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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논총 제39(2005. 4) 243~271이상 소설의 글쓰기 양상 연구 - 원한과 복수, 분열증, 아이/해골 1) 장 수 익 * 차 례 Ⅰ. 서론 Ⅱ. 원한과 복수의 글쓰기와 결핵 Ⅲ. 분열증의 글쓰기로의 전환 Ⅳ. 사랑놀이와 아이/해골(孩/骸)’의 글쓰기 Ⅴ. 결론 Ⅰ. 서론 이상의 문학을 이해하는 데 있어 결핵이 차지하는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 도 지나치지 않다. 근대성 또는 탈근대성, 주체의 해체, 기호 놀이, 의미의 산 , 아브젝션 등을 이상의 문학을 해명하는 열쇠로 삼지만, 1) 그러한 열쇠들은 결핵이라는 근본적 사태 sache 에 비한다면 한갓 2차적인 징후에 지나지 않는 * 한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1) 이러한 사항들을 중심으로 한 기존의 연구로는 김윤식, 한국모더니즘문학연구 (1) 이상 소설의 네 가지 유형, 한국학보 50, 1988.3 유클리드 기하학과 광속의 변주 이상문학의 기호체계 분석, 문학사상, 1991.9 ; 한상규, 1930대 모더니즘 문학의 미적 자의식--이상 문학의 경우, 한국학보 55, 1989.6 ; 최혜실, 한국모더니즘 소설 연구, 서울대 박사논문, 1991 ; 김승희, 이상 시 연구 말하는 주체와 기호성의 의미 작용을 중심으로, 서강대 박사논문, 1992 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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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문학논총 제39집(2005. 4) 243~271쪽

    이상 소설의 글쓰기 양상 연구

    - 원한과 복수, 분열증, 아이/해골

    1)장 수 익*

    차 례

    Ⅰ. 서론

    Ⅱ. 원한과 복수의 글쓰기와 결핵

    Ⅲ. 분열증의 글쓰기로의 전환

    Ⅳ. 사랑놀이와 ‘아이/해골(孩/骸)’의 글쓰기

    Ⅴ. 결론

    Ⅰ. 서론

    이상의 문학을 이해하는 데 있어 결핵이 차지하는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

    도 지나치지 않다. 근대성 또는 탈근대성, 주체의 해체, 기호 놀이, 의미의 산

    포, 아브젝션 등을 이상의 문학을 해명하는 열쇠로 삼지만,1) 그러한 열쇠들은

    결핵이라는 근본적 사태 sache 에 비한다면 한갓 2차적인 징후에 지나지 않는

    * 한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1) 이러한 사항들을 중심으로 한 기존의 연구로는 김윤식, 「한국모더니즘문학연구

    (1) 이상 소설의 네 가지 유형」, 한국학보 50, 1988.3 및 「유클리드 기하학과 광속의 변주 이상문학의 기호체계 분석」, 문학사상, 1991.9 ; 한상규, 「1930년대 모더니즘 문학의 미적 자의식--이상 문학의 경우」, 한국학보 55, 1989.6 ; 최혜실, 한국모더니즘 소설 연구, 서울대 박사논문, 1991 ; 김승희, 이상 시 연구 말하는 주체와 기호성의 의미 작용을 중심으로, 서강대 박사논문, 1992 등을 들 수 있다.

  • 244 한국문학논총 제39집

    다. 예를 들어 이상의 문학을 근대성에 대한 반성적 징후로 해석/해독한다고

    하자. 그러나 이와 같은 읽기는 해석/해독의 자유가 넓은 시에 주로 가능할 뿐,

    소설에는 잘 수행될 수 없다. 특히 여성들과의 사랑놀이를 주로 그려낸 이상의

    후기 소설에서 근대성의 한계를 바로 읽어내기란 매우 어렵다. 따라서 이상의

    문학을 좀더 잘 읽어내려면, 어디까지나 결핵이라는 문제와 연관시켜서 읽어내

    는 것을 기본적인 태도로 삼을 필요가 있다.2)

    여기서 지적할 것은 이상이 수행했던 문학 활동에 대해서이다. 소설과 시, 수

    필 등 다양한 문학 활동은 한 연구자에 의해 장르적 개념으로 파악될 것이 아

    니라, ‘죽음(자살)으로부터의 필사적 탈출’을 꾀하는 초장르적인 활동으로 파악

    되어야 할 것으로 지적된 바 있다.3) 이러한 견해는 분명히 타당하다. 결핵과

    가난에서 오는 죽음의 공포를 어떤 때에는 시로, 어떤 때에는 소설로, 또 어떤

    때에는 수필로 드러내었다면, 그 장르적 차이를 따지는 것보다 기호론적 변용

    의 양상으로 보는 것이 더 적실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상의 문

    학 활동을 살펴보면, 소설에서 시로, 시에서 다시금 소설로 옮겨가는 경향이 뚜

    렷이 관찰된다. 이는 이상이 초기의 소설에서 의도했던 바와, 중기의 시에서 의

    도했던 바, 그리고 마지막으로 후기의 소설 및 수필에서 의도했던 바가 다르다

    는 것을 암시해준다. 곧 글쓰기의 양상이 달라진다는 것인데, 초장르적 활동으

    로 이상의 문학 활동을 평가할 경우, 이와 같은 변화 속에 숨은 의미는 제대로

    포착하기 어렵다.4)

    이 글에서는 이상의 소설을 중심으로 글쓰기 양상이 변화하는 양상을 점검

    하고, 그 원인을 결핵에 대한 태도 변화에서 찾고자 한다. 이때 그러한 변화를

    바라보는 방법으로서 질 들뢰즈가 니체의 철학을 빌어 표명했던 주인과 노예

    의 본성, 그리고 원한과 복수의 개념을 택하고자 한다.5) 그리고 들뢰즈의 오이

    디푸스 비판6)--오이디푸스를 극복하면서 주체가 되는 것은 노예가 되는 전형

    2) 이상 문학을 ‘결핵 문학’으로 보고 분석한 것은 김윤식, 「결핵의 속성과 결핵문학」,

    문학사상, 1987.6 및 「메타포로서의 결핵」, 현대문학, 1993.7 등을 참조.3) 김윤식, 한국현대문학사상사론, 일지사, 1992, 20-22쪽.4) 이상 소설의 글쓰기 양상을 상호텍스트성에 입각하여 종합적으로 연구한 것은

    김주현, 이상소설연구, 소명출판, 1999가 있다. 5) G. Deleuze, 니체와 철학, 이경신 역, 민음사, 1998, 201-222쪽 참조.

  • 이상 소설의 글쓰기 양상 연구 245

    적인 길로 들뢰즈가 간주했던 것이다--을 빌어 이상이 그러한 오이디푸스의

    길 대신 갔던 다른 길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와 관련하여 미리 말해둘 것은, 이

    상의 문학이 결핵과의 대결 또는 부정에서 인정으로 가는 단계를 거쳤다는 것,

    그리하여 결핵으로부터도 자유로울 때7) 이상은 주인됨과 동시에 즐김의 문학

    을 생산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 글은 이를 밝히기 위해 쓰인다.

    Ⅱ. 원한과 복수의 글쓰기와 결핵

    질 들뢰즈는 니체의 논리를 빌어, 원한과 복수를 두고 그것이 노예들에 해당

    하는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러한 노예들의 논리는 는 것으로 요약되는데, 이와 같은 부정의 논리 위에

    원한에 기초한 노예의 도덕이 성립한다고 본다.8) 타인(주인)이 악하다는 것을

    입증함으로써 자신의 선량함을 합리화하는 이와 같은 논리는 결국 세계에 대

    한 부정과 저항으로 이어진다.

    원한 자체는 이미 저항이며, 이미 그 저항의 승리이다. 원한은 약자인 한

    에서의 약자의 승리이며 노예들의 저항이고 노예인 한에서의 그들의 승리이

    다. 그들의 승리 속에서 바로 노예들은 하나의 유형을 형성한다. 주인의 유

    형(적극적 유형)은 대응하는 힘 puissance으로서의 망각 능력 faculté에 의

    해서 정의된다. 노예의 유형(반응적 유형)은 놀랄 만한 기억에 의해서, 원한

    의 힘 puissance에 의해서 정의된다. (중략) / 감탄할 수도, 존경할 수도, 사

    랑할 수도 없는 무능력 impuissance.9)

    위의 인용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복수가 기억에서 비롯한다는 것이다. 그는

    6) G. Deleuze & F. Guattari, 앙띠 오이디푸스--자본주의와 정신분열증, 최명관 역, 민음사, 1994, 83-90쪽 참조.

    7) 이 말은 결핵으로 인한 신체적 고통이나 죽음의 공포를 이제 느끼지 않게 되었

    다는 뜻이 아니다. 글쓰기를 통해 그러한 압박감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되었

    다는 뜻이다.

    8) G. Deleuze, 앞책, 211쪽.

    9) 윗책, 210-211쪽.

  • 246 한국문학논총 제39집

    대상과 관련된 기억을 부정적인 정향으로 해석하고, 자신의 내부에 있는 반동

    적인 힘뿐만 아니라 적극적인 힘조차도 대상의 부정에 기울이게 만든다. 그리

    하여 대상의 모든 행위는 노예 내부의 반동적인 힘에 의해 “잘못의 전가, 책임

    의 분배, 영원한 비난”과 같은 부정적인 것으로서 ‘편집증’적으로 일반화되어

    해석된다.

