이스라엘� � 공동체에서� � 어느 정도의 권세를 갖고� � � 있었던 사람들이었던� � � 것� � �

같다(2:16� ;� 5:7� ;� 13:17).� 한편,� '민장'(*� � � � � � � � � � � � ,세가님)은� 다른� 곳에서는� � '방백'으로� 번역된� �

단어이다(2:16� 주석� 참조).� 그리고� '남은� 백성'은� 앞의� '귀인'과� '민장'계층을� 제외한� 일반� 백성들을� 뜻

한다.� � � 지극히�크시고�두려우신�주를�기억하고� -� � '지극히�크고'(*� � � � � � � � � � ,� 가돌)가� 하나님에게�적

용될� 때는,� 달리�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능력을� 강조하는� 형용사로� 사용되었다(출� 18:11� ;� 대상�

16:25� ;� 5� 시� 76:1� ;� 86:10).� 한편,'두려우신'(*� � � � ,노라)은� � '두렵다'� � 혹은'� 두려워하다'의� 뜻이� 있

는� '야라'(*� � � � � � � � )의� 수동형분사로서,� 많은� 경우에서�종말론적으로�악인들에게�진노를�쏟아부으시는�

하나님의� � 진노를� 강조한다(시� 1456:6� ;� 욜� 2:11� ;� 습� 2:11:� 말� 4:5).� 따라서�본� 문구는�모든� 악한자

들을� 권능의� 하나님께서� � 대신� 벌하여� � 주실� 것을� � 믿고� 백성들은� 자신에게� � 맡겨진사명에만� � 충실하

면�된다는�뜻이다(민� 14:9� ;� 신� 1:29,� 30� ;� 삼하� 10:12). 느헤미야는� 옛� 선조들이� 믿음과� � 자유

를� 지키기� 위해� 대적들과� 용감하게� 싸웠던� 사실,� 특히� 하나님이� 친히� 그� 백성들을� 위해� 대신� 싸우사�

승리를�가져다 주신� � 엄연한� 역사적� 사실(출� 14:13,14등)을� 믿음의� 눈으로� 확고히� 돌아보았을� 것

이다.� � 비록� 당시의� 성벽� 파수대는� 제대로� 훈련을� 받지� 못했고� 실전� 경험도� 없는� 군대였으며� 그� 무기�

또한� 상대적으로� 열세하였지만,�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 � 느헤미야의� 확신이었

다고� 이해된다(Williamson).� � � 너희� � 형제와의...집을� 위하여� 싸우라� -� 이미� 느헤미야는� 파수대를� 종족�

단위로� 편성한� 바� 있다(13절).� � 자신의� 가족과� 친척을� 위해� 싸운다는� 비장한� 각오야말로� 숫적인열세를�

메꾸어�주는� 큰� 활력이� � 되었을�것이다.

=====4:15� 대적이� � 자기의� 뜻을� 우리가� 알았다� 함을� 들으니라� -�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 � 느헤미

야의� 지휘� 하에� 무장을� 한� 채� 조직적으로� 파수하는� 등� 철저한� 방어� � 체계를� � 갖췄다는� 사실을� 대적이�

첩자들을� 통해�들었다는�뜻이다(13,� � 14절).� 대적들의� � 계획은� 기습� 공격으로�단숨에�살륙을�감행하거

나(11절)� 무력의�과시를�통해� � 이스라엘�백성들로하여금�성벽�재건의� � 의욕을�상실하게�만드는�것이었

다.� 그러나�느헤미야의 주도하에이스라엘� 백성들이� 더욱� 강하게� 무장하여� 적극적으로� 맞서는� 모습

을� 보이게� 됨으로써,대적들의� 계획은� 오히려� 무산되기에� 이르렀다.� 실제로� 무장한� 병사들이� 강한� 정신

력으로� 지키는� 성읍을� 공약하기란� 여간� � 어려운� 것이� � 아니며,� 더욱이� 전투가� � 장기화되면그� 분쟁의�

소문이�아닥사스다�왕의�귀에까지�들어가게�될� 것이고� � 결국� 산발랏�일당은왕명을�거스린�죄과까지� 치

뤄야할� 터였으므로� 그들은� 애초의� 계획을� 포기하지않을� � 수없었을� 것이다.� � � 하나님이� 저희의� 꾀를� 폐

하셨으므로� -� 문자적으로는� '하나님이� 그들의� 계획을� 부수셨다'� 의� 뜻이다.� � 이와� 매우� 유사한� 표현이� �

스� 4:5에서� � 발견된다.� 그러나� 거기서는오히려� 이스라엘의� 원수에� 의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계획이�

좌절됐음을� � 말한다.� � 이처럼� 느헤미야가� 에스라서에서� 사용된� 독특한� 표현을� 여기서도� 다시� 사용한�

까닭은,상황이�완전히�역전되었음을�부각시키려는�의도�때문이었을�것이다.

=====4:16� 비록� 산발랏이�쳐들어오려고�했던�긴박한�상황은� 지나갔지만,� � 그래도� � 느헤미야는여전히�

잔존했었던� 일말(一抹 )의� 공격� 가능성으로� 인하여� 경계� 태세를� � 늦추지� � 않았음을� 보여준다.� � � 그때로부터� -� '그� 때'는� 문자적으로� '바로� 그� 날'의� � 의미로서,(1)느헤미야가� 산발랏의� 음모를� 감지하여� 백

성들을� 무장시킨� 그� 날(9,� 13절),� (2)산발랏이� 자신의� 음모가수포로� 돌아가서�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

계획을�포기한� '그� 날'(15절)모두를� � 뜻한다.� � � 내� 종자� (* � � � � � � ,네아라이)� -� '내종자'는� (1)느헤

미야처럼� 유다� 출신들로서� 느헤미야가� 수족처럼� 부릴� 수� 있었던� 특별한� 집단

(Myers,Keil,Rawlinson),(2)총독신분으로서의� 느헤미야의� 통제� 아래� 있는� 모든유다� 백성들(Fensham)

등으로� 이해될� 수� � 있다.그러나� 첫째,� 본절의� '종자'(*� � � � � � � � ,나이르)라는� 단어는� 수족처럼� 부릴�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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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하인을� 가리키며(출� 21:27� ;� 삼상14:6� ;� 25:5� ;� 삼하1:5� ;� 왕상19:3)� 둘째,� � 느헤미야가비록� �

총독이기는� 했지만� � 백성들을� � 하인처럼� � 생각했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며� � 셋째,� '종자'와� '성을� 건

축하는자'가� 분리되어�언급되고�있음을�볼� 때,� 위의� 두견해� � 중전자가�보다�타당하다.� � � 절반은�역사하

고� 절반은� 갑옷을� 입고� ...� 활을� 가졌고� -� 이처럼� 느헤미야가� 자신의종자들에게� 파수� 의무를� 보다� 많이�

맡긴� 까닭은� (1)� 그들이� 다른� 백성들보다� 훈련이많이� 되어� 있었고,� (2)� 그들이� 보다� 훌륭한� 무장을� 갖

추고� 있었던� 때문이었다.� � � 민장(民長)은� 유다온� 족속의� 뒤에� 있었으며� -� � 본절의� � '민장'(*� � � � � � � � � �� ,솨림)은� 군사적 조직체로서의� � 유다� 백성들의� � 지도자였다(Willamson,� 신� � 9:9� )� � 그런데� 이스라엘

이� 역사적으로� 항상� 지파� 내지는� � 씨족� 중심으로� 군대를� 조직했다는� � 점을� 감안한다면(13절� ;� 민�

2:1-34),� 여기의� '민장'는� � 한씨족의� � 지도자로� � 볼� 수� 있을것이다.� 아무튼�이들은�백성들�사이에서�연

락을�담당했을� 것이며�유사시에는� 백성들을재건�체제로� 즉각� 전환시키는� 책임을� 맡은� 자들로� 짐작된다

(Wllamson).

=====4:17,18� 일반� 백성들은� 느헤미야의� 종자와는� 달리� 성벽� 재건에� � 전념하되� 유사시에는� � 적을물

리치는� 데� 동원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 � 성을� 건축하는� 자� -� 원문상� 16절의� '유다� 온족속'�

을� � 수식하는� � 문구로� � 봐야한다(NIV,Williamson,Fensham).� � � 담부하는� 자� -� 이들은� 자재(資材)를� �운반하거나� 흙과� 무너졌던� 성벽의� 잔해를� � 치우는(� 10절)등의� 조역(助役)을� 담당하던� 사람들이었다(Rawlinson).� 이들은� � 자재� 운반등의� 일을� 위해서� 성밖에서도� 일을� 할� 필요가� 있었다는� 점에서� 작업�

환경은� '건축하는자'에� 비해서� � 보다� � 열악(劣惡)� 했을� � 것이� � 뻔하다(FEN-SHAM).� � � 각각...일을� 하며� 한� 손에는� 병기를� 잡았는데� -� 히브리� 원문에는� '각각'에� � 해당되는� 단어가� 없다.그런데� '담부하는�

자'가� 이처럼�한�까닭은� (1)앞에서�언급했듯이�그들은�자신들의�작업의�성격상� � 성� 밖에서도 일

을� 해야만� 했던관계로� 호신(護身)을� 위한노력이� 필요했으며,(2)또� 그� 일의� 성격상� 한� 손에� 병거를� �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Fensham,� Rawlinson).� 한편,� '병기'(� � � � � � � � � ,솰라흐)는� � 우가릿� 문서에서

도�발견될정도로�오래된�것으로서,� (1)� 멀리� 던질� 수있는�창,(2)� 돌을� 날려보낼�수� 있는� 무기를모두�의

미한다.� 특히� 본절의� '담부하는�자'들이� 주로� 흙이나�무너진�성벽의� 잔해� 위에서�일했다는� 점을� 감안한

다면� (2)� 것이� 보다� 타당할� 것이다(Fensham,� Williamson).� � � 건축하는� 자는� 각각� � 칼을� 차고� -� � '건

축하는� 자'는� � 앞의� � '담부하는� � 자'와는� 달리� 성벽을� 쌓는� 일을� 담당하던� 사람들이었다.� � 그들은� 두�

손을� � 모두� 사용해야만� 하는일의� 성격때문에� � '칼'을� � 허리에� � 찰� � 수밖에� � 없었다.� � � 나팔부는� 자는�

내� 곁에� 섰었느니라� -� 이것은� 위급한� 상황이� 벌어졌을� 경우,� 그것을예루살렘� 외곽에� 흩어져서� 성을� 쌓

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알릴�수� 있도록� 하기� 위한준비이다(19,20� 절).� 이같이�나팔을�불어서� 위급함

을� � 알리는�연락체계는� � 고대국가들에서는�꽤� 보편적으로�이용되었다.

=====4:19,20� 느헤미야가� 나팔� 부는� 자를� 자신의� 곁에� 세워둔(18절)� 이유가� 언급되고� 있다.� � � 귀인

들과� 민장들과� 남은� 백성� -� 14절� ;� 2:16� 주석을� 참조하라.� � � 이� 역사는� 크고� 넓으므로� -� 예루살렘� 성

벽� 재건� 공사가� 성읍의�둘레� � 전체에서� � 동시적으로�진행되고�있었던� 사실을�가리킨다.� � � 우리가� 성에

서� 나뉘어� 상거(相距)가� 먼즉� -� 이것은� � 차라리� � '우리가� 성벽을� � 따라서� 각� 사람들로부터� 나뉘어져�있다'로� 번역함이� 더� 나을� 것이다(Fensham).� 결국� � 이는백성들이� 분산되어� 있기때문에� 어느� 한� 쪽으

로� 적들의�대대적인�공격이� 가해져�올� � 때거기에�대응할� 수� 없음을�염려하는�문구이다.� � � 우리� 하나님

이� 우리를� 위하여�싸우시니라� -� 이것은� � 이스라엘� � 백성들이� 싸우지�않더라도�하나님께서� 대신� 싸우신

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 � 백성들을� 당신의� 도구로� 삼아서� 원수와� 싸우신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이같이� 하시는� 이유는,� 거룩한� 성이� 방어되고� 또한� 당신의� 백성이� 안전하게� 사는� 것이� 철

저하게� 당신의� 뜻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하나님의� 뜻을� 좇아� 싸우는� 이스라엘� 백성의� �

전쟁은� 하나님의� 전쟁,� 곧� 성전(聖戰)일� 수밖에� 없다(수5:13-5� 주제� 강해,� '성전(聖戰)'� 참조).그리고�이와� 같은� 신앙을� 가진� 자들은� 아무리� 우수한� � 무기와� 막강한� 군대를� 보유하고있어도,� '여호와께서� 성

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시� 127:1)라는� 시편� 기자의� 고백에�전적으로�공감

하기�마련이다(Kidner).

Page 24: 느헤미아제1장 - Christian Monitorchristianmonitor.net/jusuk/nehemia.pdf성을갖고있는무리로묘사되고있다(사27:13;겔34:4,16:미4:6;습3:19).한편,'하늘끝'은

=====4:21� 16절의� � 내용이� � 약간� 다른� 모양으로� 다시� 언급되고� 었다.� � � 무리� -� 16절의� '종자'와� 동

일할�것이다.� � � 동틀� 때부터�별이� 나기까지� - 이스라엘� 백성들이� � 오랜� 시간� 동안� 노역을� � 감당했었음

을� 강조하는� 시적(時的)� 표현이다.� 아울러� 이는� 백성들의� 하나님께� 대한� 충성심을암시한다� 고도� 볼� 수�있다.

=====4:22� 사람마다...예루살렘�안에서� � 잘지니� -� � 느헤미야가� � 이와같이�명령을�한� 것은,� 아마� 외지

(外地)에서� 공사를�위해� 온� 사람들,� 특히� 예루살렘�인근에�살고� 있던� � � 사람들은�저녁에�일이 마

쳐지면� 자기의� 집으로� 가서� 자려는� 경향이� 있었던� 때문으로� 짐작된다.� 만일� 백성들의� 뜻대로� 방치할�

경우에는� 심각한� 문제들이� 야기될� 수밖에없었다.� 그문제점들이란� (1)� 백성들이� 고향에� 왕래하는� 도중�

적의� 기습을� 받을� � 가능성,� (2)백성들이� 고향으로� 돌아가서는� 예루살렘의� 작업장으로� 복귀하지� 않을�

가능성,� (3)아침마다집에서�돌아오는�사람들�때문에�야기되는 혼란과� 공정(工程)의� � 답보(踏步)현상,�(4)고향이� 멀어서� 저녁마다� 갈� 수� 없는� 사람과� 가까운� 데� 고향이� 있어서� 저녁마다� 집으로갈� 수� 있는�

사람�사이에 위화감이� � 생길� 가능성,� (5)� 밤마다�발생할�예루살렘�시내의공동화(空洞化)� 현상으로�인해�적의� 야간� 습격이�있을� 가능성,� (6)� 위의�모든� � 문제들로인해 성벽� 재건� 공정이� 늦어질� 가

능성� 등을� 들을� 수� 있다.� � � 그� 종자� -� � 이들은� 16절의� � '종자'와는� � 다르다.� � 만일� 느헤미야가� 여기서� �

자신의'종자'를� 언급하는� 것이라면� 16절에서� 처럼� '내� 종자'라고� 했을� 것이다.� 따라서� � 본문의� '그� 종

자'는� 백성들이� 자신의� � 고향에서� � 데리고� 온� � '노예'일� 것이다(Rawlinson).실제로� 스룹바벨과� 함께�

귀환했던�백성들에게는�여섯�명당�한�명씩의노예가�있었다(스2:64,� 65).

=====4:23� 본절은� 이스라엘� 공동체가� 산발랏� 일당의� 공격에� 대한� � 경계� 태세를� 조금도� 늦추지않았

음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 � 내� 형제들� -� 이는� 느헤미야의� 친� 형제들일� 가능성이� 많다(1:2� ;� 7:2).� � �

종자들� (* � � � � � � � ,네아라이).� � 문자적으로� '나의� 종자들'이므로� 16절에서� 언급된� 느헤미야의�

직속� 부하들을� 가리킨다.� � � 나를� 좇아� 파수하는사람들� -� � .� '나를� 좇아'(*� � � � � � � � � � ,아하라이)는� � 주

종(主從)의� 관계에� 대해서� 흔히� 사용되는� 단어이다(삼하� 7:8� ;� 왕상� 11:6� ;� 16:22� ;� 렘� 7:6� ).따라서�'파수하는� 사람들'은� '종자들'이외에� � 느혜미야를� 전심으로� 추종하던� � 무리� 들이었을� 것이다.� � � 그� 옷

을� 벗지�아니하였으며� - 이것은�다급한 상황에 신속히 대처하기� 위한� 준비이기도� 했지만� 더�

나아가서는� 백성들에게� 사태의� 심각성을� 일깨우기� 위한� 하나의� 노력이었을� 것이다.� � � 물을� 길으러� 갈�

때에도�기계를�잡았었느니라� - 대부분의� � 학자들은�이� 문구(* , 이 쉬 쉴호�

하마임)가�잘못됐다고�보며,� � 이를�해결하기�위한몇� � 가지� 견해들이� � 제시되었다. 거기에는� (1)� 여기의� �

'물'(*� � � � � � � � � � � ,하마임)이'오른� 손'(*� � � � � � � � � � � � � � � ,하야민)의� � 오류로� 보고� '그의� 무기는� 그의�

오른� 손에� 있었다'로� � 번역해야� � 한다는� � 견해(Fensham,Williamson,� Keil).� (2)이� 불완전한� 문구를오

류로�보지�않고�무리하지만� � '물로� 각자의�병기틀�씻었다'로� � 번역해야�한다는�견해(Rawlin-son),(3)어

떠한� 단어가� 탈락된� 것으로� 보고� '각사람이� 물을� 먹으러� 갈� 때에도자기의� 무기를� 가졌다'로� 번역해야�

한다는�견해(NIV),� (4)� 이� 문구를� � 앞의� '그� � 옷을벗지� 아니하였으며'의� 종속절로� � 보고,� 또한� '기계'가� �

'그릇'을� 뜻한다고� 보아� '비록각� 사람이� 자신의� 물� 그릇을� 가졌지만'으로� 번역해야� 한다는� 견해(J.� P.�

Green),(5)역시� � 이 문구를�바로� 앞� 구절에�종속되는 것으로� 보고,� '씻기� 위해� 옷을� 벗는� 경

우를제외하고는'� 으로� � 해석하는� � 견해(KJV)등이� 있다.� 그러나� 이같이�다양한�견해� 중에서첫째,� 맛소라�

본문에� 최대한� � 근거하려고� 한다는� 점� 둘째,� 그문맥을� 고려해보건대,(1)의� � 견해가� 가장� 무난한것� 같

다.� � � � 느헤미야�제� 5장

=====5:1� 외부적으로� 산발랏� 일당의� 방해� 공작이� 점점� 거세어지는� 와중에,� 이보다� 더� 심각한문제가�

이스라엘� 민족�내부에서�독버섯처럼�자라고�있었다.� 본장은� 이렇듯�심각한� � 사회,� 경제적�내우(內憂)를�느헤미야의� 과단성있는� 결단과� 주도하에� 극복해가는� � 장면을기록하고� 있다.� � � 백성이� 그� 아내와� 함께�

크게� 부르짖어� -� '차아카트� 게돌라'(*),� 즉� � '큰� � 부르짖음'은� � 성경에서� � 대개� � 극한적인� � 고통의� � 결

과로서� � 나타난다(창18:21;27:34;출� 11:6;12:30).� 따라서�본� 문구는�일부� 백성들이� 심각한�환난� 가운

데� 있었음을� 강력히� 시사한다.� 또한� 본절에서� 여자가� 부르짖음의� 주체(主體)로� 나오고� 있는것은,� 문제

Page 25: 느헤미아제1장 - Christian Monitorchristianmonitor.net/jusuk/nehemia.pdf성을갖고있는무리로묘사되고있다(사27:13;겔34:4,16:미4:6;습3:19).한편,'하늘끝'은

의� 심각성을�반영하는� 것이기도�하지만�특히� 백성의�환난이�한� 가정의�생계문제와�직결된�절박한�것이

었음을� 보여준다(왕하� 4:1;6:26;8:3).� � � 그� 형제� 유다� 사람을� 원망하는데� -� '원망하는데'(*� � � ,� 엘)는�

'-에� � 대해서'� � 혹은'-을� 대항하여'의� 뜻으로서�앞의� '백성'과� '그� 아내'가� '형제� 유다� 사람'을� 향하여�부

르짖었음을� 말해준다.� 한편,� 본절의� '형제� 유다� 사람'은� 구체적으로,� � 가난한� � 백성을상대해서� 고리� 대

금(高利貸金)을� 한� 사람들을� 가리킨다(7절).� 여기서� 느헤미야가� 그들을� 굳이� '형제� 유다� 사람'이라고�한� 까닭은,� 그� 고리� 대금업자들이� 피해자와� 동족들이라는� 점을� 부각시켜서� 그들의� 몰인정성을� 강조하

려는� 의도� 때문이었다.� 사실� 동족들에대해서� 고리대금을� 하는� 일은� 율법도� 금하는� 일이었으며(레�

25:35-37;신� 23:19),� 또한상식적�판단으로도�지탄을�받아� 마땅했다.

=====5:2� � 2-4절에� 나오는� 불평은� 모두� 심각한� 빚� 문제와� 연관된� 것이며,� 이러한� 빚더미에� 눌리게�

된� 이유나� 배경은� 세� 가지� 유형으로� 달리� 나타난다.� 문맥상으로� 볼� 때� 여기서� 열거되는� 불평들은� 몇몇�

개인의� 사례들이라기� 보다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두루퍼져� 있었던� 일반적인� 문제를� 대표한�

사례들이라고� 할� 수� � 있다(Williamson).� � 본절은고리� 대금업자를� 원망한� 빈민들의� 첫� 번째� 유형이다.�

그들은� '가족수(家族數)'가� 많음으로� 인하여� 빚을� 지게� 되었다.� � � 곡식을� 얻어� 먹고� 살아야� 하겠다� -�빈민들이� 반드시� 돈만을� 빌린� 것이� � 아니었음을시사해준다.� 그들은� 돈� 뿐만� 아니라� '곡식'과� '새� 포도

주',� '기름'도� 빌렸었다(11절).

=====5:3� 고리� 대금업자를� 원망한� 빈민들의� 두번째� 유형이다.� 본절에� 빚의� 원인으로서� � 언급된� '흉

년'은� 사실� 첫� 번째� 유형(2절)과� 세� 번째� 유형(4절)의� 빈민들이� 빚을� � 지게� � 된근본적� 혹은� 간접적� 원

인이� 됐을�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흉년의� 시기에� 도탄에� 빠지는자들은� 대다수의� 가난한� 백성들이었다.�

반면에� 부요한� 자들은� 창고에� � 저장된� � 곡식이있었으므로� 어지간한� 흉년에도� 버틸� 수� 있었을� 뿐만� 아

니라,� 그들� 중에서� 그것을� 고액에� 팔아� 넘겨� 폭리를� 취하는� 자들이� 생겨났으며,� 결국�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나타나게되었다.� � � 밭과� 포도원과� 집� -� 이� 세� 가지는�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생명� 만큼이

나� 귀중히� 여겨지던� 전재산(全財産)이었을� 것이다.� � � 흉년을� 위하여� -� 문자적으로는� '그� 흉년� 동안에'이다.� 따라서� 본절의� '흉년'은� � 로린슨(Rawlinson)이� 주장하듯이� 과거의� 흉년이라기� 보다는� 그� 당시에�

진행되던� � 흉년으로� 볼� 필요가� 있다.� 물론� 그� 이전에도� 팔레스틴에� 큰� 흉년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학1:6,� 9-11).� 아무튼� 페르시아� 시대에� 흉년이� 잦았다는� 사실은� 너무도� 분명하다.� � 고고학적� 발견에�

따르면,� 팔레스틴,� 특히� 기브온� 지역은� 이스라엘� 초기� 시대만� 해도� � 엄청난� 포도의� 생산이� 있었으나�

페르시아� 시대에� 들어서서는� 그� 생산량이� � 급강하했었다고한다(Fensham).� 분명� 이와같은� 현상은� 포도�

생산에만�국한되지�않았을�것이다.

=====5:4고리� 대금업자를� 원망한� 빈민의� 세� 번째� 유형으로서� 그� 원인을� '세금'으로� � 언급하고� 있다.� �

� 밭과� 포도원으로� 돈을� 빚내어� 세금을� 바쳤도다� -� 문자적으로는� '밭과� 포도원에� � 대한� 왕의� 세금을� 위

하여� 돈을� 꾸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한� � 개역� � 성경의번역은� 약간� 잘못이� 있다.� 한편,� '

밭과� 포도원에� 대한� 왕의� 세금'은� 그� 땅에서의� 평균산출량에� 근거해서� 거둬� 들였던� 토지세의� 일종이었

다(Fensham,� Williamson).� 이외에도이스라엘� 사람들은� 페르시아� 정부에게� 또다른� 세금들을� 바쳤다(스�

4:13).�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른� 민족보다� 세금� 부담이� 더� 과중했기� 때문에� 곤경에� 처했다고는� �

볼수� 없다(Rawlinson).�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납세� 문제로�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까닭은,� 이스

라엘� 사회의� 경제적� 형편이� 극도로� 피폐했던� 때문이었다.� 이� 같은� 경제적형편에� 처하게� 된� 것은� 흉년

이�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3절).� 물론� 백성들이� 성벽� 재건� 공사에� 동원되어� 농사를� 짓는일� 등의� 경

제� 활동을�영위치�못한� 것도� � 한 이유였을것이다.� 그렇지만� 그� 공사가� 불과� '오십이� 일'만에� 끝났음

을� � 감안한다면(6:15)� � 성벽재건� 사업은� 이스라엘� 경제를� 피폐하게� 만든� 중요한� 요인이� 결코� 아니었

다.

=====5:5� 본절의� 내용은� 위의� 세� 가지� 유형의� 빈민들(2-4절)�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해당될� 것이다.�

즉,� 본절은� 이들이� 빚을� 갚지� 못함으로써� 다다르게� 된� 극단의� 상황인� 것이다.� � � 우리� 육체도� 우리�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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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의� 육체와� 같고� -� 이것은� 채무자나� 체권자� 모두� 동족임을� 강조하는� 말이다.� 결국� 이같은� 말을� 통해

서� 가난한� 채무자들은� � 채권자들의� � 무자비함을확연히� 드러내려고� 향다(1절).� � � 우리� 자녀를� 종으로�

파는도다� -� 사실� 채권자들이� 빚을� 갚지� 못하는� 채무자들의� � 자녀를� 노예로� 데려가는� 그� 자체는� 죄가�

아니었다.� 율법은� 부득이한� 경우에는� 동족의� 자녀를� 노예로� 데려올� 수도� 있음을�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경제적인� 곤경에� 처했을� 경우� 유대인들은� 가족� 구성원을� 담보로� 삼아� 돈을� 빌릴� 수� 있었다.�

이� 경우에� 돈을기한내에� 갚지� 못하면� 채무자의� 딸이나� 아들,� 그의� 아내,� 심지어� 채무자� 자신이� � 채권

자의� 종으로� 봉사해야� 했으며(레� 25:39,� 40),� 제7년째� 되는� 해에는� 다시� 풀려날� 수� 있었던� 것이다(신�

15:12-18).� 따라서� 만일� 채권자들에게� 죄를� 묻는다면,� 그들이� � 가난한자들로부터� 고리(高利)를� 취했다는� 것일�게다(7절).� � � 우리� 딸� 중에� 벌써� 종된� 자가� 있으나� -� 본절에서� '종� 된� 자가� 있으나'는� � 문자적

으로� '종으로� 복속됐으나'의� 뜻이다.� 그런데�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 � � � � � � � � � � ,� 니크바쇼트)가� '

성적(性的)으로� 정복하는�것'을� 가리키기도� 한다는�점에서(에� 7:8)� 이는(1)� 채권자의�성적� 욕구� 해결을�위한� 대상이� 되는� 일(Williamson).� (2)� 채권자의� 첩이되는� 일(Fensham)등을� 가리킨다고도� 볼� 수� 있

다.� 사실� 빚� 때문에� 팔려간� 여종은� � 남종과는� 달리� 성적(性的)인� 문제에� 있어서� 채권자의� 처분을� 따라야� 했다(출� 21:7� � 이하).한편,� 여기서� 주목을� 끄는� 것은,� 채무자의� 자녀들이� 채권자의� 노예가� 된� � 것

이,� � 빚을갚지� 못해서� 소유물을� 빼앗긴� 다음에�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즉,� 채무자들이� 빚을� 갚지못하는�

경우�일차적으로는�토지�등의� 재산을,� 그� 다음에는�자녀들까지�채권자에게� � 빼았겼던�것이다.

=====5:6� 이런� 말� -� 이것은� 부자들의� 가난한� 자들에� 대한� 경제적� 가혹� 행위,� 즉� 고리� 대금을통한� 재

산� 및� 자녀들의� 탈취� 사실을� 뜻한다.� � � 크게� 노하여� -� 이것은� 산발랏� 일당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벽�

쌓는�일에� 대해서�가졌던�것과�동일한�감정이다(4:1,� 7).� 결국� 이것은�온유한�인물�느헤미야가, 그� �

어느때보다� 일치� 단합이� 요구되는� 때에� 그것을� 깨뜨리는� 부자(富者)들의� 횡포를� 얼마나� 미워했는지� 분명히�보여준다.

=====5:7� 중심에� 계획하고� -� '계획하고'(*� � � � � � ,� 말라크)는� '심사� 숙고하다'의� 의미가� 있는아랍어에

서� 온� 단어로서,� 여기서는� 느헤미야가� (1)� 가난한� 유대인들의� 불쌍한� � 형편을반전(反轉)시킬� 수� 있는�방도를� 연구하는� 일,� (2)� 고리� 대금을� 한� 유력한� 자들을� 거기서� 돌이키게� 할� 방법을� 연구하는� 일� 등을�

가리킨다(Fensham).� 본절은� � 경제적� � 횡포를자행하는� 부자들을� 향해� 분노의� 감정이� 솟구치는� 중에서

도�차분하게�사태의 해결책을강구하는� 느헤미야의� 주도면밀하고� 냉철한� 성품을�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 � 귀인과� 민장을�꾸짖어� -� 본절의� '꾸짖어'(*� � � � � � ,� 리브)는� '다투다',� '뒤흔들다','꾸짖다'� 혹

은� '변론하다'� 등을� 뜻하는� 단어로서,� 여기서는� '고소하다'의� 의미로� 쓰여지고� 있다(NIV,� Fensham).�

사실� (1)� 이� 단어가� 칠십인역에서는� 상당수� 사법적� � 의미를함축한� '크리노'(*� � � � � � � � � � )로� 번역된다

는� 점,� (2)� 본절이� '귀인과� 민장'의� 죄를� 거론하는� 문맥이라는� 점� 등으로� 볼� 때,� '리브'라는� 단어를� '고

소하다'의� 의미로� �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한편,� '귀인과� 민장'은� 앞에서는� '그� 형제� 유다� 사럇'으

로� � 언급된� 자들이다(1절).� 이들은� 자신의� 권세를� 이용하여� 치부(致富)하였고,� 또한� 그� 부(富)를� 이용해서� 자기의� 재물을� 늘려간� 자들이다.� � � 너희가� 각기� 형제에게� 취리(取利)를� 하는도다� -� '취리를� 하는도다'(* ,� 마솨� 노쉬임)에� 대해서는� (1)� '짐을� 지우다'(Fensham,� Myers,� JB),� (2)� '빚쟁이� 노릇을� 하

다'(Williamson),� (3)� '이자를� 거두다'(RSV,� Rawlinson),� (4)� � '이자를강요하다'(NIV)� 등의� 여러해석이�

제시되고� 있다.� 이같이� 다양한� 해석이� 제시되는� 까닭은� 위의� 두� 히브리� 단어들의� 의미가� 매우� 다양하

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첫째,� 뒤의� '노쉬임'이라는� 단어가� 결과적으로� 타인과� 원한� 관

계를� 형성켸� 하는� 행동을� 주로� 나타낸다는� 점과(Kidner,� 삼상� 22:2)� 둘째,� '마솨'는� '이자'를� 뜻한다는�

점(BDB)등으로� 볼� 때� (4)의� 견해가� 가장� 적절한� 듯하다.� � � 대회를� 열고� 저희를� 쳐서� -� 이것은� 느헤미

야의� 일차적� '꾸짖음'이� '귀인과� 민장'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었음을� 암시한다(Rawlinson).� 이에� 따라�

느헤미야는� 공개적인� 모임에서� 그들을� 책망할� 수밖에� 없었다(마� 18:15-17).� 한편,� '대회'의� � '회'(*� � � �

� � � � ,케힐라)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언약공동체를� 가리킬� 때� 사용되는� 단어로서(신� � 33:4)'카할'(*� � � �

� )과� 동일한� 의미이다(스� 2:64;10:8).� 한편,� '저희를� 쳐서'는� 문자적으로는� '그들을� 향하여'� 혹은� '그들

을� 대항하여'의� 뜻이지만� 구체적으로는� 귀인과� � 민장들을� 공개적으로� 정죄하고� 책망하는� 것을� 가리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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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5:8� 우리는...유다� 사람들을...속량하였거늘� -� 이에� 대한� 언급은� 에스라� 및� 느헤미야서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이� 느헤미야가� 페르시아에� 있었을� 때� � 이루어졌던� 일임을� 짐작할�

수� 있다.� 즉,� 바벨론이나�페르시아에�살던 이스라엘� � 백성들은,� 자신의� 동토� 중� 가난한� 사람이� 그�

땅의� 이방인에게� 노예로� 팔렸을� 경우� 율법의� 명령에� 따라(레� 25:47-49)� 그� 속전을� 지불하고� 거기서�

해방시켜� 주었던� � 것이다.� � 한편,여기서� '속량하였거늘'(*� � � � � � � ,� 카나)은� '바로� 세우다',� � '획득하다',� �

'소유하다'.'사다'등과� 같은�여러� 의미를�지니며�특히�돈이나�기타의�대가를�주고� 무엇을� � 되사는행위를�

가리킬때� 주로� 쓰인다(창� 25:10;삼하� 12:3;전� 2:7;렘� 13:1).� � � 너희는� 너희� 형제를� 팔고자� 하느냐� -�

이것은�느헤미야�등이� � 페르시아에서� � 자신의동족을�노예�생활� 중에서�속량한�것과는�너무나도�대조되

는� 야만적� 행위이다.� �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동족의� 종살이를� 했던� 히브리인들도� 제7년� 째� 되는� 해에

는� 자유의� � 몸이� 될� 수� 있었으며(레� 25:40,� 41),� 동족인� 히브리인을� 이방인에게� 노예로� � 파는� � 일은

율법상으로� 엄금되었다(출� 21:8).� 결국� 본문과� 같은� 물음을� 통하여� 느헤미야는� � '귀인과� 민장'(7절)으

로� 하여금� 자신들의� 잘못을� 스스로� 깨닫도록� 시도하고� 있다.� � � 저희가� 잠잠하여� 말이� 없기로� -� 이것은�

고리�대금을�한� 귀인과�민장들이 느헤미야의� 논리에� 설복되었음을� 암시해� 준다(Rawlinson).� 사실�

그들의� 죄악이� 너무도� � 명백했기� 때문에� 아무런� 변명의� 여지도� 없이� 다만� 침묵했을� 것이다(요�

8:7-10).

=====5:9� 앞절에서� 자신의� 선행을� 근거로� 해서� 귀인과� 민장들의� 악행을� � 간접적으로� � 책망한데� 이

어,� 본절에서� 느헤미야는� 그들을� 직접적으로� 책망한다.� � � 내가� 또� 이르기를� -� 귀인과� 민장들은� 소극적

인�의미에서는�이미 자신들의� � 잘못을깨닫고� 있었다.� 그러나�그� 정도의�소극적� 인식으로는�그들

을� 완전히� 악행에서� � 손떼게하기에� 심히� 미흡하였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이처럼� 자신의� 책망을� 계속할�

채비를� � 하고� 있는� 것이다(Rawlinson).� � � 대적� 이방사람의� 비방을� 생각하고� -�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

유대인들의� 부도덕� 혹은무자비함에� 대해서� 이방인들의� 비방이� 실제로� 있었음을� 보여준다(롬� 2:23,�

24).� � � 하나님을� 경외함에� 행할� 것이� 아니나� -� 이것은� 곧� 최소한� 노예에� 관한� 율법� 규정을지켜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즉,�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과� 그분의� 명령을� � 지키는� 일은� 불가� 분리(不可分離)의� 관계라는�점에서�그렇다.

=====5:10� 내� 형제와� 종자들� -� '형제'는� 느헤미야의� 친� 형제들을� 뜻할� 것이다(1:2;4:23;7:2).그리고�

'종자들'은� 느헤미야의�측근�혹은� 그의� 직계� 부하들을�의미한다(4:16).� � � 우리가�그� 이식받기를� 그치자�

-� 이것은� 순수한� 동기,� 즉� 동족들을� 도우려는� 동기에서� 돈� 등을� 꾸어줄� 것을� 강조하는� 권면이다.� 여기

서� '우리'는� 느헤미야가� 자신도� 백성들을� 향한� 선한� 일에� 적극� 참여할� 당위성을� 절감하고� 있었음을� 보

여준다.� 이처럼� 느헤미야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공동체� 의식을(출� 22:25;레� 25:36;신� 23:19)� 누구보

다� 뼈저리게� 인식하고,� 또한� 그�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의� 의무를� 솔선하여� 이행하고자� 했기때문에� 그

의� 권면은� 더욱� 큰� 호소력을� 획득할� 수� 있었다.� 재물을� 꾸어주고� 그에� � 따른정당한� 이자를� 받는일� 자

체는� 정죄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성경은� 다른� 사람을� 희생시켜� 가면서까지� 이윤을� 추구하는� 탐욕

에� 대해서는� 날카롭게� 책망한다(시� 119:36;사56:9-12;57:17;렘� 6:13;8:10;22:13-19;겔�

22:12-14;33:31).� 특히� 본문과� 같은� � 다급한상황� 속에서,� 느헤미야는� 아예� 이자를� 기대하지� 말고� 꾸

어줄� 것을� 간곡히�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아테네의� 위대한� 개혁자인� 솔론(Solon)도� B.C.� 594

년경�이와� 유사한�정책을�채택한�사례가�있다(Edwin� Yamauchi).

=====5:11� 10절의� 권면을� 구체화� 시킨� 실천� 방법이다.� � �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과� 집� -� 이것들은� 본

래� 가난한� 채무자들의� 것이었으나,� � 그들이� 빚을� 갚지� 못해서� 채권자에게� 넘어간� 담보물이었다.� 그런

데� '감람원'은,� � 백성들이채권자에게� 빼앗겼다고� 한� 것들(3,� 5)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감람

',� 즉� 올리브가� 그� 당시� 유대� 지방에서� 중요한� 농산물� 중의� 하나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 '감람원'도�

채권자들에게� 필요시� 능히� 제공될� 수�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 � 취한� 바돈이나...기름의� 백분지� 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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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려� 보내라� -� '취한바� 돈이나...기름'은� � 채권자들이� 채무자들로부터� 받아낸� 이자였던� 것� 같다.� 그리고�

'백분지� 일'은� 그� 당시� 채권자가� 자기들이� 준� 빚에� 대해서� 적용했던� 월리(月利)였던� 것� 같다.� 이� � 같은� �금리는사실상� 당시� 페르시아의� 금리가� 연� 20%� 이상이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별로� 높지� 않다고말할수

도� 있을� 것이다(Williamson).� 그러나� (1)�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가난한� 자에게서이자를� 취하는� 일을� 율

법으로� 금했으며(출� 22:25;레� 25:36).� 그� 당시에는� 흉년과� 성벽재건하는� 일로� 백성들의� 경제� 형편이�

대단히� 좋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월� � 1%,즉� 연� 12%라는� 금리는� 매우� 가난해서� 먹을� 것조차�

없는� 백성들에게는� 과중하였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돌려� 보내라'는� '밭'과� 같은� 담보물에� 대

해서는� 문자적으로적용될� 수� 있는� 단어이다.� 그러나� '곡식'등의� '이자'에� 관련해서는,� 이미� � 받은� � 것은

돌려보내며�또한�앞으로�받을� 것은� 포기하라는�의미로�이해된다(12절).

=====5:12� 본절은� 느헤미야의� 노력이� 열매를� 맺었음을� 보여준다.� � � 돌려� 보내고� 아무것도� 요구하지�

아니하리이다� -� '돌려� 보내고'는� 채권자들이� � 채무자들로부터� 빼앗은� 담보물과� 이미� 부당하게� 취했던�

이자에 대해서 사용된 단어이며'요구하지� 아니하리이다'는� 앞으로� 받을� 이자의� 포기를� 뜻한다.� � �

제사장들을� 불러...맹세를� 시키게� 하고� -� � 느헤미야의� 이� 같은� 조처는,� 채권자들의결단을� 종교적으로�

승화시켜서� 그들이� 자신의� 결단을� 번복치� 못하게끔� 하려는� � 데� � 그의미가� 있었다.� 사실� 공중� 앞에서의�

결단은�체면이나�분위기�등의� 불순한�동기에�의해서�이뤄질�수� 있었으므로�다시� 번복될�가능성이�얼마

든지� 있었다.� 어쨌든� � 채권자들은제사장� 앞에서� 신앙적� 차원의� 서원을� 했던� 관계로,� 그� 서원이� 신실하

게� 이행될� 때까지제사장의� 감독을� 받아야만� 했다(룻� 3:6-13� 주제� 강해,� '맹세에� 대한� � 바른� � 이해'� �

참조).

=====5:13� � 내가� 옷자락을� 떨치며� -� 여기의� '옷자락'은� 물건을� 나를� 때� 흔히� � 사용되는,� � 마치앞치

마와�같이�생긴� 겉옷의�무릅� 부분을�가리킨다(Keil).� 한편,� '떨치며'(*� � � � � � ,� 나아르)는� '흔들어�비우다

'의� 뜻으로서� 무엇을� 운반하고자� 옷자락의� 아랫� 부분을� 손으로쥐었다가� 그것을� 뿌리치듯이� 세게� 놔버

리는�행동을�가리킨다(Keil).� 이렇게 할� � 경우그� 옷자락에� 담긴� 것은� 땅에� 쏟아져� 내리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 본절의� � 다음부분이� 시사하듯이� 저주를� 선포하는� 상징적� 행동임이� 분명하다(마�

10:14;행� 18:6).� 한편,� 구약의� 여러� 선지자들은� 그들의�입을� 통해� 전달되는�예언의�메시지의�확실성을�

나타내기� 위하여� 상징적인� 행동을� 통해� 백성들에게� 시각적으로� 분명하게� � 주지시켰다(왕상� 1130-32;

렘� 13:1-11;27:2-11;겔� 4:1-17� 등).� � � 하나님이...그� 집과� 산업에서� 떨치실지니� -� 하나님께서� 고리�대

금을� 하고도� 자신의잘못을� 뉘우치지� 않는� 사람들의� 모든� 소유물을� 거둬가시는� 것을� 가리킨다.� 결국� '

집과산업'은� 그� 고리� 대금을� 한사람이� 자랑으로� 여기던� 그의� 전재산을� 뜻한다.� � � 여호와를� 찬송하고� -�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불미스럽다(9절)고� 할� 수밖에� 없는� 고리� 대금� 및� 그에� 따른� 노예의� 양산(量産)�사건이�말끔히�해결되기에�이르렀음을� � 시사한다(Fensham).