    그렇다면 주인은 어떠한가. 들뢰즈는 니체를 해설하면서 주인의 논리를 라는 정식으로 요약한다. 이 논리의

    핵심은 주인은 노예의 부정의 태도와 달리 자신의 존재에 대한 긍정의 태도를

    지닌다는 데 있다.10) 그는 대상을 부인함으로써 존재하지 않고, 그 스스로의 힘

    에 의해 존재하며, 그 때문에 강력하고 아름답고 즐거운 태도를 드러낸다. 이러

    한 주인은 원한이 없으며, 기억이 아닌 망각을 통해 스스로를 생성해낸다. 여기

    서 망각은 정신분석학의 억압과 같은 것이 아니라, 대상(타자)를 인정하고 그

    와의 상호 작용을 통해 문제가 된 사항으로부터 해방되는 자연스러운 작용이

    다.11)

    이러한 시각으로 이상의 첫 작품인 십이월 십이일(1930.2-12)을 보면, 이 작품은 철저한 원한과 복수의 글쓰기로 이루어져 있다. 적빈에 시달리면서 온

    갖 고초를 다 겪는 주인공 X를 파멸로 몰아가는 것, 그것이 이 작품의 중심적

    의도가 된다. 이는 “작가는 「그」로 하여금 인간 세계에서 구원받게 하여 보기

    위하여 있는 대로 기회와 사건을 주었다. 그러나 그는 구조되지 않았다.”12)고

    작가가 직접 작중에 등장하여 생경한 목소리로 X를 질타하는 데서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그렇다면 작가가 이처럼 원한에 찬 복수를 하려고 하는 X는 누구인가. 기존

    연구에 따르면, X는 3세의 이상을 양자로 삼았으며, 젊은 날의 방랑 생활을 딛

    고 자수성가한 백부 김연필에 해당한다.13) 그러나 사실 작가가 복수하고자 하

    는 것은 X만이 아니다. X의 아우 T와, 그 아들로서 이상의 작품 내적 실체로

    알려진 업, 아니 어쩌면 필연의 법칙에 지배되고 있는 이 세상 전체가 해당될

    10) R. Bogue, 들뢰즈와 가타리, 이정우 역, 새길, 1995, 57쪽.11) 서동욱, 들뢰즈의 철학--사상과 그 원천, 민음사, 2002, 134-135쪽.12) 이상, 「십이월 십이일」, 이상문학전집 2권, 문학사상사, 1991, 136쪽.13) 김윤식, 이상연구, 문학사상사, 1987, 48쪽.

  • 이상 소설의 글쓰기 양상 연구 247

    것이다.

    세상은 (중략) 모두가 돌연적이었고 모두가 우연적이었고 모두가 숙명

    적일 뿐이었다. (중략)

    그 후에 나는 네가 세상에 그 어떠한 것을 알고자 할 때에는 우선 네가

    먼저 「그것에 대하여 생각하여 보아라. 그런 다음에 너는 그 첫번 해답의

    대칭점을 구한다면 그것은 최후의 그것의 정확한 해답일 것이니」 하는 이러

    한 참혹한 비결까지 얻어놓았었다. (중략)

    오직 내가 나의 고향을 떠난 뒤 오늘날까지 십유여 년 간의 방랑생활에

    서 얻은 바 그 무엇이 있다 하면 / 「불행한 운명 가운데서 난 사람은 끝끝

    내 불행한 운명 가운데서 울어야만 한다. 그 가운데에 약간의 변화 쯤 있다

    하더라도 속지 말라. 그것은 다만 그 「불행한 운명」의 굴곡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 이러한 어그러진 결론 하나가 있을 따름이겠다.14)(이하 강조는

    인용자)

    작품 서두에 X는 1인칭으로 자신의 인생관을 위의 인용과 같이 밝히고 있다.

    ‘돌연적이고 우연적이고 숙명적인’ 것이 세상이며, 자신이 반드시 그렇게 필연

    적으로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바와 달리 세상은 그 정반대의 방향인 우연을 법

    칙으로 움직인다는 것, 그리고 그 우연은 ‘약간의 변화’가 있더라도 인간을 파

    멸시키는 쪽으로 작용한다는 것이 X의 인생관의 요지이다. 사실 처음부터 X가

    이와 같은 인생관을 철저하게 가졌던 것은 아니다. 친우 M의 말을 듣고 어느

    정도 그럴 것이라고 예감은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삶이라는 것이

    싸움과 슬픔과 피로투성이 된 것이라 할지라도 다만 힘세찬 삶의 의지”를 가지

    고 “힘 풀린 다리라도 최후의 힘을 주어 세워 보자”(98쪽)는 태도로 삶을 살았

    던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러한 의지와 힘은 여지없이 꺾이고 말았으며, 그럴

    때 X는 위와 같은 비관적인 인생관을 승인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인생관은 이 작품에서 일종의 선험적인 전제로 작동하고

    있다. 달리 보면 작가 이상은 그러한 인생관을 X의 입을 빌어 마치 그의 것인

    양 미리 내세워놓고, X의 삶을 그에 합당하도록 비극적으로 몰아가고 있다. 곧

    이 인생관은 X의 삶을 통해 입증하고자 했던 작가 자신의 인생관인 것이다. 그

    런 점에서 X는 작가의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는다.

    14) 윗책, 21-23쪽.

  • 248 한국문학논총 제39집

    그렇다면 작가 이상은 어떤 방법으로 X를 파멸의 길로 몰아가는가. 그 답은

    위의 인용에 이미 제시되어 있는데, 바로 우연이다. 세상이 ‘돌연적이고 우연적

    이고 숙명적인’ 것으로 파악되었을 때부터 이미 우연은 역설적으로 작품 내에

    서 일종의 ‘필연적인 장치’로 예정되어 있다. 그런 까닭에 X가 유랑 과정에서

    부딪히는 모든 것은 필연적인 것이 전혀 없다. 그야말로 ‘돌연적이고 우연적이

    고 숙명적’으로 X는, 세상이 부여하는, 아니 실제로는 작가가 부여하는 사태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그 우연이 가장 집중적으로 나타난 부분은 다음 인용에서

    볼 수 있다.

    「오늘」이 며칠입니까?」 이 말을 그는 그 같은 사람에게 우연히 두 번이

    나 물었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십이월 십이일!」 이 대답을 그는 같은 사람

    에게서 두 번이나 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것은 다 그들에게 다만

    모를 것으로만 나타나기도 하였다.

    인과에 우연이 되는 것이 있을 수 있을까? 만일 인과의 법칙 가운데에서

    우연이라는 것을 찾을 수 없다 하면 그 바퀴가 그의 허리를 넘어간 그 기관

    차 가운데에는 C 간호부가 타 있었다는 것을 어떻게나 사람은 설명하려 하

    는가? (중략) / 만일 지금 이 C 간호부가 타고 있는 객차의 고간이 그저께

    그가 타고 오던 그 고간 뿐만 아니라 그 자리까지도 역시 그 같은 자리였다

    하면 그것은 또한 어찌나 설명하려느냐?15)

    ‘12월 12일’은 우연으로 겹쳐져 있으며, X의 참혹한 죽음을 결정하는 기차 역

    시 삼중의 우연으로 겹쳐진다. 이처럼 우연으로 점철된 서사 구성이 리얼리즘

    과 거리가 먼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이상은 그것에 신경쓰지 않았다.

    그 자신에게서부터 이미 세계는 우연적으로 구성되었으므로. 그리고 그 우연은

    이미 그 자신을 파멸시키고 있었으므로.

    이상이 첫 번째 각혈을 한 것은 이 소설을 쓰던 무렵인 1930년 봄으로 추정

    된다.16) 당시 결핵이 불치병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거니와, 그 죽음의 씨앗이

    자신의 내부에 자라고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떤 필연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돌발적이고도 우연적인 사건이다. 이 우연이 이상에게 얼마나 결정적이었는지

    는 연재 4회분 앞에 끼워넣은 작가의 말에서 알 수 있다.

    15) 윗책, 143쪽.

    16) 김윤식, 이상 연구, 73쪽.

  • 이상 소설의 글쓰기 양상 연구 249

    「나의 지난 날의 일은 말갛게 잊어주어야 하겠다. 나조차도 그것을 잊으

    려 하는 것이니 자살은 몇 번이나 나를 찾아왔다. 그러나 나는 죽을 수 없

    었다.

    나는 얼마 동안 자그마한 광명을 다시금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전

    연 얼마 동안에 지나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또 한번 나에게 자살이 찾아왔

    을 때에 나는 내가 여전히 죽을 수 없는 것을 잘 알면서도 참으로 죽을 것

    을 몇 번이나 생각하였다. 그만큼 이번에 나를 찾아온 자살은 나에게 있어

    본질적이요, 치명적이었기 때문이다. (중략)

    나에게, 나의 일생에 다시 없는 행운이 돌아올 수만 있다 하면 내가 자살

    할 수 있을 때도 있을 것이다. 그 순간까지는 나는 죽지 못하는 실망과 살

    지 못하는 복수--이 속에서 호흡을 계속할 것이다. / 나는 지금 희망한다.

    그것은 살겠다는 희망도 죽겠다는 희망도 아무것도 아니다. 다만 이 무서운

    기록을 다 써서 마치기 전에는 나의 그 최후에 내가 차지할 행운은 찾아와

    주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다. 무서운 기록이다. / 펜은 나의 최후의 칼이

    다.17)

    위의 인용에서 이상은, 뜻하지 않게 타인에게서 유산을 물려받은 X처럼 ‘자

    그마한 광명’을 다시금 볼 수 있었음--경성고공 졸업 후 총독부 기사로 취직이

    된 것--을 먼저 밝힌다. 그 전에도 인생에 대한 비관적 관점이 없었던 것은 아

    니다. 자살은 그 전에도 ‘몇 번이나’ 찾아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특

    이한 성장 환경18)에 대한 일종의 사춘기적 감성이었고, 그러하기에 본질적이고

    치명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에게 전혀 예기치 않은 방향에서 ‘자살’이

    찾아온다. 이번에 찾아온 자살은 그 원인이 자신의 내부에 존재하는 것이니만

    큼 본질적이요 치명적이다.19) 결핵은 ‘나’가 ‘나’를 죽이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17) 「십이월 십이일」, 68쪽.

    18) 이상은 입양 후에 친부모와의 접촉이 금지되었고, 백모는 곧이어 생긴 아이 때

    문에 이상을 구박하였으며, 백부는 한편으로 이상의 재주를 아꼈지만 다른 한

    편으로 매우 엄격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김윤식, 이상연구, 47-69쪽 참조). 친부모, 특히 모성적 사랑에 대한 그의 욕망은 십이월 십이일에서 작가의 작품 내적 실체인 ‘업’이 모성애를 그리워하면서 C를 사랑하는 것에서 암시된다.

    19) 결핵이 이상에게 주었던 이미지는 분열과 소모(탕진)이다. 이 가운데 분열은 거

    울모티프로 확산되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연결된다. 그것이 주로 나타나는

    것이 시이다. 반면 소모는 후기 소설에 주로 나타나는데, 처음에 부정적이었다

    가 긍정적인 함의로 바뀐다. 이러한 결핵 이미지의 변화에 대해서는 이후 논의

    를 참조.

  • 250 한국문학논총 제39집

    그러하기에 결핵은 자기분열적이다. 이상은 결핵균이 폐를 파먹는 것으로 생각

    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본질’이라는 말로 드러난다. 그것은 자기 내부의 또다른

    나였다.

    물론 이 시기의 이상은 이 자기분열에 격렬하게 저항한다. 분열하지 않고 결

    핵이라는 내부의 ‘나’에 대한 반응적 힘20)을 외부의 대상에게로 전이하는 데 전

    력하는 것이다. 그럴 때 복수심의 전이 대상으로 선택된 것은 백부(X)이며, 전

    이의 방법은 글쓰기였다. 곧 글쓰기를 통해 백부를 파멸시켜 복수하는 데 이상

    은 편집증21)적으로 매달림으로써 분열을 극복하고 주체의 동일성을 유지하려

    는 것이다.

    이 과정 전반에는 결핵 곧 죽음에 대한 공포가 전제되어 있다. 우연하고도

    돌발적으로 다가온 결핵의 공포 속에서 십이월 십이일의 서사는 더욱 참혹하게 된다. 초기의 연재분에서 제목 곁에 붙어있던 이라는 표제--

    이 표제는 행복한 결말을 암시한다--가 완전히 사라진다. 그리고 X가 죽지는

    않고 다시금 정처없는 방랑의 길을 떠나는 것으로 되어 있던 처음의 예정된 결

    말도, X의 처참하고 참혹한 죽음으로 바뀌게 된다. X의 이 참혹한 죽음은 백부

    에 대한 복수이기 전에, 결핵에 대한 복수이며, 그에게 결핵이라는 돌발적이고

    도 우연한 사태를 가져다 준 세상에 대한 복수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복수는 결핵이 그에게 다가온 방식(우연)을 백부(X)에게도 마찬가

    지로 강요하는 것이 아닌가. 곧 그가 복수한 방법은 그 자신이 고안해낸 것이

    아니라, 그가 파악한 세상의 법칙을 그대로 흉내낸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

    닌가. 이는 작품 내의 사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X가 조카 업과 C

    간호부 사이의 사랑을 오해하여 둘이 보는 앞에서 해수욕 도구를 태웠듯이, 업

    역시 X가 했던 그대로 반복함으로써 X에게 복수하는 것이다.

    가련한 백부의 그를 입회시킨 다음 업은 골수에 사무친 복수를 수행하였

    20) ‘반응적 힘’이란 “어떤 힘이 할 수 있는 바로부터 그 힘이 분리되었을 때의 힘”

    을 가리킨다(서동욱, 앞책, 113쪽 참조).

    21) 들뢰즈에게 편집증이란 “다양한 사물을 몰적인 집적체로 모으고자 하는, 그리고

    그들에게 중심화된, 통합된 조직화를 부과하고자 하는 욕구”(R. Bogue, 앞책,

    168쪽)로서, 주체의 경우 동일성을 형성하는 근거가 된다.

  • 이상 소설의 글쓰기 양상 연구 251

    다(이것은 과연 인세의 일이 아닐까? 작자의 한 상상의 유희에서만 나올 수

    있는 것일까?) 뜰 가운데에 타고 남아 있는 재부스러기와 조곰도 못함이 없

    을 때까지 그(X-인용자)의 주름살 잡힌 심장도 아주 새까맣도록 다 탔다.

    그날 저녁 때 업은 드디어 운명하였다. 동시의 그의 신경의 전부도 다 죽

    었다. 지금의 그에게는 아무것도 없었다.22)

    업은 자신이 가장 증오했던 X의 방식을 그대로 흉내냄으로써 자신의 복수를

    도모한다. 그리고 이 복수는 자신의 모든 것을 파괴하는 것까지 이어진다. 죽음

    자체가 복수의 도구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업의 논리는 명확하다. . X의 행위가 얼마나 나빴는지를 X가 보는

    앞에서 증명함으로써 업은 자신의 선함을 입증하고, 이로써 X의 주인이 되고

    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반복을 통한 업의 복수 행위는 모순적이다. 원래 주인

    의 나쁜 행위를 반복할 때, 노예 역시 나쁘게 될 뿐, 선량해질 수는 없기 때문

    이다. 노예는 자신이 먼저 나빠져야만 자신의 선량함을 입증할 수 있다는 모순

    을 피할 길이 없다.23) 업의 행위가 X와 업 양자의 파괴적 공멸을 가져오는 것

    도 그 때문인데, 그런 점에서 업은 X의 노예라는 위치를 벗어나지 못한다. 충

    족되는 것은 적극적인 욕망이 아니라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타나토스의 욕망뿐

    이다.

    이와 같은 모순은 이 작품에서 이상이 세상에 대해 복수하기 위해 동원하고

    있는 우연의 원리에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세상은 개인의 적극적인 삶의 의지

    에도 불구하고 돌발적인 우연(결핵)을 통해 그를 몰락에 빠뜨린다. 그럴 때 이

    상은 자신의 글쓰기에서 세상을 대표하는 인물인 백부를 돌발적인 우연(업과

    C에 대한 오해)을 통해 역시 마찬가지로 몰락에 빠뜨린다. 그런 점에서 이 작

    품을 쓸 때의 이상은 세상의 법칙에 대한 노예이다. 그는 이 세상이 얼마나 나

    쁜지를 입증하는 데 골몰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방식으로 그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세상과 자신의 파멸적 결과일 뿐이었다. 결국 결핵이 가져온 죽음의

    공포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이 방법으로는 전연 불가능했던 것이다.

    이후 이상의 작품을 보면 이상은 명민하게도, 또는 스스로 죽기를 시도하지

    22) 「십이월 십이일」, 129쪽.

    23) 노예의 정식이 가지는 모순점에 대한 비판은 G. Deleuze, 니체와 철학, 217-218쪽 참조.

  • 252 한국문학논총 제39집

    않는 한에는 당연하게도, 복수의 글쓰기가 어떤 긍정적인(생산적인) 결과도 가

    져오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결핵의 공포를 외부의 대상에 아무리 전이하여

    복수해 보아도 그 공포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 그럴 때 복수에서 또다른 방법

    으로 옮아가는 과정이 드러나는 소설이 「휴업과 사정」 및 「지도의 암실」이다.

    Ⅲ. 분열증의 글쓰기로의 전환

    1931년 이상은 4월에 「휴업과 사정」을 발표한 뒤, 7월에 일문시 「이상한 가

    역반응」 등을, 8월에는 일문시 「오감도」를 각각 발표한다. 이러한 발표 순서는

    이상이 소설에서 시로 글쓰기 영역을 옮겨가는 과정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의

    미가 있다. 이 장에서는 「휴업과 사정」(1931.4)을 분석함으로써 이상이 시 영역

    에서 드러낸 분열증적 징후의 의미를 가늠해 보기로 한다.

    십이월 십이일이 자기분열에 완강하게 반항하면서 복수를 도모한 작품이라면, 「휴업과 사정」은 자기분열을 인정하게 된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원래

    원한과 복수는 ‘들뢰즈적인 의미에서의 분열증’24)과는 정반대의 것이다. 모든

    의식은 복수의 대상에 대해 통일된 채 편집증적으로 집중되어야 하며, 모든 기

    억 역시 결코 망각되지 않고 의식 속에서 끊임없이 반추되어야 한다. 들뢰즈에

    따르면, 인간에게 최초의 복수의 대상이 되는 것이 바로 ‘아버지’라고 알려주고

    정식화한 것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다. 자아의 동일성은 자신을 거세하겠

    다고 위협하는 아버지와의 오이디푸스적인 대결 속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아버

    지에 집중하면서 결국에는 아버지를 본받음으로써 정상인이 된다는 정신분석

    학의 구도는 들뢰즈와 니체의 논리에 따르자면 바로 노예가 되는 길의 구도가

    된다.25)

    물론 이상이 정상적으로 오이디푸스 시기를 거쳤을 가능성은 적다. 십이월

    24) 들뢰즈는 편집증에 의거하여 주체의 동일성이 이루어진다면, 그러한 편집증에

    반대되는 의미로 분열증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이때의 분열증은 탈속령화의 해

    방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에 대해서는 서동욱, 앞책, 213-224쪽 참조.

    25) R. Bogue, 앞책, 144-147쪽.