=====5:14� 여기서부터� 본장의� 마지막부분(19절)까지는� 느헤미야가� 자칫� 잘못하면� � 이스라엘의상류�

계급층과� 충돌을� 빚을� 소지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앞부분(6-13절)에서와� 같이� � 사회,경제적� 개혁을� 도

모할�수�있었고�또한�성공할�수� 있었던�근저에 대해서 말해주고있다.� 그� 근저는� 곧� 그의� 청렴

결백이었다.� � � 내가� 유다� 땅� 총독으로� 세움을� 받은� -� 느헤미야� 자신이� 페르시아� 왕에� 의해� 임명된총독

임이� 처음� 밝혀지고� 있다.� 물론� 그에게� 상당한� 권력이� 주어졌다는� 사실은� � 앞에서이미� 언급되었다

(2:9).� 그런데� 본절의� '총독'(*� � � � � ,� 페함)은� '페하'(*� � � � � )의� 오류임이� 분명하다(Fensham,� 학� 1:1,�

14).� 이� 같은� 단정은� 18절의� '총독'이� '페하'로� 표기되고� 있다는� 사실로써도� 분명해질� 것이다.� � � 아닥

사스다�왕� 이십년� -� 이것은�느헤미야가�페르시아를�떠났던�때로서,� B.C.� 444년이었다.� � � 삼십� 이� 년까

지� -� '삼십� 이� 년'은� B.C.� 433년이다.� 느헤미야는�이� '삼십� 이� � 년'에예루살렘을�떠나서�다시� 페르시아

로� 돌아가서� 페르시아� 왕실의� 주관(酒官)� 역할을� � 하다가� B.C.� 432년경에� 예루살렘으로� 다시� 귀환하였다(13:6).� � � 나와� 내� 형제가� 총독의� 녹을� 먹지� 아니하였느니라� -� 이것은� 백성들의� 경제적� � 형편이�

너무도�비참했었던�때문이기도�했지만�그에게�백성들의�처지를�누구보다 이해하고그들을� 사랑하는� 마

음이�있었기�때문이다.� 느헤미야는�사도�바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정당한� 대가를� 받을�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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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에게� 섬김의� 본을� � 보이기위해� 헌신적이고� 희생적으로� 봉사하였다(고전�

9장:살후� 3:8).� 한편,� 페르시아� 제국� 내의� 지방� 총독들은� 중앙� 정부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몫

을� 위해� � 세금을� � 징수할권리를� 갖고� 있었다� 한다(Frye).� 본절에서� '내� 형제'(*� � � � � ,� � 아하이)는� � 문

자적로는'내� 형제들'로서� 느헤미야와� 함께� 총독부의� 일을� 맡아� 수행했던� 관리들� 전체를� 가리킬것이다

(Fensham,� Rawlinson).� 물론� 여기에� 느헤미야의� 친동생� 하나니가� � 포함된� � 것은자명하다(1:2;7:2).�

한편,� '총독의� 녹'� 중� '녹'(*� � � � � ,� 레헴)은� 문자적으로는� '떡'의의미로서� 총독에게� 마땅히� 돌아갈� 생활

비�전체를�의미한다.

=====5:15� 이전� 총독들은�백성에게�토색(討索)하여� -� 에스라서를�통해� � 느헤미야가 귀환하기전

에는� 스룹바벨(세스바살)이� 유일하게� 유대� 총독으로� 묘사되었을� 뿐이라는� 사실에� 근거하여(스�

1:8;3:8;4:2;학� 1:1).� 어떤�학자들은�실제로�스룹바벨과�느헤미야와의�사이에는�유대에�다른� 총독이�파

견되지� 않았다고� 단정한다(Alt,� Rudolph,� Galling).� � 반면에� 아비갓(N.� Avigad)이라는� 학자는� 고고학

적� 자료에�근거하여� 이� 두� 총독� 사이에� � 엘나단(Elmathan),� 예호에셀(Yehoezer),� 아자이(Ahzai)� 등의�

총독이� 있었고� 느헤미야� 이후에는� 바고히(Bagohi),� 에헤즈키야(Yehezgiah)� 등의� 총독이� 부임했다고�

주장한다.� 이두� 가지� 견해� 중� 어느� 하나를� 고집할� 만한� 확정적인� 증거는� 다소� 희박하지만,� 당시� 페르

시아의� 행정적� 한계를� 고려하건데� 유대� 땅에� 일시적으로� 총독� 부재� 현상이� 있었다고해서� 큰� 의문점을�

남기지는� 않으리라고� 본다.� 그렇다고� 하면,� 본문의� '이전� 총독들'이란� 유대� 지방에까지� 행정적� 영향력

을� 행사한� 사마리아� 총독들을� 가리킨다는� 추측도� 가능하다.� 사실� 산발랏만� 하더라도(2:10)� 느헤미야가�

유다에� 도착하기� 전까지� 그곳� 백성들에� 대해�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바로� 그런� 영

향력의� 행사로� 인하여� 유다� 백성들은,� 그� 필요성은� 절감하면서도� 예루살렘� 성벽을� 복구하지� � 못했었다

(스4:21).� 한편,� '토색하여'(*� � � � � � � � � � � � ,� 히크비두)는� '무겁다'� 혹은� � '누르다'� � 등의뜻이� 있는� 동사�

'카베드'(*� � � � � � )의� 사역형으로서,� 세금� 징수나� 노역등의� 많은� � 짐을지우거나� 강압적으로� 다스리는것

을� 가리킨다(왕상� 12:10,� 11;사� 9:1).� � � 양식과� 포도주와� 또� 은� 사십� 세겔을� 취하였고� -� '양식'은� 음

료로� 사용됐던� � 포도주와� 대조되는� 것으로서� 구체적으로는� 18절의� '소'와� '양'과� 기타� 곡식을� 뜻할� �

것이다.'또'(*� � � � � � ,� 아하르)는� '-워에도'� 혹은� '-에� 덧붙여서'(besides)의� 의미이다.� � 결국본� 문구는� '

은� 사십� 세겔'이� 먼저� 기본적으로�징수되었고�여기에� 더해서� '양식과� 포도주'가� 각� 개인의� 밭이나�포도

원� 등의� 재산소유� 정도에� 따라서� 별도로� 징수되었음을� 뜻한다(Fensham).� 그런데� 본절의� '은� 사십� 세

겔'은,� 한� 세겔이� 보통� 노동자의� 나흘치� 품삯이었으므로� 무려� 석달여의� 품삯에� 해당하는� 많은� 액수였

다.� 그리고� 이토록� 많은� � 액수에� 해당하는� '은'과� '양식과� 포도주'� 등은,� 본절의� '토색하여'와� '하나님을� �

경외하여'라는� 문구들을� 통해서� 볼때,� 징수되어� 총독� 자신의� 개인적� 용도로� 사용됐음이� 분명하다.� 한

편,� 이것들은� 한� 가정에서� 매년� 징수됐던� 것이라기� 보다는,� 전� � 백성들로부터사사로이� 징수됐던� 것들

의� 하루� 평균� 분량일� 것이다(Rawlinson).� � � 그� 종자들도� 백성을� 압제하였으나� -� 본절의� '압제하였으나

'(*� � � � � � )는� 원래� '통치하다'� 혹은� '지배하다'의� 뜻으로서,� 여기서는� 상전� 노릇을� 톡톡히� 하면서� 백성

들을� 괴롭히는� 것을� 가리킨다(시� 109:16;전� 8:9).� � �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 이것은� 느헤미야가� 전임�

총독들과는�달리�폭정(暴政)을� � 행하지�않을�수�있었던�으뜸되는�원동력이었다.� 즉,� 그는� 하나님을� � 두려워했기� � 때문에그분의� 백성들에게� 짐을� 지울수� 없었던� 것이다.� 그� 두� 번째� 이유는� 곤궁에� 처한� � 백

성들에� 대한� 형제애� 때문이었다(18절).� 결국� 느헤미야는�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는� 가장� 크고�

귀한� 두� � 계명(마� � 22:37-40)을� � 나름대로� � 실천하고자� � 애썼던� � 셈이다(Kidner).� � � 이같이� 행치� 아

니하고� -� 이것은� 느헤미야� 자신이� 사리� 사욕을� 취하는� 등의� � 폭정을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부하�

관리들의�월권�행사를�금지시킨�것까지를�말한다.

=====5:16� 이� 성� 역사에� 힘을� 다하며� -� 이� 같은� 모습은� (1)� 이전� 총독들이� '성� 역사'를� � 적극방해한�

것(스� 4:17-20),� (2)� 백성의� 지도자들이� '성� 역사'에� 참여치� 아니한� 것(3:5)과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사실� 느헤미야는� '이� 성� 역사'를� 위하여� (1)� 페르시아왕의� � 술관원이라는� 편안하고� 영화로운� 자리(2:1)

를� 포기하고� 그� 먼� 곳� 예루살렘까지� � 왔으며,(2)� 그� 일을� 시행하는� 동안� 옷도� 못벗고� 감독과� � 경비를� �

하는� � 등수고를 하였으며(4:23),� (3)� 심지어는� 그� 일을� 방해하는� 무리로부터� 죽음의� 위협까지도�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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았다(6:2).� � � 땅을� 사지� 아니하였고� -� 느헤미야가� 백성들에게� 고리� 대금을하여� 그들로부터� � 땅을빼앗

지� 않았던� 사실을� 가리킨다(10절).�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 땅은� � 하나님이� � 주신선물이었으며,� 그것

을� 상실한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조차� 파기되는� 것으로� 여길� 정도였다(민� 27:1-11� 주제� 강

해,� '토지의� 사유� 재산과� 세습� 제도'� � 참조).� � 따라서당시� 유대사회에� 횡행했던� 토지� 몰수� 사례들이� 하

나님� 앞에� 얼마나� 큰� 죄악이었는지가자명해진다.� � � 나의� 모든� 종자도� 모여서� 역사를� 하였으며� -� 이것

은�앞에�언급된�총독의 '종자들'이� 백성들의� 상전� 노릇을� 한� 것과� 너무도� 대조된다(15절).� 사실� 느

헤미야의종자들은'성� 역사'에� 참여했을� 뿐� 아니라,� 성� 역사에� 참여하고� 있던� 백성들을� 군사적으로� 보

호하는�수고를�아끼지�않았었다(4:16,� 23).

=====5:17� 내� 상에는...일백� 오십� 인이� 있고� -� 통치자가� 자신의� 참모나� 신하를� 부양하는� 것은고대�

바벨론과� 페르시아의� 풍습이었다(왕하� 25:29).� 따라서� 느헤미야가� 많은� 사람들을자기의� 상에서� 함께�

먹게� 한� 것은� 그� 당시로서는� 지극히� 당연하였다.� '유다� � 사람들과민장들'은� 오히려� '유다� 사람들� 즉� 민

장들'(KJV,� the� jews� and� � rulers;� � LB,� � Jewishofficials)로� 이해된다(Rawlinson,� Williamson).� 사실�

느헤미야가�이스라엘 공동체의일반적� 구성원으로서의� '유다� 사람들'을� 자신의� 상에서� 먹게� 하지

는� 않았을� 것이다.� � � 우리� 사면� 이방인� 중에서� 우리에게� 나아온�자들� -� 여기에� 대해서는� (1)� 계속� � 이

방땅에� 살다가� 새로이� � 팔레스틴으로� � 귀환한� � 유대인들이라는� � 견해(Keil,� � Rawlinson,Batten,� 박윤

선),� (2)� 특별한� 일� 때문에� 예루살렘에� 들린� 이방인� � 외교관이라는� � 견해(Fensham,� Williamson)등의�

두� 가지� 해석이있다.� 그러나� 첫째,� 본절의� '우리� � 사면'이라는� 말은� 그� 당시에� 귀환했던� 이스라엘� 백성

이� 주로� 바벨론� 지역에서� 살았음을� � 감안한다면� 새로� 귀환한� 유대인으로� 보기� 곤란하며� 둘째,� 만일� 해

외에서�귀환했다고� � 하더라도�그가� 이스라엘�사람이라면�포로기�이전� 조상의�연고지로� 가서�살수� 있었

을� � 것이라는� 점� 등으로� 보아� 위의� 두� 해석중� 나중의� 것이� 보다� 타당할� 것이다.� 사실� 페르시아정부에�

의해� 임명된� 총독� 느헤미야가� (1)� 예루살렘을� 목적지로� 하는� 페르시아� 외교� 관리나,� (2)� 페르시아� 중

앙� 정부를� 목적지로� 하는� 애굽등지(等地)의� 외교� 관리가� 업무차왔거나� 잠깐� 경유하여� 쉬었다가� 가려고�할� 때� 그들을�환대하는�것은�지극히 당연하였다(Fensham).

=====5:18� 사실� 본절에� 언급되고� 있는� 음식의� 양은� 그� 밖의� 보조적� 음식을� 더할� 경우� 4,� � 5백명은�

능히� 먹일� 만한� 것이었다.� 느헤미야는� 이� 많은� 양의� 음식을� 대기� 위해서� � 엄청난비용이� 필요했을� 것이

다.� 그럼에도�불구하고�그는�백성들로부터는�합법적인 돈일지라도� 받지� 아니하였다.� � � 살진� 양� -� 여기

서� '살진'(*� � � � � � � � � � ,� 베루로트)은� '깨끗이� 하다',� � '선택하다'의의미를� 갖는� 동사� '바라르'(*� � � � � � )

에서�온�단어로� '선택한'혹은� '손으로� � 뽑은'이란뜻이다.� � � 닭(*� ,치포림)� -� 이것은� 가금류(가

금류)로서의� '닭'이� 아닌� � 들새� � 종류를가리킨다(Fensham,� 신� 4:17;시� 8:8).� � � 열흘에� 한번씩은� 각종�

포도주를� 갖추었나니� -� 이것은� 포도주를� 마실� 기회가� 열흘에한� 번씩� 주어졌음을� 뜻하지� 않는다.� 포도

주는� 중근동� 사회에서는� � 일종의� � 음료였음을볼� 때,� 항상� 식탁� 위에� 올려졌을� 것이다.� 다만� 총독부가�

그것을� 열흘에� 한� 번씩� � 한꺼번에� 준비하였음이� 분명하다.� '각종� 포도주'(*� � � � � � � � � � � � � � ,� 베콜� 아

인)에� 대해서는다음과� 같은� 두� 가지� 해석이� 제시된다.� (1)� 여기의� '베콜'이� � 포도주의� � 용기(用器)를가리키는� '네벨'(*� � � � � � )의� 오류로� � 보고� � '포도주� � 여러� � 부대'라는� � 해석(Fensham,Rudolph,�

Myers),� (2)� 맛소라� 본문에� 근거하여� 여기처럼� '각종� 포도주'라고� 해야� 한다는� 해석(Rawlinson,�

Williamson)등이� 있다.� 그러나� 첫째,� 분명한� 증거도� 없이� � 맛소라본문을� 고치는� 것은� 무모하며� 둘째,�

개역�성경의�번역에는�생략됐지만� '각종� � 포도주'다음에는�별도의�수량을�표시하는�단어(* ,�

레하르베,� '많이'의� 의미)가� � 있다는� 점� 등으로� 볼� 때,� 위의� 두� 견해� 중� 두� 번째의� 것이� 보다� 타당한�

듯하다.� � 여기의포도주의� 종류에� 대해서는� 본장� 주제� 강해를� 참고하라.� � � 총독의� 녹을� 요구하지� 아니

하였음� -� 이것은�느헤미야�자신이�합법적으로지출하는비용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로부터� 거둔�

세금이� 아닌� 자기� 자신의� 사재(私財)로� 충당했음을� 뜻한다(14절).� � � 백성의� 부역이� 중함이니라� -� 이것은� 느헤미야가� 자신의� 필요를� 위해� � 백성들로부터세금을� 징수치� 않았던� 중요한� 이유였다.� 느헤미야는�

15절에서� 이같이� 한� 이유를� '자신이� 하나님을� 경외한�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부역'(*� � � � � �

� � ,� � 아보다)은구약� � 성경에서 '봉사'� � 혹은� � '노동'등으로도� � � 번역되는� � � 단어이다(창� � � 29:27;

Page 31: 느헤미아제1장 - Christian Monitorchristianmonitor.net/jusuk/nehemia.pdf성을갖고있는무리로묘사되고있다(사27:13;겔34:4,16:미4:6;습3:19).한편,'하늘끝'은

민8:11;28:18).� 따라서� 여기의� '부역'은� 백성들이� 성벽� 재건에� 동원되서� 애쓰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

나� 이� 단어를� 좀더� 넓게� 문맥적으로� 보면� (1)� 성벽� 재건에� 따른� 백성들의수고� 뿐만� 아니라,� (2)� 페르

시아�왕실에�바쳐지던�각종�세금(4절;스� � 4:13)등� � 모두를가리키는�것으로�이해할�수� 있다(Fensham).

=====5:19� � 느헤미야는� 이� 기도를� 통해서� (1)�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상급을� 베풀어� � 주실� � 것과

(Rawlinson),� (2)� � 하나님께서� � 자신의� � 성실을� � 옹호해� � 주실� � 것을� � 기대하고� � 있다(Schultz).� 그러

나� 느헤미야는� 자신의� 선행을� 근거로� 보상을� 간구하고� � 있지는� � 않다.4:4,� 5과� 13:22에서와� 마찬가지

로� 여기서도� 그는� 하나님의� 용서와� 축복이� 오직� 그분의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임을� 분명히� 깨닫고� 있었

다고� 이해된다.� 이러한� 영적� 자각� � 속에서,� 하나님과� 동료� 유대인들을� 향한� 자신의� 헌신이� 순수한� 동

기에서�비롯되었음을� � 고백하고�있는�것이다(Williamson).� � � � 느헤미야�제� 6장

=====6:1� 전장에서� � 대내적인� 문제를� 타개한� 느헤미야는� 이제� 본장에서� 또다시� 외부의� � 적들의� � 음

모와(1-4절)� 모함(5-9절)� 및� 공갈,� 협박(10-14절)에 직면하기에� � 이른다.� � � 대대적인 기습공격의�

무용성을� 깨달은� 산발랏� 일당은� 성벽� 재건의� 막바지� 단계에� � 이르러� 마지막� 계교를� 짜내었는데,� 그것

은� 성벽� 재건의� 주동자요� 책임자인� 느헤미야를� � 암살하는� 방법이었다.� � � 산발랏과� 도비야와...게셈� -�

이들에�대해서는� 2:10� 주석� 및2:19� 주석을� 참조하라.� � � 나머지� 우리의�대적� -� 이들은� '산발랏'에� 동조

하여�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방해하던또� 다른� 자들이다.� 구체적으로는�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

을� 가리킨다(4:7).� � � 아직�성문에�문짝을�달지� 못한�때라� - 보통� '문짝'은� 건축� 공사를� 할� 때에� 마

지막으로� 달게된다는� 점에서� 볼� 때,� 본� 문구는� 성벽� 공사가� 전반적으로� 완료되기� � 일보� 직전에� � 있었

음을�나타낸다.

=====6:2� 본절에� � '도비야'라는� � 인물의� � 이름이�빠져있는�것은� 본절의� � 두� � 인물이� � '총독'혹은� '족

장'(2:19)인데� 비해� 도비야는� 다만� � 그� � 총독의� � 막료일� � 뿐이었기� � 때문이다(2:10).� � � 오노� 평지� 한

촌에서� -� '오노� 평지'의� '평지'(*� � � � � � � � ,� 비크아트)는� '나누다'� � 혹은� '쪼개다'의� 뜻을� 갖는� 동사� '바

카'(*� � � � � � )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오히려� '계곡'으로� � 번역해야� � 적당하다(Fensham).� 한편,� '오노'는� �

예루살렘� 북서쪽� 약� 32.4km� � 지점에� 위치했다.� 이곳은� 그� 당시로서는� � 사마리아와� � 아스돗� � 사이의� �

중립� � 지대로서(A.Alt),� 완전한� 이스라엘� 땅이� 아니었다.� 바로� 이� 같은� 점을� 감안한다면,� 산발랏� 일당

이'오노'를� 느헤미야와의� 면담� 장소로� 택한� 것이� 느헤미야를� 이스라엘� 영토� 밖으로� 꾀어내어� 살해하려

는� 음모에� 따른�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한� 촌에서'(*� � � ,� � 바크피림)에� 대해서는� (1)� 본절의� �

'바크피림'을� 장소를� 나타내는� � 전치사� � '베'(*� � )와� 고유한� 지명� � '하크피림'(*� � � � � � � � � � � � )의� 합성

어로� 보고� '하크피림에서'라는� 견해(Williamson,� Myers,� Rawlinson,� Kidner,� Schultz,� Fensham),�

(2)'바크피림'을전치사� '베'(*� � )와� '마을'을� 뜻하는� 명사� '카파르'(*� � � � � � )의� 복수가� � 합쳐진� � 것로보

고� '여러� 마을들� 중의� 하나에서'라는� 견해(Keil),� (3)� '바크피림'을� 전치사� � '베'(*),� � 즉� '-와� 함께'와� '

케피림'(*� � � � � � � � � � ),� 즉� '사자들'의� � 합성어로� 보고� '사자들'이란� 말로� � 암시된� '방백들과� 함께'(겔�

19:1-6)라고� 해석하는� 견해(Schirmann)등이� 제시된다.� � 그러나� � 첫째,� 산발랏� 등이� '여러� 마을들� 중

의� 하나에서'� 만나자고� 함으로써느헤미야로� 하여금� 그� 마을들�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할� 경우� 그로

부터�의심을� � 덜받을� 수� 있으며�둘째,� 본문에서�짐승의� 이름과�방백들을� � 굳이� � 연관시켰다고� � 보기는

힘들다는� 점에서� 볼� 때,� 두� 번째의� � 견해가� 보다� 타당할것이다.� � � 실상은� 나를� 해코자� 함이라� -� 고대�

사회에서는�원한�관계에�있는� 사람을 안심시켜서� 제3의� 장소로� 불러� 내어� 거기서� 죽이는� 일이�

흔했던것� � 같다(창4:8;렘 41:1-3).바로� 이러한� 습속을� 아는� 느헤미야는,� � 외딴� 곳으로�자신을� 나오라

는� 대적들의� 제안에어떤� 혹막이� 숨겨져� 있었음을� 눈치챌�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느혜미야가� 이처럼�

재빨리� 그� 음모를� 눈치� 챈� 것은,� 느헤미야도� 나름대로의� � 첩보망을� 갖고� 있었던� 때문일� 가능성도� 크다

(Fensham).

=====6:3� � � 본절에서� 느헤미야는� 음모섞인� 대적들의� 제안을� 완곡히� 거절한다.� 그러나�느헤미야가� 일�

때문에� 가지� 못하겠노라� 한� 것� 자체도� 거짓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성벽� 재건이� 크게� 진척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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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은�사실이었으나,� 문을� 달아서�작업을�마무리하는 일이� � 그무엇보다�시급했기�때문이다(1절).� � � 어

찌하여...너희에게로� 내려가겠느냐� -� 본� 문구를� 통해� 우리는(1)� '오노'가� 예루살렘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지대였다는� 점과,(2)� '오노'가� 이스라엘� � 백성들의� � 대적들의땅과� 인근해� 있었으므로� 상대적으로� 낮추

어�언급했음을�알�수�있다.

=====6:4� � � 대적들의� 반복된� 메시지의� 전달은� 그들이� 성벽� 재건의� 방해를� 위해� 얼마나� � 필사적이었

는지를�잘� 보여준다(Myers).

=====6:5� � � 종자(*� � � � � � ,나아르)� -� 이것은� 산발랏의� 하급� 신하를� 뜻할� 것이다(4:16).� � � 봉하지� 않

은� 편지� -� � 고대의� 공식� 문서는� 양피지� 등에� 기록된� 뒤� 끈으로� 묶여� 인장으로� 날인되어� 봉해졌었다.�

이는� 작성된� 내용의� 변조를� 막아서� 그� 문서의� 신빙성을� 보증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발랏� 일당이� 인봉치� 않은� 편지를� 보낸� 까닭은,� 편지의� 내용을� 백성들도� 알게� 해서� 놀라게� 하며,� 느

헤미야로�하여금�자신들에게나오게끔�촉구하려는�데� 있었다.

=====6:6,7� � � 여기서는� 산발랏의� 다섯� 번째� 편지의� 내용이� 소개되고� 있다.� 그� 내용은� 한� � 마디로느

헤미야가� 페르시아� 왕실에� 대해� 모반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 � 이방� -� 이스라엘� 주변의� 나라들을� 가

리킨다(4:7).� � � 가스무도� � 말하기를� -� 이것은� '가스무'가� 이방� 사람들� 사이에� � 떠돌던� � 느헤미야의모반�

사실을� 확증했다는� 뜻이다(Fensham).'가스무'는� 느헤미야를� 비롯한� 이스라엘� � 백성에� 의해서� � '게셈'

으로� 불리워지던�인물의�아라비아식�이름이다.� � � 네가...모반하려�하여� 성을� 건축한다� -� 느헤미야가� '성

을� 건축'했던�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 중심지인� 예루살렘과� 그� 안에살던� 백성들을� 의적의� 칩입으

로부터� 보호하려는데� 있었다(1:3).� 따라서� 느헤미야가� 모반을� 꾀한다는� 소문은� 말할� 나위도� � 없이대적

들이� 지어내어� 퍼뜨린� 완전한� 허위였음이� 분명하다.� 휠씬이전에� � 있었던� 성벽� � 재건의� � 시도도� 바로�

이와같은� 허위� 보고가�페르시아�왕실에�올려짐으로써� 좌절되었었다(스� 4:11-23).� 바로�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있던� 산발랏은� 금번에도� 그와� 유사한� 헛� � 소문을� 퍼뜨려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벽� 재건을� 중지

시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 � 네가� 선지자를� 세워...유다에� 왕이� 있다� 하게� 하였으니� -� 이것도� 산발랏의� �

거짓말이다.� 사실� 왕족도�아닌� 느헤미야가(2:3),� 스룹바벨과� 같은�직계� 왕족도(스� 2:2)� 왕에오를� 수� 없

었던� 포로� 후� 시대의� 상황에서� 스스로� 왕이� 되려는� 시도를� 했다는� 것은� � 어불성설(語不成說)이었다.� �여기에서� � '네가� 선지자를� 세워'는� 스룹바벨� � 시절에� � 생긴건축� 사역의� 재개를� 위하여� 활약했었던� 학

개� 및� 스가랴� 선지자의� 메시야의� 도래에� � 대한� 예언(학� 2:22,23;슥� 9:)을� 알고� 있었던� 산발랏의� 거짓

말이다.� 즉,� 산발랏은� 거의� 1세기� 전에� 활동했던� 선지자들의� 메시아� 예언을� 왜곡시켜서,� 느헤미야가� �

그 당시에는있지도� 않았던� 선지자의� 도움을받아� 왕에� 오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 헛된� � 주장

을하였던�것이다.� � � 너를� 들어� 선전하기를� -� 이에� 관해서는�본� 단락� 주제� 강해,� '왕의� 즉위와� � � 관련된

선지자의� 역할'을� 참조하라.� � � 이� 말이� 왕에게�들릴지라� -� 본절에서� 산발랏은,� 자신이� 느헤미야를� 모반�

혐의로� 고소할� 준비가� 되어있음을� 시사함으로써� 그를� 협박하고� 있다.� 사실� (1)아닥사스다� 왕� 시대에는�

페르시아� 정복지� 전역에� 걸쳐서� 모반이� 끊이지� 아니했었으며,� (2)� 특히많은� 권력을� 쥐고� 있었던� 술� 관

원들의� 모반이� 잦았었다(Fensham)는� 점� 등에서,� 술� 관원� � 출신이었던(1:11)� 느헤미야가� 모반을� 하고�

있다는�고소는�비록 그것이 무고(誣告)이기는했지만� 아닥사스다� 왕에� 의해서� 진실로� 받아들여질�가능성도�적지� � 않았다. 산발랏은바로�이� 점을� 이용해서�느헤미야를�협박하려�드는�것이다.

=====6:8� � � 본절에서� 느헤미야는� 단� 몇� 마디의� 말로써� 산발랏의� 장황한� 참소(6,� 7절)를� 기각시켜버

리고� 있다.� 만일� 산발랏의� 무고가� 아닥사스다왕에� 의해서� 받아들여질� 경우� 느헤미야가� 곤란한� 문제들

에� 직면할� 가능성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담대할� 수� 있었던것은,� 그가� 하나님을� 신뢰한� 때문이

었다(9절).� � � 지어낸� 것이라� -� '지어낸'(*� � � � � � ,� 바다)은� 구약성경� 중� 본절을� 제외하고� � 유일하게� 나

타나는� 왕상� 12:33에서는� 자신의� 입지를� 강화할� 목적으로� 소견에� 옳은대로� � 어떤계획을� 세우는� 것을�

가리킨다.� 그� 밖의� 성경� 외적� 문헌에서도� 이� 단어는� '거짓을� 꾸미다'라는� 의미로� 사용된다(Fensham).�

따라서� 여기서� 이� 단어는� '타인을� 해롭게� 할� 목적으로� 진실을� 교묘히� 왜곡시키는� 것'을� 뜻한다고� 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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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있다.

=====6:9� � � 우리를�두렵게�하고자�하여� -� 이스라엘�백성들은�산발랏�일당의 집요한 심리전에의

해서�낙심에�빠졌었던�쓰라린�경험을�갖고� 있었다(4:4).� 이제� 다시� 산발랏은�느헤미야를�회유� .� 협박함

으로써,� 그런� 결과를� 재차� 얻으려고� 했었다.� 사실� 이것은� 성벽� � 재건을� 신속히� 추진하려고� 애쓰던� 느

헤미야에게� 큰� 장애� 요소였음에� 분명하다.� � � 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 -�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있다.� 즉,� (1)� � 개역� 성경처럼� 하나님께� 담대한� 마음을� 허락해� 주실� 것을� 소원하는� 기도로� 봐

야� � 한다는견해(Fensham,� Rawlinson,� Schultz,� Keil,� Battem,� Kidner,� NIV),� (2)� 기도의� � 대상인하

나님이�언급되고�있지�않음을�근거로�해서� 느헤미야�자신이�스스로�마음을�굳게� � 먹었던� � 것으로�봐야�

한다는� � 견해(Williamson,� Myers,� JB,� 공동번역)� 등이� 있다.� � 그러나� 본서� 전체를� 통해서� 볼� 때� 느헤

미야의� 기도는� 특별한� 형식없이� 필요한� 상황에서� 드려졌었다는� 사실(2:4;4:4,5;5:19)등으로� 미루어� 위

의� 두견해�중� 첫� 번째의�것이� � 보다타당성이�있다.

=====6:10� � � 본절에서부터� 19절까지에서는� 산발랏� 일당의� 또� 다른� 음모가� 언급된다.� 그런데� � 이음

모에는� 느헤미야� 진영에� 있는� 사람,� 더욱이� 선지자가� 가담하였다는� 점에서� 가히� � 충격적이다.� � � 므헤

다벨의� 손자� 들라야의� 아들� 스마야� -� 이� 사람에� 대해서는� 분명히� 밝혀진� � 바가없다.� 그러나� 그는� 성전

에도� 들어갈� 수� 있었던� 신분의� 소유자라는� 본절의� � 암시로� � 볼때� 제사장이었으리라� 짐작된다

(Bowman).� 또한� 그는� 그� 당시에� 선지자� � 행세를� � 하기도했었다(12절).� � � 두문� 불출(杜門不出)하기로�내가� 그� 집에� 가니� -� 본절의� '두문� � 불출'에� � 대해서는(1)� 그� 당시에�스마야가�부정(不淨)한� 상태에�있었던�관계로� 성전� 봉사에�참여치� 못했었음을�뜻한다는� 견해(Rawlinson),(2)서원� 이행을� 위하여�근신하

고� 있었음을�뜻한다는견해(Schultz).� (3)� 스마야�자신처럼�은둔하지�않으면� 느헤미야가� 암살을�당할� 위

험이있음을� 암시하려는� 술수였다는� 견해(Keil),� (4)마치� 슬픈� 사건을� 예견한� 선지자가� � 그것으로� 인해�

비탄에� 빠져있었던� 것처럼� 행동함으로써(사� 20:2;겔� 4:1-8).� � 느헤미야로하여금� 자신의� 말에� 귀를� 기

울이게끔� 하려는� 술수였다는� 견해(Rudolph,illiamson),(5)마치� 감금되어� 있었던� 것처럼� 꼼짝하지� 않음

으로써� 느헤미야로� 하여금� 스마야� � 자신을찾아� 헤매도록� 하려고� 한� 술수였다는� 견해(Myers)등이� 제시

된다.� 그러나� 첫째,� 스마야가� 만일� 부정한� 상태에� 있었거나� 서원� 이행을� 위해� 근신하고� 있었다면� 성전

으로� � 가자는� 제안을�하지못했을�것이라는� 점과� 둘째,� 위의� '아추르'라는� 단어가�구약� � 성경에서비탄의�

상태를�가리키는데�사용된�적이� 없다는�점� 등으로�볼�때�위의� � 여러 견해� � 중(3)이나� (5)의� 것이�

가장� 타당할것이다.� � � 저희가� 너를� 죽이러� 올터이니� -� 이것은� 산발랏� 일당이� 보낸� � 자객들이� � 느헤미

야를암살하기� 위해서� 사마리아로� 부터� 올� 것이라는� 뜻이다.� 대규모� 공격은� 이스라엘의� � 파수꾼들에� 의

해서� 쉽게� 눈에� 띄어(4:9,� 22)� 실패할� 가능성이�많았던� 반면,� 느헤미야� 개인에�대한� 스마야의� 암살� 협

박은� 느헤미야에게� 대단한� 두려움을� 안겨줄만한� 것이었다.� � � 하나님의� 전으로� 가서� 외소(外所)안에� 있고� -� 이것은� 산발랏� 일당의� 암살을� 모면하기� 위하여� 성전으로� 피신하자는� 스마야의� 제안이다.� 사실� 살

해� 위협으로부터� 몸을� � 보호하기� 위해서� 성전으로� 도망가서� 제단� 뿔을� 잡는것은,� 모세� 율법에� 규정되

어� � 있었다(출� 21:12,13;왕상� 1:50-53;2:28).� 따라서� 본절과�같은� 스마야의�제안은� 어느� 정도� 타당한�

것처럼� 보인다.� � 그러나� 거기에는� 음흉한� 함정이� 깔려있었다(12절� � 주석� � 참조).한편,� � '외소'(*� � � � � �

,토크)는� � '-의� � 중앙'을� 뜻하며,� 구체적으로는� '성소'를� � 가리킨다(겔48:21).� 즉,� 성전� 현관과�지성소의�

사이이다(Rawlinson).� � � 그문� -� '성소'와� 성전의� 현관� 사이의� 잣나무로� 만들어진� 문이다(왕상� 6:34).� � �

밤에� 와서� 너를� 죽이리라� -� 느헤미야의� 공포심을� 가중시키기� 위한� 반복이다.� � 스마야는� 이미� 자신의�

경고�서두에서� '죽이러�올터이니'라고�말한� 바� 있다.

=====6:11� � � 본절에서� 느헤미야는� 두� 가지의� 이유를� 들어서� 성전으로� 피신하라는� 스마야의� 음모적

인� 권고를� 거절한다.� � � 나� 같은� 자가� 어찌� 도망하며� -� 이것은� 느헤미야가� 성전으로의� 피신을� 거절한� �

첫째이유이다.� 즉,� 그는� 페르시아�왕실로부터�임명된�총독의�신분으로서�생명의 위협이있다고� 해도�

몸을� 숨기는� 것은� 타당치� 않음을� 그이유로� 제시하고� 있다.� 특히� 느헤미야는내우외환(內憂外患)의� 시련을� 앞장서서� 극복해야� 할� 지도자의� 위치에� 있었기� � 때문에,비록� 죽음이� 눈앞에� 닥쳐왔다� 하더라도� 초

Page 34: 느헤미아제1장 - Christian Monitorchristianmonitor.net/jusuk/nehemia.pdf성을갖고있는무리로묘사되고있다(사27:13;겔34:4,16:미4:6;습3:19).한편,'하늘끝'은

연함으로써� 백성들의� � 모범이� � 되고자� � 했다(Rawlinson).� � � 나� 같은� 몸이면...생명을� 보존하겠느냐� -�

성전으로의� � 피신을� 거절한� 두� 번째� 이유이다.� 사실� 모세� 율법은� 생명의� 위협을� 받는� 자에게는� 성전으

로서의�피신을 허용하였다(출� 21:12,� 13).� 그러나� 그러한� 피신은� 특정한� 경우에� 제한되었으며,� � 외

국인� � 특히이방�군대에� 의한� 경우는�포함되지�않았다(Fensham).� 따라서� 이� 같은� 상황에서의� 성전으로

의�피신은�제사장�이외의�사람은�성전� 안에�들어가지�못한다는 하나님의� � 율법을범하는� 행위였다,� 율

법은�이러한�범법자는�죽임을�당해야�한다고�선언한다(민� 18:7).

=====6:12� � � 깨달은즉� -� 느헤미야의� 이러한� 깨달음은� '스마야'의� 음모섞인� 권고를� 듣는� 즉시� 있었을

것이다.� 즉,� 느헤미야는� 스마야가� 자신에게� 범법행위를� 권하는� 그� 사실을� � 통해서그� 즉시� 그가� 하나님

의� 참� 선지자가� 아님을� 발견했던� 것이다(Williamson).� 참선지자의여부는� 그의� 메시지� 및� 행실를� 통해

서� 분별될� 수� 있음(마� 7:15-20)을� � 보여주는� � 좋은예라고� 할� 수� 있다.� � � 도비야와� 산발랏에게� 뇌물을� �

받고� -� '뇌물을� � 받고'(*� � � � � � � � ,� 세카로)는� 원래� '고용하다'� 혹은� '보답하다'는� 의미로서� 어떤� 악한�

일을� 애써� 해주는� 대신� � 그에� � 대한삯을� 받는� 것을� 가리킨다(신� 23:4;삿� 9:4;왕하� 7:6).� 그런데� 혹자

는� 이� 동사가� � 3인칭단수인� 점과� 산발랏이� 도비야� 다음에� 언급되었다는� 점을� 들어서,� 본� 문구에� 나오

는� 두사람� 중� 뒤의� '산발랏'은� 필사자의� 실수로� 기록됐다고� 보고� 그� 이름을� 탈락시켜야� � 할것을� 주장

한다(Rudolph).� 그러나� 주어를� 두� 사람� 언급하면서� 단수� 어미의� 동사를� 사용한� 것은,� 두� 사람중� 먼저�

언급된�사람의�역할을�특별히�강조하려는 느헤미야의� � 의도때문인� 듯하다(Fensham).� 그렇다면� 도

비야는� 거짓� 선지자� 스마야를� 매수하는데� 있어서계획부터� 실행� 과정까지� 직접� 담당했으며,� 산발랏은�

그것을�후원했다고�볼� 수� 있다.

=====6:13� � � 느헤미야가�분석한�바,� � 곧� 도비야가�스마야를�매수한�삼중적인�이유이다.� � � 나를� 두렵

게� 하고� -� 도비야가� 스마야를� 매수하여� 느헤미야에게� 거짓� 예언을� 하게끔한� 가장� 큰� 이유이다.� 사실�

산발랏이� 보낸� 자객이� 밤� 중에� 느헤미야를� 암살할� � 것이라는� 경고는,� 느헤미야에게� 두려움을� 주기에�

넉넉했다.� � � 이렇게� 함으로� 범죄하게� 하고� -� 이에� 대해서는� 11절� 주석을� 참조하라.� � � 악한� 말을� 지어�

나를� 비방하려� 함이었느니라� -� 이� 같은� 비방은,� 만일� 느헤미야가� '스마야'의� 공갈에� 심약(心弱)해져서�성전으로�피신하는�잘못을�범했을�경우� � 이루어졌을�것이다.

=====6:14� � � 이러한�기도는� 느헤미야가�얼마나� 신앙적�인물이었는지를�잘� 보여준다� -� 즉,� � 그는이기

도를� 통해서� (1)�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겸손한� 마음을� 보여주며,� (2)� � 원수를� 자신의� 손으로�

직접� 갚지� 아니하고� 하나님� � 손에� 넘기라는� 율법의� � 정신을(신� 32:35;시� 94:1;롬� 12:19)� 이행하고자�

했음을�보여주었던�것이다.� 한편,� 느헤미야에게�이처럼� 많은� 대적들이�있었던�까닭은(1)� 산발랏이�일찍

이� 많은� 사람들을� � 포섭해놓았고,(2)� 또한� 느헤미야가� 상류층에� 대해� 엄격한� 정책(5장)을� 편� 때문이었

다(Fensham).� � � 여선지� 노아댜와�그� 남은� 선지자들� -� 이들이� 누구이며�느헤미야에�대해�어떤� � 일을했

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이들은� 본절의� 언급처럼� '스마야'와� � 함께� � 느헤미야를대적했던� 무리들이

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도록� 특별히� 부르심� � 받은선지자들이� 오히려� 그뜻을� 정면으

로�거스린�일에� 대해,� 느헤미야가 하나님의� � 공의의심판이� 임하기를� 기도한�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한편,� 느헤미야가� 이들의� 행위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치� 않고� '스마야'의� 행위에� 대해서만� 특별히�

다른� 까닭은,� � 스마야의� 경우� 그� 대적� 행위가� 너무도� 교활하고� 사악하여� 나머지� 악한� 선지자들의� � 계

교를대표할�만한�것이었기�때문이었을�것이다(Williamson).

=====6:15� � � 성� 역사가� 오십� 이� 일� 만에...끝나매� -� 요세푸스는�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데는꽤오

랜�세월이�걸렸으리라고�보고�그� 공사� 기간을'팔백� � 사십� � 일'이라고� � 주장한다(Ant.� X� i� 5).� 에발드

(Ewald)같은� 학자도� 이러한� 견해를� 좆는다.� 그러나� 오늘날의� � 대다수� 학자들은� (1)� 성벽이� 없어서� 예

루살렘� � 거민이� � 당했던� � 참상을� � 잘� � 알고� � 있던(1:3;2:17)� 느헤미야가� 성벽� 공사를� 급히� 서둘렀을�

것이� 뻔하며,� (2)� � 맛소라� � 본문의기록을� 고쳐야� 할� 사본학상의� 근거나� 이유가� 전혀� 없으며,� (3)� 요세

푸스(A.D.� � 37-95)도� 느헤미야� 당시로� 부터� 무려� 500년� 이후의� 사람이어서� 느헤미야� 당시의� 상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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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정확한�정보를�갖지�못했을�것이며.� (4)� 느헤미야의�성벽�재건� 사업과�거의 동시대에이뤄졌던� 아

테네의�성벽�공사도�단� 한� 달� 만에� � 끝났었다(Vischer,Problem� � BibicalTheology,� p.� 606)는� 점� 등

에� 근거해서� 본절의� '오십� 이� 일'을� 맞는� 것으로� 본다.� � � 엘룰월� 이십오� 일� -� '엘룰월'은� 양력으로는� 8

월,9월이지만� 유대� 민간력으로� 12월이었다.� 따라서� 민간력으로� 계산할� 경우,� 성벽� 재건� 공사는� 느헤미

야가�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B.C.444년� 그� 해에� 완공된� 셈이� 된다.� 특히� 이� 공사는� 민간력으로는� � 압월

(11월)사일부터� 엘룰월(12월)까지,� 양력으로는� 7월중순� 경� 부터� 9월� 중순까지의� 덥기는� 하나비가오지�

않는�건기(乾期)에� 시행된�고로�순조릅게�진행될�수� 있었다.

=====6:16� � � 우리� 모든� 대적� -� 보다� 구체적으로는� 산발랏을� 비롯한� 이방� � 민족들의� � 지도자들을가

리킨다(2:19).� � � 사면� 이방� 사람들� -� 그� 지도자의� 통치를� 받는� 백성들을� 가리킨다.� 여기에는� 본서에언

급되고� 있는� 사마리아� 사람,� 암몬� 사람,� 아라비아� 사람.� 아스돗� 사람(4:7)� � 이외에,베니게� 사람과� 수리

아�사람�등도� 포함될�것이다(Rawlinson).� � � 두려워�하여�스스로�낙담하였으니(* � � �

,� 나팔� � 베에이네이헴)-� 이는� 문자적으로� '그들의�눈� 앞에서� 넘어졌다'의� 뜻이며,� 그� 구체적� 의미는� '자

신감을� 상실했다'(NIV),� '자존심을� 손상당했다'(Williamson,� Myers)이다.� 수많은� 장애� � 요인이� 있었음

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빠른� 시기에� � 재건� 공사가� 완공된� 것이� 그들의� 눈에가히� 기적으로� 보여졌음이�

분명하다.� 아무튼� 이� 같은� 그들의� 반응은,� 끊임없이� 느헤미야를� 비롯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두렵게� 하

려고'� 했던� 그들의� 시도(9,� 13,� 14)에� 걸맞지않다.� 사실� 대적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협박하여� 재건�

사업을� � 중단하게 만들려고획책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반대로� 더� 큰� 두려움을� 그� 대적들에게� 임하도

록� 역사하셨다.� 이는� 곧� 4:4에� 기록된� 느헤미야의� 기도가� 응답된� 것이기도� 하다.� 한편,� 이와� 같은상황

의� 극적인� 전환은� 대적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의� 크신� 권능을� 증거하는� 계기가� 되었다고도� 볼� 수� 있

다.