  • 이상 소설의 글쓰기 양상 연구 253

    십이일에 나타난 백부에 대한 강렬한 적대감이 이를 증명한다. 달리 말해 이상의 심리에서 ‘아버지의 법’은 그 권력의 정도가 미약했다는 것인데, 그렇게

    미약한 만큼 결핵이 가져온 충격은 더욱 컸다고 할 수 있다. 아버지의 법을 통

    해 미흡하게나마 통일되게 구성되어 있던 정체성이 결정적으로 흔들렸던 것이

    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했듯이 결핵은 ‘나’ 아닌 ‘나’로서 주체 내부에 존재한다

    는 점은, 이상이 분열증적인 징후를 강하게 드러낼 수밖에 없는 환경으로 작용

    하였다. 그리고 이와 같은 분열증은 그가 노예의 상태를 벗어나는 첫 번째 단

    계가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휴업과 사정」을 보기로 하자. 이 작품은 얼핏 보기에 보산

    과 SS라는 두 인물 간의 다소간 어이없는 대결을 그리고 있다. SS의 무례함에

    대해 보산이 어떻게 복수를 해볼까 고심하는 것이 이 소설의 내용이다. 그러나

    이 두 인물은 사실 겉보기와는 달리 이상 내부의 분열된 자아를 인격적으로 알

    레고리화한 것이다.26)

    삼년전이보산과SS와 두사람사이에 끼어들어앉아있었다. 보산에게다른갈

    길이쪽을가르쳐주었으며 SS에게다른 갈길저쪽을가르쳐주었다. 이제담하나를

    막아놓고이편과저편에서 인사도없이그날그날을살아가는보산과SS두사람의

    삶이어떻게하다 가는가까워졌다, 어떻게하다가는 멀어졌다이러는 것이 퍽재

    미있었다.27)

    「휴업과 사정」에는 이상 문학의 전형적인 모티프인 거울 모티프가 처음으로

    나타난다. SS와 보산은 서로 맞붙은 두 인물, 그러나 형상과 성격이 완연히 반

    대되는 두 인물이다. 여윔/뚱뚱함, 내향적/뻔뻔함 등의 대립적 속성으로 구성된

    다. 이러한 대립이 왜 생겼는지는 SS가 보산의 집마당에 가래침 뱉는 행위에서

    알 수 있다. 이 가래침은 결핵의 제유이다. 그는 처음엔 보산이 안 볼 때 뱉던

    것이, 나중에는 보산이 볼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공공연하게 뱉는다. 결핵이 이

    상의 몸을 차츰차츰 공공연하게 각혈이라는 현상으로 드러나면서 침범해 오듯

    이, SS는 보산의 삶의 영역에 침범해 들어오는 것이다.

    26) 이 소설은 ‘보산’이라는 필명으로 발표되었다. 이 사실 또한 보산과 SS가 이상

    의 분열된 자아임을 알려준다.

    27) 이상, 「휴업과 사정」, 이상문학전집 2권, 149쪽.

  • 254 한국문학논총 제39집

    그러나 SS를 결핵 자체를 은유하는 것이라고 오해해서는 안된다. SS는 어

    디까지나 ‘결핵에 걸린 나’이다. 결핵과 ‘결핵에 걸린 나’의 차이, 이는 결핵이

    외부로부터 침입한 힘이 아니라, 내부에서 자라난 것28)으로 이상(이 소설에서

    는 보산과 SS에 대한 관찰자이자 서술자)에게 간주됨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결

    핵은 또다른 나의 본성이 된다.

    한편 보산은 ‘결핵과 무관한 나’이다. 결핵에 걸렸어도 일상적 삶은 지속되어

    야 한다. 잠을 자고, 밥을 먹고, 변소에 가며, 책도 읽고, 생각에 잠기기도 하며,

    외출도 해야 하는 것이다(이 소설에서 서술된 보산의 행위들). 그러한 ‘나’가 바

    로 보산이다. 그럴 때 보산은 SS의 침입에 대해 불만과 원한과 복수심을 느끼

    지만 그에게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칠 아무런 방법도 없다.

    또 하나 주의할 것은, 이와 같은 보산과 SS의 대립이 ‘외면적 자아/내면적

    자아’의 구도로 이해되어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내면 속에만 존재하는 진정한

    자아는 어디에도 없다. 둘 다 내면 속에 있는 자아이면서, 동시에 외면으로 드

    러나는 자아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두 자아를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과거의 나(보산)/새로운 나(SS)’ 또는 ‘동일자로서의 자아’(보산)/‘타자로서의

    자아’29)(SS)에 해당할 것이다.

    변소에서보산의앞에막혀 있는 느얼(널빤지-인용자)담벼락은 보산에게있

    어서는 종이를얻는시간이느얼이얻는시간보다도 훨씬더많을만큼의례히변소

    에들어온보산에게맡겨서는종이노릇을하는것이다. 종이노릇을하노라면 보산

    은여지없이 여러 가지글을썼다가여지없이여러번지우고 말아버린다. 어떤때

    에는사람된체면으로서는 도저히적을수없는끔찍끔찍한사건을만들어서당

    연히 그위에다적어놓고차곡차곡내려읽는다. 그리고난다음에는 또짓는다.30)

    28) 수잔 손택은 ‘분열’의 이미지와 관계된 질병은 암으로, 소모의 이미지와 관계된

    질병은 결핵으로 분리하여 본 바 있다(S. Sontag, 은유로서의 질병, 이재원 역, 이후, 2002 참조). 그러나 이상의 경우, 결핵이 이 두 이미지를 다 같이 지

    닌다고 할 것이다.

    29) 타자로서의 자아란 ‘나’이면서도 ‘나’가 아닌 것을 지칭하는데, 라깡은 그러한

    ‘나’를 무의식에서 발견한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타자로서의 자아는 내면이 아

    니라 육체에 존재하며, 숨어 있지 않고 각혈의 형태로 표출되는 자아이다. 들뢰

    즈 식으로 표현한다면, 이와 같은 동일자로서의 자아와 타자로서의 자아는 ‘이

    접적 종합’의 관계를 이루면서 ‘이상’이라는 인간을 이룬다고 하겠다.

  • 이상 소설의 글쓰기 양상 연구 255

    그러한 상황에서 보산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십이월 십이일처럼 원한과 복수의 글쓰기뿐이다. 그러나 그 복수의 글쓰기는 허망하다. 보산은 밤새워 변

    소의 널빤지 대신 종이에 복수의 글을 쓴다. 그러나 그 글쓰기는 자신의 의도

    대로 되지 않고 다른 글자들이 될 뿐이다. 보산 자신이 보아도 유치하기 짝이

    없는 글이 되고 마는 것이다. “SS야 내가어떠한사람인가 너의부인에게물어보

    아라 너의부인은조금도미인이아니다”(161쪽). 심지어 총으로 쏘아죽이는 장면

    까지 상상하면서도 보산은 복수할 수 없다. 그것은 실상 자기 자신을 죽이는

    일과 같은 까닭이다.

    이처럼 허망한 복수의 글쓰기에 보산이 매달려 있는 동안, SS는 노래를 부른

    다. 그 노래는 낮에 들으면 ‘오지뚝배기 긁는 소리 같은 껄껄한 목소리’지만, 밤

    에 들으면 그것이 과연 SS의 목소리일까 의심될 정도로 고운 목소리의 노래이

    다. 이에 대한 보산의 반응은 양면적이다. 낮에 들을 때는 한편으로는 듣기 싫

    어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노래야말로 “죽어가는 보산을 살려낼 수 있는 방

    법”(152쪽)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자신도 노래를 부르려 한다. 그리고 밤에 들을

    때는 한편으로 감동과 부러움을 느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이 “SS에 대

    한 경멸감과 우월감을 일시에 무너뜨려 버리는 것이 아닐까”(157쪽)하는 불안

    감을 느끼게 된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참조할 때, SS의 노래가 뜻하는 바는 명확하다. 그것은

    ‘결핵에 걸린 나’가 부르는 긍정의 노래, 곧 창조와 생산의 노래이다.31) 원한과

    복수의 글쓰기로서는 감히 범접할 수도 없는 그러한 아름다움의 노래, 그것을

    ‘결핵에 걸린 나’가 부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역전 속에서 보산은 마지막으

    로 SS에 대한 복수로서 허망한 내용의 편지를 SS의 집에 들여놓으려 한다. 그

    러나 정작 SS의 대문에서 발견하는 것은 노래보다도 더한 생산의 표지인 ‘숲과

    고추가 매달린 새끼줄’이다. ‘결핵에 걸린 나’인 SS는 아내와의 사랑을 통해 아

    이를 생산해내었던 것이다. 이를 목격한 보산이 ‘그대로 대단히 슬픈 마음도 있

    지만’ 복수를 단념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30) 「휴업과 사정」, 150쪽.

    31) 이는 결핵에 걸린 ‘나’는 과거의 ‘나’에 얽매여 있지 않은 주인의 상태에 있음을

    뜻한다. 주인이 누리는 능동성과 긍정성이 ‘노래’로 발현된 것이다.

  • 256 한국문학논총 제39집

    결국 「휴업과 사정」은 복수를 ‘휴업’하게 된 ‘사정’--결핵에 대한 복수에서

    결핵에 대한 인정으로의 내면적 변화--을 그려낸 작품이다. 보산은 의 도식에만 골몰했을 따름임을, 복수로는

    어떤 생산도 할 수 없으며, 다만 자기파괴만 가져올 뿐임을 이상은 절감했던

    것이다.

    작가로서의 이상에게 이 순간은 매우 중요한 순간이다. 자신의 내부에 흐르

    는 반동적 힘 대신 적극적 힘이 전면에 나서기 시작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복

    수의 글쓰기 대신 생산의 글쓰기가 시작되는 순간이며, 편집증의 글쓰기 대신

    분열증의 글쓰기가 시작되는 순간인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반동적 힘까지

    긍정적인 힘으로 변화되지는 않았다. 이제 겨우 시작 지점에 있는 상태로서, 여

    전히 결핵에의 공포가 분열증의 글쓰기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잠정적인 상태의 글쓰기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는 영역이 바로 시이다. 분열증

    의 글쓰기를 하면서도 그것이 생산과 즐거움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원한의 대

    상을 고통스럽게 내면에서 축출하는 차원에 머무는 것, 그것이 일문이든 국문

    이든 시형태로 이루어진 글쓰기에 나타난 양상들이다.

    이와 같은 고통어린 분열증의 글쓰기를 하고 있을 때, 이상에게 글쓰기의 경

    로를 암시해준 것은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이다. 지금부터 살펴볼 「지도의 암실」(1932. 3)은 그가 니체를 접하고 있었음이 단적으로 드러나

    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고통에 찬 분열증의 글쓰기를 수행한다는 점에

    서는 시와 유사하지만, 그러한 분열증의 글쓰기를 넘어설 단계가 모색된다는

    점에서는 시와 구별된다. 단적으로 말해 「지도의 암실」은 이상이 앞으로 자신

    이 할 글쓰기 계획을 천명하는 작품인 것이다.

    기인동안잠자고짧은동안누웠던것이 짧은동안 잠자고 기인동안누웠던그이

    다 네시에 누우면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그리고아홉시에서열시까지리상

    --나는리상한우스운사람을아안다 물론나는그에대하여한쪽보려하는것이거니

    와--은그에서 그의하는일을떼어던지는것이다.32)

    「지도의 암실」은 리상이라는 인물의 밤 열 시에서 다음다음 날 새벽 네 시까

    32) 이상, 「지도의 암실」, 이상문학전집 2권, 164쪽.

  • 이상 소설의 글쓰기 양상 연구 257

    지 30시간 동안의 내면 상황을 그려낸 작품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그려내는

    내면은 ‘한쪽’이다. 그렇다면 그 한쪽은 어떤 쪽인가. 사실 그 답은 「휴업과 사

    정」에서 이미 드러난 바 있는데, 바로 ‘새로운 나’이자 ‘타자로서의 자아’이다.

    그럴 때 「지도의 암실」은 그러한 타자로서의 자아를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한

    때의 글쓰기 양상을 잘 보여준다. 긍정과 생산을 지향하는 적극적 힘이 전면에

    나섰으나, 죽음에의 공포가 반동적인 힘으로 한쪽에서 가로막고 있는 과도적

    상황이 이 작품 속에 그려져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다음의 인용은 이 작품

    의 주제 부분이 된다.

    그남아있는박명의영혼 고독한저고리의 폐허를위한완전한보상그의영적산

    술 그는저고리를입고 길을길로나섰다 그것은마치저고리를 안입은것과같은

    조건의특별한사건이다 (중략) 그는엄격히걸으며도 유기된그의기억을안고

    초초히그의뒤를따르는저고리의영혼의 소박한자태에 그는그의옷깃을여기저

    기적시어 건설되지도항해되지도 않는한성질없는지도를 그려서가지고다니

    는줄 그도모르는 채밤은밤을밀고 밤은밤에게밀리우고하여 그는밤의밀집부대

    의 속으로속으로점점깊이들어가는모험을모험인줄도 모르고모험하고있는것같

    은것은 그에게있어 아무것도아닌그의방정식행동은 그로말미암아집행되어나

    가고있었다33)

    위 인용에서 저고리는 ‘과거의 나’이자 ‘동일자로서의 자아’를 뜻한다.34) 비록

    저고리를 입고 있지만 실제로 그는 ‘저고리를 입지 않’았다. 그런 그를 저고리

    가 따라온다. 그 저고리가 그에게 과거의 기억으로 따라오는 것은 당연하다. 그

    러한 기억은 원한과 복수를 불러일으키는 기억으로서 아직도 ‘그의 옷깃을 여

    기저기 적시면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지만, 그는 새로운 자아로서 새로운 길

    을 가고자 한다.

    그러나 그 길은 ‘아직 건설되지도 항해되지도 않’은 글쓰기의 길이다. 이 시

    점의 이상은 물론 어떤 작가도 해보지 못한, 그래서 성공할지 실패할지 그 미

    33) 윗책, 172쪽.

    34) 이 저고리는 리상의 친구 K가 빌려준 것이다. 그러나 리상의 한쪽면만을 보겠

    다는 언급에 비추어볼 때, K는 주인공 리상의 도덕적 자아--노예의 금욕적 도

    덕에 의해 성립된 자아로서 이는 그가 교회에 나가는 것으로 암시된다--를 뜻

    한다. 따라서 저고리는 K의 은유이다.

  • 258 한국문학논총 제39집

    래를 모르는 어두운 밤(암실) 같은 ‘글쓰기의 길’(지도) 앞에 서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지도는 이미 완성되어 있다. 그 지도에는 먼저 은광35)과 원숭이와 낙

    타가 있다. 하지만 그는 은광(돈)을 지나칠 것이며, 원숭이와 절교를 할 것이며,

    낙타를 죽일 것이다.

    원숭이와절교한다 원숭이는 그를흉내내이고 그는원숭이를흉내내이고 흉

    내가흉내를 흉내내이는것을 흉내내이는 것을 흉내내이는것을 흉내내이는것

    을흉내내인다. (중략)

    그의의미는대체어디서나오는가 머언것같아서불러오기어려울것같다 혼자

    사아는것이 가장혼자사아는것이 되리라하는마음은 낙타를타고싶어하게하면

    사막넘어를생각하면 그곳에좋은곳이 친구처럼있으리라생각하게한다 낙타를

    타면그는간다 그는낙타를죽이리라 시간은그곳에아니오리라왔다가도 도로가

    리라 그는생각한다36)

    이 부분의 자유연상은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전제로 하지 않으면 이해되지 않는다. 먼저 원숭이는 짜라투스트라가 돈과 권력에 미혹

    되어 이전투구를 벌이는 사람들을 비유한 것이다.37) 그러나 이와 같은 권력 의

    지는 진정한 권력 의지가 아니다. 그것은 노예로서 이 세상의 질서를 받아들인

    뒤의 권력이다. 들뢰즈 식으로 말한다면 편집증적으로 권력을 추구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와 같은 원숭이를 흉내내는 글쓰기는 단연코 거부된다.

    그러나 이상의 글쓰기 지도에서 원숭이보다 더욱 주의를 기울여 파악해야

    하는 것은 낙타이다. 낙타는 짜라투스트라가 정신이 새로 생성되는 세 단계의

    변신 과정 가운데 첫 번째로 꼽은 것이다. 이 낙타는 기존의 모든 가치를 짊어

    35) 은광이 제시되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손가락끝은질풍과같이지도위를거읏는데

    그는마않은은광을보았건만의지는걷는것을엄격케한다”(164쪽) 여기서 ‘손가락 끝

    이 지도 위를 걷는다’는 것이 글쓰기와 관련이 있음은 쉽게 추리할 수 있다.

    36) 「지도의 암실」, 168-169쪽.

    37) 이와 관계된 니체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보라, 이 쓸모 없는 인간들을! 그들은

    부(富)를 손에 넣지만 그로 인해 더욱 가난해진다. 그들은 권력을 원하며 권력

    의 지렛대와 같은 많은 돈을 무엇보다도 원한다--이 무능한 자들은! 보라, 기어

    올라가는 약삭빠른 이 원숭이들을! 그들은 서로를 기어올라 넘는다.”(F. W.

    Nietzsche,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사순옥 역, 홍신문화사, 1987, 64쪽) 이러한 내용에서도 왜 이상이 ‘은광’을 이 앞 부분에서 언급했는지 알 수

    있다.

  • 이상 소설의 글쓰기 양상 연구 259

    지고 사막을 건너가는 정신을 은유한 것이다.38) 이 낙타는 “나는 해야 한다 Ich

    soll”의 정신만을 가지고 있기에, 자신의 등에 짊어진 짐이 어떤 목적과 가치를

    지녔는지 묻지 않는다. 그는 무조건 의무적으로 사막을 건너가야만 하는 것이

    다. 그런 점에서 낙타는 노예의 정신이다. 이것도 이상에게 거부되어야 할 글쓰

    기임은 물론이다.

    니체는 낙타 뒤의 단계로 사자와 아이를 설정한다. 두 번째 단계인 사자는

    낙타가 왜 추구해야 하는지 모르고 추구하는 가치를 적극적으로 공격하고 파

    괴하고자 하는 정신, 곧 “나는 소망한다 Ich will”는 정신을 가리킨다.39) 그것은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지는 못하나 새로운 창조를 위한 자유는 창조할 수 있

    는”40) 정신인 것이다. 따라서 사자는 ‘신성한 부정’으로서 모든 기존의 것들을

    거부하는 부정을 뜻한다. 이는 달리 말한다면, 오이디푸스 구도가 설정해 준 아

    버지의 가치(낙타가 짊어진 짐)를 부정하고, 따라서 아버지--니체에게는 ‘법’이

    다--로 인해 성립되었던 편집증적인 주체를 가차없이 부정하고, 분열증으로 되

    돌아가는 과정이 된다. 이상에게서 분열증적인 내용과 이른바 기호놀이의 형식

    은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글쓰기의 기본 형식인 언어 법칙 자체를 거부하는

    것(기호놀이)과, 글쓰기의 기본 내용이 되는 편집증적 주체의 규범을 거부하는

    것(분열된 주체)는 분열증적 글쓰기라는 동전의 양면이다.

    그러나 이 분열증의 글쓰기는 고통스럽다. 그 고통을 넘어 주인으로서의 자

    유를 획득하려면 모든 기존의 가치를 금비늘처럼 달고 있는 용41)과 싸워 이기

    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 싸움이 쉬울 리가 없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고독 속에서, 내부로부터 자신을 뒤흔드는 반동적 힘--동일성을 갖춘 주체가

    되어 안정하라는--과 맞서야 하는 것이다. 사자로서의 차라투스트라 역시 온갖

    짐승들에 의해 고통을 받지 않았던가. 그 고통을 넘어설 때 비로소 디오니소스

    의 예술이, 웃음이, 춤이, 놀이가 등장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세 번째 단계인

    아이이다.

    38) G. Deleuze, 니체와 철학, 312-313쪽.39) 이찬웅, 들뢰즈의 생성의 존재론과 긍정의 윤리학, 서울대 석사논문, 2003,

    69-70쪽.

    40) F. W. Nietzsche, 앞책, 36쪽.

    41) 낙타의 정신을 강요하는 존재를 뜻한다.