=====6:17� � � 본절에서부터� 19절까지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선지자들(14절)� 이외에도� 느헤미

야에� 대한� 또� 다른� 적대� 세력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느헤미야는� 여기서� 이러한� 사실을� 언급함으로써�

성벽� 공사가� 단시간에� 끝날� 수� 있었던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강조하고있다.� � � 유다의� � 귀

인들이...도비야에게� � 편지하였고� -� 본절은� 유다의� 지도층� 인사들이� � 느헤미야의� 대적들과� 내통하고� 있

었음을� 말해준다.� 즉,� '귀인들'(5:7)은� 느헤미야에� � 관한� 모든� 정보를� 여러� 방식으로� 탐지하여� 그것을�

도비야에게� 신속하게� 넘겼을� 것이다.� � � 도비야의� 편지도...이르렀으니� -� 이� 편지의� 내용은� (1)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벽� � 재건� 공사에서� 손을� 떼게끔� 내부� 공작을� 꾸미는� 것,� (2)느헤미야� 개인� 및� 성벽� 재건� �

상황에�관한� 정보를�입수하게끔�지령을�내리는�일을� 가리킬�것이다(19절).

=====6:18� � � 본절은� 도비야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일부와� 얼마나� 깊이� 밀착되어� 있었는지를� 보여준

다.� 또한� 이것은� 이방인과의� 통혼을� 금지시켰던� 에스라의� 개혁(스� 9,10장)이� 이들에게� 잊혀지고� 있었

음을�말해준다.� � � 아라의� 아들� 스가냐의� 사위가�되었고� -� 본절의� '아라'는� 스룹바벨과� 함께� 귀환했던어

떤� 가족의� 조상이다(7:10;스� 2:5).� 따라서� '아라의� 아들'은� '아라의� 자손'로� 번역되어야� � 적절하다.� 한

편,� '스가냐'는� 3:29에서는� '동문지기'로� 언급되고� � 있으며� � � 그의아들은� 성벽� 재건에� 참여하기도� 하였

다(3:29).� 바로� 그런� 점에서,� 스가냐� 일가는� 당시에� 이스라엘� 사회에서� 상류층으로� 분류됐을� 것이� 분

명하다.� 도비야는� 바로� 이� 같은� 유력한� 가문과� 정략적으로� 결혼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자신

의� 영향력을� � 중대시키려고� 하였다.� � � 도비야의� 아들...므술람의� 딸을� 취하였으므로� -� 도비야가� 이스라

엘� 백성� 중� 유력한사람의� 사위가� 된� 데이어서,� 또한� 유력한� 사람과� 사돈� 관계를� 맺었음을� 말해준다.� �

본절의� '므술람'은� 예루살렘� 성벽� 재건� 공사에서� 두� 몫을� 맡아� � 담당했던� � 제사장이었다(3:4,� 30).� � �

여호하난� -�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의� 뜻이다.� � � 유다에서� 저와� 동맹한� 자가� 많음이라� -� 본� 문구는� 히

브리� � 원문에는� 본절의� 초두에놓여� 있다.� 특히� 원문에는� '왜냐하면'의� 뜻을� 갖는� 접속사� '키'(*� � )가�

있어서,� 본� 문구가� 17절의� 이유가� 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 한편,� � '동맹한'(*� � � � � � � � � � � � � � � � � � ,,�

바알레이� 쉐부아)의� '바알레이'는� '주인이� 되다'� 혹은� '지배하다'의� 뜻을� 갖는� 동사'바알'(*� � � � � � )에서�

파생된� 명사이고,� '쉐부아'는� '맹세하다'의� 뜻이� 있는� 동사� � '쉬바으'(*� � � � � � )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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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본절의� '동맹한'이라는� 말은� '-을� � 주인으로�섬기겠다는�맹세'를� 뜻한다.� 따라서�본� 문구는�유

다� 사람들� 상당수가� 도비야를섬기기로� 하는� 서약을� 했다는� 뜻임이� 분명하다(NIV,� Kohlenberger)추측

컨대,� 도비야가유다� 사람들과� 혼인� 관계를� 맺거나� 동맹을� 맺은� 것은,� 그가� 산발랏의� 고위� 행정관으로

서� 예루살렘에� 머물던� 시절의� 일이었을� 것이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총독의� 자격으로� 오기� 전까지

는� 산발랏이� 유다� 땅에� 자신의� 부하� 도비야를� � 파견하여�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을� 듯하다

(5:15� 주석� � 참조).

=====6:19� � � 도비야의� 선행을� 내� 앞에� 말하고� -� 유력한� 유대인들� 중� 도비야와� 내통하고� � 있었던자

들이� 도비야와� 느헤미야� 사이에서� 매개자� 역할을� 하였음을� 보여준다.� 무력으로� 성벽재건을� 중단시키고

자� 했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대적들은� 이제� 음해(陰害)의� 방향을� 수정하여� 외면적으로� 우호와� 친선을� 가장하기도� 하고� 위협하기도하는� 등� 여러� 가지교묘한� 방법을� 동원하여� 계속� 교란책을� 펴나갔다.�

한편,� '선행'이란� 내통자들이� � 도비야의� 좋은� 면을� 부각시키기� 위해� 만들어낸� 이야기로� 이해될� 수� 있

다.� 그� 중에는� � 도비야의� 스마야에� 대한� 재화(財貨)증여(12절)가� 뇌물이� 아니고� 자선이었음을� 강조하는� 내용도� 포함될것이다(Rawlinson).� 그들이� 이같이� 거짓말을� 한� 까닭은,� 느헤미야로� � 하여금� 도비야

에� 대한�경계심을� 풀도록�하여� 도비야의�성전� 재건� 방해� 운동을�성공케� 하려는�의도� 때문이었다.� � � 나

의� 말도� 저에게� 전하매� -� 이것은� 내통자들이� 느헤미야의� 일거수� 일투족을� 탐지하여� 도비야에게� 보고했

다는�뜻이다.� � � � 느헤미야�제� 7장

=====7:1� � � 본절은�연대기적으로� 6장� 15,� 16절과�직접� 연결된다.� � 문짝까지�달게� 됨으로써� � 성벽재

건� 사업이� 마침내� 최종� 마무리되자� 이제� 이� � 귀한� 성벽을� 계속적으로� 파수할� 사람들을� 물색하고자� 했

던� 것이다.� � � 문지기와� 노래하는� 자들과� 레위� 사람들을� 세운� 후에� -� '문지기'와� '노래하는자'� 그리고� '

레위� 사람'은� 모두� 레위� 지파� 속하는�사람들이었고� 다만� 그� 역할의�차이로� 인하여�이처럼� � 셋으로� � 구

분되었다(43절;스� 2:40-42).� 원래� 성전� 봉사를� 주� 임무로� � 하는그들에게� 성벽� 파수를� 맡긴� 이유는(1)�

예루살렘의� 주민이� 얼마되지� 않았던� 관계로� � 그들의� 동원이� 불가피� 하였다는� 점(4절),� (2)� 성벽� 문의�

파수가� 곧� 성전문의� 파수와� � 직결된다는� 점(대상� 9:17-22;26:12-19)� 등일� 것이다.� 그러나� 성벽� 파수

의� � 직무를� � 레위사람들이�전담하지는�않았다.� 이같이�볼� 수�있는� 근거는�여기의� '세운'(*� � � � � � ,� 파카

드)이라는� 동사가� 책임자를� 임명하는� 것을� 가리키는� 단어로� 자주� � 사용된다는� � 점이다(창� 39:5;왕상�

14:27;왕하� 25:23;대하� 12:10).� 따라서�우리는�그때에� � 백성들도� � 성벽파수�직무를�위해� 동원�되었으

며�레위�사람들은�그�직무의�책임자로�임명되었다고� � 봐야� 할� 것이다(3절).

=====7:2� � � 내� 아우�하나니� -� 이� 사람은�느헤미야의�친동생으로�추정되며,� 페르시아 왕실에서술

맡은� 관원으로� 있던� 느헤미야에게� 예루살렘의� 참담한� 상황을� 알리기� 위하여� 먼� 길을마다하지� 않았던�

인물이다(1:2).� � � 영문(營門)의� � 관원� � 하나냐� -� '영문'에� 해당하는� '비라'(*� � � � � � � � )가� '궁전',� � '성채'� 혹은� '요새'를� 뜻하며,� '관원'에� 해당하는� '사르'(*� � � � )가� 군대� 조직� 등의� � 책임자를� 의미한다는� 점

에서� 하나냐는� 예루살렘� 성벽� 중간� � 중간에� 있는� 망대(3:1,� � 11,25,� 27)에� 배치된� 파수꾼들의� 총책임

자였을� 것이다.� 한편� � '하나냐'는� � '여호와께서는은혜로우시다'의� 뜻이다.� � � 함께� 예루살렘을� 다스리게�

하였는데� -� 이것은� 예루살렘을� 반분(半分)하여� 각각� � 다스리게� 하였거나� 혹은� 공동으로� � 협력하여� 전체� 예루살렘을� 다스리게� 하였음을� 뜻하는것� 같다.� 그러나� 3:9,12의� '예루살렘� 지방� 절반'을� 다스렸다

는� 의미와는� 전혀� 다르다.'예루살렘� 지방'은� 예루살렘� 시(市)� 자체가� 아니라� 거기의� 주변지역을� 뜻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처럼�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별도의� 행정관을� 둔� 것은� (1)� 일의� � 배분을통해보다�

효율적이고� 자발적인� 행정� 처리를� 도모하기� � � 위함이었고,� (2)� 느헤미야� � 자신은� 대적들의� 비난과� 같

이(6:6)� 왕이� 되고자� 하는� 정치적� 야욕이� 추호도� 없음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으며� 또한� (3)� 페르시아

에� 다녀오기� 위한(B.C.� 433-432)준비의� 하나였던� 것� 같다(Schultz).� � � 하나님을� 경외함이� 무리에서�

뛰어난� 자라� -� 바로� 앞의� 문구와함께,� 느헤미야가� '하나냐'를� 고위직에� 등용한� 이유이다.� '하나님에� 대

한� 경외'는� 본서에서� 곧� 백성들에� 대한� 사랑과� 연결된다(5:15).� 따라서� 느헤미야가� 하나냐의� 성품� 중�

하나님께� 대한� � 경외심을� 특별히� 언급한� 까닭은� 그가� 마치� 자신� 처럼� 백성들에게� 선정(善政)을� 베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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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라는�암시를�준다.

=====7:3� � � 본절에서�느헤미야는�예루살렘을�경비하는�요령을�하나니와� � 하나냐에게 가르치고있

다.� � � 해가� 높이� 뜨기� 전에는� 예루살렘� 성문을� 열지말고� -� 여기서� '해가� 높이� 뜨기� � 전에는'은� 문자적

으로� '해가� 뜨거워지기� 까지'의� 의미이다.� 아무튼� 이것은� 당시� 처지가� 여전히�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비

상� 상황에� 있었음을� 시사한다.� 왜냐하면� 고대� 중근동� � 지역의� 성문은� 해가� 뜸과� 동시에� 열려졌기� 때문

이다(Rawlinson).� 결국� 느헤미야가� 이� 같은� 지침을� 하달한� 까닭은,� 비록� 해가� 떴다고� 해도� 이른� 아침

에는� 백성들의� 활동이� � 시작되지� 않는� 시간인� 관계로� 적의� 침공이� 있다고� 한다면� 큰� 타격을� 받을� 수�

있었기� � 때문이었다.� 한편� 여기의� '해가� 높이� 뜬� 시간'은� (1)� 통상적으로� 성문을� 여는� 시간과� 정오의�

중간(Rawlinson).� (2)백성들의� 일과(日課)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 시간� � 등으로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 � 파수할� 때에� 곧� 문을� 닫고� 빗장을� 지르며� -� 여기의� 이� 문구는� '그들이� � 임무를� � 수행하고� 있는�

동안은� 문들을� 닫고� 빗장을� 지르며'� 로� 번역해야� 옳다.� � � 따라서� � 이것은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는� 절

대로� 경비� 태세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는,� 성문을� 열기� � 전까지의� 근무에� 대한� 지침이다.� � � 예루살렘�

거민으로� 각각� 반차를� 따라� 파수하되� -� 예루살렘� � 주민들� 스스로가� � 예루살렘� 시(市)를� 지켰음을� 알�수� 있다.� 그들은� 순번을� 정해� 놓고� 며칠에� 한� 번씩� 차례에따라� 경비� 임무를� 수행하였다.� � 그러나� 그들

의� 책임자는� 레위� 사람들이었다(1절).� � 그런데� 여기의� '반차를� 따라'(*� � � � � � � � � � � � � ,� 베미쉬마로)는�

문자적으로� � � '그의� � 보초장소'를� 뜻한다(Williamson).� 그렇다면� 본� 문구는� 전략적� 중요성을� 갖는� 특

별한� � 장소에�파수꾼을�세워야�한다는�언급으로�이해됨이�무난하다(Fensham). 그런점에서� � 다음의�

문구와는� 분명히� 구별되어야� 한다.� � � 자기� 집� 맞은편을� 지키게� 하라� -� 앞에서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

에는�공동으로� � 파수를�서야함을�언급했으며.� 여기서는�자신의� � 집� 근처는�자신이�서야� � 함을 가

르치고있다.� 이� 같은� 원리는� 각� 개인이� 자신의� 집� 근처에� 있는� 성벽의� 공사를� 담당했던� 것과잘� 조화된

다(3:23).

=====7:5� � � 내� 하나님이�내� 마음을�감동하사� -� 문자적으로는� '내� 하나님이� 그것을�내� 마음� � 속에� 넣

어� 주시사'의� 뜻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느헤미야에게� 인구� 조사를� � 할� � 필요성을절감케� 하셨음을� 뜻한

다.� � � 귀인들과� 민장과� 백성을� 모아� -� '귀인'� 과� '민장'� 그리고� '백성'은� 이스라엘� � 공동체를� 구성하던�

세� 계층이�었다(4:14).� 따라서�본� 문구는�느헤미야가�대회(大會)를� � 소집했었음을�가리킨다.� 사실� 여기의� '모아'(*� � � � � � ,� 카바츠)는� � 국민을� � 대규모적으로소집하는�것을�가리킬�때�주로� 사용되는�단어이다

(삼상� 7:5;28:4;대하� 15:9,10).� � � 그� 보계대로� 계수하게� 하신고로� -� 이것은� 원문상으로는� '족보에� 등

록하다'의� � 의미'야하스'(*� � � � � � � )라는� 하나의� 단어일뿐이다.� 그러나� 족보에� 등록한다는� 것과� 곧� � 인

구조사를� 하는� 것이�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 일임을(Rawlinson,� 민� 1:17-47;대상� � 21:5,6;스� 2:3-62)�

감안한다면,� 개역� 성경의� 이� 같은� 번역은� 얼마든지� 가능할� � 것이다(대상7:5,40;스� 8:1).� � � 내가� 처음

으로� 돌아온� 자의� 보계를� 얻었는데� -� 여기의� � '처음으로� 돌아온� 자의� � 보계'는� 스룹바벨과� 함께� 최초

로� 귀환했던� 사람들(스2:3-62)의� � 등록부이다.� � � 느헤미야에게� � 이� � 같은� '보계'가� 필요했던� 까닭은�

자신들이�마땅히�살아야�할� 곳에� 살지� 않고다른�지방에�살던� � 사람들을�가려내야�할� 필요가�있었기�때

문이다.� 당시에�마땅히� � 예루살렘에� 살아야�될� 백성들�중� 상당수가�대적들의� 노략질�및� � 앞으로의� � 그

럴� � 가능성(1:3)� 때문에� 성벽이� � 없었던� 예루살렘을� 떠나서� 보다� 안전한� 다른� 지역으로� 가서� � 거주했

던것� 같다.� 이에� 따라� 예루살렘은� 그� 면적에� 비하여� 주민들의� 숫자가� 지나치게� 적어서,� 성(城)� 경비가�매우� 힘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이제� 느헤미야는� 포로� � 전에조상들이� 예루살렘에� 살았었고,� 그래

서� 스룹바벨과� 함께� 귀환한�직후에도� � 예루살렘에정착한(6절;스� 2:1,� 70)� 사람들의�후손� 중� 다른� 지역

에�살고�있던� 사람들을 이제는성벽이� 재건된� 예루살렘으로� 이주시켜야� 했다.� 그러기� 위한� 객관적�

자료가� 바로� � 여기의'처음으로� 돌아온� 자의� 보계'였다.� 따라서� 느헤미야가� 만든� 여기의� 보계는� 희생을� �

각오하고� 팔레스틴� 으로� 돌아온�사람들의�훌륭한� 신앙을� 강조하기� 위해�에스라에� 의하여만들어진� 보계

(스� 2장� 강해)와는�그�목적에�있어서�전혀� 다르다.

=====7:6� � � 본절은�스룹바벨과�함께�귀환한�백성들이�포로로�끌려가기�전의 조상들이� � 살았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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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에�각각�정착하였음을�시사해준다.� 본절에�대한� 자세한�해석은�스� 2:1� 주석을� � 참조하라.

=====7:7� � � 본절에� 나오는� 사람들은� 팔레스틴으로의� 귀환을� 주도했던� � 백성들의� � 지도자들이다(스

2:2).� 이� 명단�중�스� 2:2의� 그것과�다른� 점은,� '나하마니'라는�이름이� � 추가된� � 점과� � 몇 사람( '아사

랴',� '라아먀',� '미스베렛',� '느훔')의� 이름�철자가�약간�다르다는점�등이다.

=====7:8-20� � � 이� 부분은� 평신도� 귀환자들� 중� 공인된� 가문� 등록부� (대상� 5:7-9,22)를� � 잃어버리지

않고� 보존함으로써� 자신들의� 혈통을� 입증한� 사람들의� 명부이다.�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가문의� 재

산� 등에� 관한� � 권리는� � 가문� � 등록부에� � 의해서만� � 증명될� � 수� � 있었다(Myers).� 따라서� 백성들은� 지

방� 관헌들에� 의해서� � 기록� � 보관되는� � 가문� � 등록부(대상5:17)나� 가문에서� 보관하는� 가문� 등록부� 둘�

중� 최소한�그� 하나에�의해서�그� 혈통을�확인받아야�자신이�어떤� 가문에�속했으며�또한�그� 가문에서�할

당한� � 권리가� � 무엇인지를입증할수�있었다.

=====7:25-36� � � 이� 부분은�평신도� 귀환자�중� 가문� 등록부를�분실함으로써� 자신들이�이스라엘� � 혈통

임을� 입증치� 못한� 사람들의� 명부이다.� �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의� 조상이� 포로� 시대� � 이전에� 살았던지방

을� 앎으로써,� 자신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임을� 확인받을� 수� 있었다.� � 하지만� 34-38절에� 수록된� 자들은�

가문별로�분류된�것인지�아니면�거주�지역별로� � 분류된것인지�다소�애매하다.

=====7:39-42� � � 제사장�계급의�명부이다(스2:36-39).

=====7:43-45� � 세� 종류의�레위� 사람들에�대한�명부이다(스� 2:40-42).

=====7:46-56� 본래는� 이방인이었으나�이스라엘에� � 포로로� 끌려온� 후� 성전의� � 막일을� � 부과받은자들

의� 명부이다.� 이들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어느� 정도� � 비천한� � 신분으로� � 여겨졌었다.따라서� 이들은� 오

히려� 바벨론에서의� 생활이� 육신적으로� 볼� 때는� 더� 편할� � 수� � 있었다.그럼에도� � 불구하고� � 다른� � 이스

라엘� � 사람들과� � 함께� � 팔레스틴으로� � � 귀환하였다(스2:43-54).

=====7:57-60� 이부분은� 원래� 이방인이었다가� 이스라엘� 포로로� 잡혀� 왕궁의� 경비� 등에� 종사하도록된�

자들의� 명부이다.� 이들도� '느디님� 사람'처럼�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 천민� � 계급으로분류� 되었다(스�

2:55-58).

=====7:61-62� � 평신도�귀환자�중� 가문�등록부를�분실했거나�조상들이�살던�지방도�알지못함으로써�

자신들이� 이스라엘� 혈통임을� 입증치� 못한�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언약� � 공동체의� '회중'(스�

2:59,60)에�편입될�수� 없었다.

=====7:63-65� � 귀환한� 제사장� 중� 가문� 등록부의� 분실로� 자신들이� 제사장의� 후손들임을� 입증치� � 못

한� 경우가�언급되고�있다(스� 2:61-63).

=====7:66-69� 이스라엘�회중과�그들의�모든� 소유물들의�총계이다(스� 2:64-67).

=====7:70-72� � 여기서는� 백성들이� 성전� 재건을� 위하여� 자발적으로� 드리는� 신앙적� 행위가� 묘사� � 되

고� 있다(스� 2:68,69).

=====7:73� � 본절은� 팔레스틴에서� 귀환한� 백성들이� 포로� 시대� 이전의� 조상들이� � 살았던� � 곳으로돌아

갔음을� 말해준다.� � 그러나� 예루살렘에서� 살아야할� 사람들의� 상당수는� � 이방인들의침입을� 두려워한� 나

머지�다른� 지역으로� 이주해�갔었다.� � � 본성에� � 거하였느니라� -� '본성'(*� � � � � � � � � � ,아레이헴)은� 문자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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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그들의� � � 성읍'이란� 뜻이다.� 따라서� � 이것은� 조상� 때부터� 살아� 왔던,� 그래서� 귀환자들이� 각기� �

거주해야�할� 성읍을� � 가리킨다.� � � � 느헤미야�제� 8장

=====8:1� � 본장에서부터� � 에스라가� � 다시� � 전면에� 등장하게� � 된다.� 에스라는� � 에스라� � 10장의사건

이후에� � 모습을�감춘�후�무려� � 14년� 후에� � 다시나타난�것이다. 이처럼 에스라가예루살렘� 성벽� 재건

의� 문제로� 온� 나라가� 법석이었으며�또한� 고리대금으로� 인한� 경제적문제로� 나라가� 떠들썩했는데도� 성경

의� 무대에� 일절� 나타나지� 않은� 것은왜였을까?� 그것은� 느헤미야가� B.C.435년에� 팔레스틴의� 총독으로�

부임한� 후에� 페르시아� 왕실의� 소환으로� 거기에� 약� 1년간(B.C.433)� 다녀온� 것처럼(13:6),� 에스라도� 에

스라서� � 10장� � 사건이마무리지어진(B.C.458)� 후의� 어느� 시점에� 바벨론으로� 돌아갔다� B.C.444년경에�

다시� 돌아왔을�것으로� 추측된다.� � � 칠� 월에� 이르러� -� 여기의� '칠� 월'은� 종교력으로서의� '칠� 월'이며,� 민

간력으로는� 일월이고.� 태양력으로는� 구� 월� 혹은� 시� 월이다.� 그런데� 에스라,� 느헤미야� � 양서(兩棲)를막론하고� 거의� 민간력만을� 사용하다가� 여기서� 특별히� 종교력을� 쓴� 까닭은,� 본장이� � 초막절� 절기와� 관계

가� 있기� 때문이다(9,11,14,16,18).� � � 모든� 백성이...모여� -�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모인� 것은� 나팔절을�

지키기� 위함이었다(레23:23-25;민� 10:120;29:1-6).� 이� 때에는� 나팔을� 크게� 불어� 이� 날을� 기렸다.� 이� �

날을�기리는�목적은�먼저�종교력의�관점에서�보면�안식의�달인� 일곱� 번째� 달을�맞아� � 봉헌하기�위함이

었고.� 또한� 민간력의� 관점에서는� 여호와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새해� 첫날을� 드리기� 위함이었다.� � � 수문�

앞� 광장� -� 이것은� 성전� 동문과� 성벽� 사이의�공터를� 가리키며� 스� 10:9의� '하나님의�전� 앞� 광장'과� 동일

한� 곳으로� 짐작된다(Edwin� Yamauchi,� Raqlinson).� 그리고� � 이'수문'은� 기혼� 샘(the� Gihon� Spring)

과� 연결되었다.� 종교적� 행사가� 주목적인� 백성들이성전과� 가까운� 곳에� 모였을�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

� 학사(學士)� 에스라에게...율법책을� 가지고� 오기를� 청하매� -� 이것은� 그�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심각한� 영적� 기갈� 상태에� 빠져� 있었음을� 보여준다(삼상� 7:2).� 에스라가바벨론에서� 돌아왔을� 때는� 바로� 이

같이� 백성들의� 영적상태가� 극히� � 침체되어� � 있었다.그래서� 그가� 돌아오자마자� 백성들은� 그로부터� 율법

의� 가르침을� 듣기� 원했던� 것이다.� '모세의� 율법책'에� 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다.� � (1)� � 법률� � 자료� �

모음집(R.� � Kittel,M.Noth,� G.� von� Rad),� (2)� 제사� 법전� (W.H.� Kosters,� A.Kuenen,� � A.Lods,� � E.� �

Meyer,B.Stade),� (3)신명기� 율법들(R.� Bowman,� B.� Brownw,� W.� � Scott),(4)� � 모세� � 오경

(W.F.Albright,� J.� Bright,� F.� Cross,� S.Mowinchel,� W.Rudolph,� J.Wellhausen).이� 중� � 본절에서는�

(4)항의� 견해가�가장� 무난할�듯하다(Bruce,� Edwin� Yamauchi).

=====8:2� 제사장� 에스라� -� 이� 같은� 표현은� 에스라가� 백성들을� 가르칠� 자격의� 소유자임을� � 암시한다.�

그가� 실력적으로도�자격자임을�암시하는�표현은� 1절의� '학사� 에스라'일� � 것이다.� � � 남자,� 여자� 무릇� 알

아들을� 만한� 회중� -� 이것은� 아주� 작은� 어린이를� 제외한� � 이스라엘� 사람� 모두,� 즉� 많은� 사람들이� 에스

라의�율법�해석을�들었다는�사실을� 가리키는� � 강조적�표현이다(신� 31:11).� 한편� 이스라엘�백성은�어릴�

적부터� 하나님의� 말씀들뿐만� 아니라� 여러� 의식(意識)들에� 내포된� 의의� 등을� 통해� 지혜와� 영적� 깨달음을� 얻었다(출� 12:26,27;신� 4:6;6:6이하;31:12,13).� 영적� 이해가� 결여된� 미신이나� 맹신은� 이교의� � 특

징이었고(사� 44:18,19),이스라엘의�멸망�또한� 하나님을�아는�지식이�없었기�때문이다(호4:6).

=====8:3� 새벽부터� 오정까지...귀를� 기울였는데� -� 이것은� 율법에� 대한� 백성들의� 열정이� 대단했었음을�

암시해� 준다.� 그때� 거기에� 모인� 백성들은� 무려� 6시간� 이상� 말씀을� 듣고� 있었던� 셈이다(행19:9;20:7).�

이같이�오랜� 시간�동안� 말씀을�받는� 일에 열중했다는� � 것과더불어,� 그들이� 날이� 밝자마자� 모였다는�

것도�그들의�열심을�잘� 드러내준다.

=====8:4� � 에스라가...나무� 강단에� 서매� -� 여기의� '강단'(*� � � � � � � � ,� 믹달)은� 구약� � 성경에서항상� '망

대'� � 혹은� � '성곽'으로� � 번역되는� � 단어이다(창11:4;삿� � 8:9;왕하� � 9:17;대하26:9).따라서� 본� 문구는�

그� 때� 에스라가� 특별히� 마련된� 매우� 높은� 단(檀)� 위에서� 율법을� 가르쳤음을� 말해준다.� 에스라가� 이같이�높은� 곳에서�율법을�가르쳐야�했던� � 이유는그�때�그의� 가르침을�들으러�온� 사람의�수효가�엄청나게�

많았기�때문이었다(2절).� � 즉그렇게�높은�곳에서�가르쳐야�모든사람들이�그의�모습을�볼�수�있었고.�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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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그의� � 목소리를� 잘�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Fensham).� � � 우편에� 선� 자...좌편에� 선� 자� -� 이들이� 구

체적으로�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 제사장들로� 짐작할� 수� 있다.� 마치� 안식일� 날� 회당에서� 몇몇� 사람

이�율법을�번갈아가며� � 봉독하였듯이,� 본문의� 13인도�에스라�곁에서�차례로�율법�내용들을�읽었으리라�

생각된다(Kidner).

=====8:5� 모든� 백성이�일어서니라� -� 이와� 같은� 백성들의�태도는�하나님의�말씀에�대한� � 경외심의�외

적인�표현이며(Fensham,� 삿� 3:20;욥� 29:8;겔� 2:1).� 아울러�백성들이 하나님의말씀을� 온전히� 받아

들이며�또� 순종할�자세가�되어�있었음을�잘�보여준다.

=====8:6� 본절의� 내용은� 율법을� 가르치기� 직전에� 이루어졌다.� � � 에스라가...여호와를� 송축하매� -� 유

다인들의� 회당� 예배시에도� 성경� 말씀을� � 봉독하기전에� 여호와를� 송축하는� 절차가� 있었다(Edwin�

Yamauchi).이러한� 절차가� 에스라� 시대에도� 여전히� 적용된� 것이라� 보여진다.� � � 광대하신� 하나님� -� 구

약� 성경� 중에서� 이와� 유사한� 표현이� 발견되기는� � 하지만(9:32;신� 10:17;렘� 32:18),동일한� 것은� 없다.�

그러나� 아람어나� 페르시아어의� 고대� 문헌에서는� 이와� 동일한� 표현이� 자주� 발견된다.� 바로� 이런� 점� 때

문에�이� 표현이� 바벨론적� 기원을갖는� 것으로� 이해될�수� 있다(Bowman).� 사실� 본서를� 기록했던� 느헤미

야는� 페르시아에서� 출생하여� 거기서� 성장했다.� 아무튼� 본� 문구는� 하나님의� 능력이� 크며,� 또한� � 그분의

통치권이� 온� 세상에� 미침을� 뜻한다.� � � 손을� 들고� 아멘� 아멘� 응답하고...경배하였느니라� -� 이것은� 에스

라의� � 송축에� � 대한백성들의� 삼중적� 응답이다.� 그� 중� '손을� 들고'는� '광대하신� 하나님'께� 의지할� � 수밖

에없을� 만큼� 부족함을� 시인하는� 외적� 표현이다(Williamson,� 스� 9;5;시� 28;2;134;2).� � 백성들은� 잠시�

후� 에스라에� 의하여� 들려질� 율법� 말씀을� 통하여� 영적� 기갈이라는� � 부족을채움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아멘� 아멘� 응답하고'는� 하나님이� 광대하시다는� � 에스라의� 말에� 백성들이� 온전히� 동감했었음을�

말해준다(Williamson,� 5:13).� � '아멘'이라는� 표현이� 집회시� 회중들의� 응답으로� 사용된� 예는� 다윗� � 시

대� � 때부터� � 발견된다(대상16:36).� 후에� 이것은� 회당에서도� 사용되었고� 신약� 시대의� 교회에서도� 여전

히� 사용되고있다(고전� 14:16).� '몸을� 굽혀...경배하였느니라'는� 하나님에�대한� � 공경심의� � 외적인표현이

다(대하7:3).� 그러나� 이러한� 행동이� 끝난� 후에는� 다시� 일어나서� 에스라를� �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

었을�것이다.� 한편� '몸을� 굽혀'에� 해당하는�단어는(*� � � � � � ,� 카다드)� 구약� 성경에� 15회� 등장하며.� 항상�

'경배하다'는� 말과� � 함께� � 언급된다(창24:26,48;43:28;출� 4:31;12:27등).

=====8:7,8� 에스라�등이� 강단� 위에서� 율법책의� 한� 부분을�낭독하고� 나면,� 회중들의�중간� � 중간에�끼

어있던�레위�사람들이�그�주변의�백성들에게�그것을�다시� 낭독한�후� � 그� � 의미를가르쳐�주었음을�말하

고� 있다.� � � 예수아...블라야와� 레위� 사람들� -� 이것은� '예수아...블라야와� 그� 밖의� 레위� 사람들'로� 번역함

이�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여기의� '예수아...블라야'도� 레위� 사람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예수아'는� '

그가� 구원하실� 것이다'의� 뜻이며� '블라야'는� '여호와께서구별하셨다'� 의� 의미이다.� � � 바니� -� '세워진'의�

뜻으로� '르흠'의� 부친이다(3:17).� � � 세레뱌� -� 에스라와�함께� 바벨론으로�부터�귀환했던�사람이다(스

8:18). 그이름의의미는� '여호와께서� 열(熱)을� 보내셨다'이다.� � � 야민� -� '오른� 손'의� 의미이다.� � � 악굽�-� '교활한'의� 의미이다.� � � 사브대� -� 알려진� 바가� 없다.� � � 호디야� -� 느헤미야의� 언약서에� 인친� 두� 명의�

레위사람� � 중� � 하나일� � 것이다(10:10,13).� 그� 의미는� '유대인� 여자'이다.� � � 마아세야� -� 4절의� '마아세

야'와� 동일인� 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 의미는� � '여호와의일'이다.� � � 그리다� -� 이방� 여인을� 아내로� 취했

다가�다시� 내보냈던�사람이다(스� 10:23).� 그의미는� '불구가�됨'이다.� � � 아사랴� -� '여호와께서�도우셨다'

의� 뜻이다.� � � 요사밧� -� 에스라가�귀환하면서�함께�가져온�물품들을�인수한사람으로�그의부친은� '예수아

'이다(스� 8:33).� 본서� 11:16에서는� 하나님의� 전� 바깥� 일을� 맡은� 자로서� � 언급된다.� 그� 이름의� 의미는�

'여호와께서�판단하신다'이다.� � � 하난� -� '은총'의�의미이다.� � � 해석하여(* � � � � � , 메포라쉬)� -� 이것은� '

분명히�하다'혹은� '쪼개다'의�뜻이� � 있는� 동사� '파라쉬'(*� � � � � � )의� 강조형이다.� 한편� 당시의�유대� 사람

들이� 바벨론� 포로� 생활을� 오래했던� 사람들의� 후예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대부분은� 히브리어를� 잘� 알지�

못했을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예수님�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므로�우리는�여기의� � '그� 뜻을� 해석

하여'가� '해설'의� 의미를� 담고� 있음은� 물론이고.� 히브리어로� 기록된� 모세오경을� 아람어로� 구술� 번역해�

Page 41: 느헤미아제1장 - Christian Monitorchristianmonitor.net/jusuk/nehemia.pdf성을갖고있는무리로묘사되고있다(사27:13;겔34:4,16:미4:6;습3:19).한편,'하늘끝'은

주는�것을�가리킨다고도�이해된다.

=====8:9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 어떤� 학자들은� 신년절� 행사� 절차� 중� � 하나에� 우

는� 것이� 포함된다고� 주장한다(F.F.� Hcidberg,� J.C.� de� Moor,� Mowinckel,� � N.H.Snaith).� 하지만� 그�

주장을�뒷받침할�만한� 단서가�없으며�또한� 본문에서�저자는� � 신년절의�구체적인� 행사�절차들을�일일이�

열거하지�않고�다만� 자신의�기술� 의도나� � 주제에다�초점을�맞추고�있을� 뿐이라는�점에서�그� 주장은�설

득력이� 약하다.� � 그보다는� � 백성들이� '말씀'을� 통해�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의미에서� (대하�

34:19;롬� 3:20)� � 눈물을� 흘린� 것으로� 봄이� 무난하겠다(Williamson).� � �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兼)학사�에스라� -� 이같이�두� 사람이동시에 언급되고있는� 것은� 이� 두사람이� 동시대� 인물이었음을� 단

적으로� 증명해준다.� 그러나� 그� 두� 사람에게� 각기� 적용된� 직함� 곧� '총독'과� '제사장� 겸� 학사'는� 그들의�

사역이� 성격상� 차이가있었음을� 보여� 준다.� 즉,� 한� 사람은� 정치적� 행정적� 사역을,� 또� 한� 사람은� 종교적�

사역을�주로� 수행하고�있었던�것이다.� 따라서�위의� 두� 사람은�상호� � 보완적으로 하나님의일을한� 셈이

었다.� 그런데� 여기의� '총독'(*� � � � � � � � � � ,티르솨타)이� 본서에서� � 느헤미야가� 자신을� 가리킬때�적용한� '

총독'(*� � � � � � ,페하)� 보다는� 높은� 직책이라고� 보고서,� � '티르솨타'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부분(10:1)인�

8-10장은� 느헤미야가� 기록하지� 아니했을것이라는� 주장을� 펴는� 학자들도있다.� 그러나� 강� 서편� 전체를�

통할하는� 총독을� � 가리키는� 3:7에서도� (이� 점에� 대해서도� 다소� 논란이� 있긴� 하지만)� '페하'가� 사용된�

점� � 등으로� 미루어,� 히브리어� 직함만으로� 위의� 주장을� 고집하기는� 무리일� 것이라� 본다.� � � 이르기를(*

� � � � ,요메르)� -� 이것은� '말하다'를� 뜻하는� 동사� '아마르'(*� � � � � � )의3인칭� � 단수형이다.� � 그래

서� � 어떤학자들은� (1)� 이� 동사의�주어인� '느헤미야'.� � '에스라'.� '레위�사람들'� 중에서� '느헤미야'와� � '레

위� � 사람들'을� � 탈락시키거나(Rudolph),(2)� '느헤미야'만� 놔두고� 나머지� 둘을� 탈락시켜야� 한다고

(M.Noth)� � 주장한다.� � 그러나첫째,� 히브리� 어법상� 단수� 동사에� 복수� 주어가� 자연스럽지는� 않으나� 불

가능한� 것은� 아니며� � 둘째,� 사본학적인� 충분한� 입증없이� 본문을� 고치는� 일은� 위험하며� 셋째,� � 여기와

병행� 구절이라고� 할� 수� 있는� 에스드라상� 5:40과� 칠십인역이� 에스라와� 느헤미야를� 모두언급하고� 있다

는� 점�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이러한� 주장은� 무리라� 하겠다(Fensham).� � � 오늘은...울지말라� -� 나팔절은�

그� 성격상�마땅히�기뻐하며�즐거워�해야�할� � 절기였다(레� 23:24,25;민� 29:1-6;신� 12:7,12).

=====8:10�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 '살진것'(*� � � � � � � � � � � ,� 마쉬마님)은� 짐승의� � 가장� 먹

기좋은�부분을� 가리킨다(Fensham).� 따라서�이것은�레위기에서� 먹지� 말도록� � 금지하고�있는� 기름� 부위

와는� 전혀� 다르다(Kidner,� Williamson).� 한편� '단� 것'은� 포도즙에물을� 섞은� 음료를� 가리키는� 듯하다.�

사실� 고대� 증근동� 사회에서는� 이러한� � 음료가� � 잘알려져� 있었다(Fensham).� 그러므로� 본� 문구는� 잔치�

분위기가� 충분히� 날� 수� 있도록� � 흥을� 돋울만한� 진미(珍味)들을� 먹으라는� 명령으로� 볼� 수� 있다(Kidner).� � � 예비치� 못한� 자에게는� 너희가� 나누어� 주라� -� 여기의� '예비치� 못한� 자'는� � 여러가지사정으

로� 인하여� 먹고� 마실� 수� 없는자들을� 뜻한다.� 아마� 여기에는� 주로� 가난한� 자들과나그네들이� 포함될� 것

이다(LXX,� Fensham,� 신� 16:14).� 유대인들에게는� 즐거운� 날에� � 어려운� 처지에� 놓인� 자들을� 돌아보아�

필요한� 것들을� 제공함으로써� 함께� 즐거움에� 동참토록� 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었다(삼하� 6:19;에�

9:22).이와같이�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어� 사랑을� 베푸는� 일은� 이� 축제를�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

하는� 축제가� 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Kidner).즉,� 백성들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들에게� 자비와� 긍휼

을� � 베풂으로써�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베푸신� 은혜를� 회상하며� 기뻐할� 수� 있었던� 것이다.� � �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 '힘'(*� � � � � � � � ,� 마우제크)은� � '산꼭대기'� 혹� '방파제'의� 의미이다.�

따라서� 본� 문구는� 여호와께서� 백성들의� 방파제� 혹은� � 보호자가� 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백성들이�

비록� 통회해야� 할(9절)� 죄를� 갖고� � 있었다고� 하더라도� 계속� 고뇌에� 빠져� 있을� 것이� 아니라� 회개� 후에�

오직� 여호와를� 의지함으로써,� 그들은� 방파제가� 되시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말미암아� 율법의� 정죄로

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 것이다(Fensham,� Williamson).� 바로� 그런� 점에서� 백성들은� 울지말고�

성일을� � 지킴으로써� � 여호와를� � 기뻐해야만� � 했다.� '사람의� 제일되고� 가장� � 높은목적은� 하나님을� 영화

롭게�하고�주님만을�영원토록�온전히�즐거워하는�것이다'(웨스트민스터�교리문답�제1번).

Page 42: 느헤미아제1장 - Christian Monitorchristianmonitor.net/jusuk/nehemia.pdf성을갖고있는무리로묘사되고있다(사27:13;겔34:4,16:미4:6;습3:19).한편,'하늘끝'은

=====8:11� 본절에서� 언급되는� 레위� 사람들의� 행동은� 마치� 단순한� 반복� 내지는� 불필요한� � 행위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에스라가� 율법을� 낭독한� 것을� 회중들� 틈의� 레위사람들

이�다시�읽어주고�해석해�주었듯이(7,� 8절)� 의사� 소통� 수단이�발달하지� � 못했던� � 당시의� � 상황에서 레

위인들의� � � 중재는� � � 반드시� � � 필요한 것이었다(Willlamson).

=====8:12� � 본절의� � 강조점은� 백성들이� 에스라의� 명령을� 그대로� 준수했다는� 데� 있다.� 특히� � 우리는�

8절에서와� 마찬가지로� 본절에서도� 에스라의� 율법해석의� 권위와� 그� 효력이� 강조되고� 있음에� 유의해� 볼�

수� 있다.� 처음� 율법이� 수여된� 이래로� 오랜� 세월이� 경과하면서� 삶의� 양상이나� 민족적� 상황이� 변화하였

기� 때문에� 율법� 자체가� 상징적인� 권위를� 지니고는있지만� 실제적인� 면에서는� 마치� 골동품처럼� � 여겨졌

을� 수가� 있다.� 따라서� 에스라의� 율법� 해석을� 통해� 비로소� 그� 율법� 조항들은� 실천적인� 생명력을� 지닌�

것으로�이해되고�이스라엘�공동체의�구체적인�삶� 속에� 적용될�수� 있었을것이다(Williamson).

=====8:13� 본절은�에스라의�말씀�운동이�상당한�호응을�얻고�있었음을�단적으로�보여준다.� � � 그이튿

날� -� 1-12절의� 사건이� 있은� 그� 다음� 날이다.� 종교력으로는� 7월� 2일.� � 민간력으로는� 1월� 2일이었다.�

이� 때� 백성들은� 모두� 자신들의� 집으로�돌아갔던� � 것으로� � 보인다.� 그러나� 지도급�인사들은�계속� � 에스

라� 곁에� � 남아서� � 말씀을� 보다� 확실히� � 배우고자� 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 가족은� 물론이고(신�

6:6,7)� 여타� � 백성들을 지도하고교육하기� 위한� 실천적� 목적에서� 율법의� 의미를� 깊이� 깨달아야� 할�

필요성을� 느꼈기� � 때문이다(10,12절).� � � 백성의� 족장들...말씀을� 밝히� 알고자� 하여� -� '백성의� 족장'은�

한� 가문의� � 우두머리를� 가리킬� 것이다(7:8).� 한편� � '밝히� 알고자� 하여'(*� � � � � � � � � � � � ,� 레하스킬)는� �

원래'이해하다'� 혹은� '가르치다'등의� 뜻이� 있는� 동사� '사칼(*� � � � � � )의� 사역형으로서,� � 배움을� 통하여�

어떤� 지식에� 통달하고� 그� 결과� 삶의� 지혜를� 터득하는� 것을� 가리킬때� 자주사용된다(삼상� 18:14;대하�

30:22;시� 32:8).� � � 제사장들과�레위�사람들� -� 이들은�성전� 봉사� 이외에도�백성들을 가 르 치 는� �

책임도있었다(레� 10:11;대하� 17:8,9;렘� 8:7-9;호� 4:6;말� 2:7,8).� � � 학사� 에스라의� 곳에� -� 문자적로는�

'학사� 에스라의�주변에'이다.

=====8:14� 본절은� 에스라가� 족장� 및� 종교� 지도자들(13절)과� 함께� 율법� 말씀을� 연구하던� 중� 초막절

에� 관한� 가르침을� 발견하였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나팔절과� 초막절� � 사이에� � 있는절기인� 대속죄일(7월�

10일)에� � 관한� 언급이�없다는�점이� 이색적이다.� � 일부 학자들은(1)� 에스라� 시대에는� 대속죄일이� 없었

다거나.� (2)� 에스라가� 당시의� 대제사장을� 신임하지� � 못하여� � 대속죄일을� 지키지않는� 쪽을� 선택했다거

나,� 혹은� (3)� 9장에� 백성들이� � 회개에� 관한� 사실이� 보도되고� 있듯이,� 굳이� 대속죄일을� 지킬�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는등의주장을�내세운다.� 그러나�이러한�세� 주장을�뒷받침할�만한�근거는�본문 어

디에도없다.� 따라서� 차라리� 우리는� 율법의� 낭독,� 해설� 및� 여호와의� 은혜를� 찬양하는� � 즐거운분위기� 등

과� 관련된� 본문의� 문맥에� 근거하여� 대속죄일� 행사에� 관한� 기록을� 생략하였을뿐이라고� 봄이� 더� 무난하

겠다(Williamson).� � � 이스라엘�자손은�칠월�절기에�초막에�거할지니라� -� 이것은�레� � 23:34;민

29:12;신16:13에� 대한� 자유스런� 인용이다.� 따라서� 여기의� '칠월� 절기'는� '초막절'을� � 가리킴이분명하

다.� 초막절의� 준수� 목적은� (1)� 출애굽� 후� 광야� 생활� 중� 인도,� 보호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념하고�

기억하며,(2)� 토지� 소산의�추수를�마치면서�감사와�기쁨으로�여호와의�은혜를�기념하는�데에�있었다.

=====8:15� 초막절을� 지키는� 규례,� 특히� 초막을� 만드는� 방법에� 대한� 언급이다.� 본절에� � 언급된나무들�

중� 종려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무� 가지이외의� 것들은� 레� 23:40에� � 나오지� � 않는다.� 그리고� 레� 23:40

에는� 본절에� 없는� '버들'이� 나온다.� � � 감람나무� -� 지중해� 연안국들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신� 8:8에�

의하면� 가나안� 정복이전의� 시기부터� 가나안� 땅에도� 있었다.� � � 들� 감람나무� -� 왕상� 6:23,31,32에� 따르

면� 이� 나무가� 목재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나무에서는� 감람유는� 거의� 산출되지� 않았다.� � � 화석류� -�

나무의� 둥치가� 없는� 관목(灌木)의� 하나로서� 잎이� � 무성한� � 상록수이다(사41:19;55:13;슥� 1:8,10,11).� �� 종려나무� -� 팔레스틴의� '종려� 나무'는� 그� 높이가� 성인� 신장의� 약2-3배� 정도이며� 잎이� 많이� 달린� 줄기�

하나의�길이도�성인의�신장� � 만큼은� � 된다(출� � 15:27;레 23:40;민33:9;시� 92:12;아� 7:8).� � �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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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 무성한� 나무� -� 이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잎이� � 넓어서그늘을� 만들기에� 적절

한�나무일�것이다(NIV,� shade� trees).

=====8:16� � 본절은� 초막을� 지었던� 장소들에� 대한� 언급이다.� � � 지붕� 위에� -� 중근동� 지역의� 가옥들은�

그� 지붕이� 평평하여� 초막을� 세우기에� � 적절하였다(수� 2:6;삼상� 9:25).� 당시� 예루살렘에� 살던� 사람들은�

대개�자신의�집� '지붕� 위에'초막을�지었을�것이다.� � � 뜰� 안에� -� 여기에� � 초막을�지은� 사람들도� � 예루살

렘� � 주민들이었음이� 분명하다.� � � 하나님의� 전� 뜰에� -� 다음의� 두� 곳과� 함께� 타지역� 백성들의�초막을� 짓

는� 장소로� � 사용됐을� 것이다.� � � 수문(水門)� 광장에� -� 1절� 주석을� 참조하라.� � � 에브라임� 문� 광장� -� '에브라임� 문'은� 예루살렘의� 북서쪽에� � 위치했었다(12:39;왕하14:13).� 따라서� '에브라임� 문� 광장'은� 예루

살렘의�북쪽에�있던� 성전과는�가까왔었다.

=====8:17� � 사로� 잡혔다가� 돌아온� 회(會)� 무리� -� 이같은� 명칭은�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의� 구성원이었음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즉� 이� 같은� 명칭은� 비록� 혈통적으로는� 히브리인

들이지만� 제2의� 출애굽� 운동에� 동참하지� 않고� 계속� 바벨론에� 머물고� 있었던� 사람들과� 온갖� 희생을� 각

오하고(스� 2장� 강해)� 귀환한� 사람들을� 예리하게� 구분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스�

3:8;4:1;6:19-21).� � � 눈의� 아들� 여호수아때� -�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마치고� 최초로�가나안� 땅

에들어가서� 살기� 시작한� 때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 � 그� 날까지...이같이� 행함이� 없었으므로� -� 이는� 초

막절� 절기가� 여호수아� 시대로부터그� 당시까지� 한� 번도�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성경

에� 낱낱이�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초막절을� 지켰을� 것이며,� �

그이후에� 초막절을� 지킨� 사실에� 대해서도� 성경이� 증거한다(삿� � 21:19;왕상� � 8:2,65;왕하23:22;대하�

30:26;35:18).� 특히� 최초의� 귀환� 직후에도지켜졌다(스� 3:4).� 따라서� 본� 문구는� 여기의� 초막절� 행사가�

모세�율법이�말하는�근본� 정신에�매우� 합당하게 지켜졌음을�뜻할�것이다(Fensham).

=====8:18� 에스라는...율법책을�낭독하고� -� 이는초막절�절기가�모세� 율법의�가르침대로� � 지켜지고�있

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이다(신� 31:11).� � � 무리가� 칠� 일� 동안� 절기를� 지키고� -� 본문은� 백성들의�

절기� 지키는� 일이� 결코� � 유야무야(有耶無耶)하지� 않았음을� 시사해� 준다.� 즉� 백성들은� 중간에� 집으로�돌아가지�않고끝까지 절기를 지켰던 것이다.� � 백성들은� � 그� � 동안� � 전혀� � 노동하지� � 않으면서

(레23:35,36)� 가난한�자들과�함께� 먹고�마시며�하나님께서�풍성한�수확을�주신 데� � 대해감사하였을�

것이다(레� 23:39;신� 16:13).� 백성들이�그� 초막 생활을 통해서 선조들의광야� 생활을� 상기했

을� 것임은�물론이다(레� 23:43).� � � 제� 팔일에...성회를�열었느니라� -� 여기서� '성회'(*� � � � � � � � ,아체레트)

는� � '마치다'를� 뜻하는� 동사� '아차르(*� � � � � � )에서� 온� 명사로서� 어떤� 행사의� 엄숙한� 종결(Keil)� 혹은�

그와� 관련한� 의식을� 가리킨다(왕하� 10:20;사� 1:13;욜� 1:14;암� 5:21).� 아무튼� 본� 문구도� 초막절� 절기

가�율법대로�시행됐음을�보여주는�한�증거라고�할�수�있다.� � � � 느헤미야�제� 9장

=====9:1� � 그� 달� 이십� 사� 일에...다� 모여� -� '이십사�일'은� 초막절�행사가�완전히�끝난� 22일의이틀�후

였다.� 따라서� 여기� 언급되는� 백성들의� 회집(會集)은� 초막절� 행사와는� 관계없는것이다.� 그런데� 이처럼�백성들이� 다시� 모인� 것은� 하나님께� 대한� 자신들의� 잘못을� 회개하기� 위함이었다.� 비록� 그들이� 칠� 월� �

초하루날에 죄를� � 인하여� � 슬피울기는� � 했지만(8:9),나팔절과� 초막절�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온

전한� 회개를� 할� � 수� � 없었다(8:9,10).따라서� 에스라는� 중요한� 절기들이� 지난� 한날을� 택해서� 백성들로�

하여금� 철저한� 회개를할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한� 것이다.� � � 금식...굵은� 베...티클� -� 이것은� 죄의� 자각

(自覺)으로� 인한� 애통한� 마음의� � 외적인표시이다(Fensham).� 죄의� 회개와� 관련하여� 금식만� 언급되는�부분은� 삼상� 7:6,� 굵은� 베옷을� 입고� 우는� 경우는� 창� 37:34과� 왕상� 21:27,� 그리고� 머리에� 티끌을� 무

릅쓰는� � 것은삼상� 4:12등이다.

=====9:2� 모든� 이방� 사람과� 절교하고� -� 여기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들이� 제시되어� 왔다.� 거기에는�

(1)본장이� 에스라� 10장� 다음에� 놓여져야� 한다고� 보고� 여기의� '절교'가� 이방� 여인들과의� 집단적� 이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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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스� 9,10장)을� 가리킨다고� 하는� 견해(Rudolph,� Myers),� (2)여기에는� 상세한� 언급이� 생략되어� 있

는� 것으로� 보고� 본절의� '절교'는� 그때에� 백성들이이방� 여인들을� 내어� 보냄으로써� 실제로� 이루어졌었다

고� 보는� 견해(Keil),� � (3)통혼(通婚)으로� 인한� 문제와는� 무리한� 것으로� 보고,� 여기의� '절교'는� 사업상으로� 친교를� 갖던이방인들과의� � 관계를� � 단절하기로� � 헌신,� � 결단하는� � 것을� � 가리킨다고� � 하는� � � 견해

(Rawlinson,� Schultz,� Kidner),� (4)그� 당시에� 자격이� 없는� 이방인들이� 초막절� 행사� 등에� 참여했었던�

것으로� 보고.� 본절의� '절교'는� 백성들이� � '금식...굵은� � 베...티끌등을함으로써� 이방인들이� 그것을� 견디

지� 못하여� 자연스럽게� 떨어져� � 나갔다고� � 하는� � 견해(Batten)등이� 있다.� 그러나� 첫째,� 성경의� 한� 부분

을� 충분한� 증거가� 없이� 떼어내어� � 다른� 부분과� 연결시키는� 것은� 극히� 위험하며� 둘째,� 이방� 여인을� 내

어보내는� 일이� 단� � 하루� 혹은� 2,3일� 만에� 이루어질수는� 없었을� 것이며� 셋째,� 그� 당시에는� 예루살렘에� �

사업상� 상주하던� 이방인들이� 있었다(13:16)는� 점� 등으로� 볼� 때,� 위의� 네� 견해� 중� 세번째의것이� 가장�

타당한� 듯하다,� � � 서서� 자기의� 죄와� 열조의� 허물을� 자복� -� 이와같이� 죄에� 대한� 책임의� � 연대� � 의식은

구약에서� 종종� 발견된다(시� 106:6).� 이러한� 연대성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 � 공동체와� 언약을� 맺으

셨다는� 사실에� 기반을� 둔다.� 그리고� 실제로� 본문�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상들의� 죄로� 인한� 고통

을�여전히�받고있었다(1:3).� 이� 같은� 사실은, 조상들의죄가� 후손들과� 전혀� 무관하지� 않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죄에� 대한� 긍극적� 책임은� 엄연히� 각� 개인에게� 있다(겔�

18장� 주제� 강해,� � '조상의� 죄에� 대한� 책임의� 연대성과� 개별성'� 참조).� 한편,� 본장� � 내용� � 중� � '자기의� �

죄'는33-37절에�그리고� '열조의�허물'은� 16-7절에� 각각� 언급된다.

=====9:3� � 낮� 사분지�일� -� 고대�유대인들은�하루를�밤과� 낮의� 각� 사등분씩 팔등분(八等分)했다.�본절의� '낮� 사분지� 일'은� 오전� 6시부터� 9시까지를� 가리킨다.� � � 그� 처소에� 서서...율법책을� 낭독하고� -�

본절의� '처소'는� 사역자의� 자리와� 구별되어백성들에게� 지정된� � 자리를� 뜻한다(Rawlinson,� 8:7).� 한편,�

'율법책을�낭독하고'는� 백성들이�직접� '율법책'을� 읽은�것으로�볼� 수는�없다.� 에스라가�높은�강단위에서�

낭독하면(8:3,4)� 백성들� 중간중간에� 위치했던� 레위인들이� 백성들의� 상용어인� 아람어로� � 번역해주는� 것

으로�봄이� 무난하다(8:7,8).� � � 낮� 사분지�일은� 죄를� 자복하려� -� 여기의� '낮� 사분지�일'은� 오전� 9시부터� �

정오까지를�의미한다.� 그리고� � '죄를� � 자복하며'는� � 하나님의� � 말씀을� � 들은� � 결과이다(8:9;행2:37).

=====9:4� 레위� 사람� 예수아...그나니는� 대에� 올라서서� -� 한편,� 본절에� 열거되는� 사람들의� 신상에� 대

해서는�정확히�밝혀져�있지�않고� 그들의�맡은� 역할� 또한�구체적으로 언급되지않는다.� 그러나� 본� 문

구를� '예수아...그나니는� 레위� 사람의� 대에� 올라서서'로� � 번역함이� 더� 낫다(Rawlinson)는� 점에� 근거해�

볼� 때(KJV,� the� stairs� of� the� Levites� ;� � RSV,the� stairs� of� Levites)이들을� 모두� 레위인� 출신으로� 보

아도� � 무방하겠다(LB,� � NIV)).한편,� '예수아'는� 에스라를� 도와서� 백성들에게� 율법을� 해석해주었던� 레위�

사람들� 중의한� 사람이었다(8:7).� � � 큰� 소리로...여호와께� 부르짖고� -� 여기서� '부르짖고'(*� � � � � � ,� � 자아

크)는� � 고난을당하는� 상황에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기� 위하여� 소리내어� 간구하는� 행동을� 가리킬� 때자

주�사용된다(삿� 6:7;삼상� 8:18;대상� 5:20;시� 22:5).� 따라서�본� � 문구는� � 이스라엘의죄�문제�해결을� 하

나님께�간구하는�행동으로�보면�적절할�것이다.

=====9:5� � 본절에� 등장하는� 사람들� 또한� 4절에서의� '대'에� 올라� 있었던� 자들로� 짐작된다.� � 그근거로

서� 4절에서�여호와께� '부르짖은'� 레위� 사람중�세� 사람이�본절에서�다시� � 언급된다.� � � 갓미엘� -� '하나님

의� 존전'의� 의미이다.� 이� 사람은� 10:9의� '갓미엘'과� 동일인일� � 것이다.� � � 하삽느야� -� '여호와께서� 생각

하심'의� 의미이다.� 에스라와� 함께� 바벨론에서� � 귀환했던� '하사뱌'(10:11)와� 동일인물로� 추정된다.� � � 호

디야� -� 8:7주석을�참조하라.� � � 스바냐� -� '여호와께서�숨기셨다'의� 뜻이다.� � � 브다히야� -� '여호와께서�여

셨다'의� 의미이다.� � � 영원부터�영원까지� 계신� -� 하나님의�초월적�속성을� 강조하는�표현이다.� � � 너희� 하

나님� 여호와� -� 이것은� 여호와께서� 백성들의� 신뢰의� 대상이� 될� 만하며,� 또한당신을� 신뢰하는� 자들에게�

구원을� 배푸시는� 분임을� 강조한다(습� 3:17).� � �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송축하올� 것� -� 주의� 이름을� 높이

는�것은�성경� 전반의�한결같은�명령이다(Rawlinson,� 출� 20:7;시� 72:19;계� 15:4).� 여호와께서는 무

엇이 부족하여우리의� 송축으로� 그� 부족을� 채우시려는� 분이� 결코� 아니다(행� 17:25).� � 하지만� � 사람

Page 45: 느헤미아제1장 - Christian Monitorchristianmonitor.net/jusuk/nehemia.pdf성을갖고있는무리로묘사되고있다(사27:13;겔34:4,16:미4:6;습3:19).한편,'하늘끝'은

을만드신� 목적�중� 하나가�사람과�인격적�교제를� 나누며�또� 사람으로부터�찬양과� � 경배를받으시기�위함

인� 것은� 분명하다(사� 43:21).� 따라서� 우리가� 여호와를� 찬양하는� 일은� 의무이자� 영광스러운�특권이기도�

하다.� 한편,� '이름'은� 히브리적� 사고를� 통해서� 볼� 때� '인격'과� 동일하다(창� 25:19-26� 주제� 강해,� '이름�

짓기'� 참조).

=====9:6� 여기서부터� 본장의� � 마지막� 부분인� 38절까지는� 백성들의� 회개� 기도�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러한� 기도를� 인도한� 것은� � 일단의� 레위인들이었고(5절)� 에스라는� 이들의� 배후에서� 교육하고� 인도하는�

역할을�감당한�듯하다.� 이� 기도문을�가리켜�혹자는�시편� 밖에서찾아볼 수� � 있는� � 가장 아 름 답 고� �

완전한� � 예배 기도문들� � 중의 하나라고� � 평한다(Michaeli).� 백성들의� 거듭되는� 배역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는� 이� 기도시는� 하나님의� 은총과� 능력을� 다

음과�같이� � 회고한다.(1)� 창조에�있어(6절),� (2)� 예굽과�홍해에서(9-11절),� (3)광야와� � 시내에서(12-21

절),(4)� 가나안� 정복� 과정에서(22-25절),� (5)� 사사들을� � 통해서(26-28절),� � (6)선지자들을통해서,� 그리

고� (7)� 현재의� 상황을� 통해(32-37절).� � �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 '여호와'는� '스스로� 계신� 분'이라는� �

뜻으로서'� � 영원부터영원까지� 계신'� 이라는� 문구(5절)와� 매우� 잘� 어울린다.� 이� 칭호는� 하나님께서� � 인

위적으로� 조작된� 이방신들과는� 비교될� 수� 없는� 존재이심을� 강조하는� � 것임이� � 분명하다(시86:10).� � �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 -� '하늘'은� 대기권� 혹은� 궁창(창� 1:8)을,� '하늘들의� 하늘'은보다� 멀리� 떨어져� 있

는� 하늘,� 즉� 우주를� 가리킨다(신� 10:14;왕상� 8:27;시� 148:4).� � � 일월성신� -� 문자적으로는� '모든� 군대

들'의� 뜻으로서,� 주로� '천사들'을� � 가리킬� � 때사용된다(본절에서� '천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체바'와�

동일한� 단어임).� 그러나� � 여기서는� 문맥상� '별들'을� 가리킨다고� 봐야� 한다(창� 1:16,17;시� 95:4,5;104

편;136:5-9).한편,� 이� 천사들이나� 별들은�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면에서� 서로� 밀접한� 연관성을� � 보여준

다(시� 148:3;사� 6:1-4;계4:8,9).� � �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가운데� 모든� 것� -� 지구와� � (창

1:1,9,10), 지구에서살도록� 창조된� 모든� 동식물과� 사람을� 가리킨다(창� 1:20-30).� � � 지으시고(*

� � � ,� 아사)� -� '만들다'의� 의미이다.� 여기에는� 창조의� 의미도� � 포함되어� 있다(창� 1:16).� � � 보존

하시오니(*� � � � � � ,� 하야)� -� '생명을� 주어보존하다'의� 뜻이다(Keil).� 이것은� 하나님께서� (1)자연� 세계를�

만드시고� 그것의� 질서가� 유지되도록� 섭리하시는것(벧후� 3:7)(2)� 생물을� 지시고� 그� 생명을� 계속� 연장시

켜� 주시는�것을� 가리킨다(시� 36:6).� � 따라서일단�창조된�피조물은�스스로�자기� 보존� 능력을� � 갖고� � 있

다는� � 것은� � 어불 성설이다(Rawlinson).

=====9:7� 본절에서는� 그� 많은� 사람들� 중� 오직� '아브람'만을� 택하신� 사실로� 인하여� 영광을� 돌리고� 있

다.� � � 주는� 하나님� 여호와시라� -� 히브리� 원문은� 본� 문구가� 관계� 대명사� '아쉐르'(*� � � � � � )에� 이끌리는�

그� 다음� 문구들에� 의하여� 수식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 � 옛적에� 아브람을� 택하시고� -� 하나님께서� 메소

포타미아� 땅에서� 우상을� 섬기던� � 아브람(수� 24:2)에게� 영광� 중에� 임하여서(행� 7:2)� 고향을� 떠날� 것을�

명령하신� 사실을� 가리킨다(창� 11:31;12:1;행� 7:3).� � � 갈대아�우르에서�인도하여�내시고� -� 우상을� 섬기

던� 아브람을� 본토에서� � 떠나게� � 한것은� 실로�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으로만� 가능한� 일이요� 그야말로� 찬

양받을� � 만한일이었다.� 그런데� '갈대아'는� 유프라테스�강과�티그리스� 강� 사이의� 메소포타미아�지역� � 전

체를� 가리킨다.� 한편,� '우르'는� 메소포타미아� 지역� 중� 페르시아� 만에서� � 약� 250km쯤� � 떨어진� 남부에�

위치했었다.� 바벨론에� � 포로로� 끌려갔던� 유대인들이� 주로� 거주했던� '닙불'은� 우르로부터� 북쪽으로� 약�

150km�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 �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주시고� -� 하나님이� 아브람과� 더불어� 후손에�

관한� 언약을� 맺으면서� 그에게� � '열국의� 아버지'� 란� 뜻의� 아브라함� 이라는� 이름을� 주신� � 것을� � 뜻한다

(창� 17:1-8).

=====9:8� 그� � 마음이...충성됨을� 보시고...언약을� 세우사� -� 이것은� � 하나님께서� � 아브라함의어떤� 선행

이나� 공로� 때문에� 그와� 언약을� 맺으셨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다만� 아브라함이� 여호와� 하나님을� 믿었

을� 때(창� 15:6;� 롬� 4:1-1)� 하나님께서는� 그를� 의롭다� 하셨고,그� 의(義)� 때문에� 그는� 언약� 백성의� 조상이� 되었다.� 그의� 믿음� 조차도� 그의공로가� � 될수� 없는� 것은(롬� 4:2).� 그것� 역시� 하나님의� � 주권적� � 은

혜이기�때문이다(행 7:2,3;엡2:8,9).�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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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 외아들� � 이삭을희생제물로� 기꺼이� 바치고자� 했던� 실천적� 신앙� 또한� 간과될� 수는� 없을� � 것이다(창� �

22장).� � � 가나안�족속과...기르가스�족속의�땅을...주리라� -� 가나안�땅을 기업으로� � 주기로약속하신� 사

실을� 가리킨다(창� 15:7,18-21).� 이� 약속이� 이루어진� 것은,� 약속이� 있은� 지430년이� 지난� 후였다(출�

12:40;갈� 3:17).� 즉,� 그� 약속은� 여호수아와� 백성들이� 요단� 강을� 건너� � 그� 땅을� 정복함으로써� � 성취된

것이다.� 한편,� 가나안� 정복� 당시� 가나안� � 땅에거주했던� 대표적인� 일곱� 족속� 중에는� 본문의� 아모리� 족

속� 대신� 히위� 족속과� 블레셋� 족속이� 들어간다(수� 9:1,2� 주제� 강해,� '가나안의� 일곱� 족속� 참조).� 그리고�

아브라함� � 당시의�가나안�땅에는�초기� 원주민들,� 곧� 르바,� 엡,� 호리,� 수스,� 아낙� 족속� 등이� 거주하였다.� �

� 주는� 의로우심이로소이다� -� 본� 문구� 앞에는� 개역� 성경에서� 번역치� � 아니한� � 접속사'키'(*� � � � )가� 있

다.� 따라서� 본문� '왜냐하면� 당신은� 의로우시기� 때문입니다'의� 의미이다.� 그렇다면� 이는� 가나안� 땅을� 주

시겠다고�하신�하나님의�약속이�지켜질�수밖에�없었던�필연성을�강조하고�있다.

=====9:9� � 여기서부터� 12절까지에서는,� 출애굽시에� 하나님이� 그� 크신� 권능으로� 백성들을� 구출하신�

사실에� 대해� 언급한다.� 이는� 성경� 저자들에� 의해서�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중요한구원� 사건으로� 간주되

었다(시� 78:12;105:27-37;106:7;135:8,9;136:10).� � � 애굽에서� 고난� 받는� 것을� 감찰하시며� -� 애굽에

서�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에게호의적이었던� 왕조가� 무너지고� 새로운� 왕조가� 들어서면서(출� 1:8)�

중한� 노역에� 동원되는� 등� 핍박을� 받았던� 사실을� 말한다(출1:11).� 이러한� 일이� 있을� 때� 백성들의� 부르

짖음이� 있었고,� 그것이� 하나님께� 상달되었다(출2:23).� 한편,� '감찰하시며'(*� � � � � � ,� 라아)는� 원래� '보다

'� 혹은� '알다'의� 뜻으로서,� 자세히� 살펴서� 실제적� 사실을� 바로� 파악하는것을� 가리킨다(삼상� 24:15;왕상�

10:7;왕하� 7:13).� � � 홍해에서� 부르짖음을�들으시고� -� 이� '부르짖음'이� 있었던�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는� 탈출했으나� 홍해가� 그들을� 가로막고� 더구나� 애굽의� 추격군이� 바싹다가왔을때였다(출�

14:10).� 그때� 하나님은� 그�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모세를� 통하여� 홍해가� � 갈라지도록� 역사하셨다(출�

14:21,22).� 한편,'부르짖음'(*� � � � � � ,� 자아크)은� 4절의� '부르짖고'와� 동일한� 단어이다.� 하지만� 부르짖

음의�이유는�다르다(4절).� 그런데�여기서� � 본서의�저자가�시간상� 10절의�내용보다�뒤지는�사건을�먼저�

언급한것은� '고난을� � 감찰하신� 사건'과� '부르짖음을� 들으신� 사건'을� 함께� 묶어� 언급함으로써� 하나님께

서�이스라엘백성들에게�베푸신�은혜가�얼마나�컸었는지를�부각시키고자�함이었다.

=====9:10� 이적과�기사를�베푸사� -� 여기서� '이적'(*� � � � � � ,� 오트)은� 성경에서�주로� � '징조'및'표적'등

으로� 번역되는� 단어로서,� 직접적으로는� 초자연적인� 놀라운� 사건을� 가리키지만그� 사건에� 담겨있는� 의미

를� 더� 강조한다(출� 7:3;왕하� 19:29;시� 105:27).� 따라서� 이� 단어는� 요한복음에서� '표적'으로� 번역되는�

헬라어� '세메이온'(*� � � � � � � � � � � � � � )과� � 거의같은� 뜻으로� 볼� 수� 있다(요� 2:18).� 한편,� '기사'(*� � � � � � � �

� ,� 모페트)는� 특별히� � 놀라운� 사건� 그� 자체에� 강조점이� 있는� 단어이다(렘� 32:20,21).� 따라서� 이것은�

복음서�등에서�흔히� '기사'나� '기적'으로� 번역되는�헬라어� '테라스'(*� � � � � � � � � � )와� 거의�같은� 의미이다

(마� 24:24;막� 13:22;요� 4:48;행� 2:19;살후� 2:9).� � � 바로와...그� 나라� 온� 백성을� 치셨사오니� -� 문자적

으로는� '바로에� � 대하여...그리고그�나라� 온� 백성에�대하여'의� 뜻으로,� 하나님께서� '이적과�기사'를� 누구

에게� 베푸셨는지� 그� 대상을� 말해주는� 문구이다.� � � 이는...교만히� 행함을� 아셨음이라� -� 이것은� 하나님께

서� 바로� 및� 에굽� 백성들에게� '이적과� 기사'를� 보이신� 이유이다.� 그런데� 본절에서� '교만이� 행함'� (*� � � � �

� ,� � 주드)은'끓어오르다',� '거만(오만)하다'는� 뜻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정면으로� 맞서서� 하지� � 말아야�

할� 일을� 하는것을� 뜻한다(출� 18:11;신� 1:43;17:13;18:20;렘� 50:29).� � 구체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들

에게� 중한� 노역을� 부과하고� 아들이� 태어날� 경우는� � 죽이는� � 악행을범한� 것을� 가리킨다(출� 1:11,22).�

그리고� '아셨음이라'(*� � � � � � )는� � 남녀가� � 성관계를통해서� 상대를� 알듯이� 어떤� 사물에� 대한� 분명한� 지

식을� 갖는� 것을� 가리킨다(창� 4:1;출1:8).� � � 오늘날과� 같이� 명예를� 얻으셨나이다� -� 출애굽� 당시에� 보여

주신� 하나님의� 권능이� 너무도� 놀라웠기� 때문에,� 그� 영광스러운� 명성이� 오늘날까지� 잊혀지지� 않고� 있다

는� � 의미이다(NIV,� You� made� a� namefor� yoursself,� which� remains� to� this� day).� 실제로� � 애굽에�

대해�베푸신�기적과�기사로�인하여�하나님께서는�모든�이방� � 백성들에게두려움의대상이� 되셨다(출�

9:16;14:17;15:14-16;수� 2:10).

Page 47: 느헤미아제1장 - Christian Monitorchristianmonitor.net/jusuk/nehemia.pdf성을갖고있는무리로묘사되고있다(사27:13;겔34:4,16:미4:6;습3:19).한편,'하늘끝'은

=====9:11� 출� 14:9-31� 내용의� 요약이다.� � � 돌을� 큰� 물에� 던짐같이� 깊은� 물에� 던지시고� -� 하나님께

서�갈라졌던�물을 합치심으로써� 그� 가운데� 있던� 애굽� 군대를� 수몰(水沒)시키신� 것을� 가리킨다� (출�15:10,11).

=====9:12� � 낮에는� 구름� 기둥...밤에는� 불기둥� -�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은� 별개의� 두� 기둥이아니다.�

다만� 한� 기둥이� 낮과� 밤에� 따라� 이중적인� 현상으로�나타난�것이다(출� 14:24).이� 두� 기둥은�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친히� 인도하시고� 보호하신다는� � 사실을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신적� 임재의� 표상이

었다.� 즉,� 하나님께서는� 백성들� 중에� � 임재하셔서,� 낮에는� 서늘한� 구름기둥으로� 사막의� 뜨거운� 햇빛과�

열기로부터,� 밤에는� � 찬란한불이� 되어(민� 9:15,16)� 사막성� 혹한(酷寒)이나� 동물의� 침입으로부터� 백성들을� � 보호하셨던�것이다.

=====9:13본절은� 14절과� 함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시내� 산� 언약,� 즉� 모세� � 언약을� 주

신�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 � 시내� 산에� 강림하시고� -� 하나님이� 모세에게� 시내� 산� 언약을� 주시기위해서� �

우뢰� � .번개� .� 구름� .� 나팔� 소리와� 함께� 불가운데에� 임재하신� 것을� � 가리킨다(출� � 19:16-18).이때� 백

성들은� 두려움� 중에� � 자신들을� � 성결케하며� � 하나님의� � 임재를� � 기다렸었다(출19:10).� � � 정직한� 규

례..계명을...� 주시고�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같이� � '규례'등을� 주신� 까닭은,� 백성들로� 하

여금� 그것들을� 삶의� 기준으로� 삼게� 하여� 당신의� 백성답게� 살게끔� 하려는� 의도� 때문이었다(레� 9:2;마�

5:48;벧전� 1:15).� 하나님은�이렇게�하심으로써�당신의�언약� 백성� 이스라엘을�통하여�당신의�형상� 혹은�

성품을� 만민� 중에� 드러내려고� 하셨던� 것이다(마5:16).� 바로� 그런� 점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에�

의해서특별한�존재들로�선택되었다고�할� 수� 있는� 것이다(신� 7:6).� 여기의� '규례'(*,� 미쉬파트)는� 자신의�

신분에� 합당한� 행동의� 규범� 혹은� 선악의� 분별을� 가능케� � 해주는삶의� 기준(레� 18:4;시103:6)을� 가리킨

다(8:18).� 이� '규례'는� 원래는� 백성들� 간의� 시비를� 가리는� 일상적� 법률이었을� 것이나,� 시내� 산� 언약이�

백성들에게� 주어지면서� � 거룩한율법을� 가리키는� 표현들� 중의� 하나가� 되었다.� 한편.� '정직한'(*� � � � � � ,�

야솨아르)은� '곧� 바르다'� 혹은� '곧바르게� 하다'의� 뜻을� 갖는� 동사� '야솨르'(*� � � � � � )에서� 파생된� 형용사

로서�백성의�삶을� 바르게� 해주는� '규례'의� 탁월성을� 강조하는� � 단어이다.� � 아무튼본서�기자는�본절에서�

이같은� 수식적인� 형용사를� 반복� 사용함으로써� 하나님의� � 말씀에대한� 예찬(禮讚)을� 아끼지� 않고있다(Rawlinson).� 이와� 비슷한� 경우는� 시편� � 119편에서능히� 발견된다.� 그밖에� � 하나님의� 율법의� 또� 다른

명칭인� '계명'(*� � � � � � � � � ,� 미츠오트)은�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지시하신� 명령을� 가리킨다.� � �

진정한� 율법� -� '율법'(*� � � � � � � � � ,� 토라)은� 구약성경에서� 광범위한� 의미로� � 사용되므로,� 함부로� 그� 뜻

을� 단정하기는� 곤란하다.� 다만� 이� 히브리어는� 하나님의� 뜻을� � 수록한� '법전'(法典)으로서의� � 측면을� �강조한� � 말이다.� 한편,� '진정한'(*� � � � � � � ,에메트)은� '확실한',� '참된',� '신실한'등의� 뜻으로서�여기서는� '

하나님의� 마음을� � 기쁘게� � 할수� 있으리� 만큼� 참된'의� 뜻으로� 쓰였다(수� 24:14;삿� 9:16;대하� 18:15).� �

� 율례(* � ,후킴)� -� 넓은� 의미에서는� 율법을� 가리키는� 또� 다른� 표현으로서� �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주신�

의무와�그에� 부속된�약속까지를�가리킨다.

=====9:14� � 13절이� 하나님께서�친히�강림하셔서�당신의�말씀을�백성들에게�주셨음을 강조한다면,�

본절은� 하나님이� 그� 말씀을� 모세를� 통해서� 백성들에게� 주셨음을� 부각시키고� 있다.그러나� 사실,� 13절과�

14절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내용이다.� 저자는� 유사한� 내용의� 반복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당

신의� 말씀을� 주신� 일을� 강조하려고� 했던� � 것� � 같다.� � � 거룩한� 안식일...알리시며� -� 이처럼� '안식일'이�

본절의� 초두에� 언급되고� 있는것은,안식일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출20:8-11;23:12).� 오랜� 포로�

생활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하고� 지엄하신,� 안식일� 준수에� 관한� 계명이� 철저하게� 이행되지� 않았을� � 수

도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랍비들은� '안식일의� 규례는� 모든� 계명들보다� � 중요하다'고까지하였다(Edwin�

Yamauchi).� 이러한� 안식일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중요하게� � 여겨졌다.즉� (1)� 가나안� 칠� 족속의� 정

복을� 통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나안� 땅에서의� 예표적� � 안식(히� 4:8),� (2)� 믿음을� 통한� 성도들의� 이�

땅에서의� 영적� 안식(마� � 11:28;� � 히� � 4:3),(3)� 주님의� 재림을� 통한� 모든� 성도들의� 신천� � 신지(新天新地)에서의� � 완전한� � 안식(계21:4)을�예표적으로�보여주는�것이기�때문이다.

Page 48: 느헤미아제1장 - Christian Monitorchristianmonitor.net/jusuk/nehemia.pdf성을갖고있는무리로묘사되고있다(사27:13;겔34:4,16:미4:6;습3:19).한편,'하늘끝'은

=====9:15� 본절부터� 21절까지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의� 거역하는� � 모습이그려

진다.� � � 주림을� 인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주시며� -�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주신� 것을� 뜻한다(출� 16:12;

민� 11:6).� 물론� 하나님께서는� 백성에게� '메추라기'� 고기를�먹이기도�하셨지만� (1)� 메추라기는� 계속적으

로� 주어지지� 않았으며,� (2)� 백성들의� 탐욕에� 따라� � 징벌의성격으로� 주어진것(민� � 11:4,31-45)이라는� �

점에서� � 여기서� � 말하는� � '하늘� � 양식'(시78:24;105:40)으로� 보기는� 힘들다.� � � 목마름을� 인하여� 반석

에서� 물을� 내리고� -� (1)� 르비딤에서(출� 17:1-7)와� 신� � 광야에서(민� 20:2-13)� 모세가� 하나님의� 지시대

로� 반석을� 지팡이로� 침으로써� 거기서� 마실� � 물을� 낸것을� 가리킨다(시� 78:24;105:41;사� 48:21).� � � �

주께서...주마� 하신� 땅을...명하셨사오나� -� '주께서'...주마� 하신'은� � 하나님께서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에게� 약속하신� 것을� 뜻한다(창15:18-21;26:3;28:13).� 그리고� '차지하라� 명하셨사오나'는� 출애굽� 직전

에� 모세에게� (출� � 3:8),� 출애굽� 후� 모세를� 포함한� 백성들에게� 명령하신� 것을� 가리킨다(출� 23:31;민�

34:2-12;신� 11:24).

=====9:16� 저희와� 우리� 열조가� 교만히� 하고� -� '저희와� 우리열조'의� 접속사� '-와'(*� � ,� � 웨)를해석적

인� 의미로� 이해하여,� 차라리� '저희� 곧� � 우리열조'로� � 번역함이� � 보다� � 적절하다(Rawlinson).� � � 목을�

굳게� 하여� -� 이� 표현은� 말을� 듣지� 않고� 뻗대는� 완고한� 황소의� 모습에서� � 빌어온� 것으로서(출� 32:9;신�

10:16;왕하� 17:14;대하� 36:13;렘� 7:26)� 하나님의� 뜻을� 거듭하여� 거스리는� 백성들의� 불순종을� 나타낸

다.

=====9:17� 거역하며(* � � � ,� 마엔)� -� '거절하다'혹은� '싫어하다'의� 뜻으로서,� 자신에게� 부과된� 어떤�

일의�실행을�극력�기피하는�것을 가리킨다(출� � 7:14;신� � 25:7;삼상� � 8:19;시77:2).� � � 행하신� 기사

(奇事)를� 생각지�아니하고� -� 율법�준수는�하나님이�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며� 감

사할�때만� 가능하다(출20:2).� 따라서� 하나님께서�이스라엘�백성을� 위하여� 행하신� '기사'를� 생각지�아니

하는� 일은� 곧� 하나님의� 율법을� � 지키지아니하기로� 작정한� 것과� 다름없다.� 한편,� '기사'(*� � � � � � � � � � ,� �

니플로트)는� � '기이한일을� 행하다'의� 뜻을� 갖는� 동사� '팔라'(*� � � � � � )의� 수동형� 분사로서,� � 인간의� � 상

상을초월하는� 현상을� 가리킨다(삼하� 1:26대상� 16:9;욥� 37:5;시� 75:1).� � � 한� 두목을� 세우고...돌아가고

자� 하였사오나� -� 이� 같은� 생각은� 가나안� 땅을� � 정탐했던� 자들� 중� 상당수로부터� 비관적인� 소식을� 전해

들은� 낙심한� 백성들에� 의해서� 이루어졌었다(민� 14:4).� 물론� 그러한� 생각이� 구체화되지는� 않았으나� 그�

생각�자체가 하나님께대한�불신에�기인한�만큼�커다란�범죄임에�분명하였다.� � � 더디� 노(怒)하시며�-� '은혜로우시며� 긍휼히� 여기시며'의� 구체적� � 국면이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의�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

려는� 생각에도� 불구하고� 모세의� 기도를� � 들으사백성들에� 대해� 형벌을� 내리지� 아니하셨다(민�

14:13,19).

=====9:18� � 본절의� 사건은� 앞절의� 사건보다� 분명히� 시간적으로� 앞선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건의�

순서를�바꾸어�언급한�것은,� 본절의�사건이�그범죄의 질에� � 있어서� 보다� 사악하기� 때문이다.� 앞절의�

사건은� 생각에� 그쳤지만,� 본절의� 사건은� 생각을� 거쳐� 행위로� � 구체화� 되기까지� 하였다.� 여기서� 저자는�

하나님에� 대한� 백성들의� 죄의� 강도가� 더� 높아졌지만�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자비를� 베푸셨음을� 의도적으

로�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 �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 이� 같은� 범죄는�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기� � 위해시내� 산으로� 올라가� 있는� 동안� 행해졌었다.� 즉,� 백성들은� 모세가� 산에� 오른� 지� 40일이되도

록� 내려오지� 않자(출� 24:18),� 그가� 죽었을� 것으로� 보고� 금송아지� 우상을� 만든� � 뒤다시� 애굽으로� 돌아

가려고�하였다(출� 32:1-4).� 이� 같은� 범죄의�주요� 원인은 하나님께대한� 강력한� 불만과� 불신앙이

었다.� 특히� 이� 범죄가�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은� � 지얼마되지� 않은� 시점에서� 행해졌다는� 점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 완악함이� � 두드러진다(출� 20:1-6).� � � 이는...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하나님이라� -�

그� 당시� 백성들의� 범죄는� 우상을� � 만들었다는� 데� 있었지� 다른� 신을� 섬겼다는� 데� 있지는� 않았다.� '애굽

에서� 나오게� 하신� 하나님'이라는� 말은� 백성들이� 여전히� 여호와를� 섬길� 의향을� 갖고� 있음을� 시사해주고� �

있다고� 봐야� 한다.� 왜냐하면� 그� 당시� 백성들이� 자신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신� 분이� � 여호와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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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를�리가�없기� 때문이다.� � � 설만하게(* � � � � � � � ,� 네아초트)� -� '업신여기다'� 혹은� '멸시하다'� 등의�

뜻을� 갖는동사� '나아츠'(*� � � � � � )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극한적� � 행동을� 통하여� 어떤� 대상을� 능욕하는�

것을�가리킨다(시� 74:8;겔� 35:12).

=====9:19� � 연하여�긍휼을� 베푸사� -� 문자적으로는� '당신의�크신� 긍휼� 때문에'� 의� 의미다(NIV).한편� '

긍휼'의� 히브리어� '라함(*� � � � � � )은� '자궁'을� 뜻하는� '레헴'과� 같은� 어원을� � 가진� 말로서,� 사랑스러운�

자� 혹은�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자에게� 깊은� 관심과� 연민을나타내는� 것을� 뜻한다(Edwin�

yamauchi).

=====9:20� 선한� 신을� 주사� 저희를� 가르치시며� -�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장로와� 유사들에게� 성령을� 부

어주셔서�그들로�하여금�예언을�하게� � 했던� � 사실을� � 가리키는� � 듯하다(Schultz,Edwin� Yamauchi,� 민�

11:17,25).� 혹자는� 여기의� � '선한� 신'을� 이원론적으로� 보고� '악한신'의� 반대되는� 개념으로� 파악하려고�

한다(Volz).즉,� 이들은� 포로� 후기� 시대의� 신(神)개념이� 페르시아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그러나� � 이러한� 생각은� � 분명히잘못이다.� � 이스라엘에서� � 휠씬� � 이전에� 벌써� � '여호와의� 신'� (삼상� �

16:14),� � '악신'(삼상� 16:14).� � '거짓말하는� 영'(왕상� 22:23)� 등의� � 용어가� � 사용됐다는� 것은,� 본절의'

선한� 신'이� 페르시아의� 영향에� 의한� 것이� 결코� 아니라는� 단적인� 증거이다(Fensham).� � � 만나로...끊어

지지�않게� 하시고...목마름을�인하여�물을� 주시사� -� 15절주석을�참조하라.

=====9:21� 본절은� 신명기� 2:7;8:4;29:5의� 인용인� 듯하다.� � � 사십� 년� -� 출애굽해서� 가나안에� 입성하

기까지의�기간이다(행� 13:18).� � � 기르시되(* � � � ,쿨)� -� '유지시키다'� 혹은� '먹을� 것을� 주다'� 의� 의미이

다(Davids-on,� 삼하� 20:3;왕상� 18:13).