  • 260 한국문학논총 제39집

    세 번째 단계인 아이에 대해 니체는 “어린아이는 천진무구 그 자체이며 망각

    이다. 하나의 새로운 시작이며 쾌락이다. 스스로 굴러가는 바퀴이며, 시원의 운

    동이며 신성한 긍정이다.”42)라고 말한다. 이상에게 이 단계의 글쓰기는 놀이로

    서의 글쓰기가 된다. 이를 앞 단계의 기호놀이와 이제 질이 달라진 것이다. 고

    통이 아닌 쾌락으로서의 글쓰기, 그러나 그 글쓰기를 통해 이제껏 없던 가치를

    생성해내는 주인으로서의 글쓰기, 그것이 이상이 꿈꾸었던 글쓰기인 것이다.43)

    이 지점에서 아마 「지도의 암실」에는 원숭이와 낙타만 등장하지 않는가 하

    는 의문이 제기될 것이다. 그러나 이상에게서 니체의 흔적은 사실 첫 작품인

    십이월 십이일에서부터 나타난다. 연재 4회분에 끼어든 작가의 말에서 이상은 “나는 전연 실망 가운데 있다. 지금에 나의 이 무서운 생활이 노(繩) 위에

    선 도승사(渡繩師)의 모양과 같이 나를 지지하고 있다.”고 적은 것은 짜라투스트라…의 1부에 나오는 줄타기광대44)를 가져온 것이며, X를 ‘절름발이’로 설정한 것 역시 이 부분에서 따온 것이다. 그리고 아이 역시 이미 나타난 바 있

    다. 「휴업과 사정」의 끝부분에서 SS가 아이를 안고 있는 것인데, 앞에서 살펴

    본 것처럼 그 아이는 복수심에 불타고 있던 보산에게 패배를 안겨주는 결정적

    인 요인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이와 함께 「지도의 암실」에서 리상이 거울을 보

    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비춰주는 거울에 자기 모습을 바라보는 짜라투

    스트라의 일화가 관련되어 있다.

    여자는싫다는소리를한번도하지아니하고 술을마시면얼굴에있는 눈가앗이

    42) F. W. Nietzsche, 앞책, 37쪽.

    43) 그러나 이 세 번째의 글쓰기는 성공과 실패가 겹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또다른 논의가 필요하지만, 「동해」 이후의 소설 및 「권태」를 비롯한 성천기행

    관련 수필들이 이 유형의 글쓰기에 속한다. 특히 「동해」는 아이와 해골이라는

    뜻의 조어인데, ‘아이’를 겨냥한 세 번째 유형의 글쓰기가 성공과 실패의 양면

    을 가졌던 것을 함축한 제목이다.

    44) 짜라투스트라…에서 줄타기 광대는 어릿광대의 선동과 도전 때문에 줄에서 떨어져서 죽는다. 이 줄타기 광대는 자신이 걸어가는 좁은 선(길)이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 것인지 모른 채 마냥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만 하는 존재, 곧 낙타

    와 유사한 존재로 그려진다. 따라서 이 광대가 사자와 관계 있는 어릿광대에 의

    해 죽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그러나십이월 십이일을 쓰던 무렵의 이상은 이를 이해하지는 못한 채 단지 그 어휘만을 빌려왔다고 할 수 있다.

  • 이상 소설의 글쓰기 양상 연구 261

    대단히벌개지면 여자의눈은대단히 성질이달라지면 마음은사자와같이사나와

    져가는것을 그가가만히지키고 앉아있노라면 여자는그에게 별짓을다하여도

    그는변하려는얼굴의표정의멱살을꽉붙들고다시는 놓지않으니까 여자는성이나

    서 이빨로 입술을꽉깨물어서 피를내이고 축음기와같은국어로그에게향하여

    가느다랗고길게막퍼부어도 그에게는아무렇지도않다45)

    「지도의 암실」 뒷부분은 분열증적인 글쓰기를 결심하고 나서도 가시지 않는

    괴로움과 고통 때문에 거리를 걸어가던 리상이 어떤 술집으로 들어가는 내용

    으로 이루어진다. 실제 외적 행동일 수도 있고, 반대로 내면적 연상일 수도 있

    는 이 부분에는 “LOVE PARRADE”라는 어구가 두드러지게 내세워져 있는데,

    여기서 리상은 위의 인용처럼 ‘사자 같이 사나워져가는’ 마음을 지닌 여자를 만

    난다. 이 여자는 부정의 화신인 동시에, 리상을 사랑의 영역으로 옮아가게 하는

    계기로 작용하는 인물이다. 곧 「동해」 이후 「종생기」에 이르는 후기 소설의 주

    제를 암시하는 것으로, 사랑놀이라는 주요 모티프를 미리 선보이는 인물인 것

    이다.

    결국 「휴업과 사정」 및 「지도의 암실」은 원한과 복수의 글쓰기에서 분열증

    적인 글쓰기의 단계로 옮아가는 과정을, 역시 분열증적인 서술 방식으로 그려

    낸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소설에서 분열증은 일단 대칭 구조로 나타

    난다. ‘동일성으로서의 나/과거의 나/결핵 이전의 나’와 ‘타자로서의 나/새로운

    나/결핵에 걸린 나’가 거울을 보는 것처럼 맞붙어 있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이

    두 ‘나’는 이 단계에서는 결코 서로 융화할 수 없는 관계에 놓여 있다. 서로가

    서로를 보는 것 자체가 이미 고통인 관계인 것이다. 이 고통을 넘어서야 세 번

    째 단계의 글쓰기인 ‘아이의 글쓰기’가 이루어질 것이다.

    Ⅳ. 사랑놀이와 ‘아이/해골(孩/骸)’의 글쓰기

    이상이 수행한 분열증의 글쓰기의 원형이 ‘결핵과 무관한 나’/‘결핵에 걸린

    나’의 대립에 있다면, 그러한 대립의 파생형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여성을 대상

    45) 「지도의 암실」, 174쪽.

  • 262 한국문학논총 제39집

    으로 한 분열증적 글쓰기이다. 시를 경유한 뒤,46) 이상은 1936년 김기림에게 보

    낸 편지에서 “이제 소설을 쓰겠오.”라고 다짐하고, 「날개」(1936.6), 「지주회시」

    (1936.7), 「봉별기」(1936.12)를 발표한다. 그리고 해를 넘겨 「동해」(1937.2)와

    「종생기」(1937.5)를 발표한다. 이 소설들은 모두 여성들과의 사랑을 제재로 한

    것인데, 특히 앞의 두 작품이 다소간 비극적 색채를 띠고 있다면, 뒤의 세 작품

    은 일종의 사랑놀이가 유희적으로 그려진 작품이라는 특징이 있다.

    그렇다면 왜 결핵에서 여성으로 바뀌었을까. 이 물음은 이미 답이 어느 정도

    나와있다. 그것은 결핵을 인정하는 것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이상은 1933년

    결핵 요양차 배천온천으로 갔다가 요양 대신 기생인 금홍을 만나 사랑에 빠진

    다. 이 당시의 이상에게 금홍은 결핵으로 인한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

    는 도피처로 간주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금홍은 결코 도피처가 아니었다. 숱한

    가출로 그녀는 이상에게 골치덩이였던 것이다. 이미 사랑은 그의 내면에 들어

    와 있지만, 결코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사항이었던 것인데, 바로 이 점이

    결핵과 유사한 것이다.47) 그럴 때 「날개」 계열과 「봉별기」 계열은 어떻게 이

    곤란한 사항을 처리할 것인가를 기준으로 선명히 구분된다.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 연애까지가

    유쾌하오. //

    육신이 흐느적흐느적하도록 피로했을 때만 정신이 은화처럼 맑소. 니코틴

    이 내 횟배 앓는 뱃속으로 스미면 머리 속에 으레히 백지가 준비되는 법이

    오. 그 위에다 나는 위트와 파라독스를 바둑포석처럼 늘어놓소. 가증할 상식

    의 병이오.

    나는 또 여인과 생활을 설계하오. 연애기법에마저 서먹서먹해진, 지성의

    극치를 흘깃 좀 들여다 본 일이 있는 말하자면 일종의 精神奔逸者 말이오.

    이런 여인의 반--그것은 온갖 것의 반이오--만을 領受하는 생활을 설계한

    다는 말이오. 그런 생활 속에 한 발만 들여놓고 흡사 두 개의 태양처럼 마

    주 쳐다보면서 낄낄거리는 것이오. 나는 아마 어지간히 인생의 諸行이 싱거

    워서 견딜 수가 없게 되고 그만둔 모양이오. 꾿빠이.48)

    46) 「공포의 기록」, 「불행한 계승」, 「김유정」 「단발」 등을 쓴 것이 시를 쓰던 기간

    과 겹치기는 하지만 발표되지 않았다.

    47) 과거의 ‘나’와 결핵에 걸린 ‘나’가 이접적 종합의 관계로 맺어져 있던 것처럼, 이

    상과 금홍 역시 그러한 이접적 종합의 관계로 맺어진 부부이다. 이를 이상은

    ‘절름발이’로 표현하고 있다.

  • 이상 소설의 글쓰기 양상 연구 263

    이 가운데 「날개」를 보자. 이 작품은 앞에 에피그램으로 구성된 작가의 말이

    나오고, 그 다음 본 이야기가 제시된다. 소설 첫 부분인 위의 인용에서 유명한

    구절인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는 이상 자신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는 그 다음

    의 내용을 볼 때, ‘결핵으로 몸이 말라버린 자신’ 또는 ‘사랑 때문에 말라버린

    자신’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그 다음 단락이 결핵(‘횟배 앓는 뱃속’)과 사랑

    (‘여인과 생활’)을 내용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상은 박제가 된 상황

    을 인정한다. ‘유쾌하다’는 말은 그 뜻이다. 그렇다면 결핵에 대한 인정은 무엇

    을 낳았는가. 그것은 ‘위트와 파라독스’로 가득찬 글쓰기, 곧 분열증의 글쓰기에

    따른 시를 낳았다. 그러나 시 형태의 글쓰기에 대해 이제 이상은 별다른 의미

    를 발견하지 못한다. 판에 박힌 시들(‘가증할 상식의 병’)이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상의 관심은 ‘여인과의 생활’로 기울어진다.