=====9:22본절의� 강조점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을� 주셨다는� 사실이다.� 따라서본절에

서는� 여호수아의� 활약상을� 굳이� 부각시키려고� 하지는� 않는다(Fensham).� � � 나라들과� 족속들을� 저희에

게� 각각� 나누어� 주시매� -� 이것은� 차라리� '나라들과� � 족속들을� 저희에게� 붙이셨고,� 그것들을� 나누어� 주

셨다'로� 번역해야� 보다� 적절하다.� 이같이번역해야� 할� 기본적� 이유는� � 우선� � '주시매'(*� � � � � � ,나탄)가� �

원문상� � '나누어'(*,할라크)보다�앞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한편,� '주시매'는� 성전(聖戰)의� 차원에서� 이해할� 때,� 하나님께서� 특정한� 대적들을� 진멸하시고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 그들에� � 대한완전한� 승리를�

보장해주시는�것을�가리킨다(수� 10:30;11:8;삿� 1:4).� 그리고 '나누어'는� 정복된� 가나안� 땅을� 백성들

에게� 기업으로� 분배해주는� 일을� 나타내는� 이� 사용된� � 단어이다(수� 13:7;18:5,10).� � � 시혼의� 땅...차지

하였나이다� -� 이� 언급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 동부의� 땅을� � 정복한� 것에� 해당된다.� 요단� 서쪽의� 가

나안� 땅� 정복에� 관한언급은� 24,25절에� 있다.� 아무튼� 이� 문구는� 하나님께서� 여러� 족속들에게� � '나누어�

주신'� 결과이다.� 즉,� � 하나님께서는� 그� 지경의� 땅들을�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실� 작정을� 하셨고.� 그� 하나

님의� 절대적� � 의지가� 백성들에� 의해� 성취되었던� 것이다.� 한편,� '시혼'은� 아모리� 족속의� 일과를� 다스리

던� � 왕이었다.� � � 헤스본� 왕의� 당� -� '헤스본'은� '시혼'이� 다스리던� 땅의� 수도였다.� � 따라서� � '헤스본왕'

은� '시혼'을� 의미한다.� 그� 땅의� 위치는� 모압� 땅의� 북쪽이며,� 사해� 북단에서� 북동쪽으로� 약� 25km� 지점

에� 해당한다.� 이� 땅은� 르우벤� 지파에게� 정복됐었다.� � � 바산� 왕� 옥의� 땅� -� 이것은� '시혼의� 땅'� 북쪽� 지

역으로서,� 므낫세� 반� � 지파에� � 의해정복돼었다(민� 21:33).� 한편,� '바산'은� '비옥하고� 돌이� 없는� 평지'의�

뜻으로서,� 그� 범위가� 북으로는� 헤르몬� 산,� 동으로는� 예벨� 드루즈,� 서로는� 갈릴리� 바다� 동쪽의� 산지(山地),� 남으로는� 야르묵� 이남� 약� 10km� 지점까지였다.� 그� 지명이� 의미하듯이,� 이� � 지역은해발�480-690m에� 이르는� 고원� 지대로서� 밀재배와� 목축에� 적당했고(시� 22:12)상수리� 숲으로도(사� 2:13;겔�

27:6)� 유명했다(S� Cohen).

=====9:23� � � 그� 자손을� 하늘의� 별같이� 많게� 하시고� -� 이와� 관련된� 약속은� 아브라함에게� � 최초로주

어졌었다(창� 12:2;13:16;15:5).� 이러한� 약속은� 성취되어� 출애굽� 전에� 이미� 이스라엘백성들은� 엄청난�

숫자로� 불어나� 있었다(출� 1:7).출애굽� 직후의� 인구� 조사� 결과,이스라엘� 백성들은� 장정만� 육십만� 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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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었다(민� 1:46).

=====9:24� 22절이� 요단� 동쪽� 땅의� 정복� 사실을� 다루고� 있는� 반면,� 본절은� 요단� 서쪽,� 즉� 가나안� 땅

의� 정복을�언급하고있다.� � � 가나안�거민� -� 가나안�땅에� 살던�여러� 족속들을�가리킨다(8절;출� 3:8).

=====9:25� 견고한� 성들� -� '가데스'를� 출발한� 이스라엘의� 열� 두� 정탐꾼들은� 가나안� 땅이� � 이스라엘�

백성들의� 힘으로는� 도저히� 정복하기� 곤란할�만큼� 요새화되었다고� 보고한�바� 있었다(민� 13:28).� 실제로�

여리고(수� 2:5),� 아이(수� 7:2),� 립나(수� 10:29,30),� � 라기스(수10:31,32),� 하솔(수� 11:1-13)등� 가나안�

땅� 대부분의� 성읍들이� 요새화되어� 있었다.� � 따라서� 바로� 이와� 같은�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

복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하나님� 은혜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 � 기름진� 땅� -� 가나안�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땅'으로� � 묘사될� � 만큼� � 비옥하였다(민14:7,8;신� 8:7-9;삼상� 14:25-27;왕하� 18:32).� � � 모

든� 아름다운� 물건을� 채운� 집� -� 이것은� 문자적� 으로� 받아들이기� 곤란하다.� 따라서이는� 이스라엘� 백성들

이� 하나님의� 은혜로�말미암아� 가나안�땅에서� 누리게� � 될� � 풍족한삶과� 물질적�축복을�회화적(繪畵的)으로� 표현한� 것으로� 봄이� 무난하다(신� 6:11).� � � 파서� 만든� 우물� -� 팔레스틴� 땅에서는� 연중� 강우량이� 매

우� 적었기� 때문에� 각� 가정마다� 우물을� 파서� 사용하였으며,� 비가� 올� 때에� 빗물을� 저장할� 물탱크도� 필요

하였다(왕하18:31;잠� 5:15).�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미� B.C.1200년� 경에� 방수� 처리된� � 물탱크� � 제조기

술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 � 포도원...감람원...허다한� 과목� -� '포도원'과� '감람원'은� 팔레스틴에서는� 가

장� � 보편적인� 과일� 산출� 근거였다.� 한편,� '허다한� 과목'은� 무화과� 나무,� 모과� 나무,� 사과� 나무,� 편도(扁桃)나무,� 호두� 나무,� 살구� 나무,� 뽕나무�등을� 가리킨다(Rawlinson).� � � 배불리�먹어� 살찌고� -� 항상� 전반적으로� 양식이� 부족했던� 고대� 사회에서� 이� 같은� 모습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얼마나� 큰�

축을� 받았었는지를� 밝혀� 말해준다.� � � 주의� 큰� 복을� 즐겼사오나� -� 문자적으로는� '당신의� 큰� 복� 안에서�

먹고� 마시며� � 즐겼다'의� 의미이다.� 한편,� 칠십인역은� '주의� 큰� 복� 안에서� 마음이� 뺐겼다'로� � 번역하였

다(Rawlinson).

=====9:26� � 순종치�아니하고(* � � ,� 마라)� -� 이� 단어는� 개역� 성경과� 같은� 소극적� 의미로보다는� 보

다� 적극적� 의미인� '배반하여'� 혹은� � '거역하며'로� � 번역하는� � 것이� � 더� � 낫다(시78:17;106:7;호

13:16).� � � 거역하며(* � � � ,� 마라드)� -� 이� 단어는� 앞의� '마라'와� 거의� 비슷한�뜻이지만,� � 그보다� 더�

적극적�반역의�행위를� 가리킨다(왕하� 18:20;대하� 36:3;단� 9:5).� � � 율법을�등� 뒤에� 두고� -� 이것은�하나

님의� 율법의� 가르침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 행동하는� 것을� 가리킨다(시� 50:17).� � � 선지자들을� 죽여� -�

구약� 선지자들의� 메시지의� 거의�대부분� 백성들의� 죄악을� 낱낱이지적하고� 회개�하라고� 부르짖는�내용이

었다(삼상� 7:3).� 따라서� 이러한� 그들의� � 사역의성격상� 많은� 핍박이� 뒤따랐다.� 유대인들의� 전승은� 이사

야,� 예레미야,� 에스겔�등의� � 선지자가�백성들에�의하여�살해당했다고�밝힌다(Rawlinson).� 이� 밖에 아

합과 이세벨에의해서� 죽임을� 당한� 선지자도� 적지� 않았다(왕상� 18:4).� 심지어� 유다의� 요아스왕은� �

자신의�은인이었던�여호야다의�아들�스가랴를�죽이기까지�했다(대하� 24:22;마 23 :37 ;눅11 :47 ) .� � �

크게� 설만(褻慢)하게� 행하였나이다� -� 선지자들을� 죽인� 일� 자체가� 하나님을� � 욕보인것이라는� 뜻이다(18절).� 왜냐하면� 선지자는� 하나님의� 대리인로서� 하나님의� 뜻을� � 전하는� 자이기� 때문에� 이같이� 선지자를�

해하는�일은� 곧� 하나님을�해하려는�것과�동일한�것이다.

=====9:27� 25절까지의� 내용이� 출애굽� 사건부터� 여호수아의� 사망까지의� 내용을� � 담고� � 있다면,본절

에서부터는� 사사� 시대� 이후의� 내용이� 다루어진다.� 그렇다면� 26절에� 언급되는� 백성들의� 패역은� 포로기�

이전의�이스라엘�전� 역사� 기간을�포괄하는�내용으로�볼 수� � 있겠다.� � � 대적의� 손에� 붙이사� -�

여호수아의� 사후(死後).� 백성들이� 하나님을� � 버리고� � 우상을숭배함에� 따라� 하나님께서� 주변의� 이방� 민족들로�하여금�이스라엘�백성들을 공격하여압제케�하신�일을� 가리킨다(삿� 3:7,8).� � � 부르짖을(* � � �

,� 차아크)� -� 고통이� 너무� 심한� 나머지� 그것으로부터의� 구원을� � 위하여� 애타게� 간구하는� 것을� 가리킨다

(신� 26:7;삿� 4:3).� � � 구원자들을�주어...구원하셨거늘� -� 여기의� '구원자들'(*� � � � � � � � � � � � � � ,� 모쉬임)은

'구하다'� 혹은� '구원하다'의� 뜻을� 갖는� 동사� '야솨'(*� � � � � � )의� 사역형� � 분사형으로서구체적으로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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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들'을� 가리킨다(삿� 2:16;3:9).

=====9:28� 저희가� 평강을� 얻은� 후� -� 사사�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사로부터� 구원을� � 받은후� 태

평� 시대를� 맞이했었다(삿� 3:11,30).� 그러나� 사실상� 이� 기간은� 백성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시험을� 받는�

기간이었다.� 즉,� 이� 기간�동안� 백성들은�하나님을�바로섬기는지안�섬기는지를�시험받았던� 것이다.� 따라

서� 만일� 백성들이�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만� � 섬겼다면,� 그들이� 다시�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까닭이� 전혀�

없었다.� � � 다시� 주앞에서�악을�행하므로� -� 이것은�하나님께서�주신�태평� � 기간동안 백성들이다

시�우상을�섬김으로써�하나님의�시험을 통과치 못했던 것을� � 가리킨다(삿� � 3:11,12).� � � 여러�

번� 긍휼을� 발하사� -� 본� 문구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범죄-환난-회개-구원이라는� 악순환이� 수� 차례� � 되

풀이됐음을� 말해준다.� 사사의� 특징이� 백성들을� 외적의� 압제로부터� 구원할� 필요성이� 있을� 때마다� 세우

심�받은데�있었음을�감안한다면�사사�시대� � 동안�이스라엘에�사사가�최소한�열�명이� 넘었다는�것은�곧�

위와�같은� 악순환이�계속적으로�반복됐음을�뜻한다.

=====9:29� 본절과�다음� 절은� 굳이� 시대적으로�구별할�경우,� 왕정� 시대로�볼� 수� 있을� 것이다.� � � 경계

하셨으나(*� � � � � � ,� 우드)� -� '증인'을�의미하는� � '에드'(*� � � � � )라는� � 명사에서파생된 동사로서,� '

증인이� 되다'� 혹은� '경고하다'의� 뜻이다.� 특별히� 이� 단어는� � 구약성경의� 여러� 곳에서� 경고의� 메시지� 자

체,� 혹은� 여러� 가지� 것들을� 증거로� 삼으면서� � 악행자에게는� 반드시� 그에� 따른� 형벌이� 있게� 됨을� 알리

는� 행위를� 나타낼� 때� � 사용되었다(신� 4:26;8:19;32:46;왕상� 21:13;렘� 11:7;32:10,25,44).� � � 준행하

면...삶을� 얻는...계명� -� 이� 구절은� 율법을� 지킴으로써� 구원을� 얻을수� � 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

만� 진정한� 삶은� 주께서� 베푸신� 계명들에� 근거하여� 전심으로그법도를� 따르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을� 뿐

이다.� 한편,� 본문을� � 협의적으로� � 이해하면,율법을� 지켜� 외적� 부정(不淨)에서� � 벗어남으로� 인하여� 성전�출입의� 자격을� 얻는� � 것을말한다고도� 볼� 수� 있다(레� 18:5;겔� 20:11).� 왜냐하면� 하나님의�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사람들에게� 성전에서의� 하나님과의� 교제� 만큼� 더� 가치있는� 삶의� 국면은� 없었기� 때문

이었다(Fensham).� 이렇게� 볼� 경우에� 여기의� '계명'(*� � � � � � � � ,� � 미초트)은� 레위기적� � 의식법을� 주로�

가리킨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 고집하는� 어깨를� 내어밀며� -� 이� 비유는(1)� 짐을� 실은� 짐승이� 앞으로� �

가게� � 하려는주인의� 의사를� 거스려� 그자리에서� 꼼짝하지� 않으려� 취하는� 몸짓(Rawlinson),� � 혹은(2)황

소가�멍에를�메지�않으려고�뒤로�버팅기는�것(Keil)등과 관련이 있다(호� � 4:16;슥7:11).

=====9:30� � 여러� 해� 동안� 용서하시고�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바벨론과� 앗수르에� 붙이시기� 전까지

는� 그들에� 대해서� 특별한� 징벌을� 하지� 않으신것을� 가리킨다(Rawlinosn,� Keil).� 북국� 이스라엘의� 경우,�

하나님께서는� 여로보암의� 적극적� 반역(왕상� 12:25-29)에도� � 불구하고� 무려� 200여� 년을� 참으셨다.� 그

리고� 남국� 유다에� 대해서는� 북국에� 대해서� � 보다도약� 135년을� 더� 인내하셨다.� � � 열방사람의� 손에� 붙

이시고도� -� 북국� 이스라엘은� B.C.722년� 앗수르에,� 남국� � 유다는B.C.� 568년� 바벨론에� 각각� 끌려가게�

하신�것을� 말한다(왕하� 17:23;25:21;사� 42:24).

=====9:31� � 본절에서는�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 해방시키셨던� � 사실을간접

적으로�그러나�강조적으로�언급하고�있다(스� 1:1-3;렘� 4:27).

=====9:32� � 여기서부터는,� 과거� 역사의� 회고에서� 미래에� 대한� 전망과� 그에� 대한� � 대처� � 방안의모색

으로�내용이�전환된다.� � � 능하시고(*� � � � � � ,� 기보르)� -� 이� � 단어는� � (1)� � 하나님의� � 전능성(신

10:17;사9:6),� (2)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원수들과� 대신� 싸우시는� 측면(출15:6;삼

상� 14:6;시� 24:8,사� 42:13을� 강조할� 때� 사용된다.� � � 앗수르� 열왕의� 때로부터� 오늘날까지� -� '앗수르�

열왕'은� 하나님의� 도구가되어� � 이스라엘� 백성을� 징벌했으며(사� 10:5)� 이들의� 뒤를� 이어� 바벨론� 왕들이�

또� 징벌의� � 도구가되었다.� 뿐만� 아니라� 에스라� 당시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페르시아� 왕들의� 지배� � 하

에있었다.� 한편,� 징계의� 도구로� 쓰였던� '앗수르� 열왕'에는� '불'(왕하� 15:19,20),'디글랏빌레셋� 3세'(왕

하15:29;16:7;대상� 5:6,26;대하� 28:20),� '살만에셀'� (왕하� 17:3),� � '사르곤� 5세'(사20:1),� '산헤립'(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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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18:13-16),� '앗술� 바니팔'(대하� 33:11)등이�포함된다.

=====9:33� 모든� 일에� 주로� 공의로우시니� -�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해서� 취하신� 하나님의모든�

조치가�정당하다는�뜻이다(단� 9:14;롬� 3:5,6).� 이어지는�문구에서�그� 이유가� � 설명된다.

=====9:34,35� 이� 부분은� 앞절의� '우리는� 악을� 행하였사오나'에� 대한� 부연� 설명에� 해당된다.� 그중에

서� 34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범죄� 행위가� 전� 역사를� 통해� 모든� 계층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등� 대단히�

보편적이었음을� 지적하며,� 35절은� 이스라엘의� � 범죄가� 배은� 망덕(背恩忘德)의� � 성격을� 띄고� 있는� 지극히�사악한�것임을�말해준다.� � � 나라(* � � � � ,� 말리쿠트)� -� 이것은� 독립된� 국가말한다(Keil).� 바벨

론� � 포로기나� 포로� 귀환기의� 민족적� 예속� 상태와� 대조된다.� � � 넓고� 기름진� 땅� -� 여기의� '넓고'는� (1)�

출애굽� 이전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던� '고센'의� 삼각주(창� 47:27)보다� 팔레스틴이� 더� 넓다는� 사실,�

(2)� 팔레스틴은� � 경작� � 가능지역의� 비율이� 애굽보다� 높다는� 사실,� (3)� 이스라엘� 백성들은� 노력� 여하에�

따라� � 팔레스틴� 이외의� 땅도� 정복할� 수� 있게� (왕상� 4:21)� 약속되었다는� 사실(출� 3:8)� 등과� � 관련시켜�

이해될수� 있다(Rawlinson).� 한편,� '기름진'(*� � � � � � � � � � � ,� 하쉬메나)은� '살찌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 '

솨만'(*� � � � � � )� 의� 사역형이므로� '기름지게� 한'으로� 번역되어야타당하다(Schultz).� 결국� 이것은� 모든�

훌륭한� 자연적� 조건도� 철저하게� 하나님으로� � 부터� 말미암은� 축복이라는� 사실을� 강력히�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신� 11:14;시� 147:8).

=====9:36� � 본절과� 다음� 절에서� 포로에서� 돌아온� 시대의� 상황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 � 우리가� 오

늘날� 종이� 되었삽는데� -� 이것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을� 여전히종의� 상태에� 있는� 것으로� 인

식하고� 있었음을� 시사해준다.� 사실,� 그들은� � 비록� � 바벨론땅에서� 자신들의� 땅으로� 돌아올수는� 있었지

만� 예전의� 주권(主權)을� 되찾지� 못한� � 상황에�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페르시아의� '종'이었음이� 분명했다.� � � 실과를� 먹고...소산을� 누리게� 하신� 땅� -�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시대� 이래� � 살기� 시작하여�

바벧론�땅으로부터�귀환해서도� � 살고 있었던 팔레스틴� � 땅을 가리킨다(24,25,35절).

=====9:37� 이방� 열왕이...많은� 소산을� 얻고� -� 이것은� 페르시아� 정부가� 유대인들로부터� � � 세금을� 거

두어들여갔음을� 시사한다(스� 4:13).� 그� 당시� 페르시아� 정부가� 유대인들로부터� 징수해� 간� 세금액수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당시� 동일하게� 페르시아의� 피정복지였던� 수리아의� 세금� 납부액이� � 일� 년에�

은� 삼백� 달란트였다는� � 헤로도투스(Herodotus)의역사� 기록을� 통해서,� 유대인들의� 고통을� 미루어� 짐작

할�수� 있을� 것이다(Rawlinson).� � � 저희가...몸과�육축을...관할하오니� -� 이것은�전쟁과�관련한� '징병'(徵兵)이나� '징발'(徵發)을� 뜻한다.� 즉,� 페르시아� 정부는�외국과의�전쟁을�위하여� � 유대인들을� � 병사(兵士)로� 뽑아갔거나,� 필요한� 물자를� 거두어갔던� 것이다.� 한편,� 어떤� 이들은,� � 아닥사스다� 왕의� 고관이었던�

에스라(혹은� 느헤미야)가� 이처럼� 페르시아� 제국을� 비방하는� � 투의� 말을� 할� 수� 있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본문의� � 기도는반역을� 기도하려는� 내용이나� 페르시아의� 잔학상을� 고

발하려는� � 내용이� � 아니며,� � 단지언약에� 불충실한� 백성들에게� 닥칠� 수밖에� 없었던� 환난을� 표현하고자�

하는� � 데� � 중점을둔�것이다(Kidner).

=====9:38� 본절은� 9장과� 10장을�자연스럽게� � 이어주는�고리� 역할을�하며� � 내용상으로� � 10장의첫절

로� 이해될� 수도� 있다.� � � 견고한� 언약을� 세워� -� 문자적으로는� '견고함을� 잘라'이다.� 이는� '언약'이라는�

용어의� 기원을� 밝혀준다.� 즉,� 계약� 당사자들이� 계약� 의무를� 다짐하기� 위해,� 그리고� 언약을어겼을� 경우

에는�죽음을�면치�못한다는�상징적�의식으로서 짐승을� 잡아� 둘로� 쪼갠� 후그사이를� 지나면서� 엄

숙히� 선서하던� 고대� 사회의계약� 체결� 관습에서� 유래하여� '메리트'가� '언약'의�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 �

방백들...레위� 사람들...제사장들� -� 이들은� 모두� 백성들의� � 지도자들이다.� � 여기서지도자들이� 먼저� 죄악

에서� 떠나� 모범적인� 삶을� 살아가겠다는� 결단이� 암시되고있다.� � � 인을� 치나이다� -� 문자적으로는� '도장�

위에� 있나이다'이다.� 이는� 구체적으로� 진흙에새겨구워�만든�도장을�언약문(言約文)에� 찍는� 행위를�가리킨다.� � � � 느헤미야�제� 1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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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하가랴의�아들� 방백� 느헤미야� -� 총독�느헤미야를�가리킨다.� 이처럼�총독 느헤미야가�

언약서에� 인친� 자의� 명단� 초두에� 나오는� 것은,� 그가� 금번과� 같은� 신앙� 운동의� 주도자였음을� 시사한다.�

'하가랴'라는� 이름에� 대해서는� 1:1�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방백'(*� � � � � � � � � � ,� 티르솨타)은� 8:9에서

는� '총독'으로� 번역된� 단어이다.� � � 시드기야� -� 본절의� '느헤미야'와� '시드기야'� 사이에는� 접속사� '와우

'(*� � )가� 있다.그러나� '시드기야'와� 2절� 초두의� '스라야'� 사이� 부터에는� 접속사가� 사용되지� � 않는다.결

국� 이는� 본절의� 두사람,� 즉� '느헤미야'와� '시드기야'가� � 2-8절의� � 인물들과� � 구별된자들이었음을� 암시

해� 준다.� 즉,� 2-8절의� 인물들이� 제사장� 곧� 종교� 지도자들이었던� � 데반하여� 본절의� 두� 사람은� 정치적�

권세를�가졌던�지도자들이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본다면� 여기의� '시드기야'는� 총독� 느헤미야의� 서

기관이었던� '사독'(13:13)과� 동일� � 인물로� 간주될� � 수� 있을� 것이다.� 두� 이름이� 모두� '의롭다'를� 뜻하는�

'차다크'(*� � � � � � � )라는� 어근에서�파생됐다는�점도�이� 같은� 추측을�어느� 정도�됫받침한다.

=====10:2� � 여기서부터� 8절까지에� 나열된� 21명의� 제사장� 명단� 중� 적어도� 열� 다섯은� 개인� � 이름이�

아닌� 가계명(家系名)이다.� 12장에� 기록된� 1차� 귀환자들의� 명단에� 또다시� 여기� 기록된� 이름들이� 나온다는� 점이� 그� 사실을� 됫받침해준다.� 그� 예로� 스라야,� 예레미야,� 아나랴� 등을� 들� 수� 있다(12:1-7).� 이�

같은� 점에서� 볼� 때� 당시� 종교계의� 으뜸가는� 지도자였던(8:1,13)� 에스라의� 이름이� 본� 명단에서� 누락된�

사실도� 이해될� 수� 었다.� 즉,� � 에스라는� 그가� 속했던� 가문의� 우두머리가� 인을� 침으로써� 개인적으로� 인

을� 칠� 필요가� � 없었던것이다(Kidner).� � � 스라야� -� 스� 2:2의� '스라야'이다(7:7;12:1;스� 2:2).� 따라서� 이

것은� 느헤미야� � 당시의� 제사장� 개인� 이름이� 아니라� 한� 가문의� 이름으로� 봐야� 할� 것이다.� '에스라'는� �

바로이� 가문에� 속했었다(스� 7:1).� � � 아사랴� -� 이것도� 제사장� 개인� 이름이� 아닌� 가문명(家門名)으로� 봄이� � 타당할� � 것이다.� � 그�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도우셨다'이다.� � � 예레미야� -� 스룹바벨과� 함께� 귀환

했던�제사장�가문의�이름이다.� 그� 이름의�의미는'여호와께서�일어나실�것이다'이다.

=====10:3� 바스홀� -� 스룹바벨과�함께� 귀환했던� 제사장�가문의� 가계명(家系名)이다(스� 2:38).� � � 아마랴� -� 스룹바벨과� 같이� 귀환했던� 제사장� 가문의� � 이름으로서(12:2),� � '여호와께서� � 말씀하셨다'의� 뜻이

다.� � � 말기야� -� '여호와는�왕'이란� 뜻이다.� 구체적으로�누군지는�알� 수� 없다.

=====10:4핫두스� -� 스룹바벨과�함께�귀환한�제사장�가문으로서(12:2),� '대적자'� � 의� � 의미이다.� � � 스

바냐� -� '여호와께서� 숨기셨다'� 의� 의미이다.� 이것� 역시� 제사장� 가문의� � 가계명이다(12:14).� � � 말룩� -�

스룹바벨과�함께�귀환한�제사장�가문으로서(12:2),� '통치하는'의� 의미이다.

=====10:5� 하림� -� 스룹바벨과� 함께� 귀환했던� 제사장� 가문의� 가계명이다(스� 2:39).� � � 므레못� -� 제사

장� 가문의� 가계명인� 듯하다(12:15).� '높은곳들'의� 뜻이다.� � � 오바댜� -� '여호와를� 섬김'의� 의미이다

(12:4).

=====10:6� 다나엘� -� 본� 문맥이� 제사장� 직분의� 가문명을� 나열하고� 있는� 부분이라는� 점에서� � 에스라

와� 함께� 귀환했던� 이다말� 자손의� 제사장일� 가능성은� 희박하다(스� 8:2).� '하나님의재판관'의� 의미이다.� �

� 긴느돈� -� 스룹바벨과� 함께� 귀환했던� '긴느도이'와� 동일한� 가문인� 듯하다(12:4).'정원사'의� 뜻이다.� � �

바룩� -� '복된'이란� 뜻이다.

=====10:7� 므술람� -� '동맹한'의� 뜻이다.� � � 아비야� -� 스룹바벨과� 함께� 귀환한� 제사장� 가문이다

(12:17).'아버지는� 여호와'의� 뜻이다.� � � 미야민� -� 최초로� 귀환한� 제사장� 가족의� 하나로서(12:5),'운이�

좋은'의� 의미이다.

=====10:8� � 마아시야� -� '여호와는� 피난처이시다'� 의� 뜻이다.� 이것은� 12:5의� '마아댜'의� 오기인듯하다

(Rawlinson).� � � 빌개� -� 스룹바벨과� 함께� 귀환했던� 제사장� 가문의� 이름'빌가'(12:5,18)와� 동일하다.'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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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의� 뜻이다.� � � 스마야� -� 제사장�가문의�가문명이다(12:18).� '여호와께서�들으셨다'의� 뜻이다.

=====10:9� 여기서부터� 13절까지는� 레위� 사람들의� 명단이다.� 그러나� 제사장의� � 경우와는� � 달리가계

명(家系名)이� 아닌� 개인명(個人名)이다.� 이와같이� 봐야� 할� 까닭은,� 여기에� 나열되는� 이름들이� 8장과� 9장에서� 대부분�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Fensham).� � � 아사냐의� 아들� 예수아� -� 9:4의� '예수아'인� 뜻하

다.� � � 헤나닷의� 자손� 중� 빈누이� -� 9:4의� '바니'이다(3:18;9:4).� 한편,� '헤나닷'은� 스룹바벨과� 함께� 귀환

한�레위�사람들의�조상이다(스� 3:9).� � � 갓미엘� -� 9:4,5을� 참조하라.

=====10:10� � 스바냐� -� 9:4,5에서도� 여기처럼� '갓미엘'과� 나란히� 언급되고� 있다.� � � 호디야� -� 9:5을�

참조하라.� � � 그리다� -� 에스라를� 도와서� 백성들에게� 율법을� 해석하여� 깨닫게� 해준� 사람이다(8:7;스�

10:23).� '불구가� 됨'의� 의미이다.� � � 블라야� -� 에스라를� 도와� 백성들에게� 율법을� 깨우쳐� 준사람(8:7).� '

여호와께서� 구별하셨다'의� 뜻이다.� � � 하난� -� 이� 사람도� 백성들에게� 율법을� 해석해� 주는� 이로써� 에스라

를�도왔다(8:7).'은총'이란�뜻이다.

=====10:11� � 미가� -� 여기서만� 언급되는� 인물이다.'누가� 여호와와�같은가?'의� 뜻이다.� � � 르홉� -� '넓이

'의�뜻이다.� � � 하사뱌� -� 에스라와�함께� 귀환한�인물이다(스� 8:19).� '여호와께서�생각하셨다'의�뜻이다.

=====10:12� � 삭굴� -� '염두에� 두는'의� 의미이다.� � � 세레뱌� -� 에스라와� 함께� 귀환하였고,� 그를� 도와서�

백성들에게� 율법을� 깨우쳐� 준� 인물이다(8:7;스� 8:18).� � � 스바냐� -� 9:4을� 참조하라.'여호와께서� 숨기셨

다'의� 뜻이다.

=====10:13� 호디야� -� 9:5의� '호디야'나� 에스라를� 도와서� 율법을� 깨닫게� 한� 사람(8:7)중� 하나일것이

다.� � � 바니� -� 9:4을� 참조하라.� 에스라를� 도와서� 율법을� 백성들에게� 가르친� 사람들과도� 동일인일� 것이

다(8:7).� � � 브니누� -� 오직� 여기서만�나오는�이름으로서� '우리의�아들'이란�뜻이다.

=====10:14� 여기서부터� 27절까지에서는� 일반� 백성들의� 가문명(家門名)이� 나열되고� 있다.� 14-19절의� � 이름들이� 대부분� 에스라� 2장의� 귀환� 가족의� 이름과� � 중복된다는� 점은� 그� 사실을능히� 증명할만한�

증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Fensham).� 그런데� 20-27절의� � 가계명(家系名)은� 느� 3장의� 성벽� 재건자들의�명단에� 일부가�언급될� 뿐� 최초� 귀환� � 가족의� � 명단중에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이� 낯선� 이름들

을� 마이어스(Myers)는� � (1)� � 바벨론으로끌려가지� 않았던� 무리,� (2)� 바벨론의� 공격이� 있었을� 때� 은신했

다가� 나중에� 백성들에게나타난� 무리� 등으로� 본다.� 하지만� 그� 같은�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따라서� (1)�

세월이흐르면서� 백성들의� 인구가� 증가했고� 이에� 따라� 인구가� 많은� 가문이� 나뉘어져� 여러� 개의� 가문으

로� 되었으며� 또한� (2)� 지명으로� 자신의� 가계를� 표시했던� 무리들이� 인명으로그것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고� 봄이� 가장� 무난하다(Fensham).� 본문� 당시는� 첫� 번째포로귀환이� 있은� 후� 약� 100년이� 경과되었던�

때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 � 바로스� -� 스� 2:3을� 참조하라.� � � 바핫모압� -� 스� 2:6을� 참조하라.� � � 엘람�

-� 스� 2:7을� 참조하라.� � � 삿두� -� 스� 2:8을�참조하라.� � � 바니� -� 스� 2:10을� 참조하라.

=====10:15� � 분니� -� 포로에서� 돌아온� 후� 새로� 생긴� 가문일� 것이다.� � � 아스갓� -� 스� 2:12을참조하라.� �

� 베배� -� 스� 2:11의� '브배'와� 동일하다.

=====10:16� 아도니야� -� 새로� 생긴� 가문으로� 짐작된다.� '여호와는� 주님이시다'의� 뜻이다.� � � 비그왜� -�

스� 2:14을�참조하라.� � � 아딘� -� 스� 2:15을� 참조하라.

=====10:17� � 아델� -� 스� 2:16을� 참조하라.� � � 히스기야� -� '아델� 자손'으로부터�떨어져�나온� 새로운�가

문인�듯하다(7:21).� � '여호와로� 인해� 강해짐'의� 뜻이다.� � � 앗술� -� 새로운�형성된� 가문일� 것이다.'도움이�

되는'의�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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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8� 호디야� -� 새로� 생긴� 가문인듯하다.� � � 하숨� -� 스� 2:19을� 참조하라.� � � 베새� -� 스� 2:17을�

참조하라.

=====10:19하립� -� 새로� 생긴� 가문이다.� � � 아나돗� -� '아나돗� 자손'은� 자신들의� 보계를� 입증치� 못하여�

그조상이� � 살던� � 지방을확인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로� 인정되었었다(스� 2:23).� 아마� 그들은� 그지명

을� � 자신들의� 가문명으로� 삼았을� 것이다.� � � 노배� -� 이것은� '느보'를� 가리킬� 것이다(스� 2:29).� 그렇다면�

이것도�지명이� � 가계명으로�된�경우중의�하나이다.

=====10:20� � 막비아스� -� 새로� 형성된� 가문임이� 분명하다.'멸종자'의� 뜻이다.� � � 므술람� -� '동맹한'의�

뜻이다.� � � 헤실� -� '보호된'의�뜻이다.

=====10:21� � 므세사벨� -� '하나님께�구출된'의� 뜻이다.� � � 사독� -� '의로움'의� 뜻이다.� � � 앗두아� -� '알고�

있는'의� 뜻이다.

=====10:22� � 블라댜� -� '여호와께서� 원하셨다'의� 뜻이다.� � � 하난� -'은총'의� 뜻이다.� � � 아나야� -� '여호

와께서�대답하셨다'의� 뜻이다.

=====10:23� 호세아� -� '여호와께서� 구원하셨다'의� 뜻이다.� � � 하나냐� -� '여호와께서� 은총을� 베푸셨다'

의� 뜻이다.� � � 핫숩� -� '명철한'의�뜻이다.

=====10:24� 할르헤스� -� '복술자'의� 뜻이다.� � � 빌하� -� '겁이� 많은'의� 뜻이다.� � � 소벡� -� '떠남'의� 의미

이다.

=====10:25� 르훔� -� '인정� 많은'의� 뜻이다.� � � 하삽나� -� '여호와께서� 나를� 생각하셨다'의� 뜻이다.� � � 마

아세나� -� '여호와의�일'의� 의미이다.

=====10:26� � 아히야� -� '여호와의� 형제'의� 뜻이다.� � � 하난� -� '은총'의� 뜻이다.� � � 아난� -� '구름'의� 뜻이

다.

=====10:27� � 말룩� -� '통치하는'의� 뜻이다.� � � 하림� -� 5절의� '하림'과는� 동명� 이인임이� 분명하다.� � � 바

아나� -� '고통� 가운데의'라는�뜻이다.

=====10:28본절� 이하에서는� 언약� 문서에� 인친� 백성들이� 맹세� 의식을� 거행함으로써� 그� � 언약에대한�

철저한� 준수를� 다짐하는� 내용이� 전개된다.� � � 그� 남은� 백성� -� 직접� 서명을� 하지� 않은� 서민들을� 가리킨

다.� 직접� 서명을�한�사람은한�가문의�대표적�지도자만이었다.� 그러나�일반� 서민들은�자신들이 직

접� � 서명하지는않았으나� 그들의� 대표가� 서명했기� 때문에� 마치� 본인이� 한� 것과� 다름없었다.� 한편,� � 본

장의� 1-17절에서� 인을� 친� 것은� 각� 가문의� 대표였다는� 점에� 근거하여,� 여기의� '그남은'이라는� 말은� 다

음의� '제사장'� 등을� 모두� 수식한다고�봐야�할� 것이다.� � � 문지기들과�노래하는� 자들� -� 이들도� 레위� 지파�

사람들로� 크게는� 레위사람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협의적으로� 이들은� 성전� 제사와� 직접적으로� 관계된�

사역을� 수행했던� '레위� 사람'과는� 구별됐었다(스� 2:40-42).� 어떻든� '레위� 사람'이� � 이들을� � 대표하여

(9-13절)언약서에�서명을� 하였던� 것이� 분명하다.� � � 느디님� 사람들� -� 이들은� 혈통적으로� 볼� 때� 원래� 이

스라엘� 사람들이� 아니었으나� � 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며(스� 2:43),� '레위� 사람'을� 도와�

성전� 봉사의� � 직무를� 수행했던� 자들이었다.� 따라서� 레위� 사람들이� 이들을� 대표하여� 언약서에� 인을� � 쳤

을� 것이다.� � � 이방� 사람과� 절교하고...율법을� 준행하는� 모든� 자� -� 이스라엘이라는� 하나님의� 언약공동체

를� 구성하던� 또� 다른� 계층이었다.� 즉,� 이들은� 원래는� 이방인이� 었으나� 포로에서돌아온� 이스라엘� 공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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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에� 가입한(스� 6:21)� 무리였다(Rawlinson).� 이들은� 자신들의� 본처(本處)를� 떠나� 이스라엘� � 백성들의�거주지로� 이주(移住)한후,� 할례를� 받음으로써� 이스라엘� 공동체의� 회원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창�17:12,13).� � � 무릇� 지식과� 총명이� 있는� 자� -� 8:2,3의� 표현을� 빌면� '알아들을� 만한� 회중'이다.� 따라서�

이들은�언약및�언약서에�인을�치는� 것이�무엇인지릍�이해하는 정상적인� � 지각을지닌� 사람

(Rawlinson)을� 말한� 것이지�특별한�지식의�소유자들을�말함이�아니다.

=====10:29� 그� 형제� 귀인들� -� 언약� 문서에� 인을� 친� 족장� 및� 그� 밖의� 지도자들을� 뜻한다.� � � 좇아� 저

주로� 맹세하기를� -� '좇아'(� � � � � � � � � � ,마하지킴)는� 원래� � '견고하게� � 하다'혹은� '붙잡다'(사� 41:13)의�

뜻이지만,� 여기서처럼� 사역형으로� 사용될� 경우� 마치� � 남자가� 여성을� 강간하려고� 달려들듯이� 굳게� 붙잡

는�행위를�가리킨다(잠 7:13). 그렇다면이� 단어는� 결국� 나머지� 백성들이� 지도자들의� 인을� 친� 행

위� 혹은� 그� 근본적인� 뜻에� � 적극적인� 지지를� 보낸� 것을� 의미한다.� 한편,� '저주로� 맹세하기를'은,� � 언약

이나� � 조약을지키지� 않을� 경우� 지키지� 않은� 당사자� 자신에게� '저주'가� 내려져도� 달게� 받겠다는� � 공언

(公言)과� 함께� 이루어지는�언약�방식이다(민� 5:21).

=====10:30� 이방인과의�통혼(通婚)과� 관련된�에스라의�개혁�조치(스� 9,10장)에도� 불구하고,�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는� 그� 같은� 악습이� 완전히� 근절되지는� 못했던� 것� 같다.� 물론� � 에스라의� 개혁으로� 통혼의�

문제는� 얼마� 동안� 거의� 사라졌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에스라가페르시아� 궁전으로� 소환되어� 오랜� 기간�

그곳에� 있었고(8:1),� 느헤미야도� 에스라가� � 다시� 돌아오기� 직전에� 온터라,� 이방인과의� 통혼� 악습은� 되

살아났음이�분명하다.(13:23).

=====10:31� � 본절은� 백성들이� 안식일과� 안식년을� 지킬� 것을� 다짐하는� 내용이다.� � � 이� 땅� 백성이� 안

식일에...팔려� 할지라도� -� 이와� 같은� 사실은� 본서� 13:16에서� � 발견되어진다.� 당시에� 이� 같은� 일은� 비

일� 비재했던� 것� 같다.� 사실� 이스라엘은� 여러가지� 산출물이� 충분치� 못했기� 때문에,� 그� 부족을� 어차피�

이방� 사람들과의� 교역을� 통해서� 채워야� 했다.� 그러다보니� 이방인� 상인들이� 예루살렘까지� 출입하게� 되

었고,� 심지어는� � 안식일에까지�상행위를�하였다.� � � 안식일이나�성일에는� 사지� 않겠고� -� '안식일이나� 성

일'은� 차라리� '안식일� 곧� 성일'로� 봄이� 적절하다(Fensham).� 즉,� 본문은� 동일한� 뜻의� 말을� 반복함으로

써� 안식일의� � 귀중한� 의의와� 안식일� 준수의� 의무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출� 20:8-11;신� 5:12-15).� � �

제� 칠� 년마다� 땅을� 쉬게� 하고� -� 7년마다� 돌아오는� 안식년에는� 땅을� 경작치� 말고� 놀려야만� 한다는� 율

법� 규정과� 관련이� 있다(출� 23:10,11;레� 25:2-7).� 이러한� 안식년� 규례는� 안식일� 규례보다� 더욱� 안� 지

켜졌던� 것� 같다.� � � 모든� 빚을� 탕감하리라� -� 이것은� 안식년에는�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빚을� 독촉치� 말고

1년� 연기해�주어야�한다는�율법�규정과�관련된다(신� 15:1-3).� 그러나�본� � 문구는� � 1년연기가�아닌� '완

전한� 면제'를� 뜻한다.� 이처럼� 백성들이� 율법에서� 요구하는� 그� � 이상의선행을� 결심한� 까닭은,� 그� 당시�

이스라엘� 사회가� 가난한� 자들의� 부채문제로� 인하여� 심각한� 홍역을� 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5:1-13).�

사실� 그� 문제는� � 진작� � 해결되어져야만했었으나�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채� 심각한� 사회� 문제로� 남아있

었던� 것이다.� 그러던� 차에� 에스라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대각성� 운동으로� 백성들이� 새로워지기를� 원하

면서� � 골치거리로� 남아있던� 그� 문제의� 해결을� 자원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백성들의� 이러한� � 자발적� 결

단은� 일회적인� 것으로� 이해됨이� 무난하겠다.� 만일� 그렇지� � 않고� � 매안식년마다빚이� 완전히� 탕감되어진

다면,� 백성들은� 빚을� 주지도� 않을� 것이고,� 반드시� � 꾸어쓸필요가� 있는� 사람은� 그로� 인하여� 심각한� 어

려움을�받을�것이었기�때문이었다.

=====10:32� 본절과� 같은� 결정은� 그� 당시의� 독특한� 상황에� 따른� 불가피한� 일이었다.� 즉,� 이스라엘이�

독립� 국가로� 있을� 때는� 막대한� 왕의� 수입(收入)중� 일부가� 성전� 재정을� 위해� 보태졌었으나,� 페르시아의�피정복� 상태� 하에� 있던� 그� 당시의�상황에서는� 재정난으로� � 성전의� 효과적�운영이� 심히� 어려웠다.� � � 해

마다� 각기� 세겔의� 삼분� 일을� 수납하여� -� 출� 30:11-16에는� 이십� 세� � 이상된� � 모든백성들이� 생명의� 속

전으로서� 반� 세겔씩� 바쳤고� 이� 돈은� 성막� 건물을� 제작하는� � 비용으로� 쓰여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이것은�인구� 조사가�있었을� 때에� 특별한� � 목적으로�드려지는�것이어서�정기적인�성전세의�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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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보기는� 힘들다.� � 아마� � 후대에가서는� 매년� 정기적으로� 성전세� 명목으로� 일정한� 액수가� 납세되었

던� 것� 같으며,� � 예수당시의� 성전세는� 매년� 반� 세겔이었다(마� 17:24).� 고레스,� 다리오� � 및� � 아닥사스다

등의조서에는� 예루살렘의� � 성전� � 예배를� � 위해� � 공적기금이� � 사용되도록� � 허락되었지만(스6:8-10),� 그

러한� 기금은� 언제� 중단될지� 몰랐고� 더욱이� 성전운영이� 이방의� � 재원(財源)에� 의존된다는� 것은� 바람직스럽지�못했다(Brockington).� 따라서�비록� � 백성들의� � 생활형편이�어려웠음에도�불구하고�매년�성전세

를�삼분�일�세겔씩�납부키로�자원하여�결단을�내린� 것이다.

=====10:33� � 본절은� '성전세'가� 거두어져서� 구체적으로� 어디에� 쓰여질� 것인지를� � 말하고� � 있다.구약�

시대에는� 개인이�자신의�제물을�가져와서� 드리는�제사도�있었지만� � 많은� � 경우는성전�자체에서�제물을�

조달하여� 제사를� 드려야� 했다.� � � 진설병� -� 성소의� 떡상� 위에� 두� 줄로� 여섯� 개씩� 그래서� 모두� 열� 두개

가� 놓여졌던� 떡이었다(레� 24:6).� 안식일마다� 새로운� 것으로� 교체해야� 했고(레� 24:8).� 물려낸� 것은� 제

사장의� 몫이었다(레� 24:9).� 이것은� 크기가� 작아� 만드는� 비용이� 얼마� 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

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물이라는� 그� 중요성� 때문에,� 성전세� � 용도(用途)의� 첫부분에� 나온다(Rawlinson).� � � 항상� 드리는� 소제� -� 항상� 드리는� '번제'와� 함께� 성전에서� 매일� � 드렸던� � 제사이다.약�

2.2l의� 밀가루에� 약� 0.9l의� 기름을� 섞어서� 만든� 떡이� 그� 제물이었다(민� 28:3).� � � 항상� 드리는� 번제� -�

이것은� 아침과� 저녁� 하루� 2회씩� 드려졌던� 희생� 제사이다.� 흠없는� 어린� 수양이� 그� 제물이었다(민�

28:3).� � � 안식일과�초하루와�정한�절기에�쓸� 것� -� '안식일'에는� 평일에�드려지던�상번제와는달리�일� 년

된� 어린� 수양� 두� 마리가� 소제와� 함께� 제물로� 드려졌었다(민� 28:9).� � 그리고'초하루',� 즉� '월삭'(민�

28:11)에는� 수송아지� 두� 마리와� 수양� 한마리� 그리고� 어린� � 수양� 일곱� 마리가� 소제와� 함께� 제물로� 드

려졌었다(민� 28:11-14).� 여기에� 포도주를� � 제물로� 한� 전제(奠祭)도� 드려져야� 했다(민� 28:14).� 한편,� '정한� 절기'는� 3대� 절기인� � 유월절(민� 28:16-25),� 맥추절(민� 28:26-31).,� 초막절(민� 29:7-11)등을� � 가

리킨다.� � 이때는엄청난� 양의� 제물이� 바쳐져야� 했었다.� � � 성물� -� 이것은� 속건제의� 제물을� 의미하는� 듯

하다(레� 6:17).� � � 이스라엘을�위하는�속죄제� -� 이것은�개인적�죄의�용서를�위한�속죄제(레 4:27-31)가�

아닌� 온� 회중을� 위한� 속죄제이다(레� 4:13-21).� � � 하나님의� 전의� 모든� 일� -� 이것은� (1)� 성전의� 유지를�

위한� 수선(修繕)작업(Fensham),� (2)� 성전에서� 사용되는� 기구� 및� 비품을� 충당.보존하는� 일(Rawlinson)모두를� � 가리킨다고�볼수�있다.

=====10:34� 본절의�새로운�규정은,� 희생� 제사때에�사용되는�많은�양의�화목(火木)을 조달하기위

한� 목적에� 따라� 제정되었다.� 레위기에도� 이와� 유사한� � 규정이� � 언급되기는� � 한다(레6:12).� 그러나� 거

기서는� 화목의� 조달을� 위해� 각� '종족'에게� 물량을� 할당하는� 것은� � 언급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모

세� 시대에� 들어와서는� 황폐해진� 연고로� � 화목(火木)의� 확보가� 곤란해서� � 본절과� � 같은� � 특별한� � 규정을� � 제정하였다고 봐야� � 할� � 것이다(Rawlinson).� � � 정한� 기한에...하나님의�전에� 드려서� -� 유대의�역사

가� 요세푸스(Josephus)는� � 포로후기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스로� 채집한� 나무를� 성전에� 드린� 날

(13:31)이� � 압월,� � 즉종교력으로는� � 5월,� � 민간력으로는� � 11월,� � 양력으로는� � 7-8월의� � 14일이라고� �

하였다(Rawlison).� 이� 날은� 유대인들에게� 거의� 축제일처럼� 여겨졌던� 것� 같다.� � � 율법에� 기록한대로...

단에� 사르게� 하였고� -� 본절의� '율법'은� 상번제를� 드리기� 위한제단의� 불을� 항상� 피워야� 한다는� 레� 6:12

의� 내용이다.� 한편,� 이� '단'은� 사방� 6m의� � 넓이였으니(A.Noordtzij)� 여기에� 불이� 계속� 타도록� 하는데�

소용되는� 나무의� � 양은� � 실로엄청났을� 것이다.� 이처럼� 그� '단'에� 항상� 불이� 타오르도록� 하신� 하나님의�

뜻은,� � 하나님을�향한� 백성들의�헌신과�충성이�뜨겁게�타오르도록�하려는�데� 있었다(빌� 3:13,14).

=====10:35� � 본절과� 같은� 명령은� 모세� 율법에� 명시된� 것이다(출� 34:26;레� 19:24;신� 26:2).� 그럼에

도� 불구하고� 여기서� 특별히� 강조되어야� 했던� 이유는,� 별다른� 기업없이� 다만� � 성전에서� 나오는� 것으로

만� 살아야� 했던� 레위� 사람들의� 생활유지를� 위해서� 꼭� 필요했기� � 때문일� 것이다.� 물론�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들에게�산출을�허락하신�하나님께�감사� � 정신을갖게�하려는�의도가�담겨� 있었음도�분명하다.

=====10:36� � 생축(牲畜)의� 처음� 난� 것...하나님의� 전으로� 가져다가� -� 이것은� 백성들의� 맏아들이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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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께� 바쳐져야� 했던�것과� 동일하다(출� 34:19).� 이같이�사람을� 포함한� 모든� 초태생(初胎生)이� 하나님께�바쳐져야� 했던� 것은� 만물의� 창조주가� 하나님이심을� 기억케� � 하려는� 데에� 목적이� 있었다.� 특히� 장자를�

대속하게했던� 것은� 백성� 전체가� 몸과� 마음을� � 거룩히� 하여�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를� 드리며� 헌신해야�

한다는� 뜻을� 내포한다.� 한편,� � 이렇듯� 장자를� 하나님께� 돌리게� 된� 기원은� 출애굽� 직전� 하나님께서� 애

굽의� 모든� � 초태생은� 죽이지� 않으셨던� 데서� 유래한다(출� 13:13-15).�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장자는� 속전(贖錢)을� 대신� 지불함으로써� 그� 장자를� 하나님께� 바치는� 셈이� 되도록� � 하셨다.반면� 짐승의�초태생은�대속이�안� 되었고,� 이에� 따라�하나님께�희생�제물로�바쳐져야만했다(출� 13:15).

=====10:37� 36절까지가�성전에서의� 희생� 제사를� 위하여�바쳐진� 것들인� 반면,� 본절의� 것은� 제사장의�

생활을� 위하여� 바쳐진� 예물들이었다(Batten).� � � 처음� 익은� 밀의� 가루� -� 여기의� '처음'(*� � � � � ,레쉬트)

은� 순서상의� 처음� 혹은� � 질적으로서의� 으뜸� 등의� 뜻이� 있다.� 펜샴(Fensham)이나� 윌리엄슨

(Williamson)등은� � 후자의의미를� 타당히� 여겨서� 본� 문구를� '가장� 좋은� 가루� 떡'으로� 이해했다(민�

15:18-21).� � � 거제물(擧祭物)� -�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렸던� 제물� 중� 제사장� 몫을� 의미하는� 듯하다(39절� ;레� 7:32).� � � 하나님의� 전골방� -� 성전� 건물� 안에� 있던� 부속실(附屬室)이었다(13:4,5).� � � 물산의� 십일조� -� 이것은� 다른� 지파들처럼� 자신들의� 기업을� 갖고� 있지� 않았던� � 레위사람들에게� 주어지도록� 규정

되어�있었다(민� 18:21).� 그리고�레위� � 사람들은 자신들이받은� 십일조의� 십일조를� 제사장들의� 몫

으로� 주어야� 했다(민� 18:26).� 여기서� 이처럼� 십일조가� 강조되고� 있는� 것은,� 당시� 별다른� 기업이� 없어

서� 오직� 십일조만으로� 생활을� 해야� 했던� 레위� 사람의� 많은� 수가� 십일조가� 걷히지� 않음으로써� 큰� 어려

움에� 봉착한� 나머지� 성전을� 떠나버렸던� 그� 당시� 상황때문이었다(39절� ;� 13:10).� 말라기에서도� 바로� �

이같은� 강조가� 나타나고� 있는데(말� 3:6-15).� 이러한� 사태는� 거의� 동시대� 사람인� � 느헤미야와� 말라기�

모두에게�심각한�문제로�받아들여졌음을�알�수�있다.

=====10:38십일조를� 받을� 때...제사장...함께� 있을� 것이요� -� 이것도� 세금� 징수자에게� � 감독자를� 붙였

던� 페르시아의� 방식과�유사하다(Fensham).� 느헤미야는�이같이� 함으로써�그� � 십일조� 중의� 제사장�몫이�

확실히�파악될�수� 있도록�하려고�하였으며�또한� 제사장과�레위사람간의�십일조�분배� 문제로�인한� 오해�

및� 갈등의� 소지를� 원천적으로� 제거하고자� � 했던� 것� 같다.� 따라서� 이� 같은� 느헤미야의� 조치는� 레위� 사

람을�의심한�때문이라고는� � 볼수� 없다.� � � 십일조의�십분� 일� -� 제사자의�몫이다(민� 18:26).

=====10:39� � 여기에� � 언급되는� � 물품(物品)들은� 37,38절의� 것들이다.� � � 골방에�둘� 것이라� -� 레위인들은� 그들에게� 할당된� 성읍에서� 십일조를� 거둠으로써� 자신의� 수입을� 확보하였으나,� 제사장들은� 레위�

사람들과� 백성들이� 가져오는� 것을� 직접받았다.� 따라서� 제사장들은� 성전� 봉사에만� 더욱� 정진할� 수� 있었

을� 것이다(Rawlinson).� � � 우리가...하나님의� 전을� 버리지� 아니하리라� -� 문자적으로는� '우리가...하나님

의� 전을� 거절하지� 아니하리라'의� 뜻이다.� 아무튼� 본� 문구는� 그� 당시� 레위� 사람들의� 성전� 봉사로부터의�

이탈� 현상이� 있었음을� 시사해준다(37절� 주석� 참조).� 한편,� '우리'는� � 하나님께� 대한� 백성들의� 회개� 기

도를�인도했고(9:5-38).� 또한� 언약서에� 인치는� 일을� � 주도했던(9:4,5)을� 가리킨다.� � � � 느헤미야� 제� 11

=====11:1� 여기서부터는�예루살렘의�거민�수를� 늘리기�위한� 조치들이�언급되고� 있다.� � 따라서본장은�

예루살렘의�거민수를�증가시키기�위한�최초의�노력이�언급되고�있는� 7장,� 특히그�장의� 4절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 � 두목들은� 예루살렘에� 머물렀고� -� 이에� 대해서는� (1)� 그� 즈음� '두목들'이� 솔선� 수범하여�먼

저� 예루살렘에� 정착했다는� 견해(Rudolph),� (2)� 포로에서� 돌아온� 첫날부터� � '두목들'이� 예루살렘에� 살

고� 있었다는� 견해(Fensham,Rawlinson,Myers)등� 두� 가지� � 해석이있다.� 이처럼� 두� 가지� 해석이� 나올�

수� 있는� 것은� 여기의� '머물렀고'(*� � � � � � � ,야솨브)가� 그런� 두� 가지의� 해석을� 가느케� 하는� 단어이기� 때

문이다.� 그러나� 느헤미야� 도착� � 전에� 이미� 상류층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는� 언급이� 있음(2:16)을� 볼

때,� 대다수의� '두목들'은� 애당초부터� 예루살렘에� 거주하였고,� 이번의� 언약� 갱신을� 계기로� 타지역으로� �

가서� 살았던� 일부� 두목들까지� 일괄적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되었다고� 봄이� 가장� 무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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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두목'(*� � � � � ,사르)은� 다른� 곳에서� � '방백'(스� � 10:14),� � '귀인'(6:17),� '족장'(7:70;스� 2:68)등

으로� 번역되었으며,� 일반� 백성들을� � 대표하는� � 자들을지칭� 할� 때� 사용되는� 단어이다.� � � 제비뽑아� -� 이

스라엘� 백성들은�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 작정하기는� � 여호와께있다'(잠� 16:33)는� 믿음에� 따라

서,� 국가의�중요한�문제를� 결정할�때� 이� 방법을�사용하였다(민� 26:55,56,;수� 7:16-18;삼상� 10:19-21;

대상� 24:5;25:8;행� 1:26).� 이에� 대한� 보다� 상세한� 내용은� 민� 26:52-56의� 주제� 강해,� '제비뽑기'를� 참

조하라.� � � 십분의� 일은...예루살렘에...거하게� 하고� -� 예루살렘� 이외의� 지역에� 살던� 백성들의10%를� 예

루살렘으로� 이주시킨� 것을� 가리킨다.� 이때� 가족� 전체가� 이주했을� 것이� 분명하므로� 이� 조치로� 인하여�

이산(離散)가족이� 발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 � 거룩한� 성� -� 이는� 후기에� 기록된� 구약� 성경� 안에서만� �발견되는것이다(18절;사48:2;52:1;단� 9:24).� 그런데� 이� 같은� 어구로� 예루살렘을� 수식한� 까닭은,� 예루

살렘이� � 비록� 이방� 대적들의� 위협이� 가장� 많았던� 곳이긴� 하지만� 예배의� 중심지이며� 성전이� � 있는예루

살렘에서의�거주가�얼마나�복된� 것인지를�암시하려는�저자의�의도�때문인� � 듯하다(시� 122:6,9).

=====11:2� 자원하는� 자� -� 여기에� 대해서는� (1)� 제비뽑혀서� 본의� 아니게� 예루살렘으로� � 이주하게� 된�

백성� 이외의� 사람� 중� 그들과� 함께� 이주하여� 살기를� 자청한� 사람들로� 보는� � 견해(Rawlinson,� Schultz,�

Myers),� (2)� 제비뽑혀서� 예루살렘으로� 이주해야� 할� 백성� 중� � 기쁜� 마음으로� 가는� 자들로� 보는� 견해

(Williamson,� Fensham,� 박윤선)� 등� 두가지� � 해석이제시된다.� 그러나� 첫째,�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으로�

이주해야� 할� 숫자를� 십분의� 일로� 못박았고(1절)� 둘째,� 여기의� '자원하는'(*� � � � � � � ,나다브)이라는� 단어

는� 대개� � 재귀형으로만� 사용되어� 마땅히� 이행해야� 할� 의무를� 기꺼이� 하는것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삿�

5:2;대상� 29:6;대하� 17:16;스� 3:5)는� 점� 등으로�미루어�볼때�위의� 두� 해석� 중� 후자가�보다� 타당하다.

=====11:3� 본절은� 솔선� 수범하여� 예루살렘으로� 가서� 살았던� 지도자들을� 언급하는� 4절� 이하� 내용의�

서론의� 형식을� 띠면서� 여전히� 지방에서� 살고� 있었던� 그밖의� 사람들을� 대조시키고있다(Fensham,�

Myers).� � � 이스라엘� -� 평민� 혹은� 서민들을� 가리킨다.� � � 느디님� 사람� -� 7:46� 주석을� 참조하라.� � � 솔로

몬의�신복의�자손� -� 7:57� 주석을�참조하라.� � � 도(*� � ,� � 메디나)� -� 이것은� 그� 당시� 이스라엘이� 페르

시아의�통치�아래� � 있던�여러� 지역중의�하나였었다는�사실을�분명히�보여주는�단어이다.� � � 두목들(*� ,�

로쉬)� -� 이� 단어는� '두령'(수� 24:1)� 혹은� '족장'(대상� � 23:8;대하1:2)등으로� 번역되는� 단어로서,� 한� 가

문의� 지도자들을� 지칭할� 때� 주로� 사용된다.� 따라서� 이� 단어는� 1절의� '두목'(사르)과� 본질적� 의미상� 동

일하다(1절).

=====11:4� 여기서부터� 9절까지는� 예루살렘에� 거주했던� 평민� 지도자들의� 명단이� 나오고� 있다.� � � 유

다� 자손과� 베냐민� 자손� 몇� 명� -� 예루살렘에� 거주했던� 백성들� 중에는� � 여기의� � 두지파� 이외의� 출신도�

분명히� 있었다.� 즉,�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출신� 및� 심지어는� 아셀� 지파� 출신도� 있었을� 것이다(대상�

9:3;눅� 2:36).� 다만� 그� 당시� 유다� 지파와� � 베냐민지파가� 이스라엘� 공동체를� 구성하던� 주요� 구성원이었

다는� 점에서,� 이처럼� 두� 지파만이언급되고� 있을� 뿐이다.� � � 베레스� 자손� 아다야� -� '베레스'는� 유다가� 다

말에게서� 낳았던� 쌍동이� 형제� 중의� � 형이었다(창� 38:24-30).� 그의� 후손� 중에는� 다윗과� 그리스도가� �

포함된다(마� � 1:3,6,16).이� '베레스'라는� 이름의� 의미는� '균열'이다.� 한편,� '아다야'은� 대상� 9:4에서� '우

대'로나와� 있다.� 그�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장식하셨다'이다.� � � 웃시야의� 아들� -� 여기의� '아들'(*� � � ,

벤)은� (1)흔히� '자손'의� 의미로도� 쓰이며,(2)대상� 9:4에서는� '우대'가� '암미훗의� 아들'로� 묘사된다는� 점�

등으로�볼때,� '후손'의� 의미이다.� 이는� '스가랴의�손자','아마랴의�증손'등에서도�동일하게�적용된다.

=====11:5� 여기서는� 유다� 지파� 자손� 중의� 또� 한사람의� 지도자가� 언급된다.� � � 마아세야� -� 대상� 9:5

에서는� '아사야'로� 되어� 있다.� 그� 이름의� 뜻은� '여호와의� � 일'이다.� � � 바룩의� 아들� -� 여기의� '아들'도� '

자손'의� 의미로�이해해야�된다.� � � 골호세� -� 3장15절에서� � '미스바� 지방을�다스리는'� 자(者)의� 아버지로�묘사되는� '골호세'와� 동일� 인물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 이름의� 뜻은� '모든� 선견자'이다.� � � 실로� 사람� -�

여기의� '실로�사람'은�유다의�막내아들이었던� '셀라'의�후예들을�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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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본절은� 내용상으로� 볼� 때� -� 베레스� 가문출신의� 지도자에� 대해� 언급하는� 4절과� 연결된다.� �

� 용사이었느니라� -� '용사'(*� � � � � � � � � � � � � � � ,� 아느쉐이�하일)에서� '하일'은� (1)� � 군사적�능력,� (2)� 재정

적� 능력� 모두를� 뜻하기도� 하지만,� 예루살렘� 방비를� 위한� 인구� � 정책에� 대해서� 다루는� 본문의� 문맥에서�

볼� 때� 전자를�가리킨다고�봄이�무난하다.

=====11:7� � 앞� 부분(4-6절)에서는� 유다� 지파의� 지도자들의� 시조(始祖)가� 누구인지를� 밝혔으나,여기서는� 베냐민� 지파� 지도자들의� 시조를� 언급지않는다.� 베냐민� 지파의� 경우� 사사� � 시대에� 다른지파들에�

의해서� 몰살됐었던� 관계로� 그� 당시� 베냐민� 지파� 사람들이� 자신들의시조를� 잘� 몰랐을지도� 모른다

(Fensham).� � � 살루� -� '무게를�단'의� 의미이다(대상� 9:7).

=====11:8� 구백� 이십� 팔� 명� -� 여기와의� 평행� 구절인� 대상� 9:9에� '구백� 오십� 육� 명'으로� � 되어있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가� 결코� 중요한� 문제는되지� 못한다.� 사본상의� 오류이거나� 혹은� 역대기에서는� 다른�

지파에� 속한� 자들이� 포함되었을� 수도있다.� 아무튼� 이� 숫자는� � '갑배'와� '살래'처럼� '살루'(7절)의� 지휘�

아래�있었던�용사들의�합계로�짐작된다.

=====11:9� 요엘이� 그� 감독이� 되었고� -� '요엘'이� 예루살렘� 방비의� 총책임자가� 되었음을� 가리킨다.� 물

론� 그는� 느헤미야의� 지휘를�받았을�것이� 분명하다.� 혹은� 이� 문구를� '요엘'이� 예루살렘을�다스리는�직분

자가�되었다는� 뜻으로�이해할� 수도있을� 것이다(Rawlinson,� � 왕하� 25:19).� � � � 유다는� 버금이� 되어...다

스렸느니라� -� 본문에� 대해서는� 두가지� 해석이� 있다.� � (1)개역� 성경이나� KJV,� RSV등에서처럼,� 유다가�

서열상� 요엘� 다음가는� 행정� 책임자로서� 예루살렘을�다스렸다고�보는�견해,� (2)� NIV에서처럼�유다가� 예

루살렘의� '두� � 번째� � 구역'(the� Second� District� of� the� city)의� 책임자였음을� 가리킨다는� 견해가� � 있

다.� � 많은학자들이(1)의� 견해를� 더� 지지하고� 있다(Edwin� Yamauchi,� Kedner,� Schultz).� (2)의� 견해를�

취할� 경우,� '두� 번째� 구역'이란� 성전� 서쪽� 지역으로� 확장된� 지경를� 가리키는� � 듯하다.� 마자르

(B.Mazar)나� 아비갓(N.� Avigasd)에� 의하면,� B.C.� 8세기� 후반� 무렵에�예루살렘�성이�그� 방향으로�확층

되었다고한다.

=====11:10� 대상� 9:10-13의� 기록과� 약간의� 차이가� 있다.� 여기서� 우리는� 역대상의� 기록을� � 보다더�

정확한�것으로�보고,� 그것에�준해서� � 본절� � 해석하는� � 것이� � 무난하리라 생각한다(Rawlinson).� 본문에

는� 필사자의� 오류가� 어느� 정도� 나타나고있는� 듯하다.� � � 요야립의� 아들� 여다야와� 야긴� -� 이것은� 역대상

의� 기록에� 따라� '여다야와� � 여호야립과� 야긴'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이� � 세� 사람은� 다� 다윗� 시대

의� 24� 반열� 중� 세� 반열의� 두목들이다(대상� 24:7,17).� 따라서� 여기서는� 제사장� 개인의� 이름이� 아닌� �

가문의이름이� 언급되고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어떤� 명단을� 나열하면서� 개인� 이름이� 아닌가문의� 이

름을�사용하는�경우는�꽤� 혼하다(10:2).

=====11:11� 하나님의� 전을� 맡은� 자� 스라야� -� 여기의� '스라야'는� 이스라엘백성이� 바벨론으로� 끌려가

기� 전에� 대제사장의� 역할을� 수행했던� 인물이다(대상� 6:14).� 바로� 이� 사람의� � 후손들이� 자신들의� 가문�

이름을� '스라야� 가문'이라고�하였던� 것이다(10:2).� � � 힐기야의�아들� -� 대상� 6:13,14에� 따르면,� '스라야

'는� '힐기야'의� 손자이지� � 아들이아니다.� 이러한� 차이는� 히브리어� '벤'(*� � � � )의� 번역의� 차이에서� 생긴�

것이다.� � � 술람의� 손자� -� 여기의� '손자'도� 다만� '자손'으로� 번역해야� 한다.� � � 사독의� 증손� -� 이것도� '사

독의자손'으로� 번역해야� 한다.� 한편,� '사독'은� 다윗과� 솔로몬� 시절에� 활동했던� 대제사장이었다(삼하�

20:25;왕상� 1:32-45;2:35).� � � 므라욧의�현손� -� '현손'도� 다만� '자손'을�뜻한다.

=====11:12� � 전에서� 일하는� 그� 형제� -� 이것은� 대제사장들을� 도와서� 성전� � 봉사를� � 했던� � 22반차

(12:1-7)의� � 제사장들을� 가리킨다(원래는� 24반차로� 나뉘었으나� 느헤미야� 당시에는� � 22반차로� 나뉘었

다).� 그들� 모두� 자신들의� 가문명(家門名)을� 갖고있었다(12:1-7).� � � 아다야� -� 이러한�가문명을�소유했던�제사장의� 무리들은� 가르치는� 일에� 주로� 종사했었던�것� 같다.� 반면� 앞에� 언급됐던� � 스라야� � 가문은� �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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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봉사를 주임무로� � 했었다(Kidner).

=====11:13� � 그� 형제의� 족장된� 자� -� 가르치는� 일에� 종사했던(12절)� 제사장의� 지도자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모두� 그� 당시� 예루살렘에� 살고� 있었다(1,3절).� � � 아맛새� -� 이� '아맛새'라는� 가문명을� 갖고� 있었

던�제사장들은�예루살렘을� � 경비하는일에�종사하였다(Kidner).

=====11:14� 그� 형제의� 큰� 용사니� -� 이것은� 앞의� '아맛새'라는� 이름을� 가진� 제사장� 가문이� 어떤일에�

종사했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여기의� '큰용사'(*� � � � � � � � � � � � � � ,� 기보르� 하일)는� (1)� 하나님의� 전에

서의� 봉사와� 관련된� 특별한� 재능이� 있는사람(Rawlinson).(2)� � 군사적� � 능력을� 소유하고있는� 사람

(Kidner)등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본문에� '아맛새'� 가문의� 지도자들이� 예루살렘의� 방비에� 종사하

고�있었음을�밝히고�있는� 문맥이� � 있다는�점을� 감안한다면(13절� 주석� 참조)� (2)의� 견해가�보다� 타당하

다.� � � 삽디엘� -� '하나님의�선물'의� 뜻이다.

=====11:15� � 여기서부터� 18절까지에서는� 레위� 사람� 중� 예루살렘에� 살고� 있었던� 세� 가문에� � 대해소

개한다.� � � 스마야� -� 레위의� 막내� 아들인� 므라리의� 후손이었다(창� 46:11;대상� 9:14).'하나님께서� 들으

셨다'의� 뜻이다.� � � 핫숩� -� 3:11을� 참조하라.

=====11:16� � 삽브대� -� 에스라를� 도와서�개혁� 운동을� � 추진했던� '삽브대'와� � 동일인일� � 가능성이많다

(8:7,8;스10:15).� 그� 이름의� 의미는� '휴식을� 주는'� 이다.� � � 요사밧� -� 추측컨대� � 에스라를� 도와서� 백성

들에게�율법을�깨닫게 해준� � '요사밧'과동일인인� � 뜻하다(8:7).� 그� 의미는� '여호와께서� 판단하셨다

'이다.� � � � 하나님의� 전� 바깥� 일� -� 이것은� 레위� 사람들의� 전형적� 직무인� 성전� 제사와� � 관계된일� 이외의�

것을� 가리킨다.� 여기에는� (1)� 성전세및� 십일조를� 거두는� 일(10:37-39),� (2)백성을� 다스리는� 일(대상�

26:29),� (3)� 성전의�유지�보수와�관계된� � 일(Rudolph)� � 등이포함된다.

=====11:17� 본절에는� 레위� 사람의� 또다른� 가문이� 언급되다.� '아삽� 자손'의� 레위� � 사람으로� � 분류된�

것은� 다소� 특이하다.� 왜냐하면� 본서와� 에스라서의� 다른� 곳에서는� 항상� 성전� 제사에� 관여하는� 레위인들

을� '레위� 사람'으로,� 아삽의� 자손들은� '노래하는� 자들'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7:44;스� 2:41).� 그러

나� '노래하는� 자들',� 즉� 아삽� 자손도� 레위� 지파에� 속했다는� 점에서,� 이와같은� 분류는� 결코� 문제가� 되지�

않는다.� � � 맛다냐� -� 스룹바벨과� 함께� 최초로� 귀환한� 사람이다� 이름의� 의미는� '여호와의� � 선물'이다.� � �

기도할� 때에� 감사하는� 말씀을� 인도하는� 어른� -� 여기의� '말씀'(*� � � � � � � � ,� � 테힐라)은� � 당연히� '찬송'�

혹은� '찬양'으로� 번역되어야� 한다(출� 15:11;신� 10:21;시� 22:3).� 한편,� '인도하는'(*� � � � � � � � � � ,� 예호

데)은� '인정하다'� 혹은� '감사하다'� 그리고� � '찬송하다'의� 뜻을� 갖는� 동사� '야다'(*� � � � � � )의� 사역형이다.�

따라서� 이� 단어는� '찬송하게� 하다'의� 의미가� 된다.� 그렇다면� 본� 문구는� '기도할때에� 감사의� 찬양을� 부

르게� 하는� 지도자'로� 번역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맛다냐'라는� 아삽� 자손이� 오늘날로� � 치면성

가대의� 지휘자와� 같은� 역할을� 맡았음을� 말해준다.� � � 형제� 중에� 박부갸가� 버금이� 되었으며� -� 찬양하는�

일에� 있어서� '박부갸'가� 맛다냐에이어� 두� 번째의� 지도자였다는� 뜻이다.� 한편,� '박부갸'라는� 이름은� � '여

호와의� � 던지는자'의� 의미로� 추정된다(J.� M.� Ward).� � � 여두둔의� 증손� -� 이는� '여두둔의� 자손'� 으로� 번

역해야� 한다(15절).� '여두둔'은� � 다윗� 왕때에� 성막에서� 찬양과� 연주를� 맡아하던� 인물이다(대상�

16:41,42;대하� 35:15).� � � 삼무아의�아들�압다� -� '압다'의� 의미는� '하나님의�종'이다.

=====11:18� 거룩한성� -� 1절� 주석을� 참조하라.� � � 레위� 사람의� 도합이�이백� 팔십� 사� 명� -� 이� 같은� 레

위� 사람들의� 숫자는� 다른� 지파에비하여� 상대적으로� 적다.� 이처럼� 레위�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적게� 살았

던�것은� � 그들의봉사�직무가�힘에�겨웠던�때문일�것이다.

=====11:19� � 성� 문지기는�악굽과�달몬� -� 이� '성문지기'는� 문자적으로�다만� '문지기'일� � 뿐이다.한편,'

악굽'과� '달몬'� 모두� 스룹바벨과�함께�귀환했던�레위�사람들의� 일파인�성전� � 문지기� 가문들의�명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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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된다(스� 2:42).� 따라서� 여기의� '성� 문지기'는� 오히려� '성전� 문지기'� 혹은� 그냥� '문지기'로� 번역해야�

한다.� � 그� 형제� -� 여기에는� 스룹바벨과� 함께� 귀환했던� 문지기� 가문들의� 대부분이� 포함될� 것이다(스�

2:42).

=====11:20� � 본절은�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면서� 예루살렘에� 거주했던� 사람들을� 칭송하기�

위한� 느헤미야의� 삽입� 구절이다.� 즉,� 여기서� 느헤미야는� 많은� 사람들이� 일신의� � 평안을� 위해� 예루살렘

을� 마다하고� 각� 지방에� 정착했었다는� 사실을� 기술함으로써,� 본� � 전후� 문맥에서� 언급하고� 있는� 예루살

렘�거주자들의�헌신적�자세를�높이� 사고�있는� � 것이다.

=====11:21� 느디님� 사람은� 오벨에� 거하니� -� '느디님� 사람'은� 원래� 이방� 혈통의� 소유자들이었나이스

라엘에� 포로로� 잡혀온� 후� 개종하여� 이스라엘� 총회에� 가입되었다(스� 2:43).� '오벨'은� 성전이� 세워져� 있

던� 구릉� 지대가� 뻗쳐져� 있는� 예루살렘의� 동남부였다(3:26).� � � 시하와� 기스바가� 그� 두목이� 되었느니라�

-� 문자적으로는� '시하와� � 기스바가� � 느디님사람들의� 위에� � 있었다'� 이다� '시하'라는� 이름은� 스룹바벨과�

함께� � � 귀환했던� � 느디님사람들의�가문명�중에서�발견된다.� 그러나� '기스바'라는�이름은�거기서�볼� � 수� �

없다.그런점에서� 우리는� 본절의� 두� 이름을� 가문명으로� 보다는� 개인의� 이름으로� 봄이� 더� � 타당할� 것이

다.

=====11:22,23� 17절에서는� 아삽� 자손의� 가문명만이� 언급되었으나,� 여기서는� 그� 가문의� 우두머리가

느헤미야� 당시에�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했는지에� 대해� 진술한다.� � � 웃시� -� '힘센'의� 의미이다.� � � 예루살

렘에�거하는�레위�사람의�감독� -� 여기에는�느디님�사람들에� � 대한 감독권도포함되어� 있었을� 것

이� 분명하다(Schultz).� � � 하나님의� 전(殿)일� -� 문맥상� 찬양을� 인도하는� 직무를� 가리킨다.� � � 왕의� 명대로....양식을� 정하여� 주는� 것� -� 여기의� '왕'은� 당시� 이스라엘을� 통치하였던� 페르시아의� 아닥사스다� 왕을�

가리킨다.� 이처럼� 아닥사스다왕이� 레위� 사람에� 대해서특별한� 관심을� 갖고� 그들에게� '양식'� 곧� '봉급'을�

주게� 했던� 것은,� 성전� 제사가� � 원활히� 드려져야만� 왕� 자신과� 왕자들을� 위한� 기도도� 여호와� 하나님께�

드려질� 것으로� � 생각한� 때문이다(스� 6:10).� 이러한�배려는� 레위� 사람들이� 생계� 문제에� 신경� 쓰지� 않고� �

오직�자신들에게�부여된�본연의�직무에�힘쓸� 수� 있게끔하는�데�큰�뒷받침이�되었을�것이다(10:39).

=====11:24� 본절은� 23절에서� 아닥사스다� 왕이� 예루살렘의� 레위� 사람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 가질

수� 있게� 되었던� 중요한� 원인을� 설명해주는� 부분이다.� 그래서� 본절은,� 헌신적� 자세로써� 예루살렘에� 정

착했던� 사람들에� 대해� 언급하는� 마당에� 전혀� 성격이� 다른� 사람에� � 대해서� 말하고� 있는것이다.� � � 유다

의� 아들� 세라� -� 야곱의� 아들� '유다'는� 며느리� 다말에게서� 두� 아들� 곧� '베레스'와� '세라'를� 낳았었다(창�

38:11-30).� � � 브다히야는� 왕의� 수하에서� 백성의� 일을� 다스렸느니라� -� 문자적으로� '브다히야는� 백성들

의� 모든� 일과� 관련해서� � 왕� 곁에� 있었다'이다.� 따라서� '브다히야'는� 마치� � 에스라가� 그랬던� 것처럼� 이

스라엘�백성들�편에서서�아닥사스다�왕에�대한 조언자의� � 역할을했던� 것으로� 보인다

(Fensham).� 그래서� NIV는� 본� 문구를� '브다히야는�백성들과� � 관계되는�모든� 사건에�있어서의�중개자였

다'(...was� � the� � king's� � agent� � in� � all� � affairsrelating� to� the� people)라고� 번역하였다.� 이처럼�

페르시아� 황실에� '브다히야'와� 같은대변인이� 있었기� 때문에,� 아닥사스다� 왕이� 예루살렘의� 사정을� 소상

히� � 알고있었으며또한�레위�사람들에게�먹을�양식을�주라는�명령을�할� 수� 있었음이�분명하다.

=====11:25본서의� 저자는� 예루살렘에� 정착했던� 여러� 계층� 사람들의� 지도자에� 대해서� 언급하기를� 마

치고,� 여기서� 부터는� 당시� 백성들이� 어떤� 곳에서� 살고� 있었는지에� 대해� 언급하기시작한다.� � � 향리와�

들� -� 엄밀히� 말하여� '들이� 딸린� 향리'로� 번역된다.� 여기서� '향리'(*� ,� 하체르)는� '울로� 둘러싸인� 구내'

(區內)를� 의미한다(Wigram).� 그리고� '들'(*� � � � � � ,사데)은� 사람이� 살지� 않는� 경작지를� 뜻한다(창�2:5;24:63;수� 8:24).� � � 유다� 자손� -� 여호수아의�영도�아래�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에,� 이들은� 팔레스틴� �

땅의� 남부� 지역을� 기업으로� 할당받았었다.� 그래서� 30절까지� 언급되는� 이� 유다� 자손의� 거주지도� 모두�

남부에� 위치한� 성읍들이다.� � � 기럇� 아바� -� 히브리� 원문대로� 한다면� '기럇� 아르바'로서� 헤브론(수�

Page 63: 느헤미아제1장 - Christian Monitorchristianmonitor.net/jusuk/nehemia.pdf성을갖고있는무리로묘사되고있다(사27:13;겔34:4,16:미4:6;습3:19).한편,'하늘끝'은

14:15)과� � 동일한� 지명이다.� 이� 성읍은� 예루살렘� 남방으로� 30여Km� 지점에� 위치하였고� 아브라함을� �

위시한�여러� 족장들이�묻힌�유서깊은�곳이다.� � � 그� 촌(* � � � � ,� 베노테이하)� -� 중심되는� 성읍의�

주변에� 위치한� 독립� 마을을� 가리킨다(3:12).� � � 디본� -� 수� 15:22의� '디모나'이다.� � � 여갑스엘� -� 수�

15:21의� '갑스엘'이다.� � � 그� 동네(* � � � � � � ,� 하체레이하)� -� � 본절� 초두의� '향리'와� 동일한� 단어이다.� �

그러나�이� 문맥에서는�앞의� '촌'보다는� � 휠씬� � 작은'정착촌'을� � 뜻한다고� � 볼� � 수� � 있다(Fensham).

=====11:26� 예수아� -� 수� 15:26의� '세마'로� 추정된다(Schultz).� � � 몰라다� -� 수� 15:26에� 언급되고� 있

는�유다의�남부� 성읍이다.� � � 벧벨렛� -� 수� 15:27을�참조하라.

=====11:27� � 하살수알과� 브엘세바� -� '브엘세바'는� 유다의�최남단에�위치한�성읍이며� '하살수알'은� 여

호수아에서도� '브엘세바'와� 함께� 언급되는(수� 15:28)� 것으로� 보아,� '브엘세바'와인근한� 성읍이었을� 것

이다(Rawlinson).

=====11:28� 시글락� -� 원래는� 시므온� 지파에게� 분배된� 성읍이었으나(수� 19:1,5),� 그들이� 탈환치못함

으로써� 사울� 시대까지� 블레셋� 족속의� 차지가� 돼었었다.� 그러다가� 사울을� 피해� � 블레셋의� 가드왕에게�

망명을� 했던� 다윗이� 그� 왕으로부터� 빌리면서� 계속� 이스라엘의� 땅으로� 남게� 되었다(삼상� 27:6).� 그� 위

치는�헤브론� 즉,� 기럇� � 아바(25절)에서� � 남동쪽으로약� 45Km� 지점이다.� � � 므고나� -� 수� 15:31의� '맛만

나'와� 동일한�듯하다(Schultz).

=====11:29� � 에느림몬� -� '림몬의� 샘'의� 뜻이다.� 바로� 이� 같은� 뜻에서� 알� 수� 있듯이,� 이� � 성읍은수�

15:32의� '아인'과� '림몬'을� 합한� 것인� 듯하다(Rawlinson).� � � 소라� -� 원래� 유다� 지파에게� 분배됐었으나�

한� 때는� 단� 지파가� 거주했었다(수� 19:40,41).� 단� 지파였던� 삼손의� 출생지도� 이곳이다(삿� 13:24,25).� �

� 야르뭇� -� 가나안� 족의� 한� 왕인� 비람� 왕의� 성읍이었다(수� 10:3).� 여호수아는� 바로이곳에서� 전투를� 벌

여� 비람�왕을� 죽였다(수� 10:3-27).� '높은� 곳'의� 뜻이다.

=====11:30� 사노아와� 아둘람� -� '사노아'는� � 수� 15:34에서� 언급된다.� 한편,� '아둘람'은� � 한� � 때자체

내에� 왕이� 있을� 정도로� 큰� 성읍이었다� (수� 12:15).� 그� 후에� 르호보암� 왕은� 이곳을요새화하여� 유다� 땅

의� 방비를� 강화하기도�하였다(대하� 11:5,7).� � � 라기스� -� 여호수아가� '야비아'라는� 가나안�족속의� 한� 왕

과� 전투를� � 벌였던� � 곳이다(수� 10:3,3`1,32).� 그� '야비아'왕의� 성읍이�바로� 이� '가기스'였었다.� 또한� 이

곳은� � 르호보암� 왕에� 의� 하여� 요새화됐던� 곳이었던� 관계로� 후대의� 앗수왕� 산헤립은� 자신의� � 전군사력

을� 동원하여� 공격목표로� 삼았었다(대하� 32:9).� � � 아세가� -� 이곳도� 르호보암� 왕에� 의해서� 요새화된� 적

이� 있었다(대하� 11:9).� � � 브엘세바에서부터� 흰놈의� 골짜기까지� 장막을� 쳤으며� -� 느헤미야� 당시� 유다� �

자손들이� 거주했던� � 지역적� 범위를� 말해주는� 문구이다.� '브엘세바'는� 이스라엘� 역사상� 그� 영토의� 최남

단을� 일컫는� 용어로� 사용되었었다(삼상� 3:20).� 그리고� '힌놈의� 골짜기'는� 일반적으로� 와디� 엘라바비로�

간주되며,� 예루살렘의�서쪽�성벽�밑을� � 남북으로 가로질러가다가� 예루살렘� � 남동쪽의� 기드론� 시

내� 쪽으로�구부러져�만난다(2:13).� 이 골짜기는베냐민�지파의�땅과� 유다�지파의�땅을� 나누는�경

계로서� 인식되었었다(수� 15:8;18:16).바로� 이� 같은� 경계에� 따라� '힌놈의� 골짜기'� 북쪽에� 위치한� 예루

살렘은� 베냐민� � 지파의성읍� 으로� 분류된� 바� 있다(수� 18:28).� 한편,� '장막을� 쳤으며'(*� � � � � � ,� 하나)는� �

군대가�상대편을�공격할�거점으로�삼기�위하여�어느�지역에�일시�머무는�것을� � 가리킬� � 때사용되는�군

사적� 용어이다(Williamson,� 민� 1:52;삼상� 4:1;삼하� 17:26;왕상� 16:15).� 그러나� 포로� 후기에� 가서는�

다만� 일시� 머무는� 행동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그의미가� � 변한듯하다(스� 8:15).� 그럴지라도� 여기서� 느헤

미야가� 바로� 이� 갈은� 단어를� 사용한� � 까닭은(1)� 당시� 시골에� 정착한� 사람들의� 일부도� 그� 두목들처럼�

예루살렘으로� 이주해야� � 했던상황을� 암시하며(1절),� (2)�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주가� 빈번했었음을�

암시하기�위한(Myers)� 것으로�보인다.

=====11:31� 베냐민� 자손� -� 이� 사람들은� 여호수아의� 영도� 아래� 팔레스틴에� 들어온� 후에� 유다� 지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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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배� 받았던� 기업의� 바로� 북부� 지역을� 그기업으로� 받았다.� 즉,� 예루살렘� 부터� 그북쪽이� 그들의� 기업이

었다(30절� 주석� 참조).� � � 게바� -� 예루살렘� 북쪽� 약� 25.5km� 지점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유다의� 아사

왕이� � 북국� 이스라엘이� 라마에� 요새를� 세우기� 위해� 가져다� 놓은� 재료를� 빼앗아서� 요새를� � 세운곳이기

도� 하였다(왕상� 15:22).� '반석'의� 의미이다.� � � 믹마스� -� 게바� 동북쪽� 약� 2.4km� 지점이다.� 사울의� 군대

와� 불레셋� 군대� 간에� 치열한접전이� 벌어졌던� 곳이다(삼상� 13:2,5-16;14:1-18).� '감추어진'의� 뜻이다.� �

� 아야와� 벧엘� -� '아야'는� 사� 10:28,29의� 언급을� 통해� 볼� 때,� 앞의� '믹마스'와� � 인근해� 있었음이� 분명

하다.� '벧엘'은� '믹마스'� 서북쪽�약� 6.7km�지점이며� '하나님의�집'이란� 뜻이다(창� 28:10-19).