    그러나 그 여인은 어떠한가. 잘하던 연애기법마저 그다지 쓰지 않은 채 극악

    한 술수(‘지성의 극치’)를 부리는 ‘정신분일자’인 여인이다. 여기서 ‘분일’이라는

    말은 중요하다. ‘奔’은 통상 ‘달아나다’란 뜻으로 쓰이지만, ‘예식을 갖추지 않고

    급히 혼인하다’라는 뜻이 있다. 그리고 ‘逸’도 ‘잃다, 달아나다’의 뜻으로 쓰이지

    만, ‘음탕하다’라는 뜻이 있다. 곧 ‘정신이 달아난(제 맘대로 행동하는) 여인’이

    면서, ‘예식을 갖추지 않고 동거한 음탕한 정신을 가진 여인’인 것이다. 이 여인

    은 이 작품 속에서는 ‘아내’이며, 이상의 실제 삶에서는 금홍을 가리킨다. 그러

    나 이상은 그러한 여인의 전부와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여인의 반’만 같

    이 사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이상 역시 마찬가지다. 그 역시 ‘그런 생활 속에

    한 발만 들여놓고’ ‘흡사 두 개의 태양처럼 낄낄거리면서’ 사는 것이다. 둘 모두

    자신의 전부를 사랑에 들여놓지 않고 반씩만 들여놓는 상황, 이것이 「날개」의

    본 이야기를 엮어내는 기본 틀이 된다. 달리 말해 두 사람 모두 분열된 자아 가

    운데 한쪽씩만 내놓고 같이 사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반 가운데 어떤 부분을 이 두 사람은 내놓았을까. 본 이야

    기를 본다면, ‘나’(이상)는 아내를 사랑하는 ‘나’이다. 그러하기에 이 ‘나’는 일종

    의 백치이다. 아내가 외간 남자를 끌어들이는 것이나, 아내가 주는 돈의 의미를

    전연 깨닫지 못한다. 아무 것도 모르고 사랑만 하는 ‘어린아이’같은 ‘나’를 이상

    48) 이상, 「날개」. 이상문학전집 2권, 318쪽.

  • 264 한국문학논총 제39집

    은 처음으로 소설에 등장시키고 있다. 그 다른 편에는 어른으로, 그리고 아내의

    ‘정신분일’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나’가 있다.49) 그리고 이 두 ‘나’로 이접적

    으로 구성된 실제의 ‘나’(이상)가 작품 서두의 에피그램을 말하고 있다.

    한편 아내는 자신의 반 가운데 어떤 부분을 내놓았을까. 아내는 욕망과 생활

    에 매진하는 자신을 내놓는다. 그녀의 매음 행위는 욕망과 생활 모두를 결합시

    키는 행위이다. 이러한 아내의 반쪽에게 어린아이같은 ‘나’는 한편으로 다루기

    쉬운 존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욕망과 생활에 거치적거리는 존재가

    된다. 그 반대편에는 욕망과 생활이 아닌, 이상을 사랑해주는 아내가 있지만 이

    작품에는 등장하지 못한다.

    그러나 여기에 트릭이 있다. 어린아이같은 ‘나’는 놀랍게도 자신을 사랑해주

    는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가 사랑하는 것은 욕망과 생활에 매진하는 아내

    이다. 이는, 아내가 욕망과 생활에 매진하기 위해 갖춘 장비들인 화려한 옷과

    화장품, 그리고 무엇보다 욕망과 생활의 장소인 윗방을 ‘나’가 사랑하는 데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그런 점에서 아내는 세상을 향하는 통로이자 세상 그 자체

    (세상의 속성으로서의 욕망과 생활)를 은유하는 인물이다.

    「날개」에서 사랑의 의미가 드러나는 것도 이 지점이다. ‘나’를 사랑하는 아내

    를 사랑하지 않고, ‘나’를 사랑하지 않는 아내를 사랑하는 것, 그것은 바로 아내

    를 바꾸기 위한, 달리 말해 아내를 부정하기 위한 도전이며, 그런 점에서 세상

    을 향한 도전인 것이다. 이는 어른으로서의 나가 할 수 있는 행위는 결코 아니

    다. 어린아이처럼 눈멀고 귀먹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십구세기는 될 수 있거든 봉쇄하여 버리오. 도스토예프스키 정신이란 자

    칫하면 낭비인 것 같소. 위고를 불란서의 빵 한조각이라고는 누가 그랬는지

    至言인 듯 싶소. 그러나 인생 혹은 그 모형에 있어서 디테일 때문에 속는다

    거나 해서야 되겠소? 禍를 보지 마오. 부디 그대(독자--인용자)께 고하는

    것이니……50)

    서두의 에피그램 중 일부분인 위 인용은 「날개」를 보는 독자들에 대한 충고

    49) 이 두 자아는 「휴업과 사정」의 SS와 보산에 대응한다. 곧 타자로서의 자아(와

    동일자로서의 자아가 계속 나타나는 것이다.

    50) 윗글, 319쪽.

  • 이상 소설의 글쓰기 양상 연구 265

    이다. 여기서 ‘십구세기’는 봉건적 상태에 머물러 있는 조선을 뜻하는 것으로

    흔히 해석되지만,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바로 욕망과 생활에 매진하는 어른(낙

    타 또는 노예로서의 어른)의 사고 방식을 뜻한다.51) 그 어른은 바로 욕망과 생

    활에 빠져 있기 때문에 도스토예프스키처럼 고민하고, 위고의 레미제라블처럼 빵 한 조각에 매달리는 삶이 지속되는 것이다. 그러한 삶은 주인의 삶이 아

    니라 노예의 삶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럴 때 이상은 그러한 방식으로 ‘인생의

    한 모형’인 「날개」를 보지 말고, 어린아이의 시각으로 보기를 권하고 있다.

    그러나 「날개」에서 이상은 끝까지 어린아이의 글쓰기를 지속하지 못한다. 그

    것은 직접적으로는 아내의 기만 행위에서 비롯하였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그

    러한 기만 행위에 집착하는 이상 자신에게서 말미암았다.

    우리들은 서로 오해하고 있느니라. 설마 아내가 아스피린 대신에 아달린

    의 정량을 나에게 먹여 왔을까? 나는 그것을 믿을 수는 없다. 아내가 그럴

    대체 까닭이 없을 것이니, 그러면 나는 날밤을 새면서 도적질을 계집질을

    하였나? 정말이지 아니다.

    우리 부부는 숙명적으로 발이 맞지 않는 절름발이인 것이다. 내가 아내나

    제 거동에 로직을 붙일 필요는 없다. 변해할 필요도 없다. 사실은 사실대로

    오해는 오해대로 그저 끝없이 발을 절뚝거리면서 세상을 걸어가면 되는 것

    이다. 그렇지 않을까?

    그러나 나는 이 발길이 아내에게로 돌아가야 옳은가 이것만은 분간하기

    가 좀 어려웠다. 가야 하나? 그럼 어디로 가나?52)

    「날개」의 결말 부분인 위의 인용은, 아이로서의 ‘나’의 목소리가 뒤로 물러나

    고 어른으로서 이것저것 이성적으로 따지는 목소리가 다시금 등장하는 장면이

    다. 이상은 아이의 시각을 유지하려 하지만 아내는 그것을 용인하지 않는다. 끊

    임없이 어린아이의 시각을 가지는 것을 방해하고 침해한다. 그것이 극에 달했

    을 때, 이상은 어린아이의 시각을 제대로 유지하지 못한다. 한편으로는 결핵에

    걸린 나를 인정할 때처럼 아내의 그 행위를 ‘로직’이나 ‘변해’를 붙이지 않고 있

    는 그대로 인정하고서 ‘절름발이인 대로 세상을 걸어가’고자 하지만, 다른 한편

    51) ‘십구세기’를 봉건으로 해석할 경우, ‘도스토예프스키’ 및 위고와 연결되지 않는

    다.

    52) 「날개」, 343쪽.

  • 266 한국문학논총 제39집

    으로는 그러한 기만 행위를 도저히 용납하지 못하겠다는 고통과 고민을 벗어

    날 수 없는 것이다. 곧 이 부분에서 이상은 어쩔 수 없이 ‘십구세기의 도스토예

    프스키’가 되고 마는 것이다. “날개여 돋아라.”라는 유명한 구절은 바로 그러한

    어른의 고심 어린 목소리이다. 「날개」의 비극적 색채는 바로 이 어른(노예--낙

    타)의 시각에서 비롯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어린아이의 글쓰기를 유지할 것인가. 이것이 이 단계의 이

    상이 봉착한 과제이다. 「봉별기」, 「동해」, 「종생기」는 일관되게 여인과의 사랑

    을 다루고 있거니와, 그 중점은 「날개」에서 다룬 여인의 바람피우기를 어떻게

    어린아이의 시각으로 철저히 그려낼 것인가에 있다. 이상은 곧 그 답을 찾아내

    었는데, 그것은 사랑 자체를 어린아이의 놀이로 그려내는 것이었다. 이는 시에

    서 분열증의 글쓰기를 할 때에도 없던 것이거나 있다 해도 희미하게 나타났을

    뿐이었고, 「날개」에서는 기껏해야 사랑 자체가 아닌 그 사랑의 부산물(옷과 화

    장품, 지리까미 등)을 가지고 놀았을 뿐이었다.

    「멫번?」 / 「한번」 / 「정말?」 / 「꼭」

    이래도 안되겠고 間髮을 놓지 말고 다른 방법으로 고문을 하는 수밖에

    없다.

    「그럼 尹 이외에?」 / 「하나」 / 「예이!」 / 「정말 하나예요」 / 「말 마라」 /

    「둘」 / 「잘 헌다」 / 「셋」」 / 「잘 헌다, 잘 헌다」 / 「넷」 / 「잘 헌다, 잘 헌

    다, 잘헌다」 / 「다섯」

    속았다. 속아넘어 갔다. 밤은 왔다. 촛불을 켰다. 껐다. 즉 이런 가까 반지

    는 탄로가 나기 쉬우니까 감춰야 하겠지에 꺼도 얼른 켰다. 밤이 오래 걸려

    서 밤이었다.53)

    「날개」에서 제시되었던 아내의 기만 행위는 「동해」에 와서도 중심적인 소재

    가 된다. 그러나 그것을 서술하는 방식은 이처럼 달라졌다. 아내의 잘못을 아이

    의 시각으로 따지고 ‘고문’한다. 일종의 처벌이자 놀이인 것이다. 그래서 처벌은

    ‘하나의 진정한 축제’가 된다.

    처벌의 본성은 결코 고통받는 자가 내면으로 죄의식을 느끼게 하는 데

    53) 이상, 「동해」, 이상문학전집 2권, 262-263쪽.

  • 이상 소설의 글쓰기 양상 연구 267

    있지 않고 있다. (중략) 결국

    고통은 본래 채무자가 자기 마음 안에 생산해 내는 가책이 아니라 처벌의

    활동을 통해 채권자의 눈이 얻어내는 인 셈이고, 이런 의미에

    서 채무자의 고통은 채권자의 손해를 보상해 줄 수 있는 등가물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다. 54)

    이러한 축제를 통해 잘못은 으로만 남고 망각된다. 어느 쪽도 기억에

    사로잡혀 처벌하는 노예의 원한과 처벌받는 노예의 가책에 시달리지 않는다.

    이는 분열증적 글쓰기에서로는 도달하지 못하는 현상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여인(세상)은 마지막 위협을 가한다. 축제 자체를 이용하는

    것이다. 「동해」를 보면, 앞의 인용에서 본 놀이로서의 처벌 이후, 임이는 아무

    런 죄책감 없이 다시금 윤을 만난다. 이번에는 사정이 더욱 지독한데, 이전처럼

    숨기지도 않고 아예 대놓고 만나는 것이다. 그럴 때 또다른 친구 T는 이상의

    손에 칼을 쥐어준다. 이때 이상은 윤을 찌를 것인가, 임이를 찌를 것인가, 아니

    면 자신을 찌를 것인가 고민한다. 그러나 복수도 안되고 자살도 안된다. 결핵을

    인정했듯이, 그것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축제와 놀이로서의 처벌까지 이용

    하는 여인(세상)으로 인해 이상은 바싹 말라 해골이 된다.

    (복수하라는 말이렷다)

    (윤을 찔러야 하나? 내 결정적 패배가 아닐까? 윤은 찌르기 싫다)

    (임이를 찔러야 하지? 나는 그 독화 핀 눈초리를 망막에 映像한 채 往生

    하다니)

    내 심장이 꽁꽁 얼어들어온다. 빼드득 빼드득 이가 갈린다.

    (아하 그럼 자살을 권하는 모양이로군, 어려운데 어려워, 어려워, 어려워)

    내 비겁을 조소하듯이 다음 순간 내 손에 무엇인가 뭉클 뜨듯한 덩어리

    가 쥐여졌다. 그것은 서먹서먹한 표정의 나쓰미깡(과일 이름--인용자), 어느

    틈에 T군은 이것을 제 주머니에 넣고 왔던구. / 입에 침이 쫘르르 돌기 전

    에 내 눈에는 식은 컵에 어리는 이슬처럼 방울지지 않는 눈물이 핑 돌기

    시작하였다.55)

    54) 서동욱, 앞책, 136-137쪽.

    55) 「동해」, 282쪽.

  • 268 한국문학논총 제39집

    이 부분은 어린아이의 글쓰기가 절정에 달한 부분이자, 동시에 해골이 되고

    만 어른의 시각이 그 뒷면에서 공명하고 있는 부분이다. ‘꽁꽁’, ‘빼드득’이라는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귀여운 느낌의 부사어가 그렇고, 칼을 어떤 도구로 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갑자기 과일 깎는 칼로 둔갑하는 내용이 그렇다. 그럴

    때 마지막 문장은 어린 아이의 글쓰기와 뒤에 숨어 있던 어른의 시각이 겹쳐져

    공명이 절정에 달한 문장이다. 한편으로는 과일을 앞에 두고 입에 침이 돌지만,

    다른 한편으로 사랑의 실상을 깨달은 어른의 눈물이 겹쳐지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童骸’(어린아이 + 해골)이다.

    Ⅴ. 결론

    사실 글쓰기로 아무 것도 해결되는 것이 없다. 이상에게도 글쓰기는 그러했

    다. 백부에 대한 원한이나 결핵, 사랑, 그 무엇도 현실에서는 해결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은 우연적인 세상에 좌우되지 않는 것, 스스로가 스스로의 주인이

    되는 것을 글쓰기라는 행위에서 발견하였다. 글쓰기 공간까지도 세상의 법칙이

    좌우한다면, 인간은 어떤 영역에서도 주인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런 만큼 이상

    에게 니체는 본질적인 영향을 미쳤다. 니체는 이상에게 글쓰기의 방법을 가르

    쳐 주었다. 그러한 방법으로 이상은 원한과 복수의 글쓰기에서, 분열증의 글쓰

    기, 그리고 아이의 글쓰기로 진전해 나아갔다.

    이상은 니체를 명민하게 깨달았고, 글쓰기 영역에서 철저하게 실천하였다.

    여전히 실제의 몸은 결핵에, 가난에, 사랑의 배신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상에게 글쓰기는 탈주의 공간이었고 유목의 공간이었으며 무엇

    보다 주인이 되는 경험을 주는 공간이었다. 이 글에서 다루지 않았지만 「종생

    기」는 우리 문학사 어디에도 없는, ‘아이/해골’의 글쓰기의 정점을 보여준다. 이

    는 ‘아이/해골’의 대립성 자체도 즐김--들뢰즈와 니체에게 이는 주인의 가장

    주인다운 특성이다--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주제어 : 주인과 노예, 결핵, 원한과 복수의 글쓰기, 분열증, 아이/해골의 글쓰기

  • 이상 소설의 글쓰기 양상 연구 269

    참고문헌

    1. 자료

    이상, 이상문학전집 1권-5권, 이승훈 및 김윤식 편, 문학사상사, 1989-2001.

    2. 저서 및 논문

    김승희, 이상 시 연구-말하는 주체와 기호성의 의미 작용을 중심으로, 서강대 박사논문, 1992.

    김윤식, 「유클리드 기하학과 광속의 변주-이상문학의 기호체계 분석」, 문학사상, 1991.9.

    ______, 이상 연구, 문학사상사, 1987.______, 한국현대문학사상사론, 일지사, 1992.김주현, 이상소설연구, 소명출판, 1999.서동욱, 들뢰즈의 철학--사상과 그 원천, 민음사, 2002.이찬웅, 들뢰즈의 생성의 존재론과 긍정의 윤리학, 서울대 석사논문, 2003.최혜실, 한국모더니즘 소설 연구, 서울대 박사논문, 1991.한상규, 「1930년대 모더니즘 문학의 미적 자의식--이상 문학의 경우」, 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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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ogue, R., 들뢰즈와 가타리, 이정우 역, 새길, 1995.Deleuze, G., 니체와 철학, 이경신 역, 민음사, 1998.Deleuze, G & F. Guattari, 앙띠 오이디푸스--자본주의와 정신분열증, 최명

    관 역, 민음사, 1994.

    Nietzsche, F. W.,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사순옥 역, 홍신문화사, 1987.

    Sontag, S., 은유로서의 질병, 이재원 역, 이후, 2002.

  • 270 한국문학논총 제39집

    A Study on the Aspect of Writing of Lee

    Sang's Novels

    - Grudge and Revenge, Schizophrenia,

    Child/Skeleton

    Jang, Soo-Ik

    This Thesis has a purpose to study what the aspect of writing Lee

    Sang's novels showed. I refered to the philosopy of G. Deleuze and F. W.

    Nietzsche, especially their viewpoint on the relationship between master and

    slave. At his first novel “12th December”(십이월 십이일), the aspect of writing were shown the form of grudge and revenge to foster father who

    was his uncle. On the other side, the grudge also directed against

    tuberculosis that make him to feel horror of death. But the writing of

    grudge couldn't solve the horror of death stemmed from tuberculosis. He

    was in a state of slave who has hostility. Lee Sang's next attempts was a

    writing of schizophrenia. Two bitterly opposed ego in his psychology were

    “non-infected I”(or “past I”) and “infected I”(or “present I”). This form of

    writing is compared to “lion” that Nietzsche called the second stage to

    superman. But the writing of schizophrenia also couldn't solve the horror of

    death. Last attempts was a writing of child. In this stage, he changed the

    confrontation between “non-infected I” and “infected I” into the

    confrontation between “loving-woman I” and “non-loving-me she”. This

    made a quite big difference in the overall mood of his novels. Wit, paradox

    and childish expression were mainly written in this period. Especially the

    writing of childish expression compared to “Child” that Nietzsche called the

    third stage to superman. But a desperate mood flowed in the inside of this

  • 이상 소설의 글쓰기 양상 연구 271

    form of writing. And so Lee Sang expressed it with “child/skeleton”(「동해」).

    Key Word : master and slave, tuberculosis, the writing of grudge and

    revenge, schizophrenia, the writing of child/skeleton

    이상 소설의 글쓰기 양상 연구 - 원한과 복수, 분열증, 아이/해골Ⅰ. 서론Ⅱ. 원한과 복수의 글쓰기와 결핵Ⅲ. 분열증의 글쓰기로의 전환Ⅳ. 사랑놀이와 ‘아이/해골(孩/骸)’의 글쓰기Ⅴ. 결론참고문헌Abstract