=====11:32아나돗� -� 게바와�예루살렘의� 중간� 지점에� 위치했었다.� 선지자� 예레미야의� 고향이기도하다

(렘� 1:1).� '대답들'이란� 뜻의� 지명이다.� � � 놉� -� 예루살렘과�아나돗의�거의�중간� 지점이며,� 그곳에서� � 예

루살렘이� 보일� 정도로예루살렘과� 가까이� 위치했었다(사� 10:32).� 실로가� 블레셋군대의� 공격으로� � 함락

됨으로써,� 이곳은� 한때� 이스라엘의� 종교적� 중심지가� 되었었다(삼상� 21:1).� '열매'의� � 의미이다.� � � 아나

냐� -� 어디에� 위치했었는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본절에서� 함께� � 언급되고� 있는� 성읍들과� 인접

해�있었을�것� 으로� 추측된다,� '여호와께서�덮으셨다'의� � 의미이다.

=====11:33� � 하솔� -� 그� 위치는� 잘� 알려겨� 있지� 않다.� '마을'의� 의미이다.� � � 라마� -� 예루살렘� 북쪽�

약� 9km� 지점에� 위치해� 있다.� 사무엘의� 고향으로서� 그가� 사사및� 선지자로서� 활동했던� 곳이다(삼상�

7:15,17).� '높은� 곳'의� 의미이다.� � � 깃다임� -� 베냐민�지파의� 브에롯�사람들이�도망하여�거주하기� � 시작

한� � 곳이다(삼하4:3).� 그� 지명의�의미는� '이증� 포도즙�틀'이다.

=====11:34� 하딧� -� 예루살렘� 북서쪽� 약� 41km� 지점에� 위치해� 있다(스� 2:33).� '날카로운'의� 의미이

다.� � � 스보임� -� 믹마스� 동편의� 저지대에� 위치했었던� 것� 같다(Rawlinson,� 삼상� 13:18).� � '무늬있는� 새

들'의� 뜻이다.� � � 느발랏� -� 어디에�위치했었는지�알려져�있지� 않다.� '어리석은'의� 의미이다.

=====11:35� 로드� -� 예루살렘� 북서쪽� 약� 45km� 지점에� 위치해� 있다.� '하덧'으로부터는� � 남서서쪽로�

6km� 정도� 떨어졌었다(스� 2:33).� � � 오노와� 공장� 골짜기� -� 예루살렘� 북서쪽� 약� 52km� 지점에� 위치해�

있다.� 베냐민� � 지파의� 땅� 중� 가장� 외딴� 곳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사마리아� 총독� 산발랏은� 느헤

미야를� 그곳으로� 유인하여� 거기서�살해하려는� 음모를�꾸미기도�했었다(6:2).� '강한'의� � 의미이다.� 한편,�

'공장� 골짜기'는� 개역성경을� 따를� 경우� 마치� '오노'와� 별개의� 지명인듯보인다.� 그러나� 히브리� 원문에는�

앞의� '오노'와� '공장� 골짜기'� 사이에� '그리고'� � 혹은'-� 와'의� 뜻을� 갖는� 접속사� '와우'(*� )가� 없다.� 그렇

다면�결국� '오노'와� '공장� 골짜기'는� 동격(同格)인� 셈이다(KJV,� LB,� RSV).

=====11:36� � 본절은� 레위� 사람들의� 일부가� 느헤미야� 시대에� 유다� 땅에서� 베냐민� 땅으로� � 이주했었

음을� 말해준다.� 레위� 사람들의� 이� 같은� 이주는� 십일조의� 원활한� 수납(收納)을� � 위한것으로� 짐작된다(Fensham,� 10:39).� � � � 느헤미야�제� 12장

=====12:1� � 느헤미야는� 인구� 재정착� 작업을� 마친후� (11장),� 이스라엘의� 존재� 기반인� 여호와� 신앙의�

종교적� 제도를� 재정비하기� 위하여� 제사장� 및� 레위� 사람들의� 가계를� 조사한다.� � � 스룹바벨과� 및� 예수아�

-� 이들은� 바벨론으로� 부터의� 제1차� 귀환을� 주도했던� � 정치적지도자와� 종교적� 지도자였다(스� 2:2).� 따

라서�본절부터� 7절까지에�언급되는� 제사장�가문은�모두� 최초의� 귀환� 대열에�속했었다.� 한편,� 1-7절� 외

에� 12-21절과(느헤미야� � 초기시대의� 제사장� 가문의� 명단),� 10:2-8(느헤미야후기� 시대의� 제사장� � 가문

의� � 명단)에도제사장� 목록이� 기록되어� 있으며,� 이들의� 차이에� 관해서� 는� 주제� 강해,� '세� 가지� � 제사장�

계보� 명단� 비교'를� 참조하라.� � � 스라야� � -� � 대상� 9:11에는� '아사랴'로� 나온다.� � � 예레미야� -� � 이� 가문

에� 대해서는� 알려진바가� 없다.� � � 에스라� -� 에스라서의� 저자인� 에스라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학자들

은�이� '에스라'가� 10:2의� '아사랴'의� 축약형이라고�주장한다(Kid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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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아마랴� -�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의� 뜻이다.� � � 말룩� -� 14절의� '말루기'와� 동일한� 듯하다.�

'통치하는'의� 뜻이다.� � � 핫두스� -� '대적자'의� 뜻이다.

=====12:3� � 스가랴� -� 14절� 및� 10:4과� 같이� '스바냐'로� 고쳐야� 할� 것이다(Rawlinson).� � � 르훔(*� � � �

� � )� -� '하림'(*� � � � � � )의� 오류로�추정된다(Rawlinson,� Kidner,� � 10:5;스2:39).� � � 므레못(* � � � )� -� 15

절의� '므라욧'(*� � � � � � � � � � )의� 바른�이름이다.� � '높은곳들'의�의미이다.

=====12:4� 잇도(* � )� -� 10:5의� '오바댜'(*� � � � � � � � � � )의� 바른� 이름이다.� 보다� 후대의� 제사장�

가문의� 명단(12-21절)에도� '잇도'(16절)로� 나오는� 것을� 보면� '오바댜'는� 필사자의� 잘못인것� 같다

(Rawlinson).� � � 긴느도이(* � � � � � � � )� -� '긴느돈'(*� � � � � � � � � � )의� 오류인� 듯하다(Rawlinson,�

16절;10:6).� � � 아비야� -�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가� 바로� 이� 제사장� 가문에� 소속되어� 있었다(눅�

1:5).

=====12:5� 미야민� -� '운이� 좋은'의� 뜻이다.� � � 마아댜(* � � � � � )� -� 이것은� 17절의� '모아댜'(*� � � �

� � � � � � � � )와� � 동일한� � 듯하다(10:8).� '여호와의� 장식품'의� 뜻이다.� � � 빌가� -� 10:8의� '빌개'와� 동일하

다.

=====12:6� 스마야� -� 18절과� 10:8에도� 동일하게� 등장한다.� � � 요야립� -� 이� '요야립'� 앞에만� '그리고'

의� 의미를�갖는� 접속사� '와우'(*� � )가� 있다.본서의�저자는�이렇게�함으로써�앞의� '스마야'까지와�여기의� �

'요야립'부터를� � 확연히구분하려고� 시도한다(19절).� 추측컨대� 이는� '요야립'� 가문부터,� 어떤� 원인에� 의

해서인지는� 모르지만,� 언약에� 인을� 치지� 못했던� 때문인� 것� 같다(Rawlinson).� 이와� 같은� 주장은,� '요야

립'이하의� 가문명들이� 10장의� 인친� 가문의� 명단중에서� 발견되지� 않는다는� 사실로써� 어느� 정도� 뒷받침

된다.� 한편,� '요야립'은� '여호와께서� 아심'의� 뜻이다.� � � 여다야� -� '여다야'라고� 불리위지던� 대제사장� 가

문의�일족(一族)이다(스� 2:36).� '여호와께서�알고계시다'의� 의미이다.

=====12:7� � 살루� -� 조절의� '살래'와� 동일한�듯하다.� '무게를�단'의� 의미이다.� � � 아목� -� 조절에서도�다

시� 언급된다.� '깊은'의� 의미이다.� � � 힐기야� -� '여호와의�분깃'의� 뜻이다.� � � 여다야� -� 6절의� '여다야'처럼�

대제사장� 가문� 출신일� 것이다.� 한편,� 다윗� � 시대에는제사장들이� 24반차로� 구분되어� 번갈아가며� 그� 직

무를� 수행하도록� 규정된� 바� 있으나(대상� 24:1-19),� 1-7절에� 열거된� 제사장들의� 수효는� 22명이다.� 그

렇다고� 느헤미야� 시대에와서� 22반차로� 의도적으로� 재구성했으리라고� 보기는� 힘들다.� 따라서� 1-7절에

서는� 24반차�중� 2개의� 명단이�생략되었다고�본다.

=====12:8,9� � 본절의� 명단들은� 가계명으로� 봄이� 타당할� 것이다.� 비록� 귀환� 당시에는� � '예수아'와'갓

미엘'� 자손밖에� 없었지만(스� 2:40)� (1)약� 백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 레위� � 사람들의인구가� 증가하였고,�

(2)� 에스라가�레위� 사람들을�바벨론에서�데려왔기(스� 8:15-20)� 때문에�이처럼�가문의�숫자도�늘어났을�

것이다.

=====12:10� 본절과� 다음� 절은� 포로� 귀환� 시대에� 활동했던� 대제사장의� 계대를� � 보여주고� � 있다.따라

서�이것은�대상� 6:3-15에�나타난�아론으로�부터�바벨론�포로� � 때까지의 대제사장족보의� 연장이다.� 물

론� 포로� 기간,� 즉� B.C.� 586년부터� B.C.� � 538년까지는� � 대제사장이없었다.� � � 예수아� -� 스룹바벨과� 함

께� 최초로� 귀환했던� 인물이다(스� 2:2).� 그는� B.C.� 520년� 경의� 성전� 재건� 공사를� 재개하는� 데� 참여했

음이� 분명하다(스� 5:2).� 그러나� 성전이� � 준공될� 때까지� 살아있었는지는� 분명치� 않다(스� 8:15-18).� � �

요야김� -� 예수아의� 뒤를� 이어� 대제사장� 역할을� 했다(12,26절).� '여호와께서� 일으키실� 것이다'의� 뜻이

다.� � � 엘리아십� -� 이� 사람은�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귀환한� 해인� B.C.458년� 이전에� 이미� 대제사장이� 되

어� 있었다(스� 10:6).� 그런데� 그는�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적극� 방해했던� 암몬� 사람� 도비야와� 내통하는�

등의� 이적(利敵)� 행위를� 하기도� 했다(13:4,5,28).그� � 이름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돌이키실� 것이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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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 � 요야다� -� 이� 사람은� 느헤미야의� 후기� 시대에� 대제사장으로� 활동했을� 것이다.� � 그의아들� 하나는�

사마리아� 사람� 산발랏의� 사위가� 됐었다(13;28).� 그� 이름의� 의미는� � '여호와께서� 알고� 계신다'이다.� 한

편,� 정확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유월절� � 기략'(thePaschal� Chronicle)이라는� 유대� 문헌에�따르면�

그의�재직� 기간은�삼십� 육� 년으로�되어있다(Rawlinson).

=====12:11� � 요나단� -� 22,23절의� 요하난과� 동일� 인물인� 듯하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요하난'

이� � 페르시아�총독� 바고아스의�환심을�사서� 자신의�대제사장직을�빼앗으려고� � 시도했던�동생� 예수아를�

살해하였던� 인물이라고� 말한다(Rawlinson,� Fensham).� 또한� � '요하난'은� 애굽에서� 발견된� B.C.� 410년� �

경의� � 파피루스� � 문서에서도� � 그이름이� � 언급된다(Fensham).� 그� 이름의� 의미는� '여호와의� 총애하심'

이다.� � � 얏두아� -� 요세푸스와�유세비우스의�기록에�의하면�얏두아는�알렉산더�대왕이� � 예루살렘에 입

성했을� � 당시의� � 대제사장이다.� � 그렇다면,� � 알렉산더의 예루살렘� � 입성이B.C.332년이었으므

로,� 본서가� B.C.5세기후반� (421-400년� 경)에� � 기록됐었다는� � 입장은손상을� 입게된다.� 따라서� 대부분

의� 학자들은� 10,11절의� 족보가� 후대의� 어떤� 인물에� 의해� 가필(加筆)되었을� 것으로� 조심스럽게� 추정한다.

=====12:12� 여기서부터� 21절까지에서는� 제사장� 21반열의� 이름� 각각과� 그� 각각의� 우두머리� 이름이�

나열되고� 있다.� 이는� 당시에� 제사장� 체계가� 새로� 정비되고,� 성전� 제사가� 엄정히� 드려졌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Rawlinson).� 사실� 요야김이� 대제사장으로� 재직하고� � 있었던� 시기는,� 성전이� 재건된(B.C.�

516년)� 직후였으므로� 당연히� � 성전� 제사가� 철저히� � 드려졌을� 것이다.� � � 요야김� 때� -� 에스라나� 느혜미

야가� 귀환하기� 얼마� 전의� 시기를� 가리킬� 것이다.� 분명치는� 않지만� 예수아의� 대제사장� 재직이� B.C.�

490년까지였다면(B.T.� Dahlbaerg).� � 요야김은� 에스라의� 도착(B.� C.� 458년)직전까기� 대제사장에� 있었

을� 것이다.� � � 스라야� 족속� -� 1절의� '스라야'에� 대한� 주석을� 참조하라.� � � 므라야� -� '모반'의� 뜻이다.� � �

예레미야�족속� -� 알려진�바가�없다.� � � 하나냐� -� '여호와께서�은총을�베푸셨다'의� 뜻이다.

=====12:13� � 에스라� 족속� -� 1절의� '에스라'에� 대한� 주석을� 참조하라.� � � 므술람� -� '동맹한'의� 뜻이다.� �

� 아마랴�족속� -� 2절�주석� 참조하라.� � � 여호하난� -� '여호와는�은혜로우심'의� 뜻이다.

=====12:14� 말루기� 족속� -� 2절의� '말룩'과� 동일하다.� � � 요나단� -� '여호와께서� 주셨다'의� 뜻이다.� � �

스바냐�족속� -� 3절� 주석을�참조하라.� � � 요셉� -� '그가� 더할�것이다'의� 뜻이다.

=====12:15� � 하림� 족속� -� 3절� 주석을� 참조하라.� � � 아드나� -� '즐거움'의� 뜻이다.� � � 므라욧� 족속� -� 3

절� 주석을�참조하라.� � � 헬개� -� '할당된'의�뜻이다.

=====12:16� 잇도� 족속� -� 4절� 주석을� 참조하라.� � � 스가랴� -� '여호와께서� 기억하셨다'의� 뜻이다.� � � 긴

느돈�족속� -� 4절�주석을�참조하라.

=====12:17� � 아비야� 족속� -� 4절� 주석을� 참조하라.� � � 시그리� -� '기억할만한'의� 뜻이다.� � � 미냐민� 곧�

모아댜� 족속� -� 이� 두� 이름은� 별개의� 것으로� 보는� 것이� 좋다.� 아마� � 필사자의� 오류로� '미냐민� 족속'의�

우두머리� 이름이� 누락됐을� 것이다(5절).� 한편'모아댜� 족속'에� 대해서는� 5절� 주석을� 참조하라.� � � 빌대� -�

'구출된'의� 뜻이다.

=====12:18� � 빌가�족속� -� 5절의� '빌가'와�동일하다.� � � 삼무아� -� '소문'� 혹은� '풍문'의� 뜻이다.� � � 스마

야�족속� -� 6절을�참조하라.� � � 여호나단� -� '여호와께서�주셨다'의� 뜻이다.

=====12:19� 요야립� 족속� -� 본� 제사장� 가문� 명단중� 유일하게� 이� 앞에만� '그리고'의� 뜻인� 접속사'와우

'(*� � )가� 있다.� 그이유에�대해서는� 6절� 주석을�참조하라.� � � 맛드내� -� '자유로운'의� 뜻이다.� � � 여다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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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 6절� 주석을�참조하라.� � � 웃시� -� '힘센'의� 뜻이다.

=====12:20� � 살래� 족속� -� 7절의� '살루'에� 대한� 주석을� 참조하라.� � � 갈래� -'경솔한'의� 뜻이다.� � � 아목�

족속� -� 7절� 주석을�참조하라.� � � 에벨� -� '건너편'의�뜻이다.

=====12:21� � 힐기야� 족속� -� 7절� 주석을� 참조하라.� � � 하사뱌� -� '여호와께서� 생각하셨다'의� 뜻이다.� � �

여다야�족속� -� 7절� 주석을�참조하라.� � � 느다넬� -� '하나님에�의해�주어진'의� 뜻이다.

=====12:22� � 본절과� 23절도� 10,11절처럼� 후대의� 삽입인� 듯하다.� � � 엘리아십...요야다...요하난...얏

두아� -� 10,11절� 주석을� 참조하라.� � � 바사� 왕� 다리오� -� 다리오라는� 이름을� 가진� 왕이� 페르시아� 역사상�

세� 명� � 등장한다.그러나� 문맥상� 본문의� 다리오는� 유다의� 대제사장� '얏두아'와� 동시대� 사람인� 다리오� �

3세(B.C.� 335-331년)를�가리킨다고�봄이�무난하다.

=====12:23� 역대� 지략� -� 여러� 가지� 명단과� 기록을담은� 공식적인� 성전� 연대기로� 추측된다

(EdwinYamauchi).� 한편,� 성경에� 언급된� 자료나� 문서들에� 관해서는� 대하� � 35:26,27의� � 도표를참조하

라.� � � 요하난은� 약B.C.400년까지� 대제사장직에� 있었다.� 최후의� 선지자� 말라기도� 바로� � 이시대에� 활동

했었다.

=====12:24� 본절과� 다음� 절의� 레위� 사람들의� 명단은� 개인의� 이름이� 아닌� 가문의� 이름임이� 분명하

다.� � � 하사뱌� -� 포로� 귀환� 후� 생긴� 레위� 사람의� 가문일� 것이다(8,21절).� � � 세레뱌� -� '하사뱌'와� 마찬가

지이다.� � � 갓미엘의� 아들� 예수아� -� '아들'(*� � � � ,� 벤� )은� '빈누'*� � � � � � � � )의� 오류임이� � 분명하다

(Kidner,� 8절).� � � 그형제의�맞은편에�있어� -� 레위�성가대가�교송(交頌)� 형식으로�찬양을�드렸음을�의미한다(9절;스� 3:11).� 즉,� 두� 파트로� 나뉘어� 서로� 마주보며� 찬양하였던� 셈이다.� � � 하나님의� 사람� 다윗의�

명한대로...찬양하며� 감사하고� -� '하나님의� 사람'은� � 다윗이신정� 왕국� 이라엘의� 예배� 체계를� 신실하게�

확립했던� 사실을� 염두에� 두고� 사용한� � 용어인� 듯하다(대하� 8:14).� 다윗이� 노래하는� 자들의� 반차를� 정

한� 것은�대상� 25장에서�언급되고�있다.

=====12:25� � '노래하는� 자'(11:17)들이� '문지기기'의� 역활도� 병행했었다는� 추측은� 불필요한� � 듯하다

(Fensham).� 따라서� 우리는� '오바댜'� 까지의� 세� 사람을� 24절의� 후미에� � 붙여야� � 할것이다(Kidner).� 그

렇게� 할� 경우,� '맛다냐'와� '박부갸'� 사이에만� 유일하게� 있는� � 접속사� '와우'(*� � )를� '오바댜'와� '므술람'

사이로� 옮기면� '노래하는� 자'와� '문지기'� � 사이의� 구별이� 뚜렸� 해진다.� 6절의� '요야립'에� 대한� 주석을�

참조하면,� 이� 같은� 구별에� �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 므술람과� 달몬과� 악굽� -� '므술람'(*� � �

� � � � � � )은� 대상� 9:17절� 및� 스� 2:42� 등을� � 볼때,� '살룸'(*� � � � � � � � )의� 오류임이� 분명하다(Schultz).� � �

문� 안의� 곳간� -� '문지기'들이� 지켰던� '곳간'은� 성전에� 부속되어� � 있던� � '곳간'들을가리킨다(Schults,�

10:38,39).

=====12:26� 모든� 사람은� 요사닥의�손자�예수아� -� '요사닥'은� 바벨론에�붙들려간� '여호사닥'� 대제사장

과� 동일� 인물이며(대상� 6:15),� '예수아'스룹바벨과� � 함께� � 귀환한� � 대제사장(스2:2)이다.� � � 요야김과...

느헤미야와...에스라때� -� 이것은� 여기의� 세� 사람이� � 모두� � 동시대(同時代)의� 사람들임을� 말하지� 않는다.� 여기의 '요야김'은� � 에스라가� � 바벨론에서� � 귀환한B.C.458년� 이전에� 죽었을� 것이다.� 즉,� 에

스라가�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요야김'의� � 아들� '엘리아십'이� 대제사장의� 직책에� 올라� 있었다(스�

10:6).

=====12:27� 여기서� 문제가� 되는� 바는,� 본절� 이하에서� 언급되는� 성곽� 봉헌식� 행사가� 언제� � 실시되었

느냐�하는�점이다.� 이에� 대해서는� (1)� 성곽� 공사가�준공된�직후에�봉헌식이� � 있었다는� 견해(Rudolph),�

(2)� 예루살렘으로의�인구�재정착�사업을�끝마친� � 후에 봉헌식이있었다는�견해(Fensham,� Keil,� My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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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느헤미야가� � 페르시아에� � 다녀온� � 직후인B.C.432년에� 봉헌식이� 있었다는� 견해(Rawlinson)� 등으

로� 견해가� 엇갈린다.� 원래� � 봉헌식이라는� 것은� 집이든� 성곽이든� 준공� 직후에� 시행되는� 것이� 고대� 이스

라엘�사회의� � 보편적�관습이었으나(스� 6:14-16).� 그럼에도�불구하고�너무도�시급한�예루살렘�성의� � 방

비� 문제(7:4)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진정한� 기쁨으로� 봉헌식을� 실시하기는� 어려웠으리라는� 점� 등

으로� 미루어� 볼� 때� 위의� 세� 견해� 중� (2)의� 견해가� 가장� 타당할� 것이다.� � � 예루살렘� 성곽이� 낙성(落成)되니.� -� 6:15에서� 언급되고� 있다.� � � 각처에서� 레위사람을� 찾아� -� 이것은� 연대기적으로� 혹은� 내용상� 당

시에� 레위� 사람들이� 십일조의� 징수� 등의� 목적으로� 유다와� 베냐민의� 각� 성읍에� 거주하고있었다는11:36

의내용과� 바로� 연결된다.� 그들은� 평소에는� 자신들에게� 배당된� 성읍에서� 살았지만,� � 자신들의� 봉사� 순

서가� 돌아오거나�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에는� 예루살렘으로� � 와야만� � 했다(대하� 23:2).� � � 감사하며� 노

래하며� 제금� 치며...봉헌식을� 행하려� -� 이것은� 성전� 봉헌식� 때� � 솔로몬이� � 사용했던� 방식의� 답습이다

(대하� 5:12,13).� '제금'(*� � � � � � � � � � ,메칠타임)은� 이� 단어의� 복수� 형태가� 잘� 보여주듯이,� 마치� 솥뚜껑

처럼� 생긴� 한� 쌍의� 금속을� 부딪혀� � 소리내는� 악기로서� 현대의� 심벌즈와� 유사하다.� � � 비파(*� � � � � � ,네

벨)� -� 요세푸스는�이� 악기의�현(絃)이� 열� � 둘임을� � 중언하고� � 있다(Ant.VLL,xii,3).� � � 수금(* � ,�

키누르)� -� 현이� 셋밖에� 없는� 것으로� 부터� 열� 둘� 되는것까지� � 다양했었다.� 특별히� 귀족들에� 의해서� 많

이� 사용된�고급� 악기였던�관계로,� 은� � 혹은� � 상아,심지어는�금으로�장식되었다고�한다.� 앞의� 비파� 보다

는�크기가�작았다.

=====12:28� 예루살렘� 사방� � 들� -� 여기의'들'(*� � � � � � ,� 키카르)은� 때때로� 평지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예루살렘� 둘레에는� 말� 그대로의� '들'은� 없다는� 점에서.� 본� 문구는� 다만� � '예루살렘� 일대의주변'으로� 이

해될�수�있을� 뿐이다(Myers).� � � 느도바�사람의�동네� -� 베들레헴의�동남쪽�가까이�위치했던�작은 마

을인 것� � 같다(Fensham,schults).

=====12:29� 벧길갈� -� 예루살렘� 동북쪽� 약� 26km지점의� '길갈'과� 동일� 지역인� 듯하다.� � � 게바� -�

11:31� 주석을� 참조하라.� � � 아스마웽� 들� -예루살렘� 북동쪽� 약� 8km지점� 베냐민� 지경(스� 2:24)을� 말한

다.� � � 노래하는� 자들은...예루살렘� 사방에� 동네를� 세웠음이라� -� '노래하는� 자들'이� � 이같이� 한� 이유는�

예루살렘� 성전� 봉사에� 쉽사리� 참여하기� 위함이었다(Rawlinson).� � 아무튼이� 문구는� '노래하는� 자들'이�

앞절과�본절의�전반부�처럼�쉽사리�예루살렘에�올�수�있었던�이유를�설명해준다.

=====12:30� � 성벽� 봉헌식에�앞서�정결례를�행함�으로써�거룩하신�하나님�앞에�올바른 마음가짐을�

갖추는�내용이다.� '정결케�하다'의� 뜻인� 히브리어� '타헤르'(*� � � � � � )는� 구약� � 성경에서� 94회� 나오며�거

의� 의식적� 혹은� 윤리적� 정결과� 관련� 하여사용된다.� 특히� 부정했던자를� 다시� 회복시켜� 의식� 절차에� 참

여할� 수� 있게끔� 해주는� 정결� 행위를� 가리키는� 말로가장� 흔히� 사용되었다� (레� 22:4-7).� � � 제사장들과�

레위�사람들이�몸을�정결케하고� -� 금식,� 성적� 욕구의� � 절제, 속죄제를드리는것� 등을� 가리킨다.� � � 백

성...정결케� 하니라� -� 일반� 백성들은� 옷의� 세탁(출� 19:10,14),� 목욕� 및� 물을� � 뿌림(민� 8:7;19:12)� 등

을� 통해� 정결케했을� 것이다.� � � 성문과� 성� -� 이것들� 또한� '정결케'할� 필요성이� 있었다.� 이는� 성벽� 재건�

도중� � 성벽에� 부정한� 것들이� 접촉되었거나� 혹은� 거기서� 부정한� 일들이� 저질러졌을� � 것을� � 염려한때문

이었을�것이다(Myers,� 신� 23:14).� 그것들을�정결케�하는방법은,� 개인의�가옥을�정결케�하는� 방법과�마

찬가지로�우슬초로�새의�피를� 거기에�뿌리는�방식이었음이�분명하다(레� 14:49-53).

=====12:31유다의� 방백들로� 성� 위에� 오르게� 하고� -� 느헤미야의� 이� 같은� 조처는� � 서쪽� � 성곽의중앙

부� 곧� 골짜기� 문(2:13)에서� 이뤄졌을� 것으로�짐작된다(Rawlinson).� 이같이�볼� � 수있는�까닭은,� 느헤미

야가� 총독의� 자격으로� 예루살렘에� 온� 직후� 성벽의� 파괴� 정도를� 관찰하기� 위한� 경로를� 바로이� '골짜기�

문'부터� 잡았기�때문이다(Schultz).� � � 감사�찬송하는�자의�큰� 무리� -� 레위� � 사람들� � 중� � 아삽 자

손들을� � 가리킨다(27-29절;11:17).� � � 성위로� 행렬을� 지어� 가게� 하는데� -� 이러한� 독특한� 의식적(儀式的)� 행동은,� 그� 성벽이�하나님의�절대적�권능과�인도에�따라서�재건� 되었음을�감사및� � 고백하는 데

(27절)그�목적이�있었다(Kidner,시� 48:12-14).� 물론� 거기에는�예루살렘의 방비를 하나님께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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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히� 의뢰한다는� 의미도� 담겨있었을� 것이다.� � � 한� 떼는� 우편으로� 분문(糞門)을� 향하여� 가게� 하니� -� 이�대열은� '골짜기� � 문'(2:13)에서� 남쪽으로� 향하여� 약� 450km� 떨어져� � 있던� '분문'을� 통과하도록� 되어� �

있었다(서론의� '성벽모형도'� 참조).� 이대열의� 인도자는� '학사� 에스라'였고(36절).� 선두에는� � 찬송하는�

레위인들이�위치했다.

=====12:32� 호세야와�유다� 방백의�절반� -� '호세야'가� '유다� 방백'의� 선두에�섰었음을�암시하는듯하다

(Schultz),� 한편,� 여기의� 유다� 방백'은� 반드시� 유다� 지파의� 방백만을� � 가리키지않으며� 지파를� 막론한� '

이스라렘�백성'들의�방백을�가리킬�것이다.

=====12:33� 아사랴와�에스라와�므술람� � - 이들을 방백들의� � 이름으로� � 보는� � 견해도� � 있으나

(Schultz),� 성벽� 봉헌식에� 있어� 레위인과� 제사장의� 역할을� 강조하는� 본문� 전후의� 문맥을� 고려해볼� 때�

레위인�혹은� 제사장의�명단으로�이해하는�것이� � 보다� � 타당할� � 것이다(Rawlinson).

=====12:34� � 유다와� 베냐민� -� 이것은� 평민들의� 집단을� 가리킴이� 분명하다.� � � 스마야와� 예레미야� -�

두� 제사장�가문의�이름이다(12,18절).

=====12:35� � 제사장의� 자손� 몇이� 나팔을�잡았으니� -� '나팔'은� 레위� 사람들에�의해서�간혹� � 사용되었

을� 뿐(대상� 16:42),� 주로� 제사장들에� 의해서� 다뤼지던� 악기였다.� 이� 악기는� � 특별한� 종교적행사� 혹은�

사건의� 축하를� 위하여� 사용되었다(삼하� 6:15;대하� 7:6;29:26-28).한편,� '잡았으니'라는� 번역은� 독자들

로� 하여금� 마치� 그다음에� 나오는� 이름들이� '나팔'을� 잡은� 사람의� 구체적� 명단인� 양� 착각케� 한다는� 점

에서.� '잡았고'라고� 해야� 보다� � 타당하다.� 물론� 개역� 성경과� 같은� 번역은,� 원문상� 본� 문구와� 바로� 다음

에� 나오는� 단어인'스가랴'� 사이에� '그리고'를� 뜻하는� 접속사� '와우'(*� � )가� 없기� 때문에� � 가능하긴� � 하

다.� 하지만� 본� 문구� 뒤에� 나오는� 여러� 사람들이� 모두� 레위� 사람들이� � 분명한� 이상,'잡았고'로� 고쳐� 번

역함이�보다�자연스럽다(Rawlinson,� Myers,� Williamson).� � � 맛다냐� -� 스룹바벨과�함께� 귀환했던�레위�

지파의� 아삽� 자손이었다(11:17).� � � 아삽의� 육� 대� 손� 스가랴� -� '아삽'은�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찬송의�

책임을� 부여받았던� 레위� 사람이었다(대상� 16:4-7;대하� 5:12).� 한편,� '스가랴'는� 느헤미야� 시대의� 인물

이었다.� 그렇다면� 약� 500년� 이상의� 연대� 차이가� 나므로,� 여기의� '육� 대� 손'이라는� � 번역은� 적절치� 않

다.� 차라리� '자손'으로� 번역함이�무리가�없다.

=====12:36� 그� 형제� -� 다음에� 나오는� 여러� 사람들이� 앞절의� '스가랴'처럼� 아삽� 자손들이라는사실을�

시사해준다.� � � 아사렐� -� '하나님께서�도우심'의� 뜻이다.� � � 밀랄래� -� '말이�많은'의�의미이다.� � � 느다넬� -�

'하나님에� 의해� 주어진'의� 뜻이다.� � � 하나니� -� '은혜로움'의� 뜻이다.� � � 다윗의� 악기� -� 레위사람들이� 주

로� 사용하던� 악기들,� 곧� 제금,� 수금,� 비파� 등을� � 가리킨다(27절;대상� 15:16,19-21).� 이처럼� '제금'.� '

수금',� '비파'를� '다윗의� 악기'라고한� 까닭은,� 그� 악기의� 사용이� 다윗에� 의하여� 레위� 사람들에게� 명령된�

것이기� 때문이었다(대상� 15:16).� � � 학사� 에스라가� 앞서서� -� 그당시의�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에스라'라

는� 인물이� � 차지하던� 비중을�잘� 보여준다.� 비록� 그는� 느헤미야와� 같은� 정치적�권세를� 갖고� 있지는� � 않

았지만,� 그� 당시� 이스라엘� 공동체의� 영적� 각성이� 그의� 종교적� 역량에� 힘입은� 바가� � 컸음을� 감안한다면�

중요시될�수밖에�없는� 인물이었다(8:1-12).

=====12:37성으로� 올라가는� 곳에� 이르러� -� 성벽을� 타고� 행진하던� 에스라� 일행이� 일단� � 성벽에서� 내

려왔음을� 전제로한다.� 사실� 에스라의� 일행은'샘문'이� 가로� 막혀� � 있었기� � 때문에성벽에서� 일단내려왔었

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 반대쪽의� 성벽� 으로� 올라가야만� 했다.� � � 다윗� 성의� 층계로� 올라가서� -� 이� '다

윗� 성의� 층계'는� 샘문을� 통하여� 성의� 안쪽으로들어가는� 길목이� 되었었다.� 바로� 이계단을� 통하여� 에스

라의� 일행은� 성의� 안쪽으로� � 들어갔음이� 분명하다(Schultz).� � � 다윗의� 궁� 윗길� -� 여기의� '길'(*� � � � � � � �

,호마)은� 잘못된� 번역이다.� 이� '호마'는� '성벽'의� 뜻이� 있을� 뿐이다(출� 14:22;신� 3:5;렘� 1:18).� � � 동향

(東向)하여� 수문에� 이르렀고� -� 이것은� 에스라의� 일행이� 샘문� 북쪽의� 성벽� 끝을출발하여� 그� 성벽을� 따

Page 70: 느헤미아제1장 - Christian Monitorchristianmonitor.net/jusuk/nehemia.pdf성을갖고있는무리로묘사되고있다(사27:13;겔34:4,16:미4:6;습3:19).한편,'하늘끝'은

라� 계속� 진행했었음을� 가리킨다.� 한편,� 본문의� 수문이� 느헤미야당시에� 재건된� 성벽의� 바깥에� 위치하였

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여,� 이� 문에� � 대한� � 여러가지� 견해가� 제시되어� 왔다.� (1)� 느헤미야가� 포로� 이전

시대의� 수문과는� 별도의� 수문을만들었으리라는� 견해.� 그러나� 그러한� 언급이� 3장에� 나오지� 않으며� 또� �

3:26의� � 수문과본문의� 수문이� 동일한� 지점을� 가리킨다고� 봄이� 더� 무난하다는� 점에서� 이� 견해는� � 받아

들이기� 곤란하다.� (2)� 에스라� 일행이� 새로� 재건된� 성벽을� 벗어나� 그� 바깥쪽으로� � 돌았으리라는� 견해.�

하지만�에스라�일행은� 특별한�경우만�성벽� 안쪽으로�돈� 것을� 제외하면줄곧�성벽� 위로� 돌았음에�분명하

다.� (3)� 본문의� '수문'을� 3:26에서처럼� '수문과� � 마주대한�곳'으로� 해석하는�견해.� 여러� 측면에서� (3)의�

견해가�가장� 무난하리라�본다(Will-iamson).

=====12:38� � 저희들� 마주� 진행하는데� -� 여기의� '마주'(*� � � � � � � � � � ,레모올)는� '반대로'의� � 의미이다

(NIV).� 따라서� 이는� 에스라에� 의해� 인도된는(36절)� 한� 대열이� 성을� 따라� 우추으로돈� 데� 반해,� 또� 다른�

한� 대열은� 좌측,� 즉� 북쪽으로� 돈� 것을� 가리킨다.� � � 내가� 백성의� 절반으로� 더불어� 그� 뒤를� 따라� -� 비록�

느헤미야가� 그� 대열의� 인도자였지만,� 그� 대열의� 선두에는� 아삽� 자손의� 노래하는� 자들이� 위치했었음을� �

말해준다.� � 이같은� 순서는� 에스라에� 의해� 인도된� 대열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 � 풀무� 망대� 윗길

로� 성� 넓은� 곳에� 이르고� -� 여기의� '풀무� 망대� 윗길'은� � '다윗의� � 궁윗길'과� 마찬가지로� '풀무� 망대에�

이르는� 성벽'으로� 번역되어야� � 한다(37절� � 주석� � 참조).� 한편,� 이� '풀무� 망대� 윗길로'와� 다음의� '성� 넓

은� 곳에� 이르고'사이에는� � '경유하여'(*� � � � � � ,� 메알)라는� 단어가� 삽입되어야� 한다.� '성� 넓은� 곳'에� 대

해서는� 3:8주석을참조하라.

=====12:39� � 에브라임� 문� -� 북쪽� 성벽의� 서쪽� 부분에� 있던� '하나넬� 망대'(3:1)와� '함메아� 망대'사이

의� '문'이다.� � � 옛� 문� -� 3:6절� 주석을� 참조하라.� � � 어문� -� 3:3� 주석을� 참조하라.� � � 하나넬� 망대와함메

아� 망대...양문� -� 3:1� 주석을� 참조하라.� � � 감옥문� -� 이것은� 수문에서� 북쪽으로� � 약간� � 떨어진� � 어느지

점에 위치했을� � 것이다(Rawlinson).

=====12:40� � 본절은� '감사� 찬송하는� 두� 떼는� 하나님의� 전에� 섰고� 나를� 포함한� 민장(民長)의� � 반은�나와� 함께� 있었다'로� 번역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성전에서의� 봉헌식을� 주관하던성직� 계급과� 평신도

들의� 분리되는� 모습이� 생생히� 비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Fensham).결국� 에스라에� 의해� 인도된� 무리들

과�느헤미야에�의해�인도된�무리들은�각기�반대� � 방향으로�나아가서�성전에서�서로�만났다고�볼� 수�있

다.� � � 민장� -� 32절에서�언급되는� '방백'과�본질상�동일할�것이다(Rawlinson).

=====12:41� � 본절부터� 43절까지에서는�성벽�봉헌식의�모습이�그려지고�있다. 본절에 언급되는이

름들은�개인의�이름임이�분명하다(Rawlinson).� 만일� 이것이�가문의�이름이라면�제사장�가문�목록에�실

려있어야�했을�것이다(12-11절;10:2-8).� � � 나팔를�잡았고� -� 35절� 주석을�참조하라.

=====12:43� � 마아세야...에셀이� 함께� 있으며� -� 원문에는� '함께� 있으며'에� 해당되는� 말이� � 없다.아무

튼� '마아세야...에셀'� 등도� 41절의� 제사장처럼� 나팔을� 불던� 제사장이었음이� � 분명하다(Fensham).� � � 노

래하는� 자는� 크게� 찬송하였는데� -� 이는� 반드시� 노래만� 했었다는� 뜻은� 아닐� � 것이다.� 분명히� 이� '찬송'

하는� 무리� 속에는� 악기를� 잡은자들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36절).� 따라서� 이� 봉헌식에는�

(1)� 느헤미야가�인도하던� 대열만이� � 참여하였고,(2)� 그래서� 악기를�사용하는� 레위인들은�없고�다만� '노

래하는� 자들'만이� 있었다는� � 롤린슨(Rawlinson)의� 주장은� 결코� 타당치� 못하다.� � � 그� 감독은� 예스라히

야라� -� 이� '예스라히야'는� '노래하는� 자'와� '악기를� 잡은� 자'모두에� 대한� 지휘자였던� 것� 같다.� 무리가�

크게� 제사를� 드리고� -� 여기서'제사'(*� � � � � � � � � � ,� 제바힘)는� � 주로� � 감사의화목제를� 가리킬� 때� 사용되

는� 단어이다(출� 24:5;29:28;레� 3:3;7:20;민� 6:17;왕상� 8:63).� 그때� 백성들은� 제물의� 일부를� 하나님께�

불살라서�바친�후(레� 3:11).� � 그 나머지의부분� 중� 일부는�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에게� 주고(레�

7:29-34),그� 잔여분을�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 먹었을것이다(신� 12:17,18).� � � 하나님이� 크게� 즐

거워하게� 하셨음이라� -�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 성벽을� � 성공적으로재건할� 수� 있도록� 해주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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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16)로� 인하여� 백성들이� 크게� � 기뻐하였음을� � 가리킨다.� � � 부녀와� 어린아이도� 줄거워하였으므로�

-� 성경은� 여자들이� 슬퍼하며� 애통하는� 모습에대해서는� 자주� 언급하고� 있으나(삿� 11:40;렘�

31:15;49:3;욜� 1:8),� 기뻐하는� 모습에� 대해서는� 그렇지�않다.� 따라서� 본절의�언급은� 그때� 이스라엘�백

성들의�기쁨이 너무나도컸음을� 더욱� 확연히�보여준다(Rawlinson).� � � 예루살렘의�즐거워하는�소리가�

멀리� 들렸느니라� -� 백성들이�기뻐� 환호하는� � 소리가매우�커서� 멀리� 떨어져�있는� 사람들도� 백성들의� 기

뻐하는� 모습을� 연상할수� 있을� � 정도였을� 것이다.� 반면,� 성전� 지대가� 놓여졌을� 때도� 백성들의� 소리가�

무척이나� � 컸었지만,기쁨과� 슬픔이� 교차되는� 소리였기� 때문에� 그것이� 무슨� 소리인지� 분별되지� 못했었

다(스3:13).

=====12:44� 본절부터� 47절까지에� 언급된� 사실은� 봉헌식이� 성대히� 거행된� 이후� 나타났던� 바람직한�

결과였다.� � � 그� 날에� -� 봉헌식이� 있었던� 직후의� 어느� 시점으로� 이해해야� 한다.� � � 사람을� 세워� 곳간을�

맡기고� -� 헌물의� 수령� 및� 관리를� 담당할� 사람을� � 임명한� � 것을가리킨다.� 전에� 느헤미야는� '곳간'을� 담

당하는�레위�사람과�입회인� � 자격의� � 제사장에대해서�언급한�바� 있다(10:38).� � � 제사장들과�레위�사람

들에게� 돌릴� 것� -� '제사장들'은� 처음� 난� 가축이나� 과일� � 그리고� 포도주와� 기름� 등을� 백성들로부터� 받

았다(10:35-37).� 그리고� '레위� 사람들'은� 백성들로부터� 십일조를� 받았으며(10:38)� 그� 십일조의� 십분지�

일은� 제사장에게� � 다시돌려졌었다(민� 18:26).� � � 거제물(擧祭物)과� 처음� 익은� 것� -� 10:35-47을� 참조하라.� � � 유다사람이...� 레위� 사람들을� 인하여� 즐거워함을� 인함이라� -� 이것은� 백성들이� 봉헌식을� 통하여서�

성직자들의� 사역이� 얼마나� 귀중하고� 필요한� 것인지를� 절실하게� � 깨달았던� 연고일� 것이다.� 한편,� '유다�

사람'은� 지파를�막론한�모든� 이스라엘�백성들�곧�평민들을�가리킨다.

=====12:45� 본절에서는� 희생� 제사� 등과� 관련된� 봉사를� 하는� 제사장� 및� 레위� 사람,� 그리고� 노래하는�

자� 및� 문지기� 모두� 그� 자신의� 직무에� 충실했었다는� 사실에� 대한� 언급이다.� � 이는말할나위없이� 백성들

이�성직자들을�물질로�뒷받침한�결과였다.� � � 하나님을�섬기는�일� -� '섬기는�일'(*� � � � � � � � � � ,� 미쉬메레

트)은� 구약� 성경에서� � 주로� '직무'� 혹은� '직분'� 등으로�번역되는�단어로서,� 제사장�및� 레위� 사람들이�성

전� � 봉사와� 관련하여� 담당하던� 제반사(諸般事)를� 가리킨다(민� 3:7;대상� � 23:32;대하� � 7:6;겔44:8).� � �결례(潔禮)의� 일� -� '결례'(*� � � � � � � � ,� 타하라)는� 성전� 봉사와� � 관련하여� � 자신들의부정(不淨)을� 정결케�하는� 노력을� 가리킨다(Myers,� 대하� 30:19;겔� 44:26).� 자신� � 뿐만아니라� '성물'을� 정결케� 하는일도� 포

함될� 것이다(대상� 23:28).� � � 다윗과...솔로몬의� 명을� 좇아� -� 이것은�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 뿐만�

아니라앞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게도� 해당되는� 문구이다.� 즉� � '제사장들'과� � '레위사람들'의� 봉

사도� '다윗'과� '솔로몬'이�정한� 규례대로�시행되어졌던�것이다.

=====12:46� 본절은� '노래하는� 자들'이� '다윗'과� '솔로몬'의� 규례대로� 봉사했다는� 45절� � 후반부의� 언

급을� 보충하기� 위한� 의도에� 따라� 기록된� 듯하다.� 본절� 초두에� 있는� '왜냐하면'의뜻인� 접속사� '키'(*� � � �

)는� 본절이� 45절� 후반부의� 이유를� 설명하는� � 부분임을� � 보여준다.� 여기서� 느헤미야는� '노래하는� 자들'

이� 규례에� 따라� 봉사했다는� 사실이� 역사적� � 합법성에� 근거한� 것이므로�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주장을�

하려고� 한� 것이다.� � � 노래하는� 자의� 두목� -� '두목'(*� � � � � � � � ,� 라쉐이)은� 복수이다.� 이것은� 다윗� 당시

에'아삽'을� 포함한� 세사람의� '두목'이� 있었다는� 사실과� 잘� 합치된다(대상� 6:33,39,44;15:17).� 그� 나머

지� 둘은� '헤만'과� '에단'이었다.� � � 찬송...감사하는� 노래� -� '찬송'과� '감사'는� 신구약을� 막론한� 모든� 성도

들의�찬양에담겨야�할� 중요한�두� 가지� 주제일�것이다.

=====12:47� 본절은� 포로� 귀환� 시대에� 성직자들이� 특별히� 존중되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밝혀주고있

다.� � � 스룹바벨과� 느헤미야� 때� -� 이것은� 곧� 포로� 귀환� 시대� 전(全)기간을� 가리킨다.� � � 날마다� 쓸� 것...그� 구별한�것� -� 이� 두� 가지는�본질적으로�동일한�것으로 보아야한다.� 즉,� 이들은� '십일조'에� 대

한� 두� 가지� 표현일� 뿐이다.� � � 노래하는자들...문지기들...레위� 사람들� -� 구약� 시대에� 있어서� 이들은� � 모

두� � 레위지파의� 후손,� 즉� 레위인들이었으며,� 그래서� 모두� 기업을� 갖고� 있지� 못했으므로� 백성들이� 주는�

십일조로� 생활해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사실� 십일조� 제도가� 세워진� 모세� 시대심지어는� 사울� 시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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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인들� 중� '노래하는자들'과� '문지기들'은� 구별되지� 않았었다.� � � 레위� 사람들은...구별하여� 아론� 자손

에게� 주었느니라� -� 레위� 사람들이� � 백성들로부터� 징수한� 십일조� 중� 십분지� 일을� '제사장'에게� 준� 것을�

가리킨다(10:38;민� 18:26).� � � � 느헤미야�제� 13장

=====13:1� 그� 날(* � � ,하욤� 하후)� -� 12:44의� '그날'과� 동일한� 날로� 봄이� 무난하겠다.�

성벽� 봉헌시� 뜨겁게� 달아� 올랐던� 감격과� 헌신의� 마음� 자세가� 식기� 전인� 성벽� 봉헌� 직후에� 계속� 정화�

운동을� 전개했을� 것이다(Kidner).� 특히� 12:44부터� 본장� � 3절까지는� 3인칭� 시점으로� 기술된� 데� 반해�

4절� 이후부터는� 1인칭�시점으로�바뀐다는�점� � 또한본절의 '그� 날'과� 12:44의� '그� 날'� 의� 동일성

을� 뒷받침해준다.� � � 모세의� 책을� 낭독하여� -� '모세의� 책'은� 주로� 모세� 율법,� 즉� 모세� 오경을� 가리킨다.

본절은� 이어� 전개되는� 정화� 운동이� 철저히� 성경� 말씀에� 따른� 것임을� 천명하는� � 내용이다.� � � 암몬사

람...하나님의� 회(會)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 이것은� 신� � 23:3의� � 요약이다.한편� '하나님의� 회'(*� � � � � �� � � � � � � � � � � � ,카할� 하엘로힘)는� 구약� � 성경에서� � 유일하게사용된� 표현이다.� 즉,� 여기의� '카할'은� 구약�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는� 항상� '여호와'와함께� 사용된것이다(레� 4:13;민� 16:3;20:4).� 일반적로� '여호와

의� 회'는� (1)� 언약� � 공동체로서의� 백성들의� 모임(민� 20:4;신� 23:1),� (2)� 성전(聖戰)� 수행을� 위해� 모인� �백성들의� 집합,� 혹은� (3)�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 모이는� � 제의적(祭儀的)� � 의미에서의회중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렇다면� 신� 23:3과� 관련된� 문맥에서� 사용된� � 이� � '하나님의회'라는� 표현은� '여호와의�

총회'(카할)와�동일한�의미를�나타내는�것임에�분명하다.

=====13:2� 본절은� 하나님께서�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을� 이스라엘의� 공동체에� 들어오지� 못하게엄금

한�이유를�설명한�것으로서,� 신� 23:4,5의� 요약이다.� � � 저희가...이스라엘�자손을�영접지�아니하고� -� '암

몬'과� '모압'� 사람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영접해야� 했던� 이유는,� 두� 족속이� 이스라엘� 백성과� 혈통적으로�

한� 뿌리에�속했기�때문이었다.� 다시� 말해서�그들은�아브라함의�조카�롯의� 후손들이었다(창� 19-30-38).�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러한� 관계를� 고려하여� � 절대로� � 그들을공격하지� 말라고까

지�하셨었다(신� 2:9,19).� � � 양식과�물� -� 광야� 생활을�하던� 이스라엘�백성들에게�절실히�필요했던�두가

지였다(신� 2:6,7).� � � 발람에게...저주하게�하였음이라� -� 이것은�모압� 왕� 발락이�주동이�되어� 메소포타미

아의�브올에�살던� 복술가(卜術家)'발람'을� 초청하여�이스라엘�백성들에게�저주가�임하도록� 하라고�요청했던� 사실을� 가리킨다.� 모압과� 암몬� 족속이� 이처럼� 행동했던� 까닭은,막강한� 군사력을� 소유했던� 아모리�

족속까지� 격파시켰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에게도� 그� 같은� 군사� 행동을� 취할까� 염려해서� 였다(민�

22:2,3).� 그러나� 사실상� 이� 같은� 염려는� 어처구니없는� 기우(杞憂)였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을�형제로 인식하고있었다(신� 2:9,19).� 이에� 따라� 그들은� 다만� (1)�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날� 수�

있는� 길만비켜주고(신� 2:27,28),� (2)� 먹을� 양식과� 먹을� 물을� 돈을� 받고� 공급해주면� � 그만이었다(신�

2:6).� � � 뇌물을� 주어(*� � � � � � ,� 사카르)� -� '품삯을주고� 고용하다'� 혹은� '어떤� 일에� 대한� � 대가를� 지불하

다'의� 뜻(창� 30:28;민� 18:31;전� 4:9;9:5).� 이것은� 구체적으로,� 모압� �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

한� 대가로� 발람에게� 많은� 은금(銀金)을� 주었던� 사실을� 가리킨다(민� 22:18;24:13).� � � 저주를� 돌이켜�복이� 되게� 하셨다� -� 비록� 발람이� 모압� 사람의� 요청을�받아들여�이스라엘�백성들을� 저주할� 마음을�가졌

었지만,� 하나님의�강권적�역사에�따라� 그가� � 도리어이스라엘을�축복했던�사실을�가리킨다(민� 24장).

=====13:3� 백성들의� 이� 같은� 즉각적인� 반응은,� 그들이� 칠칠절� 절기� 이래� 계속적으로� 에스라로부터�

신앙적� 감화를� 받은(8:1,13;9장)� 결과였다.� � � 섞인� 무리를...몰수히� 분리케� 하였느니라� -� 여기의� '섞인�

무리'(*� � � � � � ,� � 에레브)는� '함께� 사귀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 '아라브'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함께� 있

는� 사람'의� 뜻이다.� 구체적으로는� 이스라엘� 사람들� 사이에� 머물면서� 성전� 의식에� 참여하는� 등이스라엘�

사람�행세를� 했던� 이방인들을� 가리킨다(Fensham).� 이� 히브리어는�출애굽� � 당시� 이스라엘�백성과�함께

했던�이방인들을� 가리키는� 말로도�사용된� 바� 있다(출� 12:38).그러나�거기서는�그들이� 아무런� 무리없이�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반면에� 본문의� 이방인들은� 실제적으로� 여호와� 신앙에� 바로� 서

지� 못했을�뿐만� 아니라� � 이방악습을�끌어들여�여호와�신앙의� 순수성을�해칠�위험이�있는자들이었던� 것

으로�보인다.한편,� '분리케�하였느니라'(*� � � � � � � � � � � � � ,� 얍딜루)는� '구분하다'혹은� '나누다'의� 뜻인�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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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 � � � � )의� 사역형이다.� 따라서� 이� 말은� 강제적으로� � 이방인들을� � 쫓아내는일이� 있었음을� 암시한

다.� 또한� '바달'이라는� 동사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는� 두� � 개체를각기� 위치해야� 할� 곳으로� 완전히� 갈라

놓는� 것을� 가리킨다(창� 1:14;출� 26:33;레� 10:10;스� 6:21).� � � 이스라엘� 가운에서� -� 혹자는� 전통적으로�

진정한� 이방인� 개종자들은� 이스라엘� � 사회내에� 받아들여졌으며� 또� 당시� 팔레스틴에� 이방인� 거주자들이�

결코� 적지� 않았음을� 고려하여� 본문을� '종교적� 모임으로부터의'� 축출로� 이해한다(Barren,� Myers,�

Williamson).그러나� 당시� 이방인들로� 말미암은� 문제의� 심각성을� 고려하건대,� 보다� � 단호한� � 조치가취

해졌을�가능성은�충분하다(Fensham).

=====13:4� 이전에(* � ,� 리프네이�미제)� -� 느헤미야가�페르시아로�다시 돌아가기전

의� 어느� 시점을� 가리킨다(6절).� � � � 우리� 하나님의� 전� -� 여기의�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만이� 들어갈� 수

있는'의� � 의미로� 확대�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같은� 표현은� 암몬사람인� 도비야에게� � 성전

의� 방을� 주었던� 제사장� 엘리아십의� 조처가� 대단히� 잘못된� 일임을� 보여준다.� � � 골방을� 맡은� 제사장� 엘

리아십� -� 본절의� '엘리아십'은� (1)� 대제사장� � 엘리아십(Raw-linson,� Schultz,� Kidner,� Keil).� (2)� 동명

(同名)의� 또� 다른� 제사장(Fensham,� � Myers,Williamson)� 등으로� 추측되어지고있다.� 그러나� 첫째,� 대제사장은� 성전의� 사소한� � 부분에� � 대한� 감독권까지� 갖고� 있었으며� 둘째,� 본절의� '엘리아십'이� '도비야'

와� 연락이� 있었다는� 사실과�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손자� 요야다의� 아들� � 하나가...산발랏의� � 사위가되었

으므로'라는� 28절의� 내용이� 잘� 부합되며� 셋째,� 대제사장에게는� 다만� '제사장'이라는� 직함이� 적용되는�

경우도� 허다하다(대하� 24:2;스� 2:63)는� 점� 등으로� 미루어� 볼� � 때,(1)의� 견해가� 보다� 타당성이� 있다.� � �

도비야와� 연락이� 있었으므로� -� '도비야'는� 암몬� 출신으로서� 사마리아� 총독� � 산발랏의� 주구(走拘)였다(2:10).� 그는� 비록� '여호와의� 선하심'이라는� 뜻의� 히브리식� � 이름을가졌지만,� 결코� 여호와� 종교의� 예배

자는� 아니었다.� 한편,� '연락이� 있므로'(*,� 카로브)는� (장소,� 혈연� 또는� 시간등에� 있어서)� '매우� 가깝다'

는� 뜻으로서�각별한�친근� 관계를�가리킨다(Rawlinson).

=====13:5� 엘리아십이�도비야와�특별한�밀착� 관계를�유지했던�것은�느헤미야의�귀환� � 전,� � 곧오래전

부터였겠지만,� 본절과� 같은� 시혜(施惠)는� 느헤미야가� 페르시아로� 일시� 돌아갔었던� B.C.� 433-432년� 동안에� 이루어졌었다.� � � 한� 큰� 방을� 갖추었으니� -� 엘리아십이� 여러� 개의� 곳간을� 헐어서� 하나의� � 큰� � 방

으로만들어�도비야에게�주었음을�뜻한다(Rawlinson).� � � 그� 방은...곳이라(* � � � ,� 하이우)� -� 원문

상으로는� '그것들은...이다'의� � 뜻이다.이처럼� 본� 동사(*� � � � � � ,� 하야)의� 주어� 어미가� 3인칭� 복수라는�

사실은,� 엘리아십이� 도비야에게준� '한� 큰� 방'이� 여러� 개의� 작은� 방이� 합쳐져서� 만들어진�것임을� 여실히�

증명해준다.� � � 소제물� -� 고은� 가루에� 기름과� 유향을� 섞어서� 만든� � 일종의� � 무교병(레� � 2:1)으로서상번

제와� 안식일� 제사� 그리고� � 대부분의� � 희생� � 제사와� � 함께� � 드려졌던� � 예물이다(민15:3:10).� � � 유향� -�

소합향,� 나감향� ,풍자향� 등의� 향품을� 동일한� 비율로� 섞어� 증거궤� 앞에� 놓았던� 제물이다(출� 30:34).� � �

기명� -� 성전제사� 때에� 사용되던� 여러� 가지� 그릇들이다.� 그것들의� 대부분은� � 최초의포로� 귀환때� 바벨론

에서� 가져온� 것들임이� 분명하다(스� 1:6-11).� � � 레위사람...노래하는� 자...문지기� -� 세� 종류의� 레위인들

이었다.� 이들은� 모두� � 레위지파에� 속하였지만,� 그� 직임에� 따라� 이와같이� 세� 종류로� 분류되었었다(스�

2:40-42).

=====13:6� � 그� 때에는� -� 문자적으로는� '이� 모든� 동안'이다.� 구체적으로� 도비야가� 엘리아십의� 호의에�

따라� 성전에� 속한� 방� 하나를� 차지하고� 있었던� 기간을� 말한다.� � � 바벨론� 왕� 아닥사스다� 삼십이� 년� -�

B.C.� 433년을� 가리킨다.� 한편,� '바벨론왕� � 아닥사스다'라는� 표현은� 페르시아� 왕들이� 바벨론� 왕들의� 후

계자로� 자처했던� 전통과� 관련이있다(스� 5:13).� � � 내가� 왕에게� 나아갔다가� -� 느헤미야가� 페르시아로� 돌

아간�것은� (1)� 그가 아닥사스다에게� 약속했던� 기간이� 다� 됐거나,� (2)� 페르시아� 왕� 아닥사스다의�

호출을� 받았기� � 때문이었을� 것이다.� � � 며칠� 후에� 왕에게� 말미를� 청하고� -� '며칠후에'(*� � � � � � � � � � � � � �

,� � 레케츠� � 야밈)는문자적으로'날들의� 끝에'의� 뜻이다.� 추측컨대� 느헤미야가� 페르시아로� 다시� 온� 지� � 1

년이� 다� 되어가는� 무렵을� 의미하는� 듯하다.� 바로� 이� 같은� 사실에� 근거하여,우리는� � 느헤미야가� B.C.�

433년에�페르시아로�돌아가서�정확히� 1년만에 팔레스틴으로� � 귀환했으리라고� 짐작해� 볼�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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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13:7� 예루살렘에� 이르러서야� -� 이처럼� 느헤미야가� 팔레스틴으로� 다시� 돌아온� 까닭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여러� 가지� 개혁이� 완결되지� 않았음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느헤미야가� 페르시

아로� 일시� 돌아갔던� 것도� 분명히� 본의가� 아니었을� 것이다.� � � 하나님의� 전� 뜰� -� 스룹바벨� 성전에는� 두�

개의� 뜰이� 있었다(사� 62:9;슥� 3:7).� � B.C.4세기� 헬라� 사가(史家)인� 헤카테우스(Hecataeus� of�Avdera)에� 의하면� 그� 성전의� � 안뜰의� 길이가� 500규빗이요� 광이� 100규빗이었다고� 한다(Edwin�

Yamauchi).

=====13:8� 내가� 심히� 근심하여� -� 여기의� '근심하여'(*� � � � � � ,� 야레)는,� 산발랏�일당의�군사적공격�가

능성�때문에� � 전전긍긍하던� � 이스라엘� � 백성들에� � 대하여� � 사용했던 단어이다(4:14).� 그렇게� 본다

면,� 느헤미야는� 도비야가�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호의에� 따라� � 성전의� 한� 방을� 차지한� 사실을� 산발랏� 일

당의� 군사� 공격만큼� 두려운� 일로� 여겼음이� 분명하다.� 백성의� 최고� 지도자였던� 그는,� 도비야라는� 이방

인을�통하여�이루어질� � 이방� � 문화및�이방� 종교의�침투를�심각하게�염려하지�않을�수�없었던�것이다.

=====13:9� � 그방을�정결케�하고� -� 추측컨대�그방은�물이나�피를� 뿌리는�등의�정결� 의식을�통하여(레�

14:52)� '정결케'되었을�것이다.

=====13:10� � 레위� 사람들의� 받을� 것� -� 레위� 사람들의� 유일한� 수입원(收入源)이었던� 십일조를� 가리킨다(10:37).� � � 주지� 아니하였으므로� -� 느헤미야는� 십일조의� 원활한� 징수를� 위하여� 레위� 사람들을각�

성읍에� 주재시켰었다(10:37).�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이� 십일조를� 바치지� 아니했다는� 사실은,� 그들

이� 느헤미야가� 자리를� 비운� 불과� 1년� 가량의� 기간� 동안� 성전� 제사의절대적� 필요성을� 무시할� 만큼� 영

적으로� 침체했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받은� 바� � 신령한� 은혜를� 계속� 보존하기란� 이렇듯� 힘들다.� � � 레

위� 사람들...그� 전리(田里)로� 도망하였기로� -� 성벽� 봉헌식� 이전에도� 레위� 사람들의� 상당수는� 여러� 촌(村)에� 흩어져서�농사를�지으면서�살고�있었다(12:27).그들� � 중많은� 사람들이� 십일조를� 성실히� 내겠다는� 백성들의� 다짐(10:37-39)을� 믿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지만,� 십일조� 납부가� 중단되자� 다시� 생업� 유

지를� 강구할� 수밖에� 없었다.� � 한편,� '도망하였기로(*� � � � � � ,� 바라흐)는� 생명의� 보존을� 위한� 자구책(自球策)으로서� � 위험한�곳으로부터�떠나는�일을�가리킨다(삼상� 19:18;대하� 10:2;사� 48:20).

=====13:11� 민장을� 꾸짖어� -� '민장'(*� � � � � � � � � � ,세가님)은� 백성들� 중� 지도적� � 위치에� � 있었던유력

한� 귀인(貴人)들이다.� 그들은� 백성들을� 독려하여� 레위� 사람들에게� 십일조를� � 바쳐야� 할� 책무를가졌을�뿐만� 아니라� 십일조를� 바치는� 일에� 있어서� 백성들의� 모범이� � 되어야만� 했다.� � � 하나님의� 전이� 어찌하

여� 버린� 바� 되었느냐� -� 레위� 사람들이� 성전을� 떠나� 촌으로� 흩어짐으로써� 성전의� 본래�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게� 된� 현상을� 가리킨다.� � 그들이모두� 떠나버림으로써� 희생� 제사와� 관계된� 일들이� 제대로�

거행될� 수� 없었을� 것이� � 분명하다.� 한편,� '버린� 바� 되었느냐'(*� � � � � � � � ,� 네에자브)는� '배반하다'� 혹은�

'모반하다'의� 뜻을�갖는� 동사� '아자브'(*� � � � � � )의� 수동형이다.

=====13:12� 십일조를...곳간에� 들이므로� -� 백성들이� 직접� 십일조를� 갖고� 성전까지� 왔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레위� 사람들에� 의하여� 징수되도록했던� 느헤미야의� 십일조� 규정(10:37)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이�

직접� 성전까지� 십일조를� 가져온� 것은� � 느헤미야의� � 호되면서도충정어린� 책망을� 백성들이� 달게� 받아들

였음을�암시한다.

=====13:13� 느헤미야의� 이러한� 조처는,� 백성의� 십일조� 납부가� 재개되어� 성전의� 곳간에� � 재물이많아

진� 그� 당시의� 상황에서� 매우� 시의적절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특이한� 사항은,� 느헤미야가� 재물의� 효율

적� 관리,� 특히� 분배� 문제로� 말미암는� 불화의� 소지를� 사전에� 제거하기� 위하여(10:38)'고지기'로서� 각계�

각층의� 세� 사람을� 세웠다는� 사실이다(고후� 8:18-21).� � � 제사장� 셀레먀� -� 성벽재건에� 참여했던� 하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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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아버지� '셀레먀'일� 가능성도� � 있다(3:30).� '여호와의� 친구'의� 뜻이다.� � � 서기관� 사독� -� 느헤미야의�

부하� 관리였던'시드기야'일� 가능성이� 크다(Rawlinson).그렇게� 볼� 수� 있는� 근거는� (1)'시드기야'(여호와

는� 나의� 의이시다)와� � '사독'(의로운)은� 모두� '의롭다'의� 의미를� 갖는� 동일한� 어근� '차다크'(*� � � � � � )에

서� 왔으며,� (2)� '서기관'은� 성전� 운영의� 국고를�담당하기도�했다는(왕하� 12:10)� 점� 등이다.� � � 레위사람�

브다야� -� 이� 사람은� 에스라의� 율법� 낭독시� 그의� 곁에� 있었던� 레위� 사람� '브다야'일� 가능성도� 많다

(8:4).� � � 하난으로� 버금을� 삼았나니� -� '버금을� 삼았나니'는� 문자적으로� '그들이� � 손에� � 두었다'이며,� 하

난이� 위의� 세� 사람을� 도와� 고지기� 직무를� 수행하였다는� 뜻이다(NIV,� � madeHanan...their� assistant).�

한편,� 위의� 세� 고지기가� 각각� 제사장,� 서기관,� 레위인� � 출신이었다는� 점에서,� 하난은� 평민� 출신으로� 추

측해� 볼� 수� 있다(Edwin� Yamauchi).� � � 저희가� 충직한� 자로� 인정됨이라� -� 고지기라는� 중책이� 맡겨질�

수� 있었던� � 이유이다.여기서'충직한� 자'(*� � � � � � � � � � � � ,� 네에마님)는� '든든히� 세우다'(삼상� 25:28),� � '

확실하게� 하다'(왕상� 8:26),� '신실하다'(사� 49:7)� 등의� 뜻이� 있는� � 동사� '아만'(*� � � � � � � )의� 분사로서,�

'신뢰할�만한자'� 혹은� '신임을�받는� 자'� 등의� � 의미이다(삼상� � 22:14;잠25:13;사8:2;렘� 42:5� 등� 참조).

=====13:14� � 느헤미야의� 이� 짧은� 기도는� 이기심에서� 나온� 자고(自高)의� 표현이� 아니다(5:19).� � � 선한� 일� (* � � � ,헤세드)� -� 이것은� 일반적으로� (1)� 하나님의� 은혜,� 자비(시� 5:8;36),� (2)� 사람들� 사이의�인

자,� 긍휼(창� 21:23;욥� 6:14),� (3)� � 하나님을� � 향한� � 경건(사57:1)� 등을� 의미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성

전�제사�유지를�위한�느헤미야�자신의� � 신실한�노력을�뜻한다.

=====13:15� � 그� 때� -� 느헤미야가� 페르시아에서� 재� 귀환한� 직후일� 것이다(Fensham).� � � 내가� 본즉� -�

느헤미야가� 총독의� 자격으로� 민정(民情)을� 살피는� 것을� 말한다.� � 특히'본즉'(*� � � � � � ,� 라아)은� 세밀한�조사� 관찰� 행동을� 묘사할� 때� 자주� 사용되는� 단어이다(창� 6:12;22:13;왕하� 7:13;대하� 24:22).� � � 안식

일에� 술� 틀을� 밟고...식물을� 팔기로� -� 이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일� 계명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있었다는� 단적인� 증거이다.� 그들은� 성벽� 재건� 직후� 언약을� 갱신� 하면서� 안식일� 계명을� 제대로� 지키기

로� 결단한� 바있다.� 그들은� 그때� 자신들과� 이방인을� 분명히� 구별케� 해주는� 안식일을� 온전히� 지킴으로

써,� 종교적,� 문화적� 순수성� 유지를� 도모하려고� 했었다(10:31).� 그러나� 그들은� 이방인들과의� 빈번한� 경

제적� 접촉의� � 결과로,� 오히려� 안식일� 개명을� 경시하는� 두려운� 상황에� 도달하고� 만� 것이다.� 아무튼� � 이

같은� 안식일� 계명의� 경시는,� 그� 날에� 소용되는� � 양식을� � 하나나님께서� � 채워주신다(출16:19-22)는� 분

명한� 약속을� 망각하고� 또한� 믿지� 않은� 결과였다.� 한편,� '술틀을� � 밟고'에� 대해서는5:14-19� 주제� 강해,�

'포도주�제조�과정'을�참조하라(욥� 24:11;사� 63:2,3).

=====13:16� 15절에� 이어� 본절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적극적으로� 안식일을� 범했던� 사실에� 대해�

다룬다.� 한편,� '두로� 사람'은� 고대� 중근동� 뿐만� 아니라� 지중해� 지역� 전체에� 그� � 명성을� 날렸던� 페니키

아� 상인(본� 단락� 주제� 강해,� '페니키아� 상인'� 참조)들을� � 가리킨다(겔� 27:12-36;28:16).� � � 예루살렘에�

거하며� -� 이방인들의� 이� 같은� 행위� 자체는� 결코� 불법이� 아니었다.� 다윗시대에도� 여부스� 사람이� 예루살

렘에�살고�있었다(대상� 21:15).� 뿐만� 아니라 느헤미야당시에도� 유대인들과의� 무역에� 종사하는� 많은� 이

방인들이� 예루살렘에� 거주했었다.� � � 물고기와� 각양� 물건을...안식일에...팔기로� -� '물고기'는� 이스라엘�

백성에� � 의하여매우� 애호되던� 식품이었다(레� 11:9;민� 11:5;신� 14:9;마� 14:17).� '두로� 사람'들은� 이� '

물고기'를� 자신들이� 살고� 있던� 지중해� 연안에서� 잡았거나,� 혹은� 갈릴리� 바다에서� 다른사람들이� 잡은�

것을� 사와서� 팔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물고기'는� '어문'을� 통해서� 예루살렘� 안으로� 반입됐을� 것이다

(3:3).

=====13:17� 느헤미야의� 귀인들에� 대한� 이러한� 책망은,� 귀인들이� 안식일을� 범하는� 일에� � 오히려앞장

섰으리라는�추측을�가능케�한다.� 그들은�기득권을�남용하여�자신들의� � 식탐(食貪)과� 물욕(物慾)� 충족을�위하여� 안식일을� 범하기� 일쑤였을� 것이다.� � � 악을� 행하여� -� 안식일을� 범하는� 일은� (1)� 십계명� 중� 제4

계명을� 범하는� � 것이었다는점,� (2)� 그래서�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를� 다시� 초래케� 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18절;렘17:27;겔� 20:12,13)에서� 분명히�심각한� '악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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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8� 이� 모든� 재앙으로�우리와�이성읍에�내리신�것� -� 본절의� '이� 성읍'은� 단수라는�점에서� 예

루살렘을� 가리킴이� 분명하다.� 따라서� 본� 문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일을� � 지키지� 않음로써� 그� 형

벌로�수도� 예루살렘이� 완전히� 훼파당하는� 사태를� 맞이했었던� 사실을� 가리킨다(렘� 17:27).� 그러나�간접

적으로는�이스라엘� � 백성들이�바벨론에�포로로�끌려갔던�사건을�가리킴도�물론이다.

=====13:19� 본절부터� 22절까지에서는�안식일을�보다�잘� 지키도록�하기�위한� 시책이�언급된다.� � � 예

루살렘� 성문이� 어두워� 갈� 때...성문을� 닫고� -� '예루살렘� 성문이� 어두워� 갈� 때'는문자적으로� '예루살렘�

성문에� 그림자가� 드리워� 질� 때'의� 뜻이다(NIV,� Fensham).따라서이것은� 밤이� 되기얼마� 전의� 시간을� 가

려킨다.� 그렇다면�본� 문구는, 느헤미야가� � 일몰시간이면� 닫았던� 성문을� 보다� 이른� 시간에� 닫도

록� 했었음을� 뜻한다(Rawlinson).� � � 내� 종자...성문마다� 세워서� -� 일상적으로는� 예루살렘� 주민� 중� 그날

의� 당번에� � 해당되는� 사람들이� 성문을� 지켰을� 것이다(7:3).�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들이� 어떤� 대가를� 보

장받고� 장사꾼들을� 예루살렘�시내로� 들여놓을� 가능성을� 염려하여�자신의� 심복들을� � 성문마다� 배치하였

다.

=====13:20� 장사들...성밖에서� 자므로� -� 안식일이� 지나자마자� 상품을� 들여와� 팔기� 위한� 장삿속� 때문

이었다.� 장사꾼들이�성밖에서�군거(群居)하며� 떠들어대는� 소리가� � 매우� � 요란했을�것이며,� 또� 백성들이�성벽� 아래의� 물건들을� 구경하기� 위해� 성문� 혹은� 성벽� 쪽으로� � 몰려들어� 혼란을� 야기시켰을� 것이다

(Rawlinson).

=====13:21� 다시� 이같이� 하면� 내가� 잡으리라� -� 느헤미야는� 유다� 지역의� 합법적� 총독이었기� � 때문에

(5:14),� 그� 지역� 내에서는� 이방인들에� 대해서도� 사법적�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다.더욱이� 이방인들도�

유다� 땅에서는� 유대법,� 즉� 하나님의� 율법의� 적용� 대상이� 될� 수밖에없었다(8절).� 비록� 유다가� 페르시아

의� 속국이긴� 했지만,� 유다는� 페르시아의� 회유� 정책에� 따라� 하나님의� 율법을� 자신들의� 법률로� 삼을� 수�

있는�자치권을�허용받았었다(스� � 7:14,25,26).

=====13:22� 레위� 사람들...몸을� 정결케� 하고� -� (1)� '성문'을� 지키는� 일은� 성전을� 지키는� � 일과불가분

의� � 관계이며(대상� 9:17-22;26:12-19),� (2)� 성문� 파수가� 안식일� 준수를� � 목적으로� 하는� 종교적� 성격

이었다는� 점� 등에서,� 레위인들은� 정결� 의식을� 거쳐야� 했다.� � � 성문을� 지켜서� 안식일로� 거룩하게� 하라�

-� 성문에는� 이미� 평민들과� 느헤미야의� 종자(19절)가� 성문� 파수를� 위해� 배치되어있었다.� 그런데� 다시�

레위�사람까지�배치한� � 까닭은�안식일의�진정한�의미를�보다� 잘� 아는�그들을�통해�성문� 파수가 완

전히 이루어질수� 있게하려는� 의도� 때문이었다.� 물론� 레위� 사람들은� 성벽� 파수의� 직무를� � 부여받았

었다.� 그러나�그것은�성벽� 파수의�감독� 직무였을�뿐이다(7:1).� 느헤미야는�금번에� � 그들을�감독의�자격

이� 아닌� 직접적인� 성문� 파수� 담당자로� 발령한� 것이다.� � � 나의� 하나님...큰� 은혜대로� 나를� 아끼시옵소서�

-� 이것은� 느헤미야가� � 비록� � 자신이선한� 일을� 많이� 하기는� 했지만� 하나님의� 칭찬을� 받기에는� 지극히�

미흡하다고� 느꼈다는사실을� 시사해준다.� 따라서� 이는� 그의� 겸손이� 잘� 드러나는� 기도라고� 할� 수있다.�

그� 문자적� 의미는� '나의� 하나님� 큰� 사랑을� 베푸시옵소서'이다.� 한편,� 여기의� '은혜'(*� � ,� 헤세드)는� 신

적인�언약에�근거한�불변적�사랑을�뜻한다.

=====13:23� 본절과� 같은� 문제는� 에스라의� 개혁조치가� 있었던� B.C.� 458년� 이후에는� 크게� 노출된적

이� 없었다.� 물론� 그� 같은� 풍조가� 간간이� 있기는� 했었지만(6:18;10:30),� � 그� � 풍조가사회� 문제화된� 것

은� 느헤미야가� 페르시아에� 다녀왔던(6절)그� 이후였다.� � � 그때에� -� 느헤미야의� 귀환� 직후이다(15절).� � �

아스돗과� 암몬과� 모압� -� '아스돗'은� 블레셋의� 일파로서� 유다� 땅� 서쪽에� 위치했었으며(4:7)� '암몬과� 모

압'은� 모두� 유다� 땅� 동쪽에� 위치했었다.� 이들� 모두� 유다� 땅과� 인근지역이었던� 까닭에� 쉽사리� 이스라엘�

백성들의�통혼(通婚)대상이�될� 수� 있었을�것이다.

Page 77: 느헤미아제1장 - Christian Monitorchristianmonitor.net/jusuk/nehemia.pdf성을갖고있는무리로묘사되고있다(사27:13;겔34:4,16:미4:6;습3:19).한편,'하늘끝'은

=====13:24통혼의� 심각한� 결과가� 언급되고� 있다.� 이스라엘� 남성과� 결혼한� 이방� 여인들이� 그사이에

서� 출생한� 자녀들에게� 자신들의� 모국어를� 가르침으로써� 야기된� 현상이었다.� � � 아스돗� 방언...유다� 방언

은� 못하니� -� 히브리어� 원문상으로� 해석이� � 애매한� � 부분이다.� 이에� 대한� 논란이� 많으나,통혼한� 이들의�

자녀들�중� 절반� 가량은�아스돗 방언이나기타� 이방� 언어로는� 말할� 수� 있어도� 유다� 방언은� 제대로�

못했다는� 의미로� � 이해하는것이� 가장� 무난하겠다(NIV,� Half� of� their� children� spoke� the� language�

pf� � Ashdod� � orthe� language� of� one� of� the� other� peoples,� and� did� not� � know� � how� � to� �

speak� � thelanguage� of� Judah).� 언어는� 한� 민족을� 공통적인� 유대� 관계로� 맺어주는� 가장� 기본적인요

소이다.� 더구나� 히브리어가� 종교� 의식상의� 언어였기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 민족언어의� 상실은� 곧�

하나님� 말씀의� 상실을� 의미했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 가지� � 의문의여지가� 있다.� 그것은�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을� 비운지는� 불과� 1년밖에� 안� 됐는데� 어떻게해서� 통혼이� 진행됐고� 또한� 태어난� 여러� 자녀들

이�이방�언어에�그토록�깊이 젖어들게되었느냐는� 점이다.� 바로이� 같은� 의문� 때문에� 혹자는,� 느

헤미야가� 페르시아에� � 있었던기간을� 1년이�아닌� 휠씬� 더� 오래동안으로�잡는다.� 그러나�개혁의� � 미진함

을 절감하며떠났던� 느헤미야가� 오랫동안� 페르시아에� 머물렀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따라서� 우리

는,(1)� 이와� 같은� 통혼과� 그에� 따른� 이방� 언어� 사용의� 문제가� 이방� 민족들이� 살던� 지역과인접한� 변방

(邊方)에서� 주로� 야기되었고,� (2)� 느헤미야는� 예루살렘과� 그� 인근� � 지역에서만� 주로� 활동하였기� 때문에,� 비록� 느헤미야가� 페르시아로� 가기� 전부터� 통혼이� � 간간이� 진행됐지만�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봐야� 한다(Keil).� 느헤미야는� 페르시아로� 부터� 재귀환한� 후에야� 변방� 지역의� 순시를� 통하여� 백성들의�

통혼�사실을�파악할�수� 있었던것이다.

=====13:25� 본절에서의� 느헤미야의� 행동은�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認識)한� 결과에� 따른� � 경고적성격의�것이었다.� � � 책망하고(* � � � ,� 리브)� -� 11,17절에서도� 사용된� 단어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 해석은�

5:7� 주석을�참조하라.� � � 저주하며� -� 이것은�종교적�선포의�성격을�갖는다.� 즉,� 느헤미야는�통혼으로�말

미암아� 하나님과의� � 언약을� 깨뜨린자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리라는� 사실을� � 선포하였을것이다

(Fensham).� � � 두어� 사람을� 때리고�그� 머리털을�뽑고� -� 느헤미야는�총독의� � 자격(5:14)으로� � 중한체벌

(體罰)이나� 가산� 적몰(스� 7:26)의� 징계를� 통혼자들에게� 가할� 수� � 있었다.� � 하지만본문의� 행동은� 체벌이라기�보다는�느헤미야�자신의�극단적�불쾌감과�격노의 표시라는측면에서� 이해된다.� 머리털을�

뽑는� 것은� 진노를� 나타내거나� 모욕이나� 경멸을� 표현하는행위이다(삼하� 10:4;사� 50:6).� � � 너희는...맹세

하라� -� 10:29,30을� 참조하라.

=====13:26� 솔로몬이...범죄하지� 아니하였느냐� -� 솔로몬이� 이방� 후궁들의� 꾀임에� 빠져� � 이방신들을�

섬겼던� 사실을� 염두에� 둔� 말이다(왕상� 11:4-8).� � � 저는...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라� -� 솔로몬이(1)� 하

나님으로부터� 큰� 지혜를� � 받았고(왕상� 4:29),(2)�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강성한� 국가를� 이룰수� 있었으며

(왕상� 4:20,21;9:26-28),(3)� 그� 결과� 이방인들로� 부터도� 칭송을� 받았던� 사실(왕상� 10:1-9)등을� 가리

킨다.� � � 하나님이� 저로� 왕을� 삼아� -� (1)� 압살롬과� 아도니야� 등� 이복� 형들의� 잇단� 왕위� 승계투쟁이� 있

었던� 사실(삼하� 15:7-12;왕상� 1:5),(2)� 솔로몬은� 다윗이� 부정하게� 취한� 여인밧세바의� 소생이었다는� 사

실(삼하� 12:24,25)� 등에도� 불구하고� 그가�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할만하다.� � � 이방� 여인� -� 솔로몬에게는�이방�출신의�후궁이�약� 천� 명이나�있었다(왕상� 11:3).

=====13:27� � 통혼자들이�이방�여인들과�단호히�결별해야�한다는�사실을�재차 강조하는� � 내용이다.

=====13:28� 엘리아십의� 손자�요야다의� 아들� 하나� -� 이것은� '엘리아십의� 아들� 요야다의� 아들� 하나'로�

번역함이� 더� 타당하다(12:10).� 느헤미야가� 산발랏의� 사위가� 된� '요야다'의� 아들을� 다만� '하나'라고� 하

여� 이름을� 밝히지� 아니한� 것이� 특이하다.� 이는� � 그가� � 이스라엘공동체에서� 축출되어� 그의� 이름도� 명부

에서� 도말됐기� 때문인� 듯하다.� 따라서� 느헤미야는� 그� 같은� 이름을� 이방인과의� 통혼� 문제를� 다루고� 있

는� 본� 문맥에 기록할 가치조차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엘리아십'은(1)� 느헤미야가�

귀환했던� B.C.� 444년,� 즉� 13년� 전에� 이미� 대제사장이었으며(3:1),(2)� 그의� 손자가� 결혼� 적령기가� 됐

Page 78: 느헤미아제1장 - Christian Monitorchristianmonitor.net/jusuk/nehemia.pdf성을갖고있는무리로묘사되고있다(사27:13;겔34:4,16:미4:6;습3:19).한편,'하늘끝'은

다는점� 등으로� 볼� 때� 그� 당시� 꽤� 연로한� 상태였을� 것이다.� 그리고'요야다'는� '엘리아십'의뒤를� 이어� 대

제사장에� 올랐었을� 것이다(12:10).� � � 호론사람� 산발랏� -� 이같은� 표현은,� 산발랏의� 가문이� 결코� 이스라

엘� 백성� 특히� 대제사장� 가문과는� 결혼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암시해준다.� '호론� 사람'에� � 대해서는

2:19주석을� 참조하라.� � � 쫓아내어...떠나게� 하였느니라� -� 이것은� '요야다'의� 아들� 부부가� 함께� � 사마리

아로쫓겨났음을� 의미한다(Williamson).이처럼� 느헤미야가� 강경책을� 쓸�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요야다의�

아들이�산발랏의�딸과�이혼하기를�거절했기�때문인�듯하다(Rawlinson).

=====13:29� 제사장의� 직분을� 더럽히고� -� 이스라엘� 백성들은� 만민� 중에서� 구별되어� � 선택되었었다

(신� 7:6).� 하나님께서는�그중에서도� '제사장�을� 특별히�성별하여�그� 직분을� � 통하여당신의�거룩을�드러

내기� 원하셨었다(레� 21:4,6).� 따라서� 그� 같은� 제사장이� 율법이� � 엄히� 금하는� 이방여인과� 통혼했다는�

사실은� 곧� 그� 거룩한� 직분을� 욕되게� 하는� 것이었다.� � � 제사장...레위� 사람에� 대한� 언약� -� 이것에� 대해

서는� (1)� 구약의� 율법이� 전반적으로말하고� 있는� 바� 곧� '제사장'과� '레위사람'은� 평민들보다� 더� 거룩한�

삶을� 살아야� � 한다는� 공통� 인식으로� 보는� 견해(Rawlinson),(2)� '제사장'이� 이방� 여인과� � 통혼해서는� �

안된다는� 레� 21:14의� 말씀으로� 보는� 견해(Fensham),(3)� 레위� 지파가� 하나님을� 위한� 열심으로서� 범법

자들을� 처단했던� 그� 정신(출� 32:26-29;민� 25:10-13)을� 계승하여,�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이� 계속하

여� 이스라엘의� 거룩성� 유지에� 힘써야� 한다는� 언약(말� 2:4-8)으로� 보는� 견해(Williamson,� Keil)� 등으로�

그� 해석이� 나뉜다.� 그러나� � 첫째,� � 본절은레위� 사람의� 통혼을� 책망하는� 문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레

위� 사람'까지를� � 거론하고있으며� 둘째,� 레� 21:14은� 오직� 제사장의� 통혼� 금지� 규정이라는� 점� 등으로� �

미루어� � 볼때,� 위의�세�견해� 중(3)의�견해가�가장�타당한�듯하다.

=====13:30� � 떠나게� 하여� 깨끗하게� 하고� -� 느헤미야가� 제사장들을� 권면하여� 그들과� � 함께� � 살던이

방� 여인들을� 모두� 내보내도록� 한� 것을� 가리킨다(스� 10:18,19).� � � 반열을� 세워� 각각� 그� 일을� 맡게하고�

-� 문자적으로는� 다만� '각각� 그� 일을� 맡겼다'이다.� 그러나�느헤미야의� 페르시아� 여행�기간� 동안� 일부� 와

해된�반차� 조직을�재정비했다고�보는�것도� 무리는�아니다(Fensham).

=====13:31나무와� 처음� 익은� 것을� 드리게� 하였사오니� -� '나무'는� 상번제� 등에� 계속적으로� � 소용됐던�

화목(火木)을� 가리킨다(10:34).� '처음� 익은� 것'은� 제사장과�레위�사람의� � 생계유지에�필요했던�여러�헌물� 중의�대표적인�것이었다(10:35).� � � 나를� 기억하사�복을�주옵소서� -� 5:19� 주석을�참조